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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07-05-21 오후 05:24:18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10779.html

 

 

 

[기고] 어느 사진작가의 구치소 단식 한달 / 박래군

한겨레
» 박래군/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정책기획팀장
이시우씨가 단식에 들어간 지 한 달이 넘었다. 온통 세상의 관심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 쏠려 있을 때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서 그가 단식 중이었지만, 언론은 한 언론사의 전문기자인 그를 외면했다.
 

“국가보안법을 끌어안고 죽겠다.” 그가 서울구치소에서도 단식을 지속하는 이유다.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카메라를 분단의 현장, 민통선에 들이댔다. 그의 이런 작업은 <민통선 평화기행>(창비)이란 이름을 달고 책으로 나왔고, 이 책은 지난해에 독일서 열린 국제도서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책 100권으로 선정되어 소개되기도 했다. 어디선가 녹슨 채 땅에 꽂혀 있는 대인지뢰라든지, 철조망 안쪽 구석진 곳에 피어난 꽃을 조명한 사진, 그 옆에 뒹굴어 썩어가는 군화 사진을 통해 애잔한 느낌을 받은 기억이 있다면 당신은 아마도 공안당국이 이적표현물로 몰고 있는 이시우씨의 사진을 본 것일 게다.

 

그는 ‘걸어 다니는 명상가’라는 별명답게 전국을 무른 메주 밟듯 돌아다니면서 주한 미군기지의 문제점이나 유엔사의 문제점들을 파헤쳤다. 기밀이 해제된 미국의 문서들과 미국 국방부 누리집 자료 분석을 통해서 수원과 오산, 청주의 미군기지에 열화우라늄탄 300만 발 이상이 보관되어 있으며,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는 상황임에도 오히려 유엔사는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폭로한 것도 그였다.

 

그런 그가 국가기밀 누설과 이적표현물 제작·배포 등의 혐의로 구속되어 있는 것이다. 그의 예술혼이 깃든 필름들은 벌써 상당수 손상되었다고도 한다.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 그림 사건에 대해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그의 작품을 돌려주고 피해배상하라고 권고했지만 대한민국은 이 권고를 무시했고, 이제 다시 예술작업을 해 온 사진작가를 구속했다.

 

이시우씨 사건만이 아니다. 지난 3일에는 수원에서 인터넷 서점 ‘미르북’을 운영하던 김명수씨가 구속되었다가 구속적부심에서 석방되었다. 공안기관에서는 이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 책을 구입한 60명의 명단과 주소를 파악하고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1997년 서점 압수사건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때로부터 10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언론에는 주로 북한 소설, 북한 원전을 판매한 것으로 보도되었지만,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같은 저명한 고전, 리영희 교수의 저작들이나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같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들도 이적표현물로 압수되었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이적표현물로 확정판결 받은 책들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지난해 말 이른바 ‘일심회’ 사건에서부터 팔순의 통일운동가 강순정씨 구속사건, 전교조 교사들 구속과 한총련 배후조직을 캔다는 이유로 구속한 사건 등 보안법을 들이댄 인권탄압이 줄을 잇고 있다. 독일서 귀국했다가 옥고를 치렀던 송두율 교수의 스승 하버마스가 했다는 “그 야만적인 나라에서 빨리 나오라”는 말이 떠오른다.

 

남북의 철로가 이어지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논의되는 요즘, 책 한 권으로, 사진 찍고 언론에 기고한 문제로 구속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죽어야 할 것은 21세기에도 야만의 시대로 시계바늘을 되돌리려는 국가보안법과 공안기관들이다. 평화로 가기 위해서, 야만을 끝장내기 위해서도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그 투쟁은 이시우씨만의 투쟁일 수는 없다. 이시우, 그가 있을 곳은 서울구치소가 아니다.

 

 박래군/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정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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