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대자보> 2007/05/16 [02:32]

http://www.jabo.co.kr/sub_read.html?uid=20218§ion=section1§ion2=

 

 

 

자본주의, 영원할까 혹은 위태로운 시스템인가?

[비나리의 초록공명] 삶이 짜증나거나 우울할 때 지적 산책에 나서보라
 
우석훈
 
자본론 회상
 
내가 쓰는 글에는 자본론이 종종 등장한다. 그렇다고 내가 자본론을 늘상 옆에다 놓고 확인하면서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내가 원래 보던 불어본 자본론 여덟권 짜리는 아버님 댁에 있고, 벌써 10년 째 자본론 전권이 없는 상태로 살고 있다. 아주 최근에 2권을 다시 한 번 읽은 일이 있기는 하다.
 
괜히 혼자 읽은 걸 빼면 공식적으로 처음 독강을 배운 건 정성진 선생님한테 배웠고, 그 다음에는 홍훈 선생님한테 배웠고, 나중에 유학가서 10대학의 마지막 자본론 강독이었던 자크 발리에 수업에서 강독을 했다.
 
물론 베네띠의 수업과 나중에 까뜨리에 수업에서 이 내용을 다시 다루었고, 철학과까지 쫓아가서 유명한 좌파들의 수업을 듣기는 했다. 지금 생각하면 재밌기는 했어도, 그 시절에 들은 수업도 크게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지난 12년 동안 누군가에게 자본론을 읽으라고 권해준 적이, 생각을 해보니까 없다. 지금 20대에게도 자본론을 읽으라고 내가 권해줄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자본론 세 권을 전부 읽으면 IQ는 좀 높아질 것이고, 공부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끈기 같은 것도 생기기는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건 <국부론>을 읽어도 되고, 시스몽디 전집을 찾아서 읽어도 되고, 하다못해 존 스튜아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론을 찾아서 읽어도 생기는 효과이기는 하다.
 
사람들이 요즘 책이 너무 어렵고, 재미없다는 말을 종종 한다. 경제학의 원전들은 재미 없기로 정말 장난 아니다. 요즘 책이 재미가 없다니... 읽는 재미를 집어넣는 것으로 요즘 책들을 따라가기는 어렵다. 고전은 따분하고 재미없다. 자본론도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이고, 게다가 그 지루한 각주들은... 정말 죽음이다.
 
<권법소년>이라는 만화가 있다. 우리 말 번역으로는 권아, 일본말로는 켄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서문의 팔극권에 관한 만화이다. 중국 무협에 대한 뻥이 심하지만, 그래도 여기에서는 일초식에 관한 얘기가 지루하도록 반복되어 강조된다. 기본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본론과 같은 고전들은 공부하는 기본을 닦는 데에는 아직도 그만한 책이 없을 정도로... 참을성과 인내 그리고 혼자 생각하는 법을 길러주기는 한다.
 
그래도 자본론은 위험한 책이다. 불온 문서라서 위험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해석된 대부분의 자본론에 관한 이야기는 스탈린주의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 그런데, 내가 살아본 경험으로는 프랑스라고 해서 많이 다르지 않다. 잘못 따라가다 보면 맑스를 만나는 것인지 아니면 스탈린을 만나는 것인지... 예전에 내가 공부할 때 첫 번째 책으로 누구나 읽었던 세철이라고 부르는 "세계철학사", 소련 사회과학원에서 해석한 방식으로 자본론을 보는게 가장 딱딱하고 교조적이며, 위험한 방식으로 읽는 것 같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에게 자본론을 잘 권해주지는 않는다. 지혜가 쌓이는 것이 아니라 오해가 깊어질 가능성이 높은 책이다.
 
그래서 자본론은 아주 위험한 책이다. 여전히 위험한 책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우리는 아직도 자본론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얘기한다면, 아마 맞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그 생각을 어떻게 끌어내느냐에 따라서 천 가지 다른 길이 가능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본론 세 권을 다 읽는데 한 달 정도 걸릴 것이고, 조금 게으름부리는 편이라면 두 달이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이 책을 보는데 두 달이 넘어가면, 평생 가도 한 번 다 보기도 어려울 책이다.
 
내가 코스웍 할 때에는 자본론 세 권을 읽는데 1주를 주었고, <국부론>도 1주짜리 책이었다 (그렇게 읽으면서 나도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너무 고생스러워했다...)
 
요즘 같이 압축공부가 유행하는 시절이면 자본론 세 권을 읽는데 2주 정도 걸린다면 평균적일 것 같다. 2주 안에 자본론을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보고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면, SF 열 몇 권짜리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책 중의 하나라서... 읽어두면 최소한 작가가 되거나 보고서 같은 것을 쓰는 일을 할 때에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자본주의가 영원할 것인가 아니면 위태로운 시스템인가, 이런 질문은 자본론이 아직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질문이다. 현재와 같은 사회의 모습이 영속할 것인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방식으로 변하게 될 것인가, 이런 질문은 가슴 속에서 잊어버리면 안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삶이 짜증나거나 우울하거나, 아니면 아무리 고강도의 쾌락을 택해도 뭔가 만족되지 않는 느끼함이 남는 사람, 아니면 죽을 때까지 놀고 살아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재산을 부모가 남겨준 사람이 아니라면... 한 번 2주간의 지적 산책에 나서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자본론에 도전한다는 것은 적어도 지난 100년간에는 누구나 공감하는 대표적인 지적 유희에 해당한다. 스타크래프트의 한 단 올라가는 것보다는 쉽다. 그리고 그 정도 짜릿함은 일독이 줄 수 있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