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상 이야기/종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박현도)

마리산인1324 2009. 10. 28. 21:51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강사: 박현도(서강대 종교학과 강사)


    지난 10월 3일 시작된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주관 2004 추계 일요신학강좌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첫 강좌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기본구조와 현황"의 강연 원고입니다. 앞으로 총 10차에 걸쳐 진행될 강좌에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문의: 새길기독사회문화원 02-555-6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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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기본구조와 현황"


I. 강의의 목적


오늘날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난립하고 있지만 보편적으로 가장 널린 퍼진 종교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둘로 압축할 수 있다. 미국 정보당국 (C.I.A)의 자료에 따르면 2002년 기준으로 전 세계인의 32.7%가 그리스도교를 믿고 그 뒤를 이어 이슬람 신도가 19.67%를 차지하고 있다. 이 두 종교가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50%를 넘는다. 힌두교인이 3번째로 많은 13.28%이지만, 힌두교는 인도인과 인도 대륙 범주를 넘지 못하는 인종, 지역적 한계가 있으므로 전 세계 전 인종에 두루 퍼져 있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에 비해 그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전통적 기반인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불교 역시 아직은 그 신도수가 이슬람 신도수의 반에도 못 미치는 5.84%에 불과하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전 인구의 4분의 1이 일요일에 교회와 성당에 모이는 그리스도교계 초강대국 대한민국 그리스도교인들은 이슬람에 대해 문외한이다. 굳이 그리스도교인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인들 대다수는 이슬람교를 지역적으로 역사적으로 낯설고 생소한 거리감 있는 종교로 인식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아무래도 고려시대에 중국 원나라를 통해 직접 접촉한 것을 제외하고는 역사적으로 만남이 거의 없었고 현재 국내 무슬림 수도 겨우 3~4만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하니 특별히 바쁜 현대의 삶 속에서 정성 들여 관심을 기울일 필요성을 못 느껴온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까지 이슬람을 몰랐다는 지극히 일반적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90년대 걸프전쟁, 그리고 2001년 뉴욕 쌍둥이 빌딩 폭파사건,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바미얀 대석불상 파괴사건, 이라크 전쟁, 김선일씨 살해 등 일련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통해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지식욕이 늘어감에 따라 그리스도교인들이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보다는 자기 마음대로 보는 주관적 이해가 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더불어 무슬림들을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선교의 대상으로 보고 이슬람을 이해하려는 시각이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지도를 보면 하느님의 축복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안다고 말한다. 곧, 세계 부국은 모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나라요, 못사는 나라들은 이슬람을 받아들인 나라이니 하느님의 은총이 어디로 기울어졌는지 금새 알 수 있다면서 그리스도교 축복론을 펼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공을 그리스도교인들을 시켜 무슬림들을 징벌하신 하느님의 의지로 여기고 이를 대중 앞에서 크게 외치는 목회자도 신문지상에 보이니 참으로 그 담대한 해석에 가슴 섬뜩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내 것 만이 옳다는 그 신념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누구에게나 자기의 것은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인들이 자신의 믿음을 소중히 가꾸는 것은 참으로 보기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슬람을 조롱, 비난, 비하하거나 더 나아가 징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그리스도인다운 행위인지는 다시 한번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 여부를 떠나 한 자연인으로서도 그렇게 처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동감하리라 믿는다.


사실 일반 그리스도교인들의 이슬람에 대한 몰이해, 편견, 주관적 판단은 국내 이슬람 학자들의 철저하지 못한 이슬람 연구에 기인하는 바가 없지 않아 크다고 할 수 있다. 틈만 나면 국내 이슬람 학자들은 각종 매스컴이나 출판물을 통해 서구 영향으로 인하여 일반인들이 잘못된 이슬람관을 갖게 되었다면서 이를 수정하겠다고 공언해왔다. 구호는 거창했지만 제대로 된 이슬람 연구서 저술을 통해 대중들의 이슬람 이해를 바르게 인도하는 등대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자신들이 그렇게 욕한 편파적 서구 이슬람 학자들을 오히려 높이 평가하는 논리적 모순을 범하는 것은 물론, 이슬람에 대해 좋은 말만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라는 의식을 은연중에 심어 놓아 정직한 이해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만 것이다. 그 틈을 메운 것은 철저한 고증 없이 짜깁기 식으로 이야기만 나열해놓은 대중서의 범람이다.


이제 10주 동안 이슬람을 우호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황금률이 되어버린 국내 학계의 현실을 벗어나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슬람을 살펴보고자 한다. 굳이 현실로 닥친 알까이다의 위협 때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 그리스도교인들은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지난 봄 일요 신학강좌에서 길희성 교수는 외적 행위를 중시하여 구체적 율법으로 인간을 규제하여 합리적 자율성을 초라하게 만드는 이슬람의 한계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이슬람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으로 보이기에 불교와는 달리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유일신 신앙, 종말론적 완성을 꿈꾸는 역사지향성 등 큰 맥락이 같다는 말이다. 초록동색이기에 다름이 주는 맛이 부족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싫든 좋든 현대세계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무슬림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절대적 명제가 있기 때문이다. 선교를 염두에 두지 않고 진정한 마음으로 이슬람을 바라보자. 같은 유일신교인 이슬람을 통해 그리스도교인들이 배울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평행선을 달릴 것만 같은 이 두 종교가 서로 대화하고 만날 수 있는 통로가 있지나 않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무슬림들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진지하고 치열하게 그리스도교와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을 공유하는 이슬람을 내면 깊이 이해하고 만남의 길을 모색하는 것,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 때까지 함께 천착해야 할 우리의 화두다.


II. 이슬람 현황



610년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알라의 계시를 받아 예언자가 된 이후 이슬람은 지난 1400여 년 동안 인류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으며 오늘날 전 세계 곳곳에 두루 퍼져 그 종교문화적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슬람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거의 무의식 중에 중동과 아랍어를 떠올린다. 그만큼 우리들 머리 속에는 이슬람=중동=아랍어라는 등식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전통적으로 이슬람은 세계 6개 지역에 문화권을 형성해왔다. 이제 그 지역을 하나 하나 살펴보자.


        첫번째 지역은 우리들이 쉽게 인지하는 곳, 아랍어권이다. 동쪽으로는 이라크, 페르시아만 지역에서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모리타니아까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1492년까지는 이베리아 반도 남부 지역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전 무슬림 인구의 5분의 1인 2억 2천명이 사는 곳이다. 꾸르안 때문에 아랍어는 종교적 언어로 전 세계 무슬림들이 늘 익히고 있는 언어다. 정치 경제적으로 말하자면 아랍어 지역은 특히 서기 1000년 까지 고전시기에 그 위력을 발휘하였다. 오늘날에는 알라의 선물 석유로 그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바레인, 카타르, 아랍 에미레이트, 오만, 예멘,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요르단,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아, 리비아, 알제리아, 모로코, 서사하라, 모리타니아)


        두번째 지역은 페르시아어권이다. 7세기 아랍 무슬림들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한 이래 페르시아어권은 무슬림 문화권으로 존재해왔다. 정복당한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1000년이래 페르시아어는 정치, 문화언어로 이슬람 세계를 아울렀다. 오늘날 이란,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일부가 이에 포함된다. 이들 지역은 각기 페르시아어인 파르시, 다리, 타지크어를 사용한다.


        세번째 지역은 터키어권이다. 터키어족인들은 원래 우랄알타이 산맥에서 발흥한 유목민으로 일찍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11세기 살주크족이 오늘날 터키 영토가 된 아나톨리톨리아 반도를 처음으로 공략한 것을 시발점으로 터키어족 사람들은 이슬람의 영토를 확장시킨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근대이전까지 유럽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지중해의 강국 오스만 투르크 역시 터키어족이다. 문화적으로 페르시아어권과 밀접하고, 현재 약 1억 5천의 인구가 있으며 터키를 위시하여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체첸, 위구르 등이 터키어권이다.


        네번째 지역은 인도 대륙이다. 무슬림 최대 인구 지역으로 약 4억이 살고 있다. 이곳은 주로 수피에 의한 이슬람화가 이루어진 지역이다. 국가로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쉬, 인디아, 네팔, 스리랑카가 이 문화권에 속한다. 언어도 다양하여, 신드, 구즈라트, 펀잡, 벵갈어 등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언어는 역시 파키스탄의 공용어인 우르드어다. 이는 16, 17세기에 지역 토착어가 페르시아어, 터키어의 영향을 받아 태어난 말이다.


        다섯번째 지역은 검은 대륙 아프리카다. 약 1억 5천의 무슬림이 살고 있는데 수단, 서사하라, 말리, 소말리아, 이디오피아, 세네갈 등이 이에 속한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존재하는 아프리카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영향으로 생긴 무슬림 문화어 스와힐리어다.


        여섯번째 지역은 말레이 지역이다. 약 2억 2천명의 무슬림이 있는 이곳은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를 위시하여, 말레이지아, 브루네이가 주요 무슬림 국가이고,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베트남에도 무슬림 공동체가 존재한다. 언어로는 말레이어와 자바어가 사용된다. 이 지역은 13세기 이래 이슬람이 퍼져가기 시작했는데 수피가 이에 크게 공헌하였다.


        상기한 6개 문화권 외에도 상당한 수의 무슬림들이 아시아와 유럽, 미주대륙에 존재한다. 우선 중국에는 2500만에서 1억의 무슬림들이 살고 있다. 원나라 시기에 전성기를 맞은 중국 이슬람은 이후 주요 저작을 아랍어나 페르시아어와 같은 무슬림 전통 문화어가 아닌 한문으로 저작하는 등 무슬림 문화사상 독특한 사례를 남겼다. 특히 신유학 전통을 이용하여 이슬람을 설명하려는 노력은 대단히 독창적인 것으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유럽에는 약 2500만의 무슬림들이 존재한다. 동유럽에는 오랜 이슬람 지역으로 알바니아, 보스니아가 있고, 마케도니아 (이전 유고), 불가리아, 그리스 지역에도 역시 무슬림들이 살고 있다. 서유럽 역시 무슬림 공동체가 이주로 인해 늘어가고 있다. 독일에는 약 3백만의 터키계 무슬림이 있고, 영국에는 인도 파키스탄에서 이주해 온 무슬림을 중심으로 150만, 프랑스 역시 이전 식민 지배 지역인 아프리카 지역 무슬림들의 이민으로 인해 전인구의 5~10%가 무슬림으로 추산된다. 미주대륙에는 약 1000만의 무슬림이 살고 있다. 미국은 약 600만에서 700만, 캐나다는 50만, 남미대륙에는 200만에 이르는 무슬림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듯 오늘날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전세계 곳곳에 두루 분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석유 자원으로 인해 이슬람 국가 의존도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한마디로 이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단 한 발자국도 앞서 나가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를 떠나서라도 하나이신 창조주를 함께 믿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리스도인들은 이슬람에 호기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III.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피상적 기본 구조

: 무엇이 같고 다른가?





        막강한 군사력과 인문과학 문명을 모두 움켜 쥔 이슬람 세력. 그들의 허락 없인 단 한척의 배도 지중해에 띄울 수 없게 된 동서로마 제국은 이슬람을 두려워하였다. 예수 이후 또 하나의 막강한 유일신교가 나온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이해하기 불가한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이슬람 태동 이래 그리스도교인들은 이슬람을 이단으로 치부해 버렸다. 아브라함의 몸종이자 첩인 하갈의 자식들인 무슬림들은 야만인(Barbari)이요, 무찔러 없애야 할 적이었다. 점차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시리아와 아랍 유목민을 지칭할 때 썼던 사라케노스(Sarakēnos)라는 그리이스어에 어원을 둔 사라센(Saracen)이라는 말이 무슬림 통칭어로 전용되었다.


일찍이 이슬람 제국 수도 다마스커스에 살았던 동방 그리스도인 요한(John of Damascus, 675~749)은 이슬람을 그리스도교의 한 이단으로 보고, 무함마드를 거짓 예언자요, 적그리스도로 지칭하였다. 중세기 최고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 역시 이슬람을 진실을 고의로 왜곡하는 거짓 종교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무함마드가 주장한 것 중 일부는 사실일는지 모르나 그리스도교의 계시와는 달리 기적이 뒷받침 하지 않았고, 더욱이 성서의 가르침을 교묘히 왜곡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려고 하였기에 거짓이라 보았다. 이슬람을 받아들인 자는 하급 지성을 지닌 사람들이고, 이슬람은 성적 즐거움에 대한 약속과 무력에 의한 위협 때문에 퍼져나갔다고 주장하였다. 평화의 종교인 그리스도교와는 달리 이슬람은 폭력과 칼의 종교요, 성적으로 문란한 가르침이며, 무함마드는 적그리스도로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약점 투성이의 인물로 본 것이다.


        요한이나 아퀴나스는 중세기 동서방 그리스도교 세계의 대표적 인물이다. 실로 교회사에서 빛나는 업적을 남긴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이 이해한 이슬람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 그들은 단지 그들의 시공적 존재 한계에 맞춰 제한적으로 이슬람을 이해한 것일 뿐이다. 이제 중세의 색안경을 벗고 있는 그대로 이슬람을 바라보면서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하나인 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무슬림들이 그리스도인들과 과연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 그 기본적 구조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슬람이라는 말은 “복종함”이라는 말이다. 문법적으로 따지면 동명사다. 누구에게 복종하는가? 알라다. 알라는 그 신, 즉 유일신을 가르키는 말이다. 알라 외에 신은 없다 라는 이슬람 신조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유다인들에게도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말이다. 함께 따라 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이슬람에서 가장 큰 죄는 바로 다름 아닌 유일신 알라께 무엇인가를 갖다 붙이거나 연합시켜 그 분의 유일신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이를 아랍어로 쉬르크라고 한다. 그리하여 불신자를 아랍어로는 알라에게 파트너를 갖다 붙이는 자(무슈리크)라고 한다. 또한 알라의 자비에 감사하지 않는 자 역시 불신자다(카피르). 반면 신의 계시를 인정하고 믿음을 가진 자(무으민), 신께 복종하는 자(무슬림)가 바로 신자다. 이 유일신은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을 위시한 예언자들에게 믿는 이의 구원을 약속하시며 최후의 심판을 내리시고, 천당과 지옥의 내세를 보여주시는 분이시다. 유대교가 전해준 유일신관을 어느 하나 어긋남 없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은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과 차별되는 말은 바로 다음 구절,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다”라는 말이다. 무슬림이 되는 길은 바로 “알라 외에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다”라는 신앙고백을 하는 것인데, 유대-그리스도교 전통과 다름의 획을 긋는 이슬람 고유의 정체성이 바로 무함마드의 사도됨에 있는 것이다. 사도는 아랍어로 라술(rasuul)이라고 한다. 이슬람에서 사도라는 말은 예언자보다 더 제한적이다. 모든 사도는 예언자이지만 모든 예언자가 사도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알라께서 보내셔서 계시를 받는 예언자가 바로 사도인 것이다. 예수 역시 사도이다. 말씀을 받아 전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도나 예언자는 인간일 뿐이다. 이슬람은 이들 존재에게 그 어떠한 신성도 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예수의 신성은 이슬람에서 설 땅이 없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말 또한 통할 수 없다. 삼위일체는 더더욱 가능하지 않다. 이는 다름 아닌 바로 신의 유일신성을 훼손하는 불신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단지 존경받는 예언자, 사도일 뿐이다. 그리스도교는 근본적으로 원죄를 인정하기에 구조적으로 인간을 원죄에서 구해내 줄 메시아를 필요로 하는데 예수가 바로 그 대망의 메시아다. 그러나 이슬람은 아담과 그의 아내가 낙원에서 죄를 짓기는 했으나 자비로우신 알라께서 용서하셨기에 후손들에게 원죄를 남기지 않았다고 본다. 원죄가 없기에 원죄를 씻어 줄 메시아도 필요 없는 것이 이슬람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그리스도교에서 강조하는 예수의 신성적 메시아됨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무함마드 역시 인간이다. 그런데 그는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로 이어진 예언자 계보를 완성하는 최후의 예언자다. 집짓기에 비유하자면, 그는 집을 완성할 때 마지막으로 놓은 벽돌과 같은 존재이다. 더 나아가 신약 요한서에서 예수가 말한 대로 하느님께서 예수 이후 보내주실 협조자(빠라클레토스)이다.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받은 계시를 모아 놓은 꾸르안은 요한서에서 예언한 협조자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오 이스라엘의 아들들이여, 진실로 나는 너희 있는 곳에 파견된 알라의 사도인 것이다. 나보다 먼저 내려진 율법을 확증하고 또 나보다 나중에 아흐마드란 이름의 사도가 오는 걸 예고하는 자다’라고 말하고 그들에게 명백한 표적을 갖다 보였을 때 그들은 말했다. 이것은 틀림없는 마법이다(61:6).” 아흐마드란 무함마드와 같은 어근을 가진 명사로 이슬람 전통에서는 무함마드를 가르친다. 예수가 자신의 뒤를 이을 무함마드를 예언하였고, 이것이 성취된 것이다.


        최후의 예언자 무함마드는 인류의 예언자 전통을 마감하는 최후의 계시를 알라로부터 받는다. 무슬림들에게 절대적인 이 계시가 적힌 책이 바로 꾸르안이다. 꾸르안은 천상에 있는 계시록을 그대로 직수입한 것이다. 이전에 유대인과 그리스도교인들에게도 계시가 내려졌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유대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은 인간의 생각으로 왜곡하였고 그 결과 꾸르안의 내용과 차이가 생긴 것이라고 무슬림들은 믿는다. 신구약 성서를 인정하면서도 꾸르안이 가장 완성된 계시라고 믿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이 예수라면 이슬람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책으로 엮어진 것이 꾸르안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예수와 같은 존재가 이슬람에서는 꾸르안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예수의 신성성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극대화된다. 어떠한 것에도 오염되지 않은 깨끗하고 순결한 도구 마리아를 통해 하느님이 인간 세상에 내려오신 것이다. 동일한 상징법을 이슬람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는 ‘문맹’ 무함마드이다. 무함마드가 글을 알고 있다는 몇 가지 예증이 사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전통에서 그는 글을 모르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그에게 내려진 알라의 계시가 글을 모르는 무함마드라는 깨끗한 도구를 통해 인간의 조작 없이 그대로 전해졌음을 상징한다. 무함마드는 그 자신 어떠한 말이나 표현 없이 알라의 계시를 들리는 그대로 전해주는 전화기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지금까지 이슬람의 신앙고백을 통해 간략하게 피상적으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가장 근본적인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조적으로 살펴보았다. 아브라함을 신앙의 선조로 하는 이 두 종교는 유대교 유일신 신앙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을 위시한 예언자 존경, 종말과 최후의 심판을 향해 가는 직선적 세계관, 권선징악의 내세관을 한 점 어긋남 없이 공유한다. 무슬림의 첫번째 신앙증언 신의 유일성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두번째 신앙증언에서 무함마드의 오롯이 인간됨과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의 신성성이 상충하는 것을 보며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가시적이고 근본적인 차이점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한 신적 예수와 지독히 인간적인 무함마드라는 도식적이고 구태의연한 이분법의 틀을 벗어나 각 전통에서 느끼고 이해한 온전하고도 완전한 인간 예수와 무함마드의 모습은 없을까 모색해보자. 좀 더 풀어 이야기하자면, 딱딱한 교리언어에 갇혀 종종 생각조차 어려운 “땅을 딛고 선 인간적 예수”와 “초월적 인간 무함마드”는 진정 두 전통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여부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땅을 딛고 사는 신앙인들이 본받고 따를 모방의 대상으로서 예수와 인간의 무함마드는 진정 없는 것일까?



제2강  예수와 무함마드: 이상적 인간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대화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들이 늘 걸림돌로 여기는 것이 예수의 신성이다. 같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로 어려움 없이 대화를 해야 당연하겠지만 궁극적으로 예수를 신으로 믿는 그리스도교의 견고한 자세가 유일신 외에는 어떠한 신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무슬림들을 당혹하게 만들어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예수의 신성만이 문제일까? 나는 이번 강의에서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 신성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있으며, 이슬람에서는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신앙고백 뒤에 숨겨진 신적 무함마드에 대한 찬미가 있음을 논의해보고자 한다.


1. 예수


굳이 현존 가톨릭 신학계의 거장 한스 큉 (Hans Küng)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리스도 없는 그리스도교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리스도교 논리에 따르자면 인류의 원조 아담과 이브가 지은 원죄를 대속해 줄 그리스도 (히브리어는 메시아) 없이 인간의 구원은 불가능하다. 이 그리스도가 바로 다름아닌 기원전 4년쯤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깊은 하느님 체험을 한 후 경천애인 (敬天愛人)의 가르침을 펴다 붙잡혀, 도망친 노예와 정치적 폭도들에게만 집행되었던, 실로 입에 담기조차 끔직한 십자가형을 받고 죽은 역사적 예수다.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의 부활을 강렬하게 체험하였고 더 나아가 예수가 이 세상 이전에 먼저 존재하였고, 하느님이라고 믿는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예수 선재 사상은 바울로의 필립비 서간에, 신성 사상은 요한계 문헌에 나오지만 이른바 공관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후 4,5세기 공의회에서 예수를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갖춘 분이라고 신학적 해석을 내린 이후 예수의 신성은 교회의 확고한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는 절대 불변의 해석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에 들어서 교회의 전통적 그리스도론을 새롭게 이해하는 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극히 그리스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 표현으로 이루어진 예수 신성론 그 자체가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고 형이상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을 지적하면서, 예수 신성론이 문자 그대로의 사실이라기 보다  어디까지나 예수에 대한 기억이 지배하는 공동체의 신앙체험을 교회가 제한적이고 상징적 언어로 표현한 것으로 본다. 서공석 신부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 431년 에페소 공의회,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 면면히 이어 오는 예수 신성 사상이 “예수 안에서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일을 본다는 것 (실체적 동일함), 예수 안에서 하느님의 일을 보는 것은 우연적 질서에서 발생한 일이 아니라 필연적 질서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것 (하느님의 어머니), 그리고 예수 안에 손상됨이 없는 하느님의 일하심과 또한 하느님 앞에 응답하는 인간의 일을 본다는 사실 (온전한 하느님, 온전한 인간)을 긍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존 힉 (John Hick)은 예수가 하느님의 육화, 하느님의 아들 혹은 성자라는 말은 문자적 사실이 아니라 시적, 상징적, 신화적 언명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는 곧 예수가 우리의 삶과 하느님 사이의 접촉점이 되는 방편적 말이라고 본다. “예수의 현존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한다 것을 가르키는 말이라는 것이다. 스위들러는 예수가 참된 하느님이요 참된 사람이다 (Deum verum et hominem verum)라고 한 칼케돈 공의회의 그리스도론은 “참으로 신적이고 참으로 인간적이다 (vere divinus et vere humanus)”라고 바꾸어 이해해야 더 합당함을 지적하고 있다. 인간 경험을 넘어서는 초월적 언명인 예수 신성론을 문자적 사실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상징적으로 이해할 것을 현대 그리스도교 지성들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곧 신성론에 집착하기 보다는 역사적 예수의 삶을 본받고 따르는 자세 견지가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함을 알려준다.


사실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그 무엇보다도 완전한 인간으로서 예수가 보여준 삶을 모방하고 따르는 사람들의 역사다. 예수를 본받아 청빈을 덕으로 삼았던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구태의연한 신학적 논술보다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에 대해 묵상한 토마스 아 켐피스 등, 그리스도교사에서 예수는 지극히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늘 친근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시대를 초월해서 역사적 예수의 인간적 모습들은 그리스인들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샘이 되었다. 신이기보다는 너무나 인간적인 그 완성된 모습에서 그리스도인들, 아니 비 그리스도인들조차 희망과 감동을 느낀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두운 일제시대, 군사독재 시절, 예수는 신학적으로 정치하게 묘사된 신이기 전에 해방자라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세계 종교 성현들과 비교하여 본다면 모세처럼 입법자나 민족지도자도, 공자처럼 학자나 도덕자도, 부처처럼 신비가나 수도자도, 무함마드처럼 사령관이나 정치가도 아닌 모습이 독특하게 드러나는 예수. 그러한 그를 불교적 관점에서 길희성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라는 예수의 질문에 ‘당신은 우리 아시아인들의 마음을 그토록 오래 사로잡아 온 보살의 모습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 주시는 분이시며 지금도 고통 받는 중생의 아픔을 함께하고 계시는 자비로우신 보살이십니다’라고 고백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스도교 전통의 입장에서 볼 것 같으면 예수야 말로 일찍이 인류 역사에 출현한 가장 위대한 보살로서 보살의 이상이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육화된 존재였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눈에는 그는 바로 보살을 보살이도록 하는 그 힘, 그 실재 자체의 가장 결정적 육화였기 때문이다.”


진정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적 예수의 삶을 통해 진정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사람들이다. 역사적 예수는 “오로지 하느님과 사람에게 관심을 쏟은 사람으로 철저한 경신자며 철저한 인본주의자”였다. 경천 애인에 역행하는 그 어떠한 것도 그 존재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성경에 기록된 법, 조상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준 법, 당대의 사람들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간주한 법마저도 감히 수정하기도 하고 폐기하기도 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예수를 의식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철저히 경천애인의 길을 걸어간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 십자가에 처형된 그처럼 크나 큰 불행을 당할 각오까지 하면서 하느님을 섬기고 사람을 아끼는 일에 투신해야 한다. 이러한 삶은 그리스도인들 자신이 부활하여 은밀히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충동을 느끼고 죽음을 넘어서는 초월적 돌파구를 확신하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2. 무함마드


이슬람 전통에서는 예수의 신성에 대비되는 무함마드의 인간성을 늘 강조해왔다. 그는 알라의 계시를 충실히 전하는 예언자요, 사도이다. 성경의 예수처럼 기적을 행하지도 못하는 예언자이다. 사람들이 “어째서 그대에게는 신으로부터 직접적인 기적의 징표가 주어지지 못했는가”라고 의심을 표할 때도 그는 “기적의 징표는 알라에게만 있는 것. 나는 경고자에 불과하다”라는 계시를 알려 줄 정도로 인간 능력을 넘어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인간임을 고백하였다. 아랍어로 계시된 꾸르안이야말로 그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이었다. 그것도 엄밀히 그가 행한 기적이 아니라 알라께서 행하신 기적이다. 무함마드가 보통 인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예언자로 선택 받아 사람들에게 알라를 믿지 않을 경우 들이닥칠 종말 심판을 알리는 경고자가 되었다는 것뿐이다. 꾸르안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말하여 주어라. ‘나는 너희들에게 “알라의 보물을 맡고 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모른다. 또 나는 너희들에게 “나는 천사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자기에 계시된 것을 쫓고 따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6:50).’” 그는 모세와 닮은 점이 많은 인물이었다. 모세처럼 유일신에 대한 믿음과 올바른 생활을 강조한 윤리적 예언자, 입법자, 판관, 정치지도자, 군사령관이었다. 그는 예언자가 되기 전까지 상인이었고, 생전 기도, 향수, 여자를 좋아하였으며 결국 생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유한자 인간이었다.


무슬림 전승으로부터 우리는 지극히 인간적인 무함마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우선 중키에 넓은 어깨와 가슴, 전체적으로 튼튼한 몸을 가졌다. 크고 튀어나온 이마, 매부리코, 긴 팔. 거친 손과 발. 크고 검은 갈색 빛 눈, 길고 굵으며 다소 곱슬인 머릿칼, 두터운 수염, 목과 가슴 주위의 엷은 털, 마른 뺨, 큰 입, 흰색 피부… 이러한 외모를 지닌 그는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게 뜻을 전달하는 빠른 말투를 가지고 있었고, 화날 때는 눈길을 피하고, 기쁠 때에는 눈을 아래로 향하고, 웃을 때는 주로 미소를 띄었다. 자기 통제가 뛰어나 감정 조절을 잘한 그는 슬픔에 잠기기도 하고, 생각에 잠길 땐 긴 말없이 긴 침묵에 들어가곤 했다. 대인관계는 전체적으로 친절하고 부드러웠지만 사람들을 대하는 데에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여 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시간을 잘 쪼개어 썼고, 늘 바쁘게 움직였으며 사람들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빨리 걷고, 방향을 틀 때는 몸 전체를 돌렸다. 그는 예수처럼 아이들을 좋아하였다. 기르던 새가 죽어 침울한 아이를 정성을 다해 위로해 주기도 하고, 손녀 우마마를 사랑하여 기도할 때는 옆에 앉혀놓고 기도 끝나면 다시 어깨에 올려 다녔고,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아 주기도 하였다. 동물도 사랑하여 메카 점령 직전 행군 중 어린 새끼와 함께 있는 암캐를 발견하고는 보초까지 세워 보살펴 주기까지 하였다. 많은 아내가 있었던 그는 자신에게 잘 해주는 아내에게 목걸이를 주겠다고 했다가 아내들이 동요하는 기색이 보이자 손녀에게 주어버리기도 하고, 콥트교인 마리아에 빠져 다른 아내들을 소홀히 하기도 하였다. 그런 그에게 아내들이 항의하자, 이에 이혼하겠다고 위협하는 참으로 평범한 인간적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실로 무함마드는 전승에서 그대로 보여주듯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그가 죽었을 때 아부바크르가 한 말은 무함마드의 인간됨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무함마드를 숭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죽었다고 말해주라: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신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계신다다고 말해주라.” 그러면서 그는 다음 계시를 암송하였다 “무함마드는 단지 사도에 지나지 않는다 (3:138).”      


그러나 무함마드는 단지 인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 전통은 그를 단순한 예언자요 인간으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는 최후의 예언자로 집으로 치자면 집을 완성하는 마지막 벽돌이다. 예언자의 봉인이다. 그에 대한 무슬림들의 존경심은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다. 무슬림들의 예언자 공경이 얼마나 진지한가를 스미스는 이렇게 표현하였다: “무슬림들은 알라에 대한 공격을 용인할 것이다: 무신론자들이 있고, 무신론적 저작물이 있으며 이성을 중시하는 사회가 존재한다; 그러나 무함마드를 비방하는 것은 가장 진보적인 무슬림들에게서조차 이글이글 타오를 정도로 맹렬한 분노를 일으킬 것이다.” 단지 인간적인 사도라는 말만 믿고 무함마드에 대해 함부로 말을 한다면 대단한 무례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무함마드는 특히 수피 전통에서 영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 가장 완성된 존재로 해석되었다. 우선 그가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창조되어 존재하였다는 선재 사상이 눈에 뜨인다. 창조주께서 세상 창조 이전에 가장 먼저 무함마드의 빛 (Nur Muhammadi)을 만드셨고, 여기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나온다. 알라께서는 “나는 숨겨진 보물. 알려지길 원하여 세상을 창조하였다”라고 말씀하시고 더 나아가서는 “너 (무함마드)를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나는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13세기 유누스 에므레는 이를 시적으로 표현한다: “나는 나의 빛으로 그를 창조하였다. 어제도 오늘도 그를 사랑한다. 그가 없는 세상에서 무엇을 할까? 나의 무함마드, 광명의 아흐마드여!” 또다른 수피는 무함마드의 빛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이는 알라의 빛, 예언자에게 들어갔네. 마치 달빛이 햇빛에서 나오는 것처럼…” 세상은 알라가 만족하시길 바라지만, 알라는 무함마드가 만족하길 바라시며, 이러한 알라는 그 당신의 그 영원한 고독이 알려지고 사랑받기 위하여 무함마드를 당신의 빛과 아름다움을 비추는 거울로 창조하였고, 무함마드를 통해 사랑에 가득 찬 알라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급기야 무함마드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나를 본 사람은 신을 본 것이다.” 이는 곧 무함마드가 신적 아름다움을 비추는 완벽한 거울이요, 모든 신적 이름과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소임을 표현한 것이다.


        세상 창조 이전에 선재한 무함마드는 무슬림들에게 내면적으로나 외면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부각된다. 특히 그의 양 어깨 사이에는 최후의 예언자 봉인이 있다고 믿는데, 이는 비둘기 알만한 크기의 다소 노란색을 띤 검정색 점, 또는 살로 묘사된다. 그의 내면적 아름다움은 수피 영성가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가장 완벽한 인간인 그는 우주의 축이요, 세상의 중심이다. 그러한 그의 행동을 본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슬람 법이 바로 무함마드의 언행을 중요한 법전으로 한다는 사실만 보아도 이는 쉽게 이해가 가는 일일 것이다. 그는 무슬림들에게 친구요,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며, 선생님이요, 영혼을 치료하는 약과 같은 존재다. “나의 빈곤은 나의 자랑이다 (faqri fakhri)”라는 무함마드의 말은 수피 영성가들이 영적인 가난함을 추구하는 데 상징적인 표어가 되었고, 그들은 “나의 눈은 감겨있지만 가슴은 깨어있다”라는 그의 말을 따라 늘 깨어 영성을 깊게 하려고 하였다. 영성가 무함마드. 그는 인간의 기본적 본능과 유혹을 지하드를 통해 제어하는 사람이다. 나스르의 말을 빌자면 그는 가장 큰 지하드인 영적인 지하드를 하는 사람이다: “부처가 보리수 아래 명상하고 있다면 무함마드는 정의의 칼을 들고 말을 타고 무한질주하는 것으로 상상하라. 그는 진리의 산 앞에서 멈출 것이다.” 그의 어린 아내 아이샤는 무함마드가 “꾸르안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꾸르안이 화낼 때 화를 냈다”고 하면서 무함마드의 성격을 꾸르안이라고 하였는데, 무슬림 전승은 그러한 그를 알라가 사랑하는 이로 존숭한다. 알라가 사랑하는 이가 무함마드이니 그의 종교 이슬람은 사랑의 종교가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무함마드는 죄 없는 존재다. 그는 단 한순간도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무슬림들은 믿는다. 사실 꾸르안에는 그가 유일신의 길에서 벗어나 있음을 뜻하는 계시도 있고, 초기 무슬림 전승에는 우상 숭배행위에 참가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흠 없이 깨끗한 존재로 각인된다. 오류가 없는 존재 무함마드. 이는 신학적으로 보면 꾸르안과 직결되어 있다. 첫번째 강의에서 우리는 무함마드의 문맹됨을 그리스도교 마리아의 처녀됨과 같은 종교적 비유라는 것을 함께 살펴보았다. 무함마드의 무오류성 역시 계시의 도구로서 그가 지닌 위치와 관계 있는 상징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신의 계시를 받는 자가 오류가 있다면 순결한 계시가 훼손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영원히 창조되지 않은 꾸르안은 이로써 글을 모르고 죄가 없는 순순한 존재 무함마드에 의해 세상에 전달되는 것이다. 순결한 무함마드, 이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탄은 완전히 복종하여 내가 명령하는 것만 한다.” 사탄마저 제어하는 오류 없는 존재 무함마드가 돋보인다.


        알라의 계시 꾸르안 외에는 어떠한 기적도 행하지 못한 무함마드. 그런데 꾸르안도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무함마드가 행한 기적이 아니고 알라의 것이다라고 이미 앞에서 말하였다. 그런데 무슬림 전승은 기적을 부인하는 무함마드를 기적을 행하는 인물로 기억한다. 그는 예수처럼 죽은 사람을 살리고, 병든 사람을 고친다. 젖이 안 나오는 양도 그의 손이 닿으면 콸콸 우유를 쏟아낸다. 그는 동물과도 이야기하고, 하늘의 달을 둘로 쪼개기도 붙이기도 하는 초자연적 기적도 행한다. 무슬림 전통에서 실로 이렇게 그는 기적을 행하는 존재로 부각된다.


        최후의 예언자라는 말은 단순히 시간적 순서로 만을 의미하지 않고 완성도에서도 가장 훌륭함을 나타낸다. 따라서 무함마드는 모든 예언자보다 우위에 있다. 모든 예언자는 “무함마드 빛”의 부분적 요소들에 불과하다. 19세기 말 아미르는 이렇게 말한다: “알라의 축복과 평화가 그에게 - 모세의 지도자 (leader)요, 예수의 안내자 (guide)인…” 또 다른 시는 무함마드를 진주로 비유한다: “예수는 모세, 요나, 요셉의 친구. 아흐마드는 홀로 앉았네. 나는 고귀하다라는 뜻이니. 사랑은 내적인 의미의 대양. 모두가 고기처럼 그 안에 있네. 아흐마드는 대양속의 진주. 보라 – 그것이 내가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무함마드는 중재자로 활약한다. 무슬림들을 위해 최후의 심판일에 중재자가 되는 것이다. 알 가잘리의 작품으로 알려진 글에서 무함마드는 “나는 적합한 이로다. 신께서 원하시는 한 나는 적합한 자로다” 라고 말하면서 중재자로서 자격이 충분함을 선언한다. 이에 신은 다음과 같이 응답하며 무함마드의 중재를 승인한다: “오, 무함마드여, 머리를 들고 말하라. 네 말을 들을 것이다. 중재를 구하라. 그러면 네 허락하리라.” 또 다른 무슬림은 이렇게 중재자 무함마드에 대한 감정을 표현한다: “이승과 저승의 두 세계, 인간과 영령, 아랍과 비아랍의 지도자. 선을 명하고 악을 금하는 우리의 예언자는 누구보다도 (더 충실히) 예,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나니. 알라의 사랑을 받는 그의 중재를 바라노니.”


        이상 우리는 단순한 인간 사도가 아닌 신적인 존재 무함마드를 무슬림의 입을 통해 들어보았다. 실로 무슬림들은 단순한 인간이 아닌 초월적 인간으로서 신적 경지를 넘나드는 무함마드를 존경하며 따른다. 그러하기에 무슬림력 3월 12일 (Rabi’ al-awwal)에 무함마드 탄생 축제를 행한다. 기일로도 알려진 이날의 생일 잔치는 정통신학을 고수하는 이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지켜지고 있다. 그리스도교 성탄절 영향을 받았는가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와하비 (Wahhabi) 유일신론자들이 훼손한 무함마드 성묘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묘에서 흙을 담아 고이 간직하는 무슬림들의 모습은 잘 알려져 있다. 무함마드에 대한 존경심은 여전히 무슬림 종교생활의 핵심중의 핵심이다. 따라서 무슬림을 이해하려면 진정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다”라는 신앙고백의 두번째 문장 뒤에 숨겨진 무슬림들의 무함마드에 대한 이러한 극진 존경심을 반드시 상기해야 한다. 선재하였고, 내외적으로 가장 완벽한 인간이며, 티끌만한 오류도 죄도 없는 무결점의 인간이요, 중재자요, 기적을 행하는 무함마드를. 단순한 인간이 아닌 우주의 축이요, 세상의 중심인 초월적, 신적 무함마드를 말이다.


제3강  오! 거짓 예언자 무함마드: 몰이해의 역사



현존하는 세계 대종교와 관계된 인물 중에서 이슬람교의 무함마드처럼 오해와 곡해, 몰이해의 대상이 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4대 성인(소크라테스, 붓다, 공자, 예수)에 끼지도 못할 뿐 더러, 그와 연관되어 떠오르는 이미지는 거짓 예언자, 호색한, 전쟁광 등 부정적인 것 일색이다. 이는 중세 이후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유행하던 무함마드에 대한 의도적 몰이해가 오늘날까지 그 위력을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이 좀 더 진지한 접근을 통해 무함마드라는 사기꾼이 이슬람이라는 세계 대종교 창시자가 되었다고 믿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보려 한 이래, 균형 잡힌 무함마드 연구가 뒤따랐으나, 여전히 무함마드는 비무슬림, 특히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로 남아있다.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인들이 무함마드를 예수와 비교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신으로 살았던 예수에 비해 많은 아내를 거느린 무함마드는 호색한이요, 폭력이라고는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던 상인들을 혼낸 것 밖에 없는 예수에 비해 무함마드는 전쟁터를 누볐으니 전쟁광이요, 예수 재림만 남은 세상에 난데 없이 하느님이 보내신 예언자로 자처하니 무함마드는 거짓 예언자요, 적그리스도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철저히 그리스도교적인 입장에서 보니 무함마드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날 리 없었고, 설령 제대로 연구해서 정확히 이해했더라도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제는 올바른 이해를 가로막아 온 신학적인 가치 판단을 보류하고 무함마드의 삶을 되짚어 볼 필요성이 있다. 역사 속의 무함마드, 진정 그는 어떠한 인물인가?



I. 역사적 무함마드


1. 연구 사료


역사적 무함마드 연구를 도와 줄 사료는 크게 꾸르안과 하디스(hadith) 둘로 나눌 수 있다. 꾸르안은 주지하다시피 예언자가 된 후 죽을 때까지 약 22년 동안 계속해서 알라가 내린 계시다. 하디스는 무함마드 사후 그의 언행에 관한 구전을 기록한 것이다. 하디스는 전승자(isn-d)와 내용(matn)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최종적으로 말을 전하는 사람으로부터 거슬러 올라 가 무함마드까지 전승자가 기록된 후, 무함마드의 말이나 그의 행동에 대한 본문이 뒤따른다. 대체적으로 무함마드 언행에 대한 보고는 그의 아내 아이샤(Aishah)로부터 연유한다.


10세기까지 무슬림 학문은 이러한 하디스를 바탕으로 성립하였다. 무함마드에 대한 기록 역시 마찬가지다. 하디스 전승에 바탕을 둔 무함마드 전기는 그가 죽은 지 약 130여 년이 경과한 8세기 이븐 이스하끄(Ibn Ishaq, 767/8 死)가 최초로 저술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약 두 세대 지나 이븐 히샴(Ibn Hisham 832死)이 자신의 주관적 견해에 근거하여 편집한 것이 현존한다. 그는 이스하끄의 책 내용 중 사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 꾸르안이 언급하지 않는 것, 이 책과 관계없거나 설명이 없거나, 증거가 없는 것, 전문가가 모르는 시, 말하기에 불명예스러운 것, 몇몇 사람들 마음 아프게 할 이야기, 알바카이 (al-Bakkai)가 신빙성 없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이야기들을 모두 제외하고 책을 편집하였다.


이 외에도 무함마드가 이끈 전투를 기록한 알와끼디(al-Waqidi 834 死)의 전쟁기(Maghazi), 와끼디의 비서 이븐 사으드 (Ibn Sad 784-845)의 世代全史(Kitab al-Rabaqat al-Kabir) 역시 무함마드에 대한 기록을 보존하고 있다. 약 한 세대 후 토인비가 극찬한 역사가 앗 따바리(Al-Tabari 838-923)가 저술한 세계사 “사도들과 왕들의 역사(Tarikh a-rusul wa’l-muluk)에 무함마드에 대한 하디스 기록들이 있다. 부카리(Bukhari 810-870)와 무슬림(Muslim 817/821-875)이 편집한 하디스 전승집(Sahih)에서도 무함마드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무함마드 연구에 있어서 가장 믿음직한 사료는 하디스가 아니라 꾸르안이다. 무함마드 생존 시에 내려 온 계시로써 귀중한 동시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꾸르안은 그리스도교의 성경과는 달리 구체적인 사실을 직접 명시하지 않는다. 생략적이고 암시적이다. 어떠한 일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해도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하였는가라는 6하 원칙 하에 계시가 내려오는 경우가 없다. 꾸르안을 면밀히 분석하면 꾸르안 계시를 받은 주인공은 서아라비아 지방에 산 무함마드로, 그는 고아였고, 방황했으며, 동시대인들이 그가 예언자라는 것을 거부하는 데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고, 야스리브(메디나의 옛 이름)에 정착했다는 것 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문맥이 없는 글(a text without context)”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꾸르안이 굳이 드러내지 않고 암시만 하는 그 문맥은 하디스라는 무슬림 전승이 제공한다. 하디스는 꾸르안이 암시만한 것을 속 시원하게 밝혀준다. 실로 하디스 없는 꾸르안은 닫혀진 책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하디스의 진위 여부다. 우선 동일 사건에 대해 설명 내용이 다른 것이 많고, 같다고 하더라도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서로 이견이 많다. 무함마드 언행을 가감 없이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후대 무슬림들이, 특히 법학파들이, 자신들이 사는 지역 실정에 맞는 법을 이슬람 법으로 확정하려고 할 때 그 권위를 무함마드에 두고자 조작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법률 하디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하디스 역시 이러한 조작의 위험에 빠져 있다. 예를 들어, 무함마드가 순례시기에 결혼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결혼한 시점이 정확히 언제냐는 데에 대해 이견이 있는 두 부류의 하디스가 나돈다. 하나는 순례기간에 했다는 것이요, 또 다른 하나는 순례 후에 했다는 것이다. 법학자들이 논쟁한 결과다. 즉, 순례기간에 결혼을 허용하는 것이 옳으냐에 대한 자신들의 판단의 권위를 무함마드에 두기 위해 같은 사실에 대해 두 가지 다른 하디스가 나오는 것이다. 둘 중 하나가 진실 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분별할 기준이 없다는 데에 하디스를 의존하여 역사를 재구성하는 어려움이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꾸르안이 잘 드러내지 않는 문맥을 제공하는 하디스가 상당 부분 꾸르안을 나름대로 재해석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디스가 꾸르안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전승되어 온 것이 아니라 꾸르안에 맞게 잘 어울리는 이야기를 재창조한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이 이러하다 보니 역사적 무함마드 연구자들은 많은 사료가 있음에도 적절하게 다룰 수 없는 어려움에 봉착하는 것이다. 20세기 초 르낭(Renan)이 보여주었던 “이슬람은 완전히 역사 속에서 태어났다”라는 자부심이 무색한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학자들은 꾸르안과 전승을 무시하기 보다는 그 안에서 논리적 연결점을 찾고 믿음직한 사실을 찾아내는 작업을 통해 무함마드와 초기 이슬람을 재현하려고 한다. 소수 역사 재해석학파 학자들은 역사학의 객관성과 논리적 완결성을 지키기 위해서 객관적 작업이 불가능한 사료를 주관적인 판단으로 재구성하는 비과학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전적 역사학파를 이들은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한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두 학파 사이에서 타협점은 찾기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이제 논의의 편의를 위해 현재까지 고전적 이슬람사학자들의 견해를 간단히 종합해서 역사적 무함마드를 재구성해 보겠다.


2. 출생


무함마드가 몇 살에 죽었는가는 무슬림 전승에도 이견이 있지만 통상적으로 그가 대체로 63세에 죽었다고들 한다. 그가 죽은 해가 632년이니 계산해보면 570년경 출생했을 것이다. 출생지는 메카. 무슬림 전승은 그가 태어난 해가 코끼리 해라고 한다. 사정은 이러하다. 6세기 초 예멘 왕이 유대교로 개종하여 그리스도교인들을 박해하자 홍해 건너 아비시니아(Abyssinia 현 이디오피아) 단성론 그리스도교 왕국에서 장군 아브라하(Abraha)를 보내 예멘을 정복한다. 무슬림 전승은 그가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메카를 침공하였다가 새들이 하늘에서 돌로 공격해서 전멸시켰다고 한다. 이를 코끼리 해라고 한다. 그런데, 고고학적 증거는 아브라하의 메카 공격이 570년 이전에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상서로운 해에 무함마드 출생을 연결시키려는 무슬림들의 노력이 돋보일 뿐 무함마드가 코끼리 해에 태어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3. 어린 시절


무함마드는 꾸라이쉬(Quraysh)족 하심(Hashim)가문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아버지 압둘라(Abd Allah)는 그가 모태 중에 있을 때 사망했고, 어머니 아미나(Amina)는 그가 6살일 때 세상을 떠났다. 이후 그는 할아버지 압둘 무딸리브(Abd al-Muttalib) 손에 크다가 8살 때 할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작은 아버지 아부 딸리브(Abu Talib)가 그를 키운다. 꾸르안은 그가 고아였고, 가난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전승과는 달리 그가 속한 하심 가문은 메카에서 유력한 집안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적어도 당시 마크줌(Makhzum)이나 우마야(Umayya) 집안보다 힘 있는 가문은 아니었다.

4. 직업

상인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꾸르안에는 그가 상업과 관계된 인물이었음을 암시하는 상업적 용어들이 다수 등장한다. 계산하는 날(최후의 심판일), 하느님께 빚을 진다, 각자의 몫을 가진다 등이 그것이다. 전승 역시 그를 상인이라고 전한다.


5. 결혼


부유한 과부 상인 카디쟈(Khadijah)에 고용되어 일하다가 그녀가 그의 성실성에 매료되어, 결국 25세 때 고용주인 카디쟈와 결혼한다. 이때 카디쟈의 나이 40. 사십은 중근동 문화에서 완성된 숫자. 굳이 문자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두 사람 사이에 4명의 딸과 몇 명의 아들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카디쟈가 40세라고는 믿기 힘들다. 무함마드는 619년 카디쟈가 죽을 때 까지 다른 아내를 두지 않았다. 그녀가 죽은 후 많은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아이샤만 제외하고는 모두 과부들이었다. 당시 사회에서 과부는 곧 경제적으로 무능함을 의미하였기에 무함마드는 이들과 결혼을 함으로써 생존을 보장해 준 것이다. 아이샤의 경우 그녀가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는데, 이 또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 그녀의 아버지 아부 바크르(Abu Bakr)는 무함마드를 성실히 돕던 사람이었고,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공동체의 첫 번째 지도자였다.


6. 종교생활


예언자가 되기 전 무함마드의 종교생활은 역시 당시 메카인들의 관습을 따랐을 것이다. 후대 이슬람 신학은 그가 평생 단 한번도 다신교 신앙을 가져본 적이 없으며 더 나아가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무오류의 인간임을 표방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신학적인 견해이지, 역사적 진실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꾸르안은 알라께서 길 잃은 무함마드를 인도해 주었다고 한다. 길을 잃었다는 것은 꾸르안에서 유일신 숭배를 하는 길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무함마드가 계시 이전에는 다신 숭배 사회인 메카에서 이웃들과 마찬가지로 다신적 관습을 지키며 살았음을 뜻한다. 이브눌 칼비(Ibn al-Kalbi)에 따르면 그는 알 웃자(al-Uzza)라는 여신에게 양을 바쳤다. 무슬림 전승이 예언자에 대한 부정적인 기록을 전했다는 것 자체가 이 전승의 신빙성을 높여준다. 또한 그가 첫 계시를 받을 당시에 히라(Hira)산에서 “타한누스(tahannuth)”라는 것을 했다고 하는데 이를 당시 메카인들의 관습이었다고 하는 전승 기록이 있다. 무함마드가 일찍 죽은 아들을 압둘 마나프(Abd al-Manaf 마나프의 종)라는 다신교식으로 이름 지은 것 역시 그가 당시 메카 관습을 따랐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할 때 아무래도 무함마드는 예언자 계시 받기 이전에 메카인들의 관습을 따랐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7. 종교체험


전승에 따르면 40세 되던 해인 610년경에 무함마드는 히라산 또는 그곳에 있는 동굴에 가서 “타한누스”를 했다고 한다. 이것이 무엇인지, 그 성격에 관해서 무어라 정확히 말 할 수 없다. 연례적으로 하던 메카인들의 종교 관습인지, 아니면 무함마드가 개인적으로 행한 것인지, 혼자 갔는지,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하였는지, 그 어느 것 하나 확실히 이야기 할 수 없다. 무슬림 전승 보고가 서로 지나치게 상반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때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알라의 계시를 받고 예언자 반열에 오른다.


무슬림 전승은 대체적으로 꾸르안 96장을 최초의 계시라고 말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무슬림들이 96장을 첫 계시로 보는 이유는 비교적 간단하게 추론할 수 있다. 96장은 “읽어라”라는 명령어로 시작되는데, 이 명령어가 아랍어로 “이끄라(iqra)”다. 꾸르안과 같은 동사 “까라아(qara’a)”에서 파생되기 때문에 96장을 최초의 계시라고 본 것이다. 이 외에도 “일어나 경고하라.”로 시작되는 74장도 최초의 계시 후보로 손꼽힌다. 무함마드는 첫 계시 후 약 3년 뒤에 본격적으로 가르침을 펴기 위해 사람들에게 다가섰다고 하는데, 이를 알리는 계시를 74장으로 보기도 한다.


8. 계시의 내용


초기 계시는 최후의 심판, 유일신의 자애로우심과 권능, 신에 대한 감사와 숭배, 사람들에 대해 자비로울 것을 가르치는 내용들이다. 학자들은 최후의 심판과 알라에 대한 감사를 최초 가르침으로 보는데 둘 중 어떠한 것이 먼저 강조되었을까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9. 반응


메카인들은 무함마드를 알라의 사도요 예언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복합적으로 추론해 보아야 할 일이다. 일단 다신교신앙을 행하던 메카인들에게 무함마드가 강조한 유일신 “알라”가 낯선 신은 결코 아니었다. 알라는 메카인들도 인정하는 최고신이다. 그들은 알라가 천지를 창조한 분이라고 알고 있다(꾸르안 31:25, 39:38). 따라서 알라에 대한 가르침을 편 무함마드에 대해 큰 반응을 보인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의 유일신 신앙 가르침보다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인 무함마드에게 계시가 내려온다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졌던 것 같다. 꾸르안은 그들의 반응을 이렇게 전한다: “왜 두 도시(메카와 따이프)의 뛰어난 사람에게 꾸르안이 계시되지 않는가?”(43:31) 당시 메카 사회는 왕정이 아니었다. 느슨한 부족 연합체 사회였고, 유력한 가문의 영향력이 인정되었다. 아무래도 그다지 강한 가문이 아닌 하심가에서 나온 무함마드가 계시를 통해 종교적 카리스마를 보인다는 것은 유력 가문 사람들에게 불안한 요소로 작용했던 것 같다. 더욱이 계시의 내용에는 부자들에 대한 공격이 있었다.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부유했고 힘도 꽤나 있었다. 이런 그들이 부와 권위에 대해 일침을 놓는 꾸르안과 무함마드를 좋아했을 리 만무했을 것이다.


또한 이들은 부활 따위를 믿지 않는 보수적, 현실적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함마드가 부활을 이야기하면서 메카 전통을 파괴한다고 간주했을 것이다. 특히 다신을 모신 성소를 중심으로 상업이 행해졌는데, 무함마드가 다신교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면서부터는 이러한 고래의 전통이 붕괴될 위험을 목도하였기에 이들의 불안감은 더 하여졌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전승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알라를 믿지 않고 죽은 조상들이 천국에 가지 못했다는 실로 청천벽력 같은 선언을 하여 전통과 조상의 길을 중시하는 당시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이로 미루어 무함마드의 가르침은 당시 사회 지도층으로부터 반감을 샀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메카인들이 부가가치가 큰 예멘의 값비싼 향료를 동로마에 전해주어 중간무역 차액을 크게 남겨 부자가 되었고, 메카는 활발한 경제 중심지가 되었다는 의견이 있다. 이에 따르면 물질이 넘칠수록 소외받는 계층이 발생하였고, 인간미 사라진 메카사회에 대해 무함마드가 일종의 사회변혁을 주도했기에 반감을 샀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해석일 것이다. 우선 메카는 상업의 중심지라고 할 수 없다. 부가가치가 큰 예멘의 값비싼 향료를 동로마에 전해주어 중간무역 차액을 크게 남겨 메카가 부강했다는 전래의 주장은 역사적 근거가 전혀 없다. 값 비싼 향료 등은 약탈의 위험이 상존하는 멀고 힘든 아라비아 내륙이 아니라 홍해를 통해 배로 운반되었다. 메카인들은 짐승 가죽 등을 모아 시리아 지역에 팔았고 필요한 곡식이나 물건을 사오는 소박한 무역활동을 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무함마드의 가르침은 혈연중심에 조상들의 전통을 중시하던 당시 사회에 비추어 새로운 것이었고, 젊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초창기 추종자들이 유력한 가문 출신을 비롯해서 대다수 젊은이들과 부족 보호가 약한 사람들이었다. 부족 보호가 약한 사람들이란 외국인 출신 및 메카 밖에서 온 아랍인들을 말한다. 이들은 공격을 받아도 자신을 보호해줄 세력이 미약한 사람들이었다. 당시 메카가 속한 아랍 사회는 혈연 중심의 부족들이 다른 부족과 연대해서 보호막을 형성하였다. A라는 부족에 속한 사람이 B라는 부족에 속한 사람을 죽였다고 가정해보자. B부족은 반드시 살인자를 죽일 필요는 없다. 그 살인자가 속한 A부족 구성원 누구라도 죽이면 된다. 이런 식으로 소모적인 분쟁이 계속되면 결국 두 부족 모두 씨가 마르게 될 것이기에 메카인들은 이를 방지하고자 노력하였고, 부족의 안전을 위해 타 부족과 연맹을 맺어 좀 더 강한 보호막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보호를 받기 힘든 사람들은 혈연 중심의 전통 사회의 틀을 깨고 새로이 나오는 신앙중심의 무함마드 운동에서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일부에서 이야기 하듯, 무함마드의 이슬람 운동은 사회 밑바닥 층의 변혁 운동내지 사회주의 혁명 운동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무함마드는 한 때 자신을 반대하는 다신교 메카인들의 전통을 수용해, 세 여신을 인정, 메카인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으나, 결국 이는 진정한 알라의 계시가 아니라 사탄의 속임수로 알려져 이러한 유화적 계시는 취소된다.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가 악마의 시에 인용까지 한 이야기로 무슬림 전승에 엄연히 있는 이야기다. 이후 메카인들의 다신 신앙과는 완전히 차별된 길을 강조하게 된다. 전통가치를 무시하는 무함마드를 메카인들은 시인, 정령 (귀신)에 들린 자, 점쟁이, 거짓말 하는 마법사로 몰아 붙였다. 당시 아랍사회에 비추어 보면 위에 열거한 그에 대한 호칭은 모두 같은 부류를 말한다. 즉, 보통 사람과 같은 말을 하지 않고 무언가 신들린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메카인들은 더 나아가 그의 계시를 보잘 것 없는 자에 내리는 옛날 이야기로 비하하고, 무함마드가 아침 저녁으로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고 이를 기록해서 이야기 한다고 비난하였다(꾸르안 16:103).


무함마드는 이를 부인하면서, 꾸르안의 계시는 순수 아랍어로 된 것이기에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을 수도 없을 뿐 더러, 의심이 나면 자신보다 먼저 성전을 읽고 있는 사람들, 즉, 유대-그리스도교인들에게 물어보라는 계시를 알려주면서 반대자들의 비난에 맞선다. 결국 무함마드와 메카인들과의 관계는 “너희들에게는 너희들의 믿음, 나에게는 나의 믿음”이라는 꾸르안 109장의 계시로 정리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10. 메디나 이주와 죽음


메카인들의 비우호적인 반응은 결국 대립으로 이어지고, 무함마드를 따르던 일부는 박해를 피해 615년경 아비시니아로 도피하기까지 하였다. 619년 충실한 조력자 아내 카디쟈와 작은 아버지 아부 딸리브의 죽음은 어려움을 배가시켰고, 결국 그는 북쪽으로 약 400킬로미터 떨어진 메디나 사람들의 초청으로 메디나 내 부족간의 분쟁 조정 중재자(hakam) 역할을 맡고 622년 메디나로 이주한다. 그는 이곳에서 메카인들과 3번의 전투를 통해 자신의 세력을 확실히 다지며 성공적인 종교 공동체를 건설하였고, 결국 자신의 고향 메카를 630년 무혈 함락시킨다. 고향 떠난 지 8년 만에 반대자를 아우르고 성공한 종교 지도자가 된 것이다. 632년 세상을 떠난 그는 죽는 날까지 알라의 계시와 자신의 사도, 예언자 됨을 확신하였다. 실로 그의 업적은 위대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혈연 중심의 부족 사회를 신앙중심의 사회로 전환하였고, 유력한 가문 출신 여부를 떠나 알라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획기적인 의식을 심어 주었다. 철저한 유일신교에서 연유하는 도덕적 윤리관과 보편적 평등의 인간관은 아라비아 사회를 뒤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위대성을 내포하였다. 무함마드 사후 벌어진 이슬람의 확장과 놀라운 성공은 이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무함마드는 시공을 초월하여 전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가르침을 전한, 진정 위대한, 그리고 성공한 종교인이었던 것이다.



II. 그리스도교인들의 반응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무함마드에 대한 평가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부정적이다. 서두에서 이미 밝혔듯, 이는 그리스도교인들이 무함마드를 예수와 비교해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은 전하는 메시지는 같으나 살아 온 환경이 너무 달랐다. 예수는 로마 식민지 통치하에 산 유대인이었고, 무함마드는 그보다 약 600여 년 후에 팔레스타인이 아닌 아라비아 반도에서 숨 쉰 아랍인이었다. 이질적 시공이 주는 차이의 무게는 대단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긴요하고도 무거운 차이점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둘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데에 연유한다. 메시아 하느님 예수로 끝난 유일신 전통에 난데없이 무함마드가 최후의 예언자로 등장하여 위력을 떨친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도대체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그리스도교인들은 무함마드를 거짓 예언자요 적 그리스도로 불렀고 이러한 인식하에 다양한 편견과 오해, 의도적 몰이해가 7세기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왔다. 많은 비난을 크게 몇 개로 나누어 살펴보자.


1. 간질발작 환자 무함마드


우선 무함마드의 종교체험을 병적인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미 8세기에 동방 그리스도교 수도사 테오파네스(Theophanes, 758-817)가 무함마드를 간질병 환자로 보았고, 현대에 들어서는 이슬람 학자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의견이 대두하였다. 독일 학자 구스타프 바일(Gustav Weil)은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을 때 보이는 증상이 간질발작(epilepsy)이라고 하였고, 뒤이어 알로이스 스프렝거(Aloys Sprenger)는 이에 더하여 히스테리(hysteria) 증상까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들 주장의 근거는 무슬림 전승이다. 이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계시가 내려오면 추운 날에도 얼굴에서 구슬땀을 흘렸고, 마치 취한 사람처럼 땅에 쓰러져 낙타 새끼처럼 신음소리를 내기도 하였으며, 계시를 받을 때 강한 압박감을 느껴 얼굴 표정이 어두워졌다고 한다. 무함마드의 종교 체험을 이러한 전승에 근거해서 병리적 현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우선 전승에는 계시와 관계없이 이러한 증상을 무함마드가 보였다는 기록이 없다. 또한 간질 발작은 정신적인 문제가 수반되는데, 무함마드에게 그런 현상은 찾아 볼 수 없다. 무함마드는 계시를 주로 청각적으로 받았다. 시각적인 체험을 한 증거가 꾸르안에 있긴 하지만 청각적인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 그의 종교체험은 종교 심리학적으로 진실하다는 것이 토르 안드래(Tor Andrae)이래 학계의 입장이다.


2. 세속적 무함마드


그리스도교인들은 이슬람에 대해 도덕적 우월감을 지녔다. 특히 무함마드는 그리스도교인들의 도덕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세속적 인간으로 비쳐졌다. 무엇보다도 일부일처를 결혼관으로 삼는 그리스도교에서 10명 이상의 아내를 가진 무함마드와 이슬람의 다처 용인은 추하게 보였음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에 이슬람이 급속히 전파된 이유 중 하나로 성적 즐거움에 대한 약속 때문이라고 보았을 정도로 그리스도교 세계는 이슬람이 타락한 성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13세기 알렉상드르 뒤 퐁(Alexandre du Pont)의 무함마드 이야기(Roman de Mahomet)에는 무함마드가 탐욕과 야망에 가득 차 부유한 과부 카디쟈와 결혼했다고 보았다. 근대 영국의 이슬람 학자 윌리엄 뮈어(William Muir)는 메카에서 무함마드는 성실하고 높은 정신을 가진 사도였으나, 메디나로 이주한 뒤에는 사탄의 간계에 빠져 세속적 성공만을 향해 매진하였다고 평가한다.


3. 거짓 예언자


사도요 예언자 무함마드는 그리스도교 세계에 발 붙힐 틈이 없다. 그는 거짓 예언자요, 적 그리스도다.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는 무함마드의 일부 말은 사실이나, 이를 신구약 성서를 왜곡하여 뒤섞었고, 기적이 그의 말을 증거하지 않기에 그의 가르침이 거짓이라고 하였다. 근대 그리스도교 세계 이슬람 연구자들은 무함마드가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혼란시켰고, 비상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거짓으로 빠지는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전형에 속한다고 보았는가 하면, 비록 간질병 환자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신의 계시를 받는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 압도적인 정신현상에 빠져든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중세 그리스도교인들은 무함마드가 자신이 받는 계시를 믿게 하기 위해 거짓 술수를 행하였다고 믿었다. 무함마드는 성령이 계시를 준 것처럼 보이기 위해 비둘기가 그의 귀에서 옥수수 알을 끄집어내도록 훈련시켰고, 또 뿔에 꾸르안을 매 단 훈련된 송아지로 추종자들을 속이는  거짓 기적을 행하였다고 믿었으며, 무함마드의 관은 그가 신비로운 기적의 힘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자석의 힘을 빌어 허공에 띄워 놓았다고 생각하였다.

4. 그리스도교를 배교한 무함마드


중세 그리스도교인들은 무함마드를 원래 그리스도교인이었다가 배교한 인물로 보았다. 그는 추기경으로, 아랍인들을 개종시키면 교황직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열심히 일을 했는데,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자신의 종교를 창시했다는 그럴싸한 이야기도 나돌았다. 또 그는 가짜 수도원장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단테의 신곡에서 무함마드는 지옥의 불에서 고통을 받는데, 그의 죄명은 정통 그리스도교를 분열시킨 가르침을 만든 것이었다.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에 나온 환상적인 이야기들이다.


III. 신학적 색안경을 벗으면


사람이든 문화든 다른 사람이나 문화와 활발한 접촉이 없으면 서로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와 환상이 싸이기 마련이다. 믿음의 세계는 더욱 그러하다. 아니, 서로 접촉이 있더라도 자신을 보호하는 신학적 색안경을 벗어버리지 못하면 타인의 믿음은 결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도교가 이슬람을 적대시하던 중세 때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의도적 왜곡이 횡행한 것은 이슬람을 제대로 접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무함마드가 술취한 채 집에 돌아오다 오물통에 빠져 돼지에 잡혀 먹었기에 무슬림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믿었고, 죽은 후 3일 만에 되살아난다는 무함마드의 예언을 믿고 기다리던 추종자들은 역겨운 냄새에 질려 떠나고 그 시체는 결국 개에게 먹혔다고 생각하였다. 무지에서 나온 이야기는 인구에 회자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그럴싸하게 포장되는 단계를 거쳐 더욱 더 진실처럼 떠도는 것이다.


좁은 세계관에 둘러싸인 중세는 그러했다고 천만번 양보한다 하더라도 오늘날 개화된 현대 세계에서 까지 그리스도인들이 중세 신앙 선배들 걸어 온 잘못된 길을 따라 갈 필요는 없다. 무함마드를 욕하고 비방한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진리가 더 향상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진리를 구하는 그리스도교인의 자세에 합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함마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가.


무엇보다도 우선 그리스도교가 씌워 놓은 신학적 색안경을 벗어야 한다. 그리스도교라는 틀에서 보지 말자는 것이다. 예수를 표본으로 무함마드를 보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굳이 그 틀에서 보겠다고 고집한다면 그리스도교가 완성했다는 구약 전통의 선지자, 왕들과 무함마드를 나란히 놓고 보면 될 것이다. 아브라함은 결혼했을 뿐 더러, 아내가 둘이었고, 솔로몬은 300명의 왕비와 600명의 후궁과 수없이 많은 궁녀를 거느렸다. 모세는 살인을 하였고, 여호수아는 원주민들과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통하여 가나안을 정복하였다. 그리스도교인들이 무함마드 이름에 꼬리표처럼 붙이는 호색한, 전쟁광, 살인자라는 말이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솔로몬에도 붙는가? 그리스도교인들의 무함마드 이해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는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솔로몬처럼 제한된 시간, 공간 속에서 살았다. 7세기 아라비아라는 시공간적 환경 속에서 생장한 무함마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하고자 한 가르침은 구약의 인물들처럼 시공의 제한을 넘어 전 인류에게 적용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그가 전한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유일신에 대한 전인적 전환, 그리고 보편성을 띤 강한 윤리의식과 인간 평등, 그리고 평화다. 전 인류가 보편적으로 따를 올바른 삶의 해법을 유일신 신앙에서 찾은 무함마드. 계시를 받은 도구에 불과한 그의 깨끗함 여부를 오늘날의 잣대로 재지 말고 그 도구가 전하고자 한 바가 무엇이었는지 직시하는 것이 진정 중요하다. 지난 1400여 년 동안 착용해 온 그리스도교라는 색안경을 벗어야 한다. 그러면 진정 같은 진리를 가르키고 있는 무함마드의 인간됨이나 가르침이 그리스도교인이라는 나의 정체성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진 않을 것이다.



제4강  무함마드와 경전의 백성들 : 이슬람과 유대 그리스도교 전통

 

9세기 이슬람 신학자들이 창조되지 않은 영원한 알라의 말씀으로 규정한 꾸르안은 610년경부터 632년까지 약 22년간 무함마드에게 내려온 운율 있는 산문체로 된 아랍어 계시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무함마드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알라의 계시를 받았다. 계시는 무함마드가 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시작하였고, 이후 상황에 맞게 조금씩 조금씩 내려왔다. 무함마드 사후 구전으로 암송되고 동물의 어깨뼈나 돌 등에 쓰여 진 것을 취합하여 약 651년경 오늘날 우리가 지니고 있는 총 114장을 지닌 형태의 책으로 완성되었다. 그 구분이 대단히 자의적이고 주관적이긴 하지만 계시는 일반적으로 크게 메카시대 (610~622) 와 메디나 시대 (622~632) 계시로 나뉘는데, 메카 계시는 간결하고 강렬한 문체를 지녔고, 메디나 계시는 길고 논쟁적, 법률적인 것이 많다.


꾸르안의 핵심주제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유일신 신앙이다. 거듭 반복하면서 교훈적으로 가르치는 내용이 바로 유일신 신앙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성경과 비교해 보았을 때 성경과 같은 이야기가 대다수의 경우 반복, 생략, 변형, 암시라는 꾸르안 특유의 양식을 통해 꽤나 상이한 형태로 전해지지만, 꾸르안은 성경 이야기의 바른 형태 등 외적 모습을 떠나 그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주된 정신을 초지일관 집요하게 유일신 신앙에 맞추고 있다. 말 그대로 자나깨나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시며 최후의 심판 주재자이신 알라를 경배하고 찬미할 것을 꾸르안은 강조한다.


유일신을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공감할 내용을 지닌 꾸르안은 왜 무슬림들에게는 그토록 매력적인데 무슬림들과 같은 유일신을 믿는 유대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닫혀진 계시가 되었을까? 이번 강의는 꾸르안으로부터 직접 그 이유를 찾아보려고 한다. 먼저 꾸르안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1. 꾸르안의 내용


꾸르안에는 크게 5가지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 첫째는 유일신에 대한 신앙이다. 신의 단일성을 부정하는 자 (mushriq)와 신께 감사하지 않는 자 (kāfir)는 불신자다. 신의 계시를 인정하고 믿음을 가진 사람 (mu’min)과 복종하는 자 (muslim)가 바로 믿는 자다. 이슬람은 인류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의 종교로, 아브라함은 유대인도 그리스도교인도 아닌 하니프, 즉 원초적 유일신론자다. 곧 무슬림은 바로 다름 아닌 아브라함의 유일신 신앙을 견지한 사람이다.


둘째, 천사, 사탄, 정령과 같은 영적인 존재들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한다. 천사는 신의 사도요, 계시를 전하는 자다. 그들은 인간을 지켜보고 행위를 기록한다. 죽을 때 인간의 영혼을 부르고 심판의 날에 기록자로 참여 한다. 알라 권좌 옆에서 시중을 들고 찬미가를 부른다. 꾸르안은 천사들 중 가브리엘과 미카엘만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사탄 (shaytān, shayātīn)은 악마다. 이들은 천국을 엿보다 돌에 맞아 쫓겨나는데 그 돌이 인간에게는 유성으로 보인다는 당시 일반 믿음이 보이기도 한다 (15.16~18). 사탄 중의 사탄은 이블리스다. 타락한 천사 (2.34)요, 진의 하나 (18.50)인 그는 불로 창조되었고, 아담을 떠 받들라는 알라의 명령을 자존심 때문에 거절하다 쫓겨난다. 그는 알라를 믿지 않는 인간을 유혹하도록 허락을 받았다. 정령 (精靈)은 진 (jinn, 단수는 jinnī, genie)이라고 하는데 사막, 폐허, 이상한 곳과 연관된 존재다. 동물, 독사, 또는 기어 다니는 것의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두려움의 대상이긴 하나 늘 해로운 존재는 아니다. 인간처럼 진흙에서가 아니라 불에서 창조되었고 알라 숭배의 목적을 지닌다. 예언자들이 그들에게 보내지고 그들은 신자나 불신자가 된다. 몇몇은 무함마드에 의해 신자가 되기도 한다 (72.1~19). 불신자는 지옥에 가나 신자가 천국에 간다는 정확한 표현은 없다. 또한 영 (靈 al-rūh)에 대한 믿음이 있다. 천사 중 하나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후대 무슬림들은 이를 가브리엘과 동일시하였다. 알라께서 마리아에게 영을 불어 넣어 예수를 잉태하게 하신다.


셋째, 알라께서 내리신 경전과 보내신 사도들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종교공동체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사비아, 조로아스터교를 언급한다. 알라께서는 역사를 통해 각 공동체에 예언자들을 보내셨고, 예언자의 가르침을 거절한 사람들은 징벌을 받았다. 히브리 성경에서 보는 것과 같이 글을 쓰는 예언자, 희생제, 제사장 같은 개념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예언자들의 높은 사회 정의 의식은 잘 드러난다. 그리스도교의 삼신신앙 (삼위일체), 예수 십자가형을 부정하고, 예수의 대속 개념은 없다. 예수가 육체적 의미로 하느님 아들이라는 개념 역시 거부한다.


넷째, 최후의 심판과 부활에 대한 믿음이다. 이날은 반드시 온다. 따라서 인간은 그날이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처럼 느끼며 살아야 한다. 그 어떠한 것보다도 확실한 이 심판일을 명심하면서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꾸르안은 최후의 심판에 대해 생생하고 시각적으로 묘사한다. 천국에 대한 정확한 위치는 언급하지 않으나 그곳은 더 이상 헛된 소리나 불의가 없는 곳이다. 인간은 최후의 심판일에 부활한다. 이 부활은 육체적인 부활이다.


다섯째, 무슬림 공동체 규약이 있다. 이른바 법률적인 내용이다. 공동체 규약의 첫 번째는 신앙에 대한 것이다. 이슬람의 다섯 기둥이라고 하는 신앙증언, 예배, 희사, 단식, 순례에 대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오늘날 무슬림들이 지키듯 예배를 하루에 5번 해야 한다는 말씀은 없다. 금요일 정오 예배를 강조하고 정결의례 및 기도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단식 역시 유대인들을 따라 행했던 속죄의 날 (욤키푸르) 단식, 즉 아슈라 단식 (2:183)과 라마단 단식 (2:185)을 언급한다. 둘째, 결혼과 이혼에 대한 말씀이 있다. 셋째, 상속에 관한 법률이 있다. 유언장은 반드시 쓸 필요는 없으나 증언이 있는 가운데 유언을 의무화하고 (2:180), 부모, 아이, 형제, 자매 상속에 관한 자세한 규칙들 (4:11~14; 4:176)을 계시한다. 장자에게 특권이 주어지지 않고, 이슬람 이전 사회와는 달리 여성 상속권 인정을 인정한다. 딸은 아들의 반을 상속받는다. 과부는 상속권이 없으나 그들을 부양하는 것은 의무로 규정된다 (2.240). 넷째, 음식법이 있다. 유대인들에게 허용된 것은 무슬림에게도 허용된다 (5:5). 그러나 복잡한 유대인들 음식법은 알라의 벌이므로 따르지 않아도 된다 (4:160/58). 신약성서 사도행전 (15.29)과 같이 단순한 음식법이나, 돼지 고기는 먹을 수 없다 (5:3/4). 술은 천국의 기쁨 중 하나로 묘사되지만 술 먹고 예배에 참가한 이들에 대한 나쁜 인상 (4:43/6)으로 인해 금지된다 (5:90/2). 다섯째, 유대인들이 이자 놀이하는 것을 비난하고 (4:161/59), 이를 금지한다 (3:130/25f; cf. 2:275/6~281). 여섯째, 기타 세세한 규정들이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계약을 준수하고 (5:1), 빚은 기록해야 하며 (2:282), 간통 음행은 처벌하나 반드시 4명의 증인 요구되며 (4:2~4, 4:13), 도둑질 한 자는 손목을 자르고 (5:38/42), 도박은 금지한다 (2:219/6; 5:90/2). 노예는 친절하게 다스려야 하고 (4:36/40), 노예 해방은 경건한 행동 (24:33)으로 권장한다. 예언자를 접견하는 예의와 (49:1~5; 58:12/13), 약탈하거나 전장에서 획득한 전리품 분배에 관한 규정이 있다 (8:141/2; 59:6~10).


2. 유일신 신앙과 최후의 심판


서두에서 언급하였듯 위와 같은 내용을 지닌 꾸르안의 핵심적 가르침은 역시 유일신 신앙이다. 그런데 단순히 유일신 신앙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유일신 신앙이 지닌 최후의 심판 사상은 현세를 올바르고 경건하게 살 것을 항상 요구하고, 이러한 삶은 결국 필연적으로 사회정의 의식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이슬람 이전 아랍사회의 한계라고 할 수 있는 혈연 중심의 사회 관계와 강자 중심의 사회구조를 뛰어 넘어 이슬람은 신념 중심의 공동체를 이룬다. 높은 윤리의식에서 우러나오는 약자 보호 의식은 실로 당시 아랍인들에게 매력적인 가르침으로, 물질적으로 잘살고 힘있는 자가 아니라 신을 경외하며 그분의 뜻에 맞게 높은 윤리 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알려준다. 닥쳐 올 최후의 심판을 모른 채 약자를 괴롭히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고 꾸르안은 가르친다.


고아를 괴롭히지 마라. 거렁뱅이를 꾸짖지 마라. 주님의 은혜를 언제나 말해 주어라 (93:9~11).


최후의 심판을 부정하는 자를 알고 있는가? 고아를 배척하고 가난한 자에게 베풀 줄 모르는 자. 재앙있으라, 예배하면서도 예배에 마음 쓰지 못하고, 겉으로 경건한 척만하고 자선을 베풀지 못하는 자에게 (107)


무함마드 역시 약한 자를 외면하다가 알라로부터 꾸지람을 듣는다.


얼굴을 찡그리고 돌아섰다. 장님이 곁에 왔기 때문에. 어떻게 알았을까, 그가 몸을 정결하게 할 수도 있는데. 그는 미리 경고를 받고 우리가 한 경고 때문에 유익했을 수도 있는데. 그러나 너는 자족하는 사람들에게만 신경을 썼다. 그가 더러운 상태에 있었어도 네게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러나 너에게 신실한 마음으로 온 그에게 너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80: 1~10).


실로 최후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재산에만 마음이 팔려 약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이들을 꾸르안은 혹독하게 경고한다.





험담 중상을 일삼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재산을 모아서는 계산에 열중하고 그 부유함이 자기를 죽지 않게 한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그들은 산산조각 내는 곳 (hutama)으로 던져지리. 그것에 대해 무엇이 네게 알려주겠느냐? 알라가 붙인 노여움의 불, 마음속까지 치솟아 올라가 그들을 덮으리, 끝없는 불길로 (104:1~9).


재물을 모으고 자족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말씀을 거짓이라 말하는 자에게는 우리들이 고난으로 가는 길을 쉽게 하리. 멸망의 길로 사라지려 할 때 그의 재산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92:8~11)


너희들은 고아를 너그러이 대하지 않았고 서로 힘써 가난한 자에게 음식 베푸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탐욕으로 유산을 집어 삼켰으며 절제함 없이 재물을 사랑한다. 아, 대지가 가루로 될 때 그대의 주님이 대열을 이룬 천사들을 거느리고 나타나시고, 그날 지옥으로 끌려가나니. 그날 인간은 (알라를) 기억하겠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리. 그는 말하리 ‘아 내 목숨을 위해 선한 일을 하였더라면 (89:18~24).’


반면 최후의 심판을 믿는 자는 유한한 이승의 삶을 늘 인식하면서 알라의 길에 재물을 쓰는 선행을 하면서 경건하게 살아가야 함을 꾸르안은 강조한다.


이 세상의 삶은 놀이와 향락에 지나지 않는다. 너희들이 믿고 (알라를) 경외한다면 알라께서는 너희들에게 대가를 지불하실 것이요, 너희들의 재산을 요구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47:36).


너희들은 알라의 길에 가진 것을 쓰도록 요구 받고 있다. 너희들 중에는 인색한 자가 있다. 인색한 자들은 그들 스스로의 영혼에 인색한 자다. 알라께서는 부족함이 없으시다. 너희들이 부족한 자들이다. 너희들이 등을 돌리면 알라께서는 너희들 대신 다른 백성으로 대치하실 것이다. 이들은 너희들과 같지 않을 것이다 (47:38).


이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당장 내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하면 오늘 하루 막 살 수 있을까. 꾸르안은 최후의 심판이 먼 미래가 아니고 바로 닥친 것이기에 믿는 이로 하여금 최대한 경건하게 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요, 무함마드는 바로 이를 위해 일어나서 사람들에게 경고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3. 유대 그리스도교인들


        창조주이시면서 최후의 심판을 주재하시는 유일신 신앙은 이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 이전에 이미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이를 가르쳤다. 위에서 언급한 유일신교의 사회정의 의식과 경건한 삶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역시 공유하는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꾸르안은 선배 유일신 신앙인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무함마드는 자신에게 내린 계시가 바로 다름아닌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게 이미 내려진 계시의 연속이요, 재현이라고 믿었다. 그러하기에 꾸르안은 계시를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먼저 경전을 읽고 있는 자들,” 즉 유대교인과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도 이미 먼저 유대, 그리스도교 경전에 기록되었음을 밝힌다.


아니 너희들은 이 세상의 생활을 좋아한다. 내세만이 최선이자 영원한 것임에도. 이와 같은 것은 옛 경전에도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의 경전에도 (87:16).


꾸르안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은 언어만 다를 뿐 원칙적으로 같은 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천상에 모든 경전의 모서 (母書)가 있고, 꾸르안은 바로 이것이 아랍어로 내려 온 것이다. 구전의 성격이 강조될 때 성서들은 외국어로 된 꾸르안, 꾸르안은 아랍어로 된 꾸르안이라고 불린다. 실로 꾸르안이 꿈꾸는 이상적 사회는 유일신을 믿고, 유일 경전이 있는 하나의 단합된 종교 공동체다. 그러나 현실은 분열된 종교 공동체이니, 그 최종 판단은 최후의 심판일에 알라께서 하실 것이라고 한다 (5:53). 그러면 단합된 종교 공동체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꾸르안에서 이를 찾아보면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예언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믿지 않음으로 생긴다 (42:13). 둘째, 알라의 뜻이다. 그 분은 마음만 먹으셨다면 모두 하나로 만드실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신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언표로 볼 수 있다 (11:118~9). 셋째, 알라께서는 경전이 없는 백성들에게 그 들의 말로 경전을 내려주신다는 계시에서 볼 수 있듯 (62:2) 우리들 눈에 보이는 그대로 다양한 종족과 다양한 말 때문이다.


        아랍어로 계시된 꾸르안은 외국어, 즉 히브리어로 계시된 히브리 성경을 믿는 유대인과 그리스어로 번역된 히브리 성경과 함께 그리스어로 계시된 신약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앞서 말했듯이 꾸르안은 성경 계시를 계속 잇고 재현하는 계시이기에 기본적으로 같은 메시지로 생각한다. 즉, 같은 유일신께 복종하는 사람들이 유대인, 그리스도인, 무슬림이라는 말이다.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꾸르안으로부터 질책을 받는다.


유대인들의 큰 죄는 알라께 감사하지 않고 불충한 죄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알라의 축복을 많이 받았다. 이집트에서 파라오 종살이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지만, 그들은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숭배하고 모세를 믿지 않았으며, 약속의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을 어겼다. 또한 이들은 모세가 계시 받은 경전을 일부만 공개하고 숨기고, 감추었으며, 경전 말씀이 놓인 자리를 바꾸어 왜곡하고, 독단적으로 해석하여 따르지 않았다. 더 나아가 자기들의 손으로 성전을 써서 ‘이것이야말로 알라께서 주신 것이다’고 하며 얼마 되지 않는 돈에 팔아 넘기기도 하였다. 그들은 다투어 죄와 부정을 행하고,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금지되어 있는 이자놀이를 하며, 사람들을 속이고, 유대학자 (Ahbar)들은 사람들이 알라로 이르는 길을 막고, 돈을 착취하며 금과 은을 축적하여 알라를 위해 쓰지 않고 있다 (9:34).


        꾸르안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지옥의 불도 수일간만 자신들에게 닿을 것이고 (2:80), 알라의 손은 묶여 있으며 (5:64), 자신들은 선택된 민족으로 알라의 친구며 (62:6), 천국은 자신들의 것 (2:94)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천국이 자신들의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꾸르안은 알라께 있는 내세의 집이 유대인들만이 들어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죽음을 원해보라고 비난한다. 꾸르안은 유대인들을 토라를 가지고 있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지킬 수 없다고 보았고,  그러한 그들을 책을 나르는 나귀에 비유한다 (62:5). 또한 음식과 안식일 들에 관한 엄격한 법은 유대인들에 대한 벌로 보았고, 유대인들은 계약을 깼기에 저주를 받았다고 한다 (5:13). 저주를 받은 유대인은 다신교도와 같고, 최후의 심판에 지옥에 간다고 한다.


        꾸르안은 유대인들과는 달리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대단한 호감을 표현하며 우호적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꾸르안의 계시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믿는 자에 대해 가장 심한 적의를 가진 자들이 유대교도와 다신교도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애정을 지니고 믿는 자들에게 가장 가까운 자들이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임을 알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중에는 사제와 수도사가 있고 그들은 교만하게 굴지 않기 때문이다. 사도에 내린 계시를 들을 때 진리를 인정하여 그들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볼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들의 주님, 저희들은 믿습니다. 저희들을 증언자들로 기록하여 주십시오.” (5:82~83).


유대인과 비교해 그리스도인들은 꾸르안의 높은 평가를 받는다. 유대인들은 알라께서 보내신 사도 예수를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는다. 특히 유일신에 대한 경외감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은 눈에 띄게 칭찬받는다.


그들 모두가 같지는 않다. 경전을 가진 백성 중에는 올바로 선자들이 있다. 그들은 밤새 알라의 증거를 읽고 예배한다. 알라와 최후의 심판을 믿고 옳은 것을 행하고 그른 것을 금지한다. 다투어 선행을 한다. 그들은 의롭다 (3:113~114).


이렇듯 극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지만, 꾸르안은 사도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는 그리스도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를 알라의 유일성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곧, 인간일 뿐인 예수를 알라의 아들이라고 하거나 숭배하는 것은 유일신 개념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예수뿐만 아니라 마리아를 신으로 숭배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질책한다. 꾸르안은 마리아와 예수가 그 누구보다도 알라의 배려를 듬뿍 받은 인물들이지만 결코 신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들은 음식을 먹었으며, 언제든지 알라께서 없애려 하시면 없앨 수 있는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예수는 알라께 자신이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는데도 그리스도인들이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신으로 숭배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동시에 함께 비난 받는다. 이들은 알라의 계시에 불신의 태도를 취하고, 예언자와 정의를 권고하는 사람들을 부당하게 살해하는 사람들이다. 또 이들은 스스로를 신의 아들들 (5:18)이라 자칭하는데, 유대인들은 에즈라를 신의 아들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신의 아들 (9:30)로 숭배한다. 더 나아가 자신들만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2:111).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기들의 율법학자나 수도사마저 주님으로 숭배한다 (9:31). 한편 이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은 같은 경전을 읽고 있으면서도 서로 비방한다 (2:13). 둘 중 누가 옳고 그른지는 알라께서 최후의 심판일에 내리실 것이라고 꾸르안은 말한다 (2:13).


        결국 꾸르안은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따르지 않는 한 만족하지 않을 것이나, 그들의 믿음은 잘 못 된 것이기에 따라서는 안되며 그들과 벗하지 말것을 경고한다 (5:51). 함께 잘 못 된 길로 갈 수는 없다는 말씀이다. 꾸르안은 알라의 종교, 즉 순수 유일신교는 이슬람뿐이라고 단언한다 (3:19). 이슬람이란 아브라함, 모세, 예수에게 알라께서 계시한 원초적으로 순수한 유일신교를 말한다 (2:135~136).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 가르침을 받았으나 왜곡하고 정도에서 벗어나 예언자들의 정도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꾸르안에서는 알라께서 내리신 성전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라와 종말을 믿지 않고 알라와 사도게서 금한 것을 지키지 않으며 참된 종교를 믿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인두세를 바칠 때까지 싸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9:29) 궁극적으로 그러한 사람들은 전지전능하신 알라께서 심판하시리라고 믿는다 (2:136).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이 세 유일신 신앙은 꾸르안에서 화목하게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잃어버렸다. 반목과 갈등의 근본은 유대인들의 경우 알라 계시에 대한 불충이 주가 되고, 선민이라는 오만, 에즈라를 신의 아들로 받드는 모습이 부가적으로 문제가 되는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와 마리아를 알라와 함께 신으로 숭배하는 다신 숭배 신앙이 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건하고 오만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유일신 신앙 훼손으로 인해 호감의 대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두 선배 신앙과의 갈등하는 모습에서 이슬람의 진정한 자기 정체성이 확립되는데, 그것은 바로 유대인도 그리스도인도 아닌 원유일신론자 아브라함의 신앙, 곧 원초적이고 순수한 유일신교다. 바로 이 신앙이 모세, 예수에 이어 무함마드에 이르기까지 흐트러짐 없이 전해진 것이다. 꾸르안은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순수 유일신 신앙에 불순한 요소를 첨가했다고 보며, 이슬람이야말로 순수 유일신론을 확립한 알라께서 태초에 알려주신 원유일신교라고 스스로 그 정체성을 찾은 것이다.




제5강  "꾸르안과 구약 이야기

: 꾸르안이 옳나니!"


I. 이해의 틀


이슬람은 성경을 인정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꾸르안이 전하는 성경 이야기는 성경과 차이점이 많다. 실로 호기심에서 꾸르안을 읽어 본 그리스도교인은 꾸르안에 성경 이야기가 많다는 데에 놀라고, 그 이야기가 압축적이고, 생략적이며, 성경과 세세한 부분에서 큰 차이가 있음을 알고 다시금 놀란다. 그리고 꾸르안이 성경을 잘 못 베꼈다는 결론을 내린다. 실로 꾸르안에는 천지창조, 아담, 노아,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솔로몬 등 성경 이야기나 유대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읽으면 이해하기가 훨씬 쉬운 구약과 관련된 이야기가 다수 나온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유대 역사나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 이를 읽는 경우 곧 의아함을 넘어서서 거짓말로 가득 찬 꾸르안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는 것이다.


철저히 세속적인 종교역사학도의 눈으로 보면 꾸르안이 7세기 아라비아 사회와 밀접한 관계 아래에서 형성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적어도 꾸르안 계시를 들었던 사람들은 어느 정도 구약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구약 이야기에 대해 성경처럼 세세하게 이야기 하기 보다는 생략과 암시 어법으로 뜻을 전하는 꾸르안을 알아 들으려면 아무래도 생략과 암시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먼저 알고 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꾸르안의 구약이야기 출처를 정확히 꼭 집어서 밝히기는 힘들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인들이 믿고 따르는 구약 성경과 특별히 다른 점은 꾸르안에 유대인들의 하가다 전승의 흔적이 심심찮게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인하여 19세기 이래 몇몇 학자들은 이슬람이 유대교에 그 뿌리를 두었다고 보았다. 이들의 말이 백 번 천 번 맞다 받아들여 이슬람이 유대교에서 나왔다고 인정한다고 해도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슬람은 유대교 지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그리스도교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얼핏 겉 모습만 보고 그리스도교는 유대교 이단이라고 부르는 잘못을 범하는 것과 같다.


꾸르안의 구약이야기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먼저 무엇보다도 7세기 아라비아의 종교 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당시 어떠한 구약 이야기가 전승되었고, 유대 그리스도교인들의 구약 이야기는 어떠했는가에 대한 지식을 먼저 구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함마드가 접촉했던 유대인들에 대한 정확한 판단도 안 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 아무래도 당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을 구약 이야기를 정확히 재구성한다는 것은 현재 역사지식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온갖 이성적 수단을 동원해서 근거 있는 추측을 시도할 뿐이다. 꾸르안의 배경이 되는 구약 이야기를 정확히 밝혀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꾸르안 구약이야기 배경을 밝혀낸다 해도, 아니 어느 날 이를 뒷받침할 만한 엄청난 사료가 발굴된다 해도 꾸르안의 구약이야기가 지닌 그 주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슬람 이해는 딱딱한 역사 지식에 그치고 말 것이다. 무슬림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구약 이야기는 성경과 비교해서 밝힐 수 있는 역사 지식이 아니라 알라를 믿지 않으면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는 실존적 신앙 증언이기 때문이다.


II. 구체적인 이야기 내용


꾸르안의 구약 이야기를 살펴보면 성경과 구체적으로 비교하면 생략, 암시, 반복, 산재 (散在)의 4가지 특징이 눈에 띈다. 첫째, 성경에 비해 상당히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다. 구체적으로 인명, 지명 등을 언급하지 않고 생략한다. 아담의 선악과 이야기는 있으나, 그의 아내 이름이 이브인지 알 길이 없고, 아담의 아들 카인과 아벨도 이름이 나오지 않고 그의 두 아들이라고만 언급한다. 둘째, 꾸르안의 구약이야기는 성경 이야기를 암시한다. 축약적으로 이야기하기에 많은 부분 계시를 듣는 이들은 선지식 (先知識)을 가지고 행간의 뜻을 이해하는 양상을 보인다. 대표적인 경우가 요셉 이야기에서 이집트에서 높은 사람이 된 요셉이 자신을 몰라보는 형제들을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하는 말이 동생을 데리고 오라는 것이다. 성경을 읽지 않은 사람은 의아해 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왜냐하면 꾸르안에서는 그때까지 요셉의 형제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가 없기에 그 동생이 누굴 의미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다윗이 논쟁이 붙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죄를 뉘우쳤다는 이야기 역시 성경에서 다윗이 자신의 휘하 장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탐하여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이야기를 모르면 그가 논쟁하는 두 사람 이야기를 듣고 무엇에 대해 잘못을 뉘우치는 줄 제대로 알 길이 없다. 셋째, 꾸르안 구약 이야기는 여러 번 반복된다. 같은 이야기가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거듭된다. 넷째, 한 이야기가 끝나면 다른 이야기로 전개되는 성경과는 달리 같은 내용의 이야기가 여러 곳에 반복되어 실려 있다.


이러한 특징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과 유대 역사를 틀로 삼아 꾸르안을 보면 꾸르안 구약 이야기의 핵심 주제는 알라께서 믿는 자를 구원하시고 믿고 따르지 않는 자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구약 이야기는 바로 이를 축으로 전개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창조, 인간의 타락, 용서: 알라께서는 6일만에 천지를 창조하신다. 최초의 인간 아담을 검은 진흙으로부터 만드신 후 인간을 경배하라는 말씀을 따르지 않은 이블리스를 추방하신다. 아담은 세상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천사보다 더 귀한 존재다. 아담은 그의 아내와 함께 사탄의 유혹에 빠져 죄를 범하고 천국에서 추방당하나 용서받고 알라의 인도하심을 따르면 구원받으리라는 말씀을 듣는다. 즉, 이슬람에서는 원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2. 카인과 아벨: 아담의 두 아들 중 하나가 형제를 살해하는 사건을 통해 알라께서는 살인금지를 명하시고 이후 사도를 보내었지만 이를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3. 노아의 홍수: 최초의 징벌 예언자. 노아는 사도로 사람들에게 보내어지지만 그 역시 사람들이 믿고 따르지 않았고, 결국 알라께서는 홍수로 믿지 않는 자를 처벌하시고 믿는 자를 구원하신다. 노아의 아들 역시 믿고 따르지 않다가 화를 당한다.


4. 롯과 소돔: 예언자 롯 역시 사람들이 믿고 따르지 않아 그 도시는 멸망한다.


5. 아브라함: 박해 이전의 삶부터. 아브라함은 불신자에서 믿는 자로 실존적 전환을 거친 후 믿지 않는 아버지와 왕과 사람들에게 알라를 믿고 따를 것으로 요구하다가 불 태워 죽임을 당할 뻔했다. 그러나 알라께서 그를 구하여 안전한 곳으로 피하게 하신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희생제로 바칠 정도로 훌륭한 믿음을 지닌 예언자였다. 그는 신앙의 선조로 이스마엘과 함께 카바 신전을 건축하고 신앙의 조상이 된다. 그는 유대인도, 그리스도인도, 다신교인도 아닌 하니프로 순수 유일신론자다. 인간 영혼에 깊이 자리잡은 알라에 대한 믿음과 함께 그분께 대한 진정한 복종의 전형을 보여준다.


6. 요셉: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라 불리는 요셉 이야기는 꾸르안 12장에 실려 있다. 요셉은 아름다움과 꿈 해석 능력을 선물로 받은 예언자요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인정받는 그는 그 멋진 용모 때문에 음식을 준비하던 여인들이 넋이 나갈 정도로 반해 자신의 손가락을 자른다. 그를 잃은 아버지 요셉은 눈이 멀었다가 그가 입던 옷 냄새를 맡고 시력을 되찾는다. 알라께서는 온갖 어려움에서도 그를 인도하시어, 결국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게 하신다. 요셉 역시 신실한 사람으로 여인의 간괴에 빠져 감옥에 갇혔지만 그곳에서도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알라를 믿으라고 전도한다. 자신을 곤경에 빠뜨린 형제들을 모두 용서한 요셉은 이집트인들에게 알라를 전하는 사람이지만 그가 죽은 후 사람들은 그를 잊는다.


7. 모세와 물의 심판: 알라를 대면하는 종교체험과 물로써 이집트의 불신자를 심판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파라오 앞에서 기적을 보이고, 마술사들과의 시합에서 승리를 거둔 그는 박해 받는 예언자로 믿는 이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다. 믿지 않는 자들은 물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모세가 이끌고 나온 백성 역시 알라의 말씀을 믿고 따르지 않아 벌을 받는다. 40년간 광야에서 헤맨 것은 바로 알라의 말씀에 불복하여 명령하신 땅을 정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8. 사울: 모세가 죽은 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언자를 향해 왕을 보내달라고 하고, 사울이 왕으로 내려졌다고 하자 그들은 그를 왕으로 섬길 수 없다고 오히려 반발한다. 결국 사울은 왕이 되었고 그의 지도하에 전쟁에 나가 골리앗군과 맞붙는다.


9. 다윗: 소수의 군대로 나간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고향에서 쫓아내고 아이들과 이별시킨 골리앗군과 맞서는데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다. 알라께서는 그에게 왕권과 지혜를 주시고 원하시는 대로 여러 가지를 가르치신다. 현명한 판관, 갑옷과 투구를 만드는 사람으로 묘사되는 그는 죄를 용서받는다. (38:21‐25).


10. 우주적 통치자 솔로몬: 자연과 영령의 세계를 지배한다. 동물의 말을 알고 동물들 역시 그의 결정 사항을 안다. 준마에 마음을 빼앗겨 알라를 잊고 지내자 알라께서 그의 권좌 위에 시체를 던져 놓아 회개하도록 하였다. 그는 사바의 여왕에게 이슬람을 믿으라 권하였고, 결국 사바의 여왕은 이슬람에 귀의한다.


11. 이스라엘의 종말: 두 번에 걸친 성전 파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는 네부갓네살과 로마에 의한 성전 파괴를 언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7:2‐8). 파괴, 구원, 파괴의 연속이다. 알라를 불신한다면 벌은 되풀이 된다.


12. 이 외에 요나 (Yuunus), 엘리야 (Ilyaas), 엘리샤 (al‐Yasa‘), 욥 (Ayyub) 등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한다.


꾸르안이 구약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알라께서 계속해서 사도를 보내셔서 인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불충한 자는 징벌하시고 따르는 자에게는 복락을 주신다는 것이다. 꾸르안은 시종일관 이러한 핵심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III. 차이가 생긴 이유

        지난 강의에서 이미 말했듯이 꾸르안이 꿈꾸는 이상적 사회는 유일신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그분께서 계시하신 유일 경전 아래 단합된 유일신 종교 공동체다. 구약 성경 이야기 역시 알라께서 내리신 계시다: “그분은 노아에게 내려진 종교를 너희를 위해서 확립하였나니 그분이 그대에게 계시한 것이니라. 또한 그분은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에게도 명령하여 그 종교에 충실하고 그안에서 분열하지 말라 하셨노라...(42:13)”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천상에서 내려온 계시를 유대인들이 제멋대로 왜곡했기에 꾸르안 이야기와 성경 이야기에 차이점이 생겼다. 유대인들은 알라와 그분이 보내신 사도들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알라께 감사하지 않으며 불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알라께서는 수차에 걸쳐 용서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경전을 숨기고 말씀을 왜곡하며 자의적으로 해석하였다. 바로 이점 때문에 꾸르안 구약 이야기와 구약성경 간에 다른 점이 발생하는 것이다.


실로 성서에서 확증한 말씀과 알라께서 계시한 진리를 감추는 자에게 알라의 저주와 저주할 힘을 가진 자들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 (2:159).


알라께서 성서에서 계시한 것을 감추고 하잘 것 없는 것을 얻고자 하는 자 그들은 그의 복중에 유황불을 삼키는 것과 같으며 부활의 날 알라께서는 그들에게 말하지도 않고 그들을 순화시켜주지도 않으시니 그들에겐 엄한 벌이 있을 뿐이라 (2:174).


그들 중에는 그들의 혀로 그 성서를 왜곡하여 그것이 성서의 일부라고 너희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무리가 있으니 그것은 성서의 일부가 아니라. 그들은 또 그것은 알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하나 그것은 알라로부터 온 것이 아니거늘 그들은 잘 알고 있으면서 알라에 대해 거짓말을 하더라 (3:78).


일러 가로되 모세가 인간을 위한 빛과 복음으로 가져온 성서는 누가 보냈느뇨. 너희는 그것을 너희가 원하는 대로 각각의 종이에 기록하여 보이며 한편으로는 많은 내용을 숨기더라 (6:91).


그들은 말씀을 위조하고 그들에게 계시된 진실의 말씀을 망각하고 있나니 너희는 그들 가운데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위조됨을 발견하리라 (5:13).


성서의 입루만 믿고 일부를 불신하는 자 그들을 위한 현세의 보상이 무엇이겠느뇨 (2:84)


따라서 무슬림들에게는 꾸르안이 옳을 수 밖에 없다. 꾸르안 구약 이야기는 역사서가 아니다. 신앙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신앙적 언표다. 따라서 그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계시가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IV. 진정 중요한 것: 올바른 믿음에 대한 이해


        한번 더 깊이 생각해보면 누구의 이야기가 더 옳으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실 꾸르안 구약이야기나 구약성경은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해도 모두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꾸르안 구약이야기의 본질은 꾸르안이 진정 가르치고 있는 신앙인의 자세에 있다. 이를 바탕으로 후대 무슬림들이 어떻게 이를 자신들의 신앙에서 가꾸어 왔는지 지켜 보는 것이 진정 중요하다. 꾸르안 구약 이야기의 중심은 유일신 알라께서 보내신 사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징벌이 내린다는 것이다. 꾸르안은 구약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예언자들을 무슬림으로 생각한다. 유일신께 복종하는 종교 이슬람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라를 믿고 우리에게 내려진 계시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과 이삭과 야곱과 그 자손들에게 내려진 율법을 믿으며 모세와 예수와 예언자들에게 내려진 율법을 믿으며 예언자들을 구별하지 아니하며 알라만을 믿는다 말하라. 이슬람외에 다른 종교를 추구하는 자 결코 수락되지 않을 것이니 내세에서 패망자 가운데 있게 되리라 (3:78~79/84~85).


곧 알라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진정한 신앙인인가. 꾸르안은 진정한 신자를 복종하고 (Islam), 믿고 (Iman), 알라를 경외하고 (Taqwa), 알라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Huda), 감사하는 (Shukr) 자로 표현한다.


믿는 자란 알라의 이름을 듣기만해도 그 마음에 전율을 느끼고 성전 읽는 것을 들으면 더 믿음이 깊어져 주를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며 예배 드리기를 다하고 우리들이 준 것을 아깝지 않게 베풀어 주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틀림없이 진실한 신자다. (8:2~4).


회개하는 사람들, 엎드려 예배를 보는 사람들, 선을 권하고 악을 금하는 사람들, 알라의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들, 이들 믿는 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라. (9:112/113).


자비로우신 분의 종이라는 것은 조용히 땅 위를 걷고 무지한 자들이 말을 걸어도 ‘평화가 있을지어다”라고 말하는 자. 주 앞에서 엎드리고 또는 선 채로 밤을 지새는 자. ‘주여 저희들에게서 지옥의 불을 덜어 주십시오. 그 벌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죄악의 장소요 사악함이 머무는 곳입니다. 사치스럽지도 인색하지도 않고, 중용을 지키는 자. 알라 외에 다른 신을 청하지 않는 자. 정당한 이유 없이 살생하지 않는 자. 간음하지 않는 자… 거짓 증언을 하지 않고 속된 말을 하는 사람 옆을 지날 때에도 품위를 지키는 자, 주의 계시로 가르침을 받을 때 귀머거리처럼 흘려 듣거나 맹인처럼 눈감지 모르는 채 하지 않는 자. 오 주여,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쁨을 주시고, 당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의 모범이 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자…(25:64~68/63~68, 72~74).


믿는 자들은 번성하나니, 그들은 겸허하게 예배드리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으며, 희사를 하고, 아내나 오른 손이 소유하고 있는 것 외에는 자신의 은밀한 곳을 지키며 … 맡은 것이나 약속을 지키며 성실히 예배에 참가한다. 이들이야말로 진정 낙원의 상속인으로 그곳에서 영원히 산다 (23:1~6, 8~11).


우리들의 인도가 너희들에 임한다면, 우리들의 인도를 받는 자는 그 누구도 길을 잃거나 불행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계시 (dhikr)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자는 곤궁한 생활이 있을 것이요 부활의 날에 장님으로 만들어 부르리라 (20:121~124/123~124)


더 나아가 믿는 자는 알라와 그분이 보내주신 사도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알라와 그 사도가 일을 결정할 때 남자건 여자건 스스로 선택을 하려는 자는 믿는 자가 아니다. 알라와 그 사도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분명 미로에 빠진 자이다 (33:36).


꾸르안의 구약 성경 이야기에서 우리가 바르게 이해해야 할 것은 바로 무슬림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다. 흔들리지 않고 알라에 대한 믿음을 간직한 자들. 이를 부정한 유대인들과 그들이 따르는 구약 성경은 그래서 옳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슬람이 딱딱한 법에 얽매여 진정한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오해다. 무슬림들이 추구하는 신앙인의 자세는 법만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영성가들은 이슬람의 세 층을 이슬람 (Islam), 이만 (Iman), 이흐산 (Ihsan)으로 표현했다. 이슬람이란 복종을 뜻하며 복종하는 사람이 무슬림이다. 법학은 이를 대표한다. 그러나 모든 무슬림이 신앙인은 아니다. 법을 잘 지킨다고 진정 무슬림은 아니기 때문이다. 외표적 행위보다 내면적 믿음, 즉 이만 (Iman)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믿는 자는 그래서 무으민 (Mu’min)이라 한다. 신학과 철학은 이러한 내적 의미를 대표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진정 이슬람의 핵심은 한층 더 깊은 이흐산 (Ihsan)에 있다. 영적인 아름다움이다. 이를 구현하는 자가 무흐신 (Muhsin)이다. 알라와의 합일을 꿈꾸는 수피들이 바로 진정 이슬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러한 깊은 내면을 지닌 신앙인이야 말로 꾸르안의 구약 이야기가 요구하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다. 알라의 말씀을 따르고, 믿고 경외하며, 그분께 감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 구약성경과 세세하게는 다르지만 무슬림들이 옳다고 믿는 꾸르안의 구약이야기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제6강  꾸르안 속의 예수

: 가장 존경받는 예언자여!


I.


        꾸르안에서 알라께서는 인류 역사를 통해 각 공동체에 예언자를 보내 말씀을 전하셨고, 이를 따르는 사람은 구원하시고 불충하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징벌하신다. 노아의 홍수, 롯과 소돔, 모세의 이집트 탈출 등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꾸르안의 예언자 전통은 구약 성경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약 성경에까지 이어진다. 바로 예수가 그 예언자다. 이슬람 전통에서 예수는 진정 가장 존경 받는 예언자다. 그리스도교인들이 흔히 묵과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예수를 존경하지 않는 무슬림은 무슬림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수에 대한 무슬림들의 사랑은 깊은 데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인들은 이를 잘 모른다. 실로 무함마드에 비해 꾸르안의 예수는 실로 대단한 기적을 행하는 예언자다. 반면 무함마드는 기적을 행하지 못한 예언자다. 그의 기적은 단 한 가지, 아랍어로 된 꾸르안을 계시 받은 것이다. 탄생부터 죽음까지 알라의 축복과 기적이 가득한 예언자가 예수다. 사도신경 구문과 비교해서 이야기 하자면 꾸르안의 예수는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 없이 바로 하늘로 들어 올려진 분이시다. 이번 강의에서는 꾸르안의 예수를 그리스도교의 예수와 비교해서 어떻게 같고 다른지 살펴 보고자 한다.


II.


        꾸르안은 예수 이야기에 앞서 먼저 그의 모친 마리아에 대해 알려준다. 신약 성경에는 예수의 족보가 두 개 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하는 루가 복음서(3:23~38)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는 마태오 복음서(1:1~17)가 그 것이다. 둘 다 예수의 아버지 요셉 집안 족보다. 이에 반해 꾸르안은 아담으로부터 시작하는 마리아의 족보를 이야기한다: “알라께서는 아담과 노아와 이므란의 가족을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선택하셨더라.”(3:33) 꾸르안은 요셉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마리아의 부친은 이므란으로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아버지 암람이다. 구약에서 그는 모세, 아론 두 아들과 미리암이라는 딸을 둔다. 꾸르안에서 마리아는 아론의 누이로 나온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만 할까? 먼저 마리아의 부친 이므란을 구약의 Amram과 관계없는 인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론의 누이라는 말이 시사하듯 이므란과 암람을 동일 인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랍어에서 미리암과 마리아는 모두 마리아(Maryam)으로 표기된다. 그렇다면 꾸르안이 구약의 미리암과 신약의 마르얌을 혼동한 것일까? 이는 아마도 예표론(豫表論)적 해석을 즐겨 썼던 그리스도교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초기 그리스도교부들은 모세 출애굽 사건을 예수와 연관시켜 이해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체험한, 불붙었지만 타서 사라지지 않은 떨기가 바로 다름 아닌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구한 모세는 인간을 구원한 예수로, 바다가 갈라지는 것은 세례요, 하늘에서 내려 온 만나는 성체성사로 해석하였다. 이러한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의 예표론적 해석의 영향으로 인해 미리암과 마르얌이 동일 인물로 수용된 듯 하다.


마리아의 모친은 정확하게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이므란의 아내로만 등장한다. 여자 이름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 꾸르안의 특징이다. 이브는 아담의 아내,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로만 나오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들과는 달리 이름이 정확히 나온다. 이것으로만 보아서도 마리아가 얼마나 특별한 위치를 꾸르안에서 차지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슬람 전통에서 마리아의 족보는 크게 두 가지로 세세히 나온다. 첫째, 마리아의 어머니 이름은 성경에서와 같이 한나(Hanna)다. 그녀의 여동생이 엘리사벳(Ishb-‘). 엘리자벳은 자카리야(Zakarīyā’ 신약의 즈가리아)와 결혼해서 요한을 낳는다. 곧 마리아와 요한은 외사촌 형제다. 그렇다면 요한은 예수의 외삼촌이 된다. 둘째,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여동생이다. 그렇다면 요한은 예수의 사촌형이 되는 셈이다.


아이가 없었던 이므란의 아내는 임신이 되면 태내에 있는 아이를 알라께 바치겠다고 한다. 딸아이를 낳자 마리아라고 이름 짓고 알라께 바친다. 알라께서는 그녀가 흠 없이 아름답게 성장하게 하시고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자카리야로 하여금 그녀를 보호하게 하신다. 자카리아가 그녀가 머물던 성소(mihrāb)에 들어갈 때 마다 알라께서 내려주신 음식이 항상 있었다(3:35~37).


마리아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야고보 원복음서(Protevangelium Jacobi)와 유사하다. 150년경 쓰여 진 것으로 알려진 이 복음서는 마리아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동방교회의 유년시절 예수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여기에서 마리아의 아버지는 요아킴으로 나오고, 어머니 한나는 아이를 낳으면 성전에 바치겠다고 약속한다. 마리아는 모이를 먹고 사는 비둘기처럼 주님의 성전에 머물고 천사로부터 음식을 받는다. 야고보 원복음서에서 자카리아는 꾸르안과는 달리 마리아가 12살 때 처음 등장한다. 꾸르안에서는 마리아를 돌 볼 사람을 정하기 위해 점시(占矢)를 던진다. 자카리아는 그의 보호자가 된다. 야고보 원복음서에서는 마리아를 돌보아 줄 사람을 정하기 위해 점을 치는데, 아이가 딸린 홀아비 요셉으로 정해진다.


아이가 없었던 자카리야는 하느님께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기도를 하자 예언자가 될 요한(Yahyā)을 주시겠다는 응답을 받고 그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하자 3일간 말을 못하는 증거가 내린다(3:38~41). 자카리아의 아들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3:39), 그 이름은 그 누구에게도 주어 진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암시된다(19:7). 그는 성전을 지키도록 명 받고, 알라로부터 자비, 청정한 마음을 받은 경건한 사람으로 효자다. 꾸르안은 그를 이렇게 축복한다: “그가 탄생한 날과 그가 임종한 날과 그가 부활하는 날에 그에게 평화가 있을 것이다(19:12~15).”


요한 잉태 소식에 이어 바로 천사들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리아여, 알라께서 너를 선택하사 청결케 했으며 너를 모든 여성들 위에 두셨노라(3:42).” 마리아가 가족을 떠나 홀로 동쪽 조용한 곳 장막 뒤에 있을 때 알라는 성인의 모습을 한 성령을 보내신다. 성령은 두려워하는 마리아에게 “실로 나는 당신 주님의 사자로서 성스러운 아들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왔노라”고 말하자 마리아는 “어는 남자도 저를 접촉하지 아니 했고 또한 부정을 저지르지도 아니했는데 어떻게 제가 아들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한다. 이에 성령은 알라께 이런 일은 쉬우며, 사람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고 자비의 표징으로 알라께서 그를 삼으시고자 세상에 나오게 하신다고 일러준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한다(19:16~20). 실로 꾸르안은 마리아가 처녀임을 누차 강조한다. 마리아는 순결을 지켰고 알라께서 그녀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잉태를 한 것이다(66:12).


꾸르안 3:42~46에 따르면 잉태 소식을 알려 준 이는 성령이 아니라 천사들이다. 우선 천사들은 “마리아여 알라께서 너를 선택하사 청결케 했으며 너를 모든 여성들 위에 두셨노라(3:42)”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은 마리아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준다: “마리아여, 알라께서 너에게 말씀으로 복음을 주시니 마리아의 아들로서 그의 이름은 메시아 예수이니라. 그는 현세와 내세에서 훌륭한 주인이시요 알라 가까이 있는 자 가운데 한 분이니라(3:45).” 이는 루가 1:31~38와 상당히 유사하다. 그런데 꾸르안에서는 알라의 말씀을 마리아에게 수여하신다고 하는데, 이는 곧 알라의 말씀으로 예수가 마리아의 자궁에서 만들어 졌음을 말하는 것으로 로고스가 선재하셨다는 요한서의 로고스 신학을 철저히 거부한다. 또한 마리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은 엄밀히 말해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마리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알라의 사도로, 알라께서 마리아에게 부여하신 말씀이요,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성령이다(4:171).


마리아는 예수 잉태 후 먼 곳으로 간다. 진통이 너무 심하여 대추야자 나무 줄기에 기대어 고통을 호소한다: “이전에 죽어버렸다면 조용요히 잊어버릴 수 있는 일인데.” 그러자 알라께서 발 밑에 만들어주신 흐르는 냇물과 대추야자나무 열매를 먹고 마셔 마음을 가라앉히고, 누구와도 말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듣는다(19:22~26). 마침내 아이를 데리고 사람들에게 나타나자 모두들 놀라며 그녀를 비난한다. 이에 마리아가 요람 안에 있는 갓난 아이 예수를 가리키자 예수가 어머니 마리아를 변호한다(19:26~35): “나는 알라의 종으로 그분께서 내게 성서를 주시고 나를 예언자로 택하셨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던 저를 축복 받은 자로 하셨고 제가 살아있는 한 예배를 드리고 이슬람세를 바치라 저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저의 모친에게 효도하라 하셨고 저로 하여금 거만하지 아니하고 불행함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제가 탄생한 날과 제가 임종하는 날과 제가 살아서 부활하는 날에 저에게 평화가 있도록 하셨습니다(19:30~33).” 이슬람 전통에서 마리아와 예수는 실로 정결한 사람이다. 이슬람에는 원죄 개념이 없으나 아이가 태어날 때 사탄이 만져서 운다고 믿는다. 그러나 딱 두 사람 예외가 있다. 마리아와 예수다.


III.


예수는 알라의 증거를 가지고 온 예언자다. 그는 무함마드와는 달리 많은 기적을 행하는 예언자다. 물론 이 기적들은 알라의 허락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먼저 그는 갓난아기일 때 어머니 마리아를 변호한다(3:46, 19:30). 진흙으로 새를 만들어 날리고(3:43, 5:110), 맹인과 나병 환자를 치료하며 (5:110), 죽은 이를 소생시킨다(3:43, 5:110). 또 그는 제자들의 요구에 따라 알라께 간청, 하늘에서 식탁이 내려와 제자들이 이를 먹고 예수 가르침의 증인이 된다(5:112~115).


알라께서는 예수에게 경전, 지혜, 토라, 복음서를 가르치셨고, 그는 그 이전에 내려 온 토라를 증거하고, 전에 사람들에게 금지 되었던 일부를 금지되었던 것을 허락한다.


“내 이전에 율법이 있었음을 확증하고 너희에게 금지되었던 몇 가지를 허용하기 위해 내가 너희에게 왔으며 주님으로부터 예증을 너희에게 가져왔으니 알라를 두려워하고 나에게 순종할 것이라(3:50).”


“알라께서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로 하여금 그 이전에 계시된 토라를 확증하면서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했노라. 또한 알라께서는 신약을 계시하여 그 이전에 계시된 토라를 확증하면서 그 안에 복음과 광명을 주었으니 이는 복음이요 정의에 사는 자들의 교훈이라(5:46).”


알라의 사도이자 예언자인 예수가 가르친 것은 바로 다름 아닌 태초부터 존재한 원유일신교, 즉 노아, 아브라함, 모세에 내렸던 그 종교다. 이 가르침에 따라 흔들리지 말고 그 믿음에 헌신하며 분열하지 말아라 했던 그 종교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은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알라께서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에게 예증을 주어 그를 성령으로 강하게 하였노라. 알라의 뜻이 있었다면 그들에게 말씀이 그들에게 말씀이 있은 후 다음 세대들은 서로 싸우지 아니했으리라. 그런데 그들은 달리 했으니 그들 가운데는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한 자가 있었노라. 또한 알라의 뜻이 있었다면 그들은 서로 싸우지 아니했으리라. 그러나 알라께서는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주관하시니라(2:253).”


기적을 행하는 예언자 예수, 그분의 말씀을 사람들이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고 꾸르안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알라의 복음을 전하는 예수. 꾸르안에는 신약 성서처럼 구체적으로 예수의 언행이 나오지 않는다. 개괄적으로 알라의 복음을 전했다는 말씀이 수차 강조될 뿐이다. 신약의 많은 비유들 역시 나오지 않는다. 다만 마태오서의 씨앗의 비유(13:1~9), 루가서의 부자와 라자로 비유(16:19~31), 마태오복음서의 열 처녀의 비유 (25:1~13)와 유사한 형태의 이야기가 꾸르안에 나온다. 구체적 관련성 여부는 추측할 뿐이다.


꾸르안에서 예수는 십자가형에 처해 죽었다고 보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메시아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다고 주장하나 꾸르안은 이는 확실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는 자들의 억측이라고 부정하면서 그들이 십자가형에 처한 것은 예수가 아니라 그와 유사하게 보이는 자였을 뿐이고(4:156~157), 알라께서는 예수를 당신께 끌어 올리셨다고 한다. 알라께서는 불신자들의 계책보다 더 훌륭하게 계획하시기 때문이다(3:54). 이러한 십자가형 부활은 영지주의자나 가현설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적으로부터 구원하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꾸르안 19장 34절의 예수가 죽는 날이라는 표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세상 종말에 예수가 다시 세상에 와서 자연사를 하고 부활한다라고 봐야 할까? 무슬림 전승은 예수가 세상에 다시 와서 적그리스도를 무찌르고 자신의 임무를 다 한 후 자연사 하고 다시 최후심판 부활일에 부활한다고 본다. 예수는 최후 심판일의 증거다(43:61). 무슬림 전승에 따르면 예수는 알라의 최후의 심판의 조력자가 아니다. 그는 자신과 마리아를 신으로 믿은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불리한 증거가 된다. 그러나 수피 영성의 대가 이븐 아라비는 예수를 최후 심판일의 심판자로 보았다.


앞에서 살펴 보았듯 꾸르안의 예수는 무함마드를 초월하는 기적의 힘을 지닌 예언자다. 그러나 꾸르안은 그를 신적인 존재로 결코 간주하지 않는다. 그의 기적은 그가 행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알라께서 허락하셔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알라는 나의 주님이요 너희들의 주님. 그분을 숭배하라. 이는 올바른 길이다(3:51)”라고 말하는 그는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꾸르안은 알라 외에 그 어떠한 신이나 신적인 요소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라는 꾸르안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희의 주님이거늘 나만을 경배하라(21:92, 23:52).”


        이러한 연장 선상에서 꾸르안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를 부정한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삼위일체가 아니라 삼신론을 부정한다. 즉, 알라, 예수, 마리아가 삼신이다. 꾸르안에서 알라는 예수에게 묻는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야, 네가 백성에게 말하여 알라를 제외하고 나 예수와 나의 어머니를 경배하였느뇨?” 이에 대해 예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영광을 받으소서,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아니했으며 그렇게 말할 권리도 없나이다. 제가 그렇게 말하였다면 당신께서 알고 계실 것입니다. 당신은 저의 심중을 아시나 저는 당신의 심중을 모르나니 당신은 숨겨진 것도 아시는 분이십니다(5:116).” 꾸르안은 마리아와 예수를 숭배하는 행위에 대해 엄중 경고한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음식을 먹은 인간일 뿐이니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비록 초기 공의회에서 확정된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는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꾸르안의 신성 부정이 유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삼위일체든, 삼신론이든 유일신앙을 훼손하는 그 어떠한 것도 꾸르안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를 주님으로 부르며 신성화하는 그리스도교인들을 이슬람은 결코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이 같은 유일신 신앙을 견지하면서도 합치할 수 없는 근본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IV.


        무슬림들은 꾸르안을 통해 예수를 이해한다. 성경과 차이가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신약의 내용은 후에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약을 들이대면서 꾸르안의 잘못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꾸르안을 통해 무슬림들은 예수를 예언자로 존경하지만 신적인 권위나 신성을 부여하는 것은 알라께 대한 큰 죄로 간주한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무슬림들에게 말한다는 것은 유일신에 대한 크나 큰 불충죄를 짓는 것이다. 끝으로 꾸르안에서 예수는 자신 다음에 아흐마드라는 이름을 지닌 사도가 올 것을 예고한다(61:6). 이슬람 전통에서 아흐마드는 무함마드로 해석한다. 곧 예수가 무함마드의 출현을 앞서 증거한 것이다.


꾸르안에 나타난 그를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알라의 허락으로 기적을 행하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으며, 십자가형에 처하지 않고 하늘로 들어 올려졌으며, 최후의 심판일의 증거요, 이전 가르침을 확증하고 복음을 가지고 왔고 후에 올 사도 아흐마드, 곧 무함마드를 예고하는 인간 예언자다. 무슬림들은 바로 이러한 꾸르안의 예언자 예수를 존경하고 따른다.



제7강  시아 전통과 그리스도교

: 이맘, 마흐디, 그리고 그리스도교


I. 순니와 시아



       이슬람 전통에는 크게 순니와 시아라는 두 분파가 존재한다. 순니는 전통과 합의를 지키는 사람들 (ahl al-sunnah wa’l jamā‘ah)이라는 말의 준말로 현재 세계 무슬림 인구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전무슬림 인구 중 10% 정도의 소수가 따르는 쉬아는 무함마드의 사촌 동생이자 사위인 알리를 따르는 그룹 (Shī‘at ‘Alī)이라는 뜻의 준말이다.


시아는 크게 5대, 7대, 12대 이맘파로 나뉜다. 이들은 모두 알리를 따르는 그룹이지만 후계자를 누구로 하느냐에 따라 분파가 발생하였다. 이들은 모두 4대 이맘까지는 서로 차이가 없다. 다만 5대 이맘파는 7, 12대와 다른 이맘을 5대 이맘으로 추대하고, 7대 이맘파는 12대 이맘파와 7번째 이맘이 다르다. 현재 시아 국가를 이룬 그룹은 이란의 12대 이맘파다. 5대 이맘파는 예멘에 주로 거주하고, 7대 이맘파는 인도 및 세계 각지에 퍼져있다. 이 글에서는 12대 이맘파 시아를 다룰 것이다.


이슬람이라는 큰 틀에서 순니와 시아는 기본적으로 공통의 신앙을 공유한다. 유일신 알라에 대한 신앙, 최후의 예언자, 꾸르안, 부활과 최후의 심판, 근본적인 의무 (예배, 단식, 순례, 희사, 성전 등)에 대한 개념은 어느 하나 서로 다른 점이 없다. 비록 소소한 의례의 차이는 있지만 순니와 시아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 역시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다르기에 이름이 다른 두 그룹이 존재한단 말인가?


순니와 시아는 모두 예언자 전통이 무함마드에서 마감되었다고 믿는다. 순니와 시아의 분파는 오늘날의 말로 하자면 632년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누가 공동체의 지도자가 될 것이냐라는 정치적 이견이 발단이 되어 발생하였다. 그러나 이를 단지 정치적으로만 해석한다면 핵심에서 크게 어긋난다. 보다 더 근본적으로 이 두 분파는 무함마드의 후계자의 직능에 대해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다. 순니는 무함마드를 잇는 지도자를 단순히 무함마드의 칼리파, 즉 대리인으로 본다. 순니의 칼리파는 무함마드 이후 1924년 터키가 칼리파제를 폐기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칼리파는 초기 4명의 칼리파, 즉 정통 칼리파다. 이는 아부 바크르(재위 632~634), 우마르(재위 634~644), 우스만(재위 644~656), 알리(재위 656~661)를 말한다.


반면, 시아는 순니의 4대 정통 칼리파 중 알리만을 인정하고 그의 후손을 이맘으로 따른다. 이들은 밀의적(esoteric) 지식의 소유자로 교의를 해석하는 최고권위자다. 순니의 칼리파가 정치적이라면, 시아의 이맘은 정치적이며, 신학적인 힘을 동시에 지닌다. 따라서 순니와 시아의 분파는 단순한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인 면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순니와 시아의 분파를 중세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분리에 비교해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정통에 대한 항거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톨릭과 정교회의 분리와도 다르다. 다른 언어문화권으로 인한 갈등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페르시아어를 쓰는 이란이 시아 국가이기에 시아 이슬람을 아랍 이슬람에 대한 페르시아인들의 민족운동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알리는 아랍어를 쓰는 아랍인이었고, 시아 운동은 아랍인들이 시작했기 때문이다.


II. 카르발라와 십자가


순니와 시아의 분파는 단순히 정치 신학적 논쟁이 아니라 구체적 역사적 사건 속에서 잉태되었다. 바로 카르발라의 비극이 그것이다. 3대 칼리파 우스만을 그에게 적의를 품은 일단의 무슬림들이 살해한 후, 4대 칼리파로 알리가 선출된다. 그러나 그는 우스만 살해 사건에 대한 조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 우스만 친족과 알리 반대파는 알리를 불신한다. 불안을 느낀 알리는 수도를 메디나에서 쿠파로 옮기고 정권의 안정을 꾀하였지만 결국 우스만 친족이자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의 도전을 받게 된다. 승리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알라의 뜻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자는 상대방의 중재안을 받아들였고, 이에 불만을 품은 알리측 진영에서 이탈자가 발생한다. 결국 알리는 이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무아위야는 손쉽게 무주공산 칼리파직을 차지, 우마야 왕조를 개창한다.


알리에게는 하산과 후세인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하산은 우마야 왕조의 회유에 따라 알리의 칼리파직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조용히 살다가 메디나에서 죽는다. 시아들은 그가 독살되었다고 믿는다. 둘째 아들 후세인은 무아위야의 아들 야지드에 대한 충성 맹세를 거절하고 그를 지도자로 선포한 시아들의 염원에 따라 식솔들과 따른 이들을 이끌고 추종자들의 근거지 쿠파로 떠난다. 그러나 쿠파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카르발라에서 우마야 왕조 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다. 680년 무하르람달 10일의 일이다. 이날은 시아들에게 시아로서 영원히 지속하는 정체성을 심어 준 날이다. 오늘날에도 후세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아들의 행렬은 계속되고, 이를 통해 그들은 끊임없이 시아됨을 상기한다. 실로 이 날은 현대에 들어서도 큰 힘을 발하였다. 이란 혁명은 바로 79년 무하르람달 10일에 시작되었다. 이날 이란인들은 당시 폭압정권의 왕 샤 레자를 후세인을 죽인 야지드로 규정하고 대규모 시위를 시작하였고 결국 왕정이 붕괴되었다.


카르발라에서 후세인이 살해당한 것은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같은 의미다. 그리스도인들처럼 시아들은 카르발라의 고통과 슬픔을 재현한다. 자신들의 등을 쇠사슬로 때리면서 그 고통을 느낀다. 지척에 두고도 죽어가는 후세인에게 도움의 손길 한번 제대로 주지 못했던 시아들의 비통함과 죄책감이 천년 넘게 지속되는 것이다. 또 예배 시 알라께 절할 때마다 시아들은 그들의 이마를 카르발라 흙으로 만든 조그만 판 위에 댄다. 그리스도인들의 십자가 상징과 같은 의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부활이라는 영광이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애통함만이 남아 있다. 한마디로 부활 없는 십자가 사건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III. 이맘과 교황


알라께서는 가장 먼저 무함마드 빛을 만드셨다. 이 빛으로부터 세상 만물이 창조된다. 그런데 이 무함마드 빛은 아담 이후 모든 예언자에 내재하는 것으로 모든 예언자적 지식의 원천이다. 예언자의 시대가 무함마드로 끝이 났지만 이 빛은 이맘들에게 존재한다. 모든 오류로부터 이맘을 보호하는 이 빛은 무함마드 가계에서 알리와 무하마드의 딸 파티마 사이에서 낳은 후손들에 의해 이어지는데,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전해진다. 이는 곧 이맘은 무함마드 가계 혈통의 계승자를 넘어서 영적인 계승자임을 나타낸다. 1대 이맘은 알리, 2대 이맘은 그의 큰 아들 하산, 3대는 둘째 아들 후세인, 4대부터는 후세인의 후손들이다.


시아의 이맘은 무함마드 계시의 내적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해석해내는 영적인 힘을 지닌 존재로 무함마드 집안 사람들이 최적임자다. 순니들 역시 무함마드 집안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을 지니고 있지만 시아처럼 영적인 권위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시아 이맘은 꾸르안 계시와 예언자가 가르치신 것을 설명하고 법을 해석하며, 무슬림들의 영적인 지도자 역할을 한다. 이는 곧 상황이 허락한다면 무슬림 공동체를 다스릴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은 알라의 증거(Hujjat Allah)로 알라로부터 신적인 권위를 부여받은 존재다. 그들의 말은 알라의 말이요, 그들의 명령은 알라의 명령이다. 그들의 판단에는 잘못이란 없다. 따라서 믿는 자들은 그에게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 순니의 칼리파는 법의 수호자이지만 이맘은 법을 해석하는 스승이다.


시아의 이맘은 로마 가톨릭 교황과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무오류성이다. 교황처럼 이맘의 무오류성은 절대적이다. 오류가 없기에 그의 가르침은 믿는 이들에게 절대성을 지닌다. 또한 이맘은 항상 존재한다. 가톨릭 전통이 교황직을 비워두지 않는 것처럼, 시아 이맘 역시 그러하다. 다만 역사적으로 시아 이맘은 12대 이맘이 마지막 이맘이다. 그렇지만 그는 현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죽지 않고 숨어 있고, 세상 종말에 나타날 것이다.


로마 교황의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가톨릭 전통은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보고, 교황의 권위를 여기에서 이끌어 낸다. 예수의 가르침을 가장 잘 계승한 베드로로부터 교황직의 성스러움이 보장된다. 이맘의 경우에는 무하마드의 가르침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배운 알리로부터 이맘의 권위가 나오고 그 영적인 힘이 그의 후손을 통해 이어진다. 교황과 다른 점은 이들 이맘은 결혼을 통해 후손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황처럼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혈통을 통해 계승된다는 점이 다르다.


IV. 이맘과 가톨릭 성인 숭배


카르발라 기념일 다음으로 시아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맘 성묘 순례다. 메카 순례처럼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인 경건한 행동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알리가 묻혀 있는 이라크의 나자프, 후세인의 카르발라 등 이맘들의 성묘뿐 아니라 이맘 가족들이 묻힌 곳 역시 순례의 대상이다. 물론 성묘 숭배는 시아들에게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순니 수피들 성묘 순례를 한다. 차이점은 시아들이 예언자 가족, 즉 이맘과 관계된 사람들에게만 한다면, 수피들은 영적인 성인들에게 한다는 점이다. 순례를 통해 그들은 알라의 자비와 축복을 구한다. 이맘들은 순수한 이들이기에 알라와 인간의 중재자 역할을 한다. 12대 이맘파에서는 12명의 이맘과 무함마드, 그리고 그의 딸 파티마를 포함 모두 14명을 가장 깨끗한 이로 숭앙하며 이들이 최후의 심판일에 믿는 이들의 죄를 위해 용서를 빌어 주리라 믿는다. 가톨릭 전통의 성인 숭배와 상당히 유사한 모습이다. 다만 가톨릭처럼 성인으로 인증 받는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영적인 지도자로서 신앙인들의 마음에 종교적 위안을 준다는 점에서 두 전통의 성인 숭배는 근본적으로 같다고 말할 수 있다.


V. 마흐디와 메시아


12대 이맘파들은 12번째 이맘이 죽지 않고 어디엔가 살아 있으며 그가 세상 종말 전에 불의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내려와 정의와 평화를 확립하리라 믿는다. 12번째 이맘의 이름은 무함마드 문타자르(Muhammad Muntazar), 즉 기다리던 무함마드란 뜻이다. 여기서 무함마드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아니다. 12대 이맘의 이름이 무함마드였을 뿐이다.


873년 11번째 이맘 하사눌 아스카리는 알려진 아들을 남기지 않고 죽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숨겨진 아들 무함마드가 당시 순니 정권인 압바스 왕조의 박해를 피해 숨어있다고 믿었다. 그는 숨어서 그의 와킬(wakil), 즉 대리자들에게 영적인 교통을 통해 시아들을 이끌었다. 이때를 소은닉 시기라 부른다. 와킬들은 죽을 때 다음 후계자를 지정해 숨은 이맘과 영적인 접촉을 하였는데 940년 마지막 와킬이 후계자를 지명함 없이 죽자 이제 이맘은 대은닉 시기로 들어간다. 이제 이맘과 세상의 시아들이 더 이상 접촉할 길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시아들은 숨은 이맘이 마흐디로 세상 종말에 올 것이라고 믿는다. 마흐디란 인도받는 자라는 뜻이다.


        순니 전통 역시 마흐디에 대한 믿음이 있다. 신학으로 성립된 것은 아니라 일반 대중들의 믿음이다. 이 마흐디는 예언자 집안 사람이긴 하나 시아들이 말하는 12대 이맘이 아니다. 그는 신앙을 곧게 하고 정의를 세울 것이다. 그에 이어서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 예수는 마흐디 이후에 재림하여 적그리스도를 죽이거나 또는 그와 함께 재림하여 마흐디가 적그리스도를 죽이는 것을 돕는다. 하디스에 따르면 예수는 이맘 뒤에서 기도하고 그리스도인들 역시 예수를 따라 이슬람을 따른다.


        마흐디는 불의와 죄로 가득 찬 세상을 정리하는 이슬람 종말론의 핵심 인물로 때가되면 천년왕국을 세우러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물론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마흐디에는 로고스로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죽고 부활하여 승천한 예수처럼 신성이나 죽음 내지 부활의 요소는 전혀 없다. 신성이 결여된 메시아로 보면 마흐디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현실 세계의 박해와 고난이 크면 클수록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과 관심은 상대적으로 증가해가는 법인데, 시아들은 실로 역사 속에서 순니들에게 갖은 고난을 당했다. 시아의 역사는 고난과 박해의 역사다. 특히 이맘들은 순니 정권으로부터 끊임없는 견제와 핍박을 당했다. 그렇기에 시아에서는 고통을 내재화하는 힘과 강인함이 순니들보다 강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흐디 사상은 순니들의 그것보다 더 강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죄 없고 흠 없는 12대 이맘. 하느님이신 예수처럼 하늘에 있지 않고 세상 어딘가에 숨어 있는 그는 시아들에게 기나긴 불의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종말이 오기 전에 나타나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세울 메시아다.


        이란 혁명 후 일각에서는 호메이니를 12대 이맘의 현현으로 부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호메이니가 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회 변혁기에 정의를 세울 지도자를 갈구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나 할까. 시아의 마흐디 사상은 오늘날에 단순히 이론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굳은 믿음의 대상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메시아처럼 말이다.



제8강  무엇이 잘못 되었나:

딤미, 십자군, 그리고 쌍둥이빌딩



I.


2001년 9월 11일 쌍둥이 빌딩 폭파 참사 이후 반 이슬람 기운이 지구촌 도처에 퍼져 가고 있다. 중세 이래 서구 그리스도교 세계가 전통적으로 이슬람에 덧칠해 온 호전적 무슬림 이미지가 9.11 이래 이제는 완전히 고착화되어 가는 느낌이 들 정도다. 설상가상, 이라크에서 발생한 한국인 살해 사건으로 인해 그 동안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했던 이슬람과 서방세계의 갈등이 우리 피부에 깊게 와 닿고 있다. 종교적 광신에 이성을 잃은 테러리스트 무슬림이라는 이미지가 이미 우리들 머릿속에 한층 더 두텁게 각인되고 있다. 비무슬림들이 전세계 모든 무슬림들을 과격분자로 오해하는 현실. 일반화의 오류를 지적해야 함이 당연하다. 전 무슬림들이 과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계 곳곳에 지금 이 순간에도 적지 않은 수의 무슬림들이 불의와 부정함이 넘치는 현실에 대해 언제라도 온몸을 던져 반응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언론매체에서 흔히 말하는 서구 식민주의, 패권주의에 항거하는 몸짓으로 간단히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이슬람이 근원적으로 내재된 근본주의적 내지 광신주의적 요소의 발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진지하다. 왜 그럴까. 무엇이 무슬림들로 하여금 오늘날의 현실을 이토록 심각하게 느끼게 하는 것일까. 무슬림들은 도대체 무엇이 잘 못 되었다고 느끼는 것일까.

II.


7세기 무함마드 종교 체험이래 이슬람 세계는 자신감 넘치고 그 무엇도 누구도 두려울 것 없는 문명을 이루어 냈다. 그리스, 페르시아 선진 문명과 문화를 흡수함에 주저하지 않았고, 이를 하디스를 통해 이슬람화 하였다. 찬란한 문화, 인문과 과학의 발전은 눈부셨고 모든 분야에서 이슬람의 위세는 당당했으며 무슬림들은 자신감이 넘쳤다. 실로 알라는 언제나 무슬림 편에 계신다는 확고한 믿음이 흔들릴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확신과 자신감에서 타 종교인들에 대한 관용의 폭은 그리스도교 세계의 그것보다 훨씬 컸고, 다시 이러한 포용성이 문명을 발전시키는 선(善) 순환을 이루었다. 그리스도교인과 유대인들은 딤미(dhimmi)로 보호받는 2등 시민이었다. 이들은 무슬림 여성과는 결혼하지 못하였고, 종교건물을 증축하거나 보수하지도 못했으며, 무슬림들에게 존경심을 표해야 했지만, 선교활동을 하거나 이슬람을 비방하는 중죄를 짓기 전에는 박해를 받지 않고 종교활동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절대적인 자유는 아니지만, 당시 그리스도교 세계에 살던 비그리스도교인들에 비해 훨씬 더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유대교 대학자 마이모니데스(Moses ben Maimonides, 1135~1204) 역시 무슬림들이 지배하던 스페인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세계에 살았더라면 오늘날 무명인으로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역사적으로 이슬람권에 사는 비무슬림들은 그리스도교 세계에서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학문에 몰입하며 살 수 있었다.


이슬람 문명은 중세 선진문명이었다. 중세 최고의 도시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바그다드였다. 시실리의 경우 무슬림 통치가 끝난 후에도 그리스도 정복자들이 아랍어와 이슬람 문명을 라틴보다 더 우대한 사실에서 볼 수 있듯 이슬람 문명은 당시 선진 문명으로 우대 받았다. 실로 무슬림들은 앞선 그리스 의학, 과학, 철학을 계승 발전시켜 이를 중세 유럽 그리스도교 세계에 전해 주었다. 서구의 대학 역시 이슬람의 법학 교육 기관인 마드라사(madrasa)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오늘날 서구문명의 개화에 결과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이를 두고 학자들은 이슬람 문명을 중간자 문명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서구가 잊고 지낸 그리스 문명을 전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였다는 뜻이다.


이렇게 찬란했던 과거를 지닌 무슬림들은 오늘날 상대적으로 초라하기 그지없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자고 일어나보니 이제 세상은 무슬림의 것이 아니라 과거 이슬람 세계에서 2등 시민으로 무슬림들의 보호 하에 살아가던 그리스도인들이 호령하는 무대가 되어버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략 이후 이슬람 세계는 서구 열강의 각축장이 된 이래 사실상 오늘날까지도 서구의 영향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더욱이 그리스도교인들과 함께 2등 시민으로 보호받고 살았던 유대인들에게 2차례 전쟁에서 참패를 당하자 무슬림들은 절망하였다. 현실이 어두우면 화려한 과거는 혼돈을 가져다 주는 법. 이제 무슬림들은 과거의 영화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상실감을 느끼고 열등감에 빠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 무슬림이라는 정체성 위기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이슬람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라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부상하는 것이다.


서구의 도전 이전부터 이슬람 세계에는 아흐마드 이븐 한발, 이븐타이미야와 같은 정화운동가가 존재하였다. 18세기 오늘날 사우디 왕가의 근본 이념이 된 와하비 운동 역시 내적 종교 정화 운동의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19세기부터는 내적인 논리에 따른 정화가 아니라 본격적인 서구의 도전에 따른 반향으로 이슬람 개혁과 재생운동이 발생한다. 그런데 내적 반성이든 외적 자극에 의한 성찰이든 간에 18세기 이후 이슬람 운동은 크게 법학과 수피 영성주의를 재검토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우선 법학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 기존의 타끌리드(맹종)이 아닌 이즈티하드(재해석)를 기치로 삼았다. 꾸르안, 하디스, 유추, 합의라는 원칙에 따라 법학자들이 신의 법을 발견하여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이슬람법이다. 10세기 이후 무슬림들은 이슬람 종교법이 충분히 논의되어 더 이상의 해석이 불필요하고 다만 기존의 것을 따르면 되기에 이즈티하드의 문이 닫혔다고 생각하였다. 말 그대로 이제는 기존의 것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새롭게 무언가를 추가한다는 것은 혁신(bid’a, innovation)으로 간주되어 금기시되었다. 이에 대해 근대 무슬림들은 이즈티하드의 문을 새롭게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무슬림들마다 차이가 있다. 와하비 주의자들은 이즈티하드를 통해 원시 이슬람 공동체의 이상에서 벗어난 불순물을 제거하여 예언자 시대의 순수함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개혁가 그룹은 이슬람법이 불변과 가변 양면이 있다고 보았다. 불변한 것은 종교 생활과 관련된 것이요, 가변적인 것은 형법, 상법, 가족법 등이다. 가변적인 것은 시대 상황에 맞게 이즈티하드를 통해 재해석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를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에 맞게 이슬람법을 재해석하고 그 틀에서 근대화를 추진하려고 하였다. 특히 이들은 이슬람이 이성과 과학의 종교이기에 이성과 계시가 이슬람에서 상충 될 이유는 없으며 서구 과학 역시 중세 무슬림이 전해 준 것이므로 받아들이는데 심적 장애를 느낄 필요가 없음을 역설하였다. 서구 과학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무슬림들이 잊어버린 것을 되찾아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슬람에 어긋나지 않는 것은 서구에서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즈티하드가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 개혁가들의 자구 노력은 큰 빛을 보지 못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개혁을 뒷받침하고 선도할 조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즈티하드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근대개혁주의자들과는 달리 서구의 것을 원용하지 않아도 이슬람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신재생주의 운동이 20세기 초 이집트와 인도에서 발생하는데 하사눌 반나(Hasan al-Banna, 1906~1949)와 마우두디(Mawdudi, 1903~1979)가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은 각각 무슬림 형제단과 이슬람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끌면서 초기 이슬람시대로 돌아갈 것을 주창하였다. 이들의 눈에 오늘날은 이슬람 이전의 사회와 같이 자힐리야, 무명의 시대다. 무명의 시대를 벗어나 이슬람법의 원리가 적용되는 사회를 꿈꾼 것이다. 이들은 이를 위해서는 서구를 본받아서는 안 된다고 보았고 따라서 근대 개혁주의자들과는 달리 서구를 비판하였다. 근대화를 하기 하지만 서구모델이 아니라 이슬람식으로 하겠다는 이들의 주장은 근대개혁가들처럼 이즈티하드를 사용한다고 하였으나 이슬람법이 미처 다루지 못하는 곳에서만 이를 실행하였고, 대개의 경우 과거의 관습을 그대로 용인하는 경향이 컸기에 보수적인 전통주의자들과 융화되기 용이하였다. 따라서 이들의 운동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대중적 인기가 높았다.


무슬림들은 법학의 맹종과 함께 비이슬람적 요소가 가득한 수피 영성주의가 선진 이슬람 문명을 후진적으로 만들었다고 진단하였다. 법학이 외면적 세계를 제어한 전통이라면 수피는 무슬림의 내면을 가꾸어 온 전통이다. 신과 인간의 직접적 관계 맺음을 지고지선의 과제로 삼는 수피 전통은 중세에 전 지역에 널리 퍼짐으로써 대중적 인기가 높았다. 근대 무슬림들은 수피주의가 이슬람 정신을 훼손한다고 보았다. 범신론적 태도, 성인숭배, 기적 등의 요소가 비이슬람적이라 보았고, 스승에 대한 절대적 맹종을 문제점으로 인식하였다. 또한 수피들의 행위와 믿음이 숙명적, 수동적, 내세지향적이기에 무슬림들의 창의성과 역동성을 훼손한다고 보고 비판하였다. 근대 터키의 아버지 케말 파샤가 수피교단을 대대적으로 정리한 것 역시 수피를 근대화의 장애물로 본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III.



법학과 수피전통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그것만으로 이슬람 세계가 서구의 도전에서 자유롭게 되기에는 어려웠다. 서구의 도전은 중세 이슬람의 근본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지역이나 인종에 따른 국가 건설이다. 근대적 국가의 의미는 이슬람 세계에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중세 이슬람 세계는 언어와 인종이 무슬림을 나누는 경계가 되지 못했다. 무슬림들은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이슬람법이 실효 지배하는 곳에서 자신의 종교신앙을 지키며 살았을 뿐이다. 이러한 삶의 양식에 민족이나 언어가 들어 설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이슬람 세계는 민족 국가라는 서구 개념에 맞춰 산산이 분열되고 말았다. 사는 곳에 관계없이 이슬람법의 실효지배를 받았던 구조는 사라지고 이제는 국가의 소속원으로 각 국가의 통제를 받는 형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고자 범이슬람주의, 범아랍주의 구호가 터져 나왔고 매력적인 이념으로 여전히 무슬림들 마음을 사로잡고 있지만 그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론 아직도 이슬람 행동주의자들은 범이슬람 세계 건설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서구를 모델로 삼아 건설된 무슬림 국가들은 서구식 개혁을 지향하며 달려왔지만 무슬림들 눈에는 자신들의 삶이 여전히 가난과 압정에서 허덕일 뿐 크게 발전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서구식으로 하면 서구처럼 잘 살 수 있으리라 믿었던 환상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서구 방식이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자각한 것이다. 원칙은 옳으나 무슬림들이 잘 못 이해하고 적용했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 무슬림 스스로 서구식 방식이 이슬람 생활양식과 어긋난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무슬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준 사건은 제3차 중동전쟁, 제1차 석유파동 그리고 이란 혁명이다. 2차에 걸쳐 이스라엘에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기만 했던 아랍 무슬림들은 1973년 10월 3차 중동전쟁에서 개과를 올려 자부심을 고취하였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3차 중동전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무슬림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 삼아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 포르투갈, 네덜란드에 석유 수출 금지 조처를 취하였고, 결국 미국은 이에 굴복, 대 중동 정책을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이슬람식으로 국가를 재편한 이란 혁명은 서구식 모델이 아닌 이슬람식으로 사는 방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현실로 보여주었고 무슬림들은 크게 고무되었다. 이제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옛 영화를 되살리는 길은 초기 이슬람이라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서구 옷은 몸에 맞지 않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이슬람 내에서 찾을 수 있다는 내부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IV.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현대 무슬림들의 움직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찾을 여유조차 없이 서구에 의해 자신들의 전통적인 삶이 급작스레 붕괴되는 것을 목도하였다. 종교문화가 뿌리 깊이 박힌 이슬람 세계는 19세기 근대 개혁가들 이래 이슬람을 총체적 삶의 방식으로 이해해 왔다. 이슬람은 서구처럼 정교분리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속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을 나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다수의 무슬림들이 입이 닳도록 강조하는 사항이다. 서구가 가져다 준 패러다임은 이슬람에 맞지 않는 거추장스러운 옷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민족주의, 정교분리, 세속주의 등 서구의 가치가 깊이 뿌리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서구열강은 이슬람 세계에 자선 사업을 하러 온 것이 아닌 이상 정치 경제적 압력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꼼꼼히 챙겨갔다. 이를 무력하게 이를 지켜 본 무슬림들이 서구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리 없음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서구적 가치에 대한 이슬람 세계의 반응은 민주주의에 대한 무슬림들의 반응에 잘 드러난다. 현대 무슬림들은 여전히 이슬람과 민주주의가 서로 합치하는 개념인가에 대해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논쟁의 초점은 신의 주권만이 존재하는 이슬람에서 민의에 의해 법을 만들고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 이슬람의 원칙에 합당한가 여부다. 친(親)민주주의 입장을 지닌 무슬림들은 주권은 신께서 가지고 계시고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므로 한 인간이 다른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은 이슬람 정신에 어긋난다고 본다. 또한 이슬람법에는 바꿀 수 없는 신적인 면이 있는데 이는 인간과 신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그 어떠한 존재도 끼어들 수 없는 개인적인 것이다. 인간사이의 관계는 국가가 이슬람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 법을 만들어 규제하여 질서를 유지한다. 그런데 이 법은 변경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신적인 권위를 손상하지 않고도 국가가 법을 만들 수 있는 근거가 생기게 된다. 또한 이슬람 전통에 존재하는 협의(shura), 합의(ijma), 재해석(ijtihad), 공공복리(maslaha) 등을 재해석하면 의회주의, 선거, 종교개혁 등 민주적 개념을 발전시킬 수 있기에 민주주의와 이슬람이 충분히 합치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대다수의 무슬림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슬람과 민주주의가 개념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떠한 형태의 민주주의도 신의 주권을 훼손하는 비이슬람적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성행하는 민주주의는 이 지역에 합당하지 않다. 선거제도는 이슬람 신조에 끼어들 자리가 없다. 이슬람은 조언과 협의를 하는 정부, 양떼들에게 개방적인 목자의 자세, 그리고 모든 책임을 지는 통치자를 요구할 뿐이다”라고 한 사우디 파흐드 왕의 말은 압축적으로 이를 보여준다. 대중에 주권이 돌아가는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분열과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이 이슬람 지도들에 퍼져있다. 또한 이는 전통적으로 칼리파 아래 통합된 공동체를 지향했던 이슬람의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이 정치체제에 깊숙이 관여해야 한다는 것은 이슬람적인 것이 아니라 중동 문화적 요소일 뿐이라고 목청을 높힌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 와히드, 이란은 영적인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카타미 이란 대통령의 외침은 민주주의가 이슬람과 상치한다는 주장을 누르기에는 아직은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민주주의를 내세워 이라크를 침공하였고, 더욱이 부시는 십자군 운운하였다. 서구 세계에서 십자군이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종교적 열정이 가득한 낭만적인 말이다. 그러나 이슬람은 사정이 다르다. 그리스도인들을 백 번 욕하는 것보다 십자군이라는 말 한마디가 더 효과적일 정도로 파괴력이 큰 단어다. 사실 이슬람 세계는 십자군에 대해 알지 못하였다. 조직적인 종교전쟁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 것은 근대 무슬림들이 서구에서 유학하면서부터다. 이후 십자군이라는 말은 종교적 상징으로 이슬람 세계에서 서구의 침공을 가리키는 데 유용하게 쓰였다. 카다피는 1798년 나폴레옹의 프랑스 침략을 9차 십자군,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제10차 십자군으로 부르기까지 하였다. 이라크 침공이 시작되자 대뜸 나오는 말 역시 십자군이요, 제2의 몽골군이다. 후자는 미군을 1258년 바그다드를 함락시키고 이슬람 세계를 초토화한 몽골군에 빗대어 부른 말이다. 이러한 말에 반응하는 지역이 이라크에 국한 된 것이 아니다. 세계 전 무슬림들이 전율감을 느낀다. 종교문화적 상징어가 전 무슬림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킬 정도로 무슬림들은 여전히 세속적인 눈으로 보면 종교적이다.


서구에 대해 이슬람적 가치를 지키려는 현대 이슬람 운동가들이 극단적으로 그들의 행동양태를 보여 주는 이들은 행동주의자들로 탈레반과 알 카에다가 대표적인 그룹이라 할 수 있다. 보수적 다수 전통주의자들의 틀을 훨씬 뛰어 넘어서 상대적으로 편협한 사유방식과 적극적 행동을 표현 양식으로 삼은 이들은 무슬림 세계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점을 바로 이슬람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서구의 자유주의, 식민주의, 이스라엘의 시온주의에 대한 십자군을 자처하고 종교법에 따르지 않는 정권을 비합법적으로 본다. 이들이 원하는 세계는 그들이 생각하는 이슬람법이 지배하는 사회다. 선악 이분법적 사유로 세상을 구분한다. 쌍둥이 빌딩은 바로 이슬람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의 세력에 대한 엄중한 경고였던 것이다.


VI.


        언론매체에서 자극적인 것만 보여주기에 무슬림은 호전적으로만 보기 쉽다. 그러나 소수의 극단적 현상만 보고 전체를 매도하는 일반화의 오류는 더 이상 범하지 말자. 천년 이상 이어 온 이슬람 삶의 전통이 서구의 급작스런 도전으로 인해 무너지면서 이슬람 세계는 여전히 그 혼란을 소화하는 단계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어떠한 길로 들어설 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완전히 뿌리 채 뽑힌 전통이지만 새로운 틀에서 전통적 가치의 진수를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보수적 시각의 무슬림들이 이들을 압도하긴 하지만 무슬림 지성은 이 시간에도 꾸준히 움직이고 있다. 비록 전통적 이슬람법 전통은 살릴 길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이즈티하드의 문을 새롭게 열어 해석의 틀을 마련하고 있고, 철퇴를 맞은 수피 영성 역시 죽지 않고 살아 오늘날에는 인터넷에서 또 다른 전환기를 마련하고 있다. 9.11로 무슬림이라면 치를 떠는 미국인들에게서 수피 시인 루미가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시공을 초월하는 수피의 영성은 고무적이기까지 하다. 다만 한 가지 더 욕심을 부린다면 가잘리의 이븐 시나 비판 이래 논의자체가 불경시 된 찬란한 이슬람 철학 전통이 재생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근대 개혁가들이 주장한대로 이성과 계시가 조화를 이루는 이슬람이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해석과 영성, 거기에 철학적 이성이 추가된다면 서구와 현대 세계의 도전을 이슬람의 틀에서 차분하고 평온하게 소화해낼 수 있으리라는 소박한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