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처럼 느껴
- 2006년 8월 7일 마리선녀 씀 -
내 맘처럼 느껴
예전에 도시에서 일 할 때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직업의 작업물을 취급하였는데 이곳에서는 농업과 관련된 작업물만 하게 된다.
고추와 감자, 그리고 절임배추, 옥수수 등 괴산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이미지와 내용들이 대다수를 이룬다.
예전과 비교해보면 다양하지 않아 지루할 것 같았는데, 정작 그렇지가 않다.
농민들의 사연들이 다양한 소스가 되기 때문이다.
"농협이나 경매시장은 값이 너무 없어."
" 직거래를 해야 겠어."
한 농민은 옥수수를 판매해야 겠는데 옥수수 그림을 넣어달라고 한다. 또 감자를 직거래 하려고 한다며 잘 생긴 감자를 넣어 달라 하고, 고추와 절임배추도 넣어 달라고 한다. 수량도 그리 많지 않다.
이 모두의 요구는 농산물을 제값 받으려 도시인과 직거래 방식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연사연이 모두 내 사연 같아 마리선녀의 머리는 작업 내내 분주해진다. 60세 이상의 고령자가 절반이 넘는 나의 고객들은 욕심이 없어 보인다. 또한 경쟁의 치열함도 없다. 생산자이면서 가격을 정함에 있어 주권이 없다.
생산지의 오랜 정서가 이미 중간상인의 주도에 의한 도매가에 익숙하게 길들여 졌거니와 조금 더 받으려고 직거래를 시도하면서도 도시 소비자의 눈치를 살핀다. 소매가격에 대한 현실감이 아예 없어 보인다. 생산자로서 권리을 주장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심적 정서에 고착화 된 것 같다. 그저 일방적으로 순응을 강요당했기 때문이다.
겨우 정한 가격이 예전가격의 10%도 넘지 못한 직거래 가격, 조금 더 받을 수 있으려니 마음 먹었지만 결국 다시 제자리인 셈이다. 자신들의 수고 보다도 고객의 호주머니를 먼저 걱정하고 있는, 참으로 착한 농민들이 아닌가.
우리 마리농원도 같은 심정이다.
농산물을 생산하여 판매할 때는 마음이 무겁다. 이리저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가격 비교를 하고 눈치도 살피고, 결국 현 시세보다 조금 낮추어 정한다. 그렇게 해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농부의 마음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사회 변화가 그 이유일 것 같다.
산업사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예전에는 일반적으로 집집마다 자그마한 텃밭들이 거의 있었다. 그곳에서 가족들이 먹는 손쉬운 농산물은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먹고 남으며 이웃에게 인심을 쓰기도 하고, 그러다 산업사회로 변화하면서 대거 농민들은 농업에서 산업으로 이동하였고 상대적으로 많았던 농민의 수가 산업인구보다 적어 지면서 도시 근로자를 상대로는 농산물의 판매가 시작된 것이다. 즉 농산물도 수익 창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농산물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기란 그리 쉬운것이 아니다. 오랜 인식과 정서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으며, 특히 친분 관계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농업이 분명 직업군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 또한 인식전환의 걸림으로 생각된다. 그러한 정서는 농산물 판매에 있어 결정적으로 정당한 요구와 권리행사에 민망함과 함께 머뭇거리게 한다.
근래에 와서 많이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농부들의 마음에는 늘 텃밭에서 키워 먹던 푸성귀를 돈 받고 거래한다는게 내심 야박해 보이고 인색해 보일 것 같은, 정서적 부담을 안고 있는 것 같다. 인정으로 주고 받던 것들이 이미 현실적으로 생계의 수단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정서가 강박관념으로 자리하여 경제 관념 조차 상실하게 되어버린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농사는 분명 직업의 한 분야로 자리하고 있고, 그 어떤 직업에 못지 않는 고된 노동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제는 노동의 대가에 걸맞는 가격결정을 생산자인 농민이 당당하게 요구 할 수 있어 한다.
명함을 만들면서 자신의 삶의 철학을 담아 알아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농업기술을 적용했노라고 차별화를 부각시키려는 사람들이 있고,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묵묵하게 그저 농산물임만을 알리려는 곰 같은 농민들이 있고, 동정심을 유발하는 사람도 있고, 각양각색의 농민들이 우리 사무실 나의 고객으로 오간다.
비슷한 농산물의 작업물을 만들지만 그 안의 사연들은 모두 다르다.
오늘도 내 맘처럼 느껴져 이들의 순박하고 순수한 마음을 작업에 정성껏 담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