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혁연대> 2008-06-02
http://www.ser.or.kr/sub.html?sub=policy&pn=press&m=view&article_id=18805
산업은행 민영화 방안, 의욕은 넘치나 심각한 위험요소 내재해
산은지주 민영화 위해 금산분리 완화,금융발전의 기초 허무는 결과 초래 글로벌 IB 육성 서둔다고 될 일 아니다, 국내시장에서의 경쟁력부터 키워야 KDF의 on-Lending 방식? 주거래 은행 및 벤처캐피탈 등의 기반 전제되어야 |
2008-06-02 |
1. 오늘(6/2(월)) 금융위는 「산업은행 민영화 및 한국개발펀드(KDF) 설립 방안」을 발표하였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산업은행의 민영화, 투자은행(CIB; Corporate & Investment Bank) 육성, 시장친화적 정책금융체계 구축 등의 기본취지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이 금융위 발표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금융산업 발전을 개발연대 시절의 산업육성정책 방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금융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할 뿐이다. 특히 산업은행 민영화를 위해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임을 강조한다. 2. 산업은행의 민영화라는 기본취지 자체는 합리적인 것이다. 현재 산업은행의 모습은 그 설립 목적인 장기개발금융 업무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경제가 성장하면서 정부주도의 장기개발금융에 대한 필요성 자체가 많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산업은행은 이른바 위기 시 관치금융의 ‘늘어진 팔’로 동원되는 수단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예금보험공사나 자산관리공사 등의 공식적인 위기관리기구가 국회 동의 등의 복잡한 정치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면, 산업은행을 통한 개입은 정말 간편한 관치금융의 수단이다. 외환위기 이후 대우증권 등의 대우계열사, 하이닉스 등의 현대계열사, 그리고 LG카드 등의 구조조정에 산업은행이 개입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산업은행을 통한 관치금융 내지 유사공적자금의 남발은 금융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제는 청산해야 할 구태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공기업인 산업은행과 그 자회사(대우증권)가 민간 자본시장 업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투자은행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도 결코 자연스러운 모습은 아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경제개혁연대는 산업은행의 민영화 자체에는 동의한다. 3. 그러나 산업은행의 민영화 및 정책금융체계의 개편은 한국 금융산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방식과 세심한 사전준비 노력이 필요하다. 경제개혁연대가 오늘 금융위의 발표 내용에 대한 많은 의구심을 갖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선, 2010년까지 산은지주회사 지분 49%를 매각하여 KDF의 재원을 마련하고, 나아가 이명박 정부의 임기 내에 완전 민영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금산분리 원칙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런데 민영화된 산업은행에 요구불예금 수취 허용 등의 업무제한 완화를 추진하면서 산업자본의 소유지배까지 허용한다면, 이는 은행산업에서의 금산분리 원칙이 완전히 허물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은산분리라는 금융시스템의 핵심 원칙을 훼손하면서 어떻게 금융산업 발전을 추구하겠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가 없다. 금융은 산업육성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국민경제의 건전성과 효율성을 담보하는 기본 인프라이다.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기본원칙도 무시할 수 있다는 개발연대식 사고를 깔고 있는 금융위의 산업은행 민영화 방안은 그래서 위험한 것이다. 4. 한편, 금융위는 산업은행과 대우증권 등을 자회사로 둔 산은지주사를 투자은행 분야의 Global Player로 육성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투자은행 업무는 국제적으로 가장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 투자은행 분야는 미국, 영국, 스위스 등 몇몇 나라의 50여개 금융기관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어 있다. 단순히 규모를 키운다고 해서 국제 투자은행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동안 전문적 노하우와 평판을 축적하는 세심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산은지주사를 투자은행 분야의 Global Player로 육성한다는 야심찬 목표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Global Player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지역의 Regional Player로, 그 이전에 국내시장에서의 Domestic Player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현재 산업은행의 역량으로 세계적 투자은행을 지향하는 것은 걷지도 못하는 간난아이에게 뛰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 이 역시 개발연대의 산업육성정책적 발상이며, 그래서 위험하다. 5. 마지막으로, 오늘 금융위의 발표 방안에는 신설되는 KDF를 통해 중소기업 지원금융 등의 정책금융체계를 간접지원 방식(On-Lending)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2007년말 현재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정책자금(신용보증, 융자, 투자 포함) 총규모는 약 60조원으로, GDP의 6%를 넘고 있다. 이는 OECD 어느 국가보다도 높은 수준으로, 결국 우리나라 중소기업 지원금융의 문제는 그 양의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달 장치의 비효율성에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부기관이 직접 정책자금을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금융기관에 자금을 전대하고, 실제 지원대상의 선별 및 감독은 민간금융기관을 이용한다는 on-Lending 방식은 우리나라 중소기업 지원금융 체계의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on-Lending 방식 역시 엄청난 사회경제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KDF가 모델로 삼고 있는 독일의 KfW는 은행과 (중소)기업 사이의 자발적 주거래은행제도(Hausbank System)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을 잘 알고 있는 주거래은행이 존재할 때, 정부의 간접지원 방식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독일식의 주거래은행제도가 작동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식의 벤처캐피탈이 효율적으로 활동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 on-Lending 방식을 도입하면, 적어도 과도기적으로는 중소기업 지원금융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정책금융지원체계를 on-Lending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언젠가는 달성해야 할 목표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전제조건이 되는 중소기업 대상의 주거래은행제도나 벤처캐피탈 구축은 임기 5년에 되는 일이 아니다. 6. 오늘 금융위의 산업은행 민영화 방안은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방안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전제조건들을 구축하는 데에는 너무나 소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그 방대한 준비과정을 모두 생략한 채 임기 5년 내에 모든 것을 완수하겠다는 식의 발상은 금융발전을 이루기보다는 오히려 금융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명박 정부는 멀리 가기 위해 천천히 가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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