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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책]박원순 <독일사회를 인터뷰하다>(프레시안050510)

by 마리산인1324 2009. 4. 16.

 

<프레시안> 2005-05-10 오후 5:29:34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50510163711&Section=04

 

 

'보헤미안' 박원순의 꼼꼼한 독일NGO 기행

[화제의 신간] 세번째 NGO기행 <독일사회를 인터뷰하다>

 

 

박원순 변호사가 "나는 결혼 생활 말고는 십년을 같은 일을 계속해본 일이 없는 '보헤미안'(방랑자)"이라고 고백하는 걸 들은 적 있다. 어떤 측면에선 이 말만큼 그를 정확히 표현하는 말도 드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4년 참여연대 창립 멤버로 2000년 총선연대 등 '90년대 시민운동'을 이끌어온 그를 방랑자로 규정짓다니 좀 의아해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2002년 그는 많은 사람이 그의 '분신' 쯤으로 생각했던 참여연대를 꼭 9년만에 그만두고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운동에 푹 빠졌다. 한 군데 머물기엔, 오랫동안 정체돼 있기엔, 그는 너무나도 열정적인 사람이다.
  
  지난해 5월부터 3개월간 커다란 배낭 하나 짊어 매고 독일 구석구석을 다닌 기록을 묶어낸 <독일사회를 인터뷰하다 : 박원순 변호사의 독일 시민사회 기행>(박원순 지음. 논형 刊)도 그의 이런 열정이 듬뿍 배어있는 책이다.
  
  통독후 갈등, 녹색당의 변화 등 눈 여겨 볼 대목
  
  이 책은 박원순 변호사의 시민사회 견학 시리즈 세 번째 격이다. 박 변호사는 지난 1998년 2개월간의 미국 시민사회를 둘러본 뒤 <NGO,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박원순 지음. 예담)을, 2000년 3개월간 일본 기행 기록인 <박원순 변호사의 일본 시민사회 기행>(박원순 지음. 아르케)을 펴냈다.
  
  전직 대통령에서부터 홈리스 운동가에 이르기까지 방문한 장소와 만난 사람들을 그날그날 꼼꼼히 기록한 것을 묶어낸 이 책은 그래서 현재 독일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가릴 것 없이 그대로 드러낸다.
  
  특히 통일 후 독일 사회가 겪는 혼란과 고통은 우리가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1990년 10월3일 독일연방기본법 제23조에 의해 동독(DDR)이 독일연방으로 편입됨에 따라 동독 각 주들은 독일연방의 주가 된다"(통일조약, 1장 1조). 이 조문에 따라 동독이라는 나라는 사라지고 거기서 만들었던 모든 법률도 사라졌다. 박 변호사는 "동독인들은 자신들이 수십년 동안 지켜왔고 알아왔던 법률 대신 완전히 다른 법률을 익혀야 했고 그 심정을 이해해야 독일 통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를린 시청에 근무하는 고위직 공무원 중 동독 출신은 단 한명도 없다.
  
  사회연금, 취업에 있어서 동.서독 간의 차별, 통독 후 감행된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규모 실업과 어려운 재취업, 이러한 결과로 20%를 상회하는 높은 실업률 등으로 냉소적인 동독인들이 '독일 통일'을 통일이 아닌 '서독의 동독 지역에 대한 점령'으로까지 말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프게 다가왔다.
  
  또 녹색당의 변화와 이에 대한 독일인들의 평가도 우리 진보정당 운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79년 헤르베르트 그룰, 페트라 켈리 등이 주도하여 2백50여 개 생태·환경 단체들이 연합해 출범한 녹색당은 1998년 사회민주당(SPD)과 역사적인 적록(赤綠) 연정을 구성해 집권정당이 됐다. 그러나 정작 전통적 지지세력에게 녹색당은 '좌파'가 아니라 '중도보수'로, '녹색당'이 아니라 '회색당'으로 인식되며 외면받고 있다.
  
  창의성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독일 시민단체들
  
  정부나 종교단체의 재정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독일 시민단체들은 최근 지원이 끊기거나 줄면서 문 닫는 시민단체가 생기는 등 이곳의 시민운동도 '위기'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시민운동은 창의성을 기반으로 계속 영역을 개척하며, 활로를 찾고 있다.
  
  태양열 에너지 운동에 기반한 시민기업인 '솔라 콤플렉스(Solar Complex)', 1970년대 말 주택점거운동으로 한 건물을 통째로 시민단체들이 소유하게 돼 베를린의 대안운동의 본거지가 된 '메링호프', 박 변호사가 주도한 '아름다운 가게'의 모델인 '옥스팜', 동독인의 인권을 지키는 단체인 '시민권과 인간존엄을 위한 단체' 등이 대표적 예다.
  
  이밖에 진겐다(Syngenda), 바이엘(Bayer) 등 다국적 기업들이 식물 종자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항하고자 하는 '미래재단', 월수입이 7백70유로(1백만원 상당) 이하인 것을 증명하면 음식 값을 절반으로 깎아주는 '경계 없는 식당'(단 술값은 깎아주지 않는다), 홈리스들이 기고하고 홈리스들이 판매하는 홈리스를 위한 잡지 BISS 등 아직 우리 사회가 상상하기 힘든 부분까지도 시민운동의 영역이다.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의 독일 시민운동을 보면서 떼돈을 벌겠다는 야망만 없다면야 한번 도전해볼만한 '사업 아이템'도 적잖이 담겨 있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박 변호사는 "최근 정부 지원이 줄었다지만 여전히 전체 예산의 0.3%를 상회한다"면서 "우리는 0.01%도 안 되면서 얼마나 생색을 내냐"며 독일 시민단체의 상황에 대한 부러움을 드러냈다. 또 과거 1970-80년대 건물점거운동의 결과 도심 곳곳에 시민단체들로 가득 찬 건물이 있다는 공간의 문제, 어느 사회단체나 자신의 운동 분야에 관련된 자료들이 수집된 도서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 등에 대해서도 감탄했다.
  
  박 변호사와 함께 오랫동안 일해 온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변호사로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대신 더 많은 것을 얻은 사람"이라고 박 변호사를 평가했다. '보헤미안' 박원순 변호사는 지금도 새로운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얻고자 미국을 종횡무진 돌아다니고 있다.

 

/전홍기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