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이야기/사회

김수행교수 제2강 경제의 금융화(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by 마리산인1324 2009. 5. 11.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 연구소)

http://www.democracy.or.kr/

 

 

김수행 교수와 함께 하는 한국경제, 세계경제 알기

 

 

2008년 5월 28일 강의

제2강: 경제의 금융화

 

 

1. 몇 개의 기본개념

 

1) 기관투자가(은행, 보험회사, 투자신탁회사, 증권회사, 펀드, 연금기금 등)와 개인은 수수료, 이자, 배당, 자본이득을 얻기 위해 화폐를 대부하거나 회사채와 국채, 주식 등을 매매한다. 이것을 금융활동이라고 부르며, 금융활동을 통해 자기의 가치를 증식시키는 자본을 금융적 자본(financial capital)이라고 부른다(힐퍼딩의 ‘금융자본’과 구별하기 위해 ‘금융적 자본’이라는 용어를 쓴다).

 

2) 금융적 자본은 예컨대 100억 원을 연간 이자율 5%로 대부하고 1년 뒤에 105억 원을 받는다. 그리고 100억 원으로 어느 회사의 주식(액면가격 100억 원)을 구매하고 1년 뒤에 배당을 10%(10억 원) 받을 뿐 아니라 주식가격이 120억 원으로 상승했다면 자본이득으로 20억 원을 추가로 얻을 수 있다. 이처럼 금융적 자본가는 자기 자본의 증식에 사실상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으므로 흔히들 금리생활자(rentier)로 불린다.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 종사하는 산업자본가, 또는 재화나 서비스의 매매에 종사하는 상업자본가와는 다르다.

 

3) 1980년 이래 금융부문의 자산과 이윤이 상대적으로 비금융부문(특히 제조업과 상업)의 자산과 이윤보다 더욱 빠르게 증가했고, 비금융부문의 이윤 중 생산활동과 상업활동에서 나오는 부분보다 금융활동에서 나오는 부분(이자, 배당, 자본소득 등 금융소득)이 더욱 커졌는데, 이것을 가리켜 경제의 금융화(financialisation of economy)라고 부르며 금융부문이 크게 성장한 것을 가리킨다.

 

2. 경제의 금융화는 금융제도가 은행중심으로부터 증권시장 중심으로 더욱 전환된 것과 관련이 있다.

 

1) 역사적으로 독일, 일본, 한국은 주로 은행에서 대부를 받아 기업을 성장시키는 금융제도를 가지고 있었고, 미국과 영국은 주로 증권시장에서 회사채와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2) 한국의 기업들은 1997년의 금융위기와 외환위기 이후 IMF의 구조조정정책에 따라 은행부채를 자기자본의 200% 이하로 감축해야 했기 때문에, 주식을 발행해 증권거래소에서 자본을 조달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증권발행액과 증권거래액이 급증했고, 외국자본은 헐값으로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3) 김대중 정부는 증권시장을 통해 벤처기업을 육성함으로써 재벌을 견제하겠다는 생각을 가져 벤처기업에게 상당한 규모의 국고 지원을 했다. 벤처기업이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지만 벤처기업의 후원자가 김대중의 ‘가신’이라면 앞으로 잘 될 수 있으리라고 파악한 우리국민은 ‘묻지마 투자’를 통해 벤처기업을 지원했건만 모두 망하는 바람에 가산을 탕진했다.

 

3. 경제의 금융화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함께 진행되었다.

 

1) 1979년 5월 영국의 대처는 실업 축소와 인플레이션 억제 중 후자를 정책의 제1목표로 삼음으로써 금융적 자본가들의 이익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9년 10월 폴 볼커가 미국 연방준비은행 이사회 의장이 되면서 물가와 달러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대폭 인상했다(이른바 ‘1979-82년의 볼커 쿠데타’).

 

2) 이런 금융긴축정책은 자금이 풍부하지 못한 기업들을 도산시켜 실업자를 대규모로 만들어 내었으므로, 노동자계급의 세력을 상당히 약화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산업자본가도 금융적 자본가의 이익을 옹호하는 금융긴축정책에 반대하지 않았다.

 

3) 변동환율제(1973년 3월 각국이 채택) 아래에서 각국 정부가 무역, 외환, 자본이동의 자유화를 추진했기 때문에, 세계시장에서 무한경쟁이 펼쳐지게 되면서 각국 통화 사이의 환율과 금리의 변동에서 오는 손실이 매우 컸다. 이런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온갖 금융수단(금융상품: 선물futures, 옵션option, 스왑swap)이 등장했으므로, 금융산업이 성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4. 경제의 금융화는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를 확립하는 데 기여한다.

 

1) 기관투자가들이 주요 기업의 대주주가 되고, 그들은 배당을 많이 받고 주가가 오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 따라서 기관투자가는 기업경영자로 하여금 종업원을 대량 해고하면서 이윤율을 올려 배당을 증가시킴으로써 주가를 상승시키라고 주문한다.

 

2) 이 과정에서 기업경영자에게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스톡옵션(stock option)'을 제공한다. 거대한 수량의 자사주(자기 기업의 주식)를 장래의 어떤 시일까지 싼 값으로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인데, 그 사이에 주가가 올라가면 그만큼 경영자는 큰 보너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주인과 대리인의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3) 이제 경영자는 이윤을 올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고, 분식회계를 통해 높은 수익을 얻었다고 공표한다. 대기업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 회계감사법인, 변호사, 은행도 분식회계에 협조하게 된다. 결국 기업은 망하고, 종업원은 연금기금을 모두 날리는 경우가 많다 (예: 미국의 엔론, 월드콤, 타이코, 글로벌크로싱).

 

4)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식의 ‘이해당사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 기업과 관련을 가진 주주, 종업원, 은행, 이웃 주민, 환경단체 등의 이익을 옹호하는 자본주의)’가 미국식의 주주자본주의보다는 훨씬 좋다고 이야기했는데, 1990년대에 일본 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지자 이야기가 역전되었다.

 

5. 금융산업이 확장되면 제조업은 사라져도 좋은가?

 

1) 1억 원을 은행에 1년 동안 정기예금하면 일년 뒤에는 105억 원이 되며, 나는 5억 원만큼 더 부유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자본가와 노동자가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멈추고 자기가 가진 돈을 모두 은행에 정기예금하면 매년 5%만큼 더 부유하게 될 것이 아닌가?

 

2) 만약 모든 자본가와 노동자가 자기가 가진 돈을 모두 은행에 정기예금했다면 그들은 이자를 한 푼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은행은 그 돈을 공장에 대출해야만, 공장이 노동자를 착취해 창조한 잉여가치의 일부를 이자로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3) 주주가 받는 배당도 마찬가지로 노동자가 생산영역에서 창조한 잉여가치를 분배받은 것에 불과하다. 아무리 주식을 사고팔고 하더라도 그 매매행위에서는 아무것도 새로운 가치가 생겨나지 않는다.

 

4) 그렇기 때문에 이자나 배당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금리생활자라 부르면서 ‘생산자에 기생한다.’고 욕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고리대 장부를 보거나 주가 시세 전광판을 보는 사람이 무슨 생산적인 일을 하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케인스는 “금리생활자를 안락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통화량을 크게 증가시켜 금리를 대폭 낮추고, 투기이익을 줄이기 위해 증권거래세를 대폭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5) 그러나 기관투자가나 개인은 산업자본가에게 생산을 시작하고 확대할 화폐자본을 공급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잉여가치의 창조에 기여하며, 따라서 그들은 이자나 배당을 받는 것이다. 회사채나 주식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득은 밤새도록 노름해서 얻는 이득과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주머니로부터 온 것이며 새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6. 금융적 투기는 경기순환과 어떤 관련을 가지는가?

 

1) 경제가 위기(crisis)에 빠지기 직전까지 투기적 활황이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 호황이 진행되면서 앞으로도 호황이 계속되리라고 믿어 공장의 확장, 원자재의 재고 투기, 노동자의 확보 등에 자본을 지출하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생산물이 잘 팔리지 않게 되자 기업들이 도산하기 시작한다.

 

2) 제조업체의 이윤 중 큰 부분이 생산활동에서 나오지 않고 금융활동에서 나온 것은 생산영역에서 높은 이윤율을 얻을 수 없어 회사채나 주식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3) 주가는 기업의 수익성과는 어느 정도 독립해서 상승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1985년 의 플라자협정은 일본 엔과 서독 마르크의 대외가치를 인상하고 달러 가치를 상대적으로 인하했는데, 이로 말미암아 일본의 수출경쟁력은 큰 타격을 입었지만, 엔화의 강세 때문에 외국자본이 대량 일본에 유입해 일본증권시장이 활황을 이루었다. 이리하여 기업의 수익성은 개선되지 않는데도 주가는 상승해, 소비와 투자를 확대하면서 과잉투자와 과잉설비를 야기했다. 그 뒤 주가가 기업의 수익성을 반영하는 수준으로 하락하면서 가계와 기업의 파산이 뒤따르고 금융기관의 파산도 이어진 것이다. 이것이 1990년대 일본의 대불황이며,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자율을 0%에 가깝게 아무리 낮추어도 투자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설비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7. 미국은 달러를 세계화폐로 만들어 다음과 같은 이익(시뇨리지)을 얻고 있다.

 

1) 1달러의 인쇄비는 3센트이므로 미국 정부는 1달러로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97센트의 시뇨리지를 얻는다.

 

2) 국제무역에서 미국 사람이 달러를 지출해 해외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고, 외국 사람이 그 달러로 미국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미국은 시뇨리지를 얻는다. 미국 달러의 약 55-77%는 해외에서 유통되고 있다.

 

3) 미국은 현재 세계 최대의 채무국인데, 달러의 가치가 하락한다면 달러와 달러표시증권의 소유자는 손해를 보게 되는데, 이것도 미국이 얻는 시뇨리지에 속한다.

 

4)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유 중의 하나도 이라크가 석유거래를 달러 대신 유로로 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5) 미국은 무역수지와 재정수지에서 적자를 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달러의 대외가치는 점점 하락하고 있는데, 이 하락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투자자들이 달러표시 유가증권을 보유하지 않으려고 할지 모른다. 이 지점에서 뉴욕증권거래소는 국채(재무부증권), 회사채, 주식의 가격 폭락과 동시에 미국경제와 세계경제 전체를 암울한 공황으로 빠뜨릴 것이다.

 

6)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이 달러를 보유한 중국, 일본, 대만, 한국 등이 대외준비자산으로 달러를 버리고 유로를 선택한다면, 미국 경제는 망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대해 그렇게 굴종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