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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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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오월 그날, 황석영은 광주에 없었다"
들끓는 문화예술계, "황석영, 독배 마셨다"... "작품의혹 해명해야"
09.05.19 18:18 ㅣ최종 업데이트 09.05.19 18:18 이종찬 (lsr)

빛과 온도, 감정 등에 따라 몸 빛깔을 자유롭게 바꾸는 카멜레온이란 도마뱀이 있다. 머리가 크고 투구 모양을 한 뿔 돌기가 치솟아 있는 이 도마뱀은 양쪽 눈을 360도로 따로따로 움직이면서 먹잇감을 찾는다. 이 도마뱀은 평소에는 긴 혀를 입 속에 감추고 있다가 먹이를 찾으면 은근슬쩍 다가가 순식간에 혀를 내밀어 게걸스럽게 잡아먹는다.

 

사람들은 변신에 뛰어난 이들을 이러한 카멜레온에 자주 빗댄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영원한 비판자가 되어야 할 문학예술인이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것도 민족과 민중을 팔고, 한동안 진보와 개혁을 부르짖던 작가가 극우보수정권과 하루아침에 손잡고 '구라'를 치는 것은 그동안 그의 작품을 아끼고 사랑해온 독자들에 대한 배반이자 배신이다.

 

요즈음 작가 황석영을 바라보고 있으면 갑자기 등뼈를 찔린 것처럼 아프다. 작가 황석영의 지적 수준과 사상적 철학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데 우리가 너무 그를 과대평가해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자기 모멸감 때문이다. 이는 또한 한동안 그와 한솥밥을 먹고 지낸 그 오랜 '세월'에 대한 배반이다.

 

그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중앙아시아 순방길에 올라 귀국길 기내 기자회견에서 '욕먹을 각오'까지 하고 발언을 했고, 귀국한 뒤에도 잇따라 '구설'을 자청했다. 청와대는 그 공로(?)로 그를 곧 '유라시아 문화특임대사'로 임명해 그가 펼치는 사업에 재정적 지원과 후원을 해줄 생각이란다.

 

하지만 언론에서 잇따라 그의 발언을 다루자 그 자신도 놀란 것일까. 그는 돌연 "내 발언이 왜곡됐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무엇이 변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 스스로 처음부터 진보작가가 아니라 중도 실용주의 작가였단 말이 아닌가.

 

광주전남 문인들 "80년 오월 그날, 황석영은 광주에 없었다"

 

작가 황석영은 이번 발언으로 진보, 보수 양쪽에서 모두 '변절자, 훼절자'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들끓자 서둘러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며 불끄기에 나섰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로 폄하한 것에 대한 물음에서 "내가 광주 중심에서 뼈를 깎은, 그걸 다 겪은 사람이다. 광주가 나고, 나의 문학이다"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 광주민중항쟁 기록집 이 책은 당시 전남일보(현 광주일보) 기자이자 전남사회운동협의회 소속인 이재의 기자가 썼다. 상황지도는 조양훈이 그렸다.
ⓒ 풀빛
광주

황석영은 그동안 1980년 5월 광주항쟁 기록물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풀빛)라는 책을 쓴 작가로 널리 알려졌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쓴 작가가 황석영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 글은 광주시민 전체가 저자인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당시 <전남일보>(현 <광주일보>) 기자이자 전남사회운동협의회 소속인 이재의 기자가 쓰고 상황지도는 조양훈이 그렸다는 구체적 반박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1980년 오월 현장에서 수없이 밤을 보낸 김아무개 시인은 "그 책이 '황석영 기록'이라고 되어 있지만 1980년 5월 그날 수많은 광주시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갈 때 황석영은 광주에 없었다"라며 "그가 광주의 아들이라고? 1980년 5월 그날 광주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황석영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뒤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황석영은 이에 대한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 왜 '황석영 기록'이란 이름을 넣어야 했는지, 그 책의 인세를 왜 자신이 가져갔는지, 왜 이 책의 지은이라고 약력에 버젓하게 넣을 수밖에 없었는지. 광주와 전남지역에 있는 문화예술인과 1980년 오월 그 자리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지금까지 쉬쉬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황석영 스스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1980년 초반 한국 독서계에 쓰나미를 일으키며 베스트셀러 1위로 떠오른 <어둠의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어둠의 자식들> 초판본은 지은이가 황석영으로 되어 있다. 다들 황석영 작가가 밑바닥 사람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체험하여 그 책을 쓴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지은이는 이동철(본명 이철용)이다.

 

전 국회의원 이철용은 "그때에는 수배 중이었으니까 내 이름으로 책을 낼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필명으로 책을 내려고 출판사에 원고를 맡겼는데 이 책의 감수를 맡은 황석영이가 자기 이름을 내걸고 책을 펴냈다"고 말했다. (이후 <어둠의 자식들>은 원래 작가 이철용의 이름으로 다시 발간되었다.)

 

"작가는 정권의 홍위병이어선 안 된다"

 

작가 황석영이 몸을 담았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계의 문인 대부분은 그의 카멜레온적 행동에 어이없어 하고 있다. 극우보수주의로 치닫고 있는 이명박 정권을 '중도 실용정부',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 말하는 그와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총장 이승철 시인은 "작가는 항상 권력을 감시하고, 그 누구보다도 민중의 소리를 입바르게 이야기하는 입장에 서야 옳은데, 이번 황석영씨의 발언은 극우보수정권을 중도정권으로 평가 절상시키는 립서비스를 해줬다"고 꼬집는다.

 

그는 이어 "백만송이 광화문 촛불집회까지 참석했던 분이 촛불을 제압한 권력의 편에 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라며 "작가는 결코 정권의 홍위병이자 대변자여서는 안 된다. 작가 황석영의 이번 행동은 우연한 돌출적 행보이라기보다는 그만의 독특한 처세술의 본질이 일약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황석영 작가는 지난해 8.15 광복절 때 진보진영과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와 보수단체인 뉴라이트가 주도했던 건국 60주년(임시정부를 부정한 것) 행사에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참석했다"며 "그 사실만 보더라도 그의 이번 행보는 이미 예견된 일이다"라고 마무리했다.

 

1980년 당시 <신동아> 기자로서 광주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했던 윤재걸 시인은 "황석영은 이번 발언으로 독배를 마신 꼴"이라며 "작가로서 황석영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펴낸 황석영의 모든 작품들에 대해 독자들조차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5.18 광주항쟁을 '광주사태'라 언급, 광주의 정신과 5.18정신을 훼손한 것은 영원히 기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질타했다.

 

<삼청교육대 정화작전>을 최초로 폭로하여 전두환 폭압정권의 실체를 고발했던 이적 시인은 "황석영이란 사람과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문학 활동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부끄럽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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