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09-06-02 오후 08:29:38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8272.html
정권과 유착한 ‘살인검’ 안 된다
‘노무현 이후’ 남겨진 과제
조국/ 서울대교수. 법학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 이후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대통령의 온 가족과 측근에 대한 ‘먼지 털기’식 전방위·저인망 수사, 뇌물공여자의 진술에만 의존한 채 노 전 대통령의 자백을 획득하려는 압박수사, 확정되지 않은 혐의를 직접 중계하거나 조직 내부의 ‘빨대’를 통하여 언론에 전달하여 그를 ‘파렴치범’으로 만드는 피의사실 공표 수사 등이 그것이다.
물론 전직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부패 수사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수사에서 임채진 검찰총장의 지론인 “절제와 품격 있는 수사”는 사라졌다. 스스로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린 노 전 대통령에게 ‘항장불살’(降將不殺)의 기본 예의를 지켜주기는커녕 ‘조리돌림’식의 수사가 계속되자, 그는 최소한의 자존을 지키고자 극단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검찰의 칼이 ‘활인검’이 아니라 ‘살인검’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어떠한 정치적·사회적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유념해야 한다. 과거 검찰은 검찰 개혁을 추진하던 노무현 정부와 계속 대립하였고, 평검사들마저 대통령과 ‘맞짱’ 뜨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검찰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정권이 촛불로 휘청거리자, 검찰은 정권과 유착하여 정권 수호에 앞장섰다. 검찰은 미네르바 사건, ‘피디수첩’ 및 <와이티엔> 사건 등에서 법리적 무리에도 불구하고 정부 비판 누리꾼과 언론인을 처벌하려고 했다. 촛불시위 참여 시민 및 시민·사회단체에 대해서는 ‘5공’식 강경처벌을 주도했고, ‘용산참사’ 재판에서는 1만500여쪽에 달하는 수사기록 중 2600여쪽을 공개하지 않으면서까지 철거민 처벌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처럼 비판자와 반대파를 모두 ‘범죄인’으로 규정하고 형벌로 진압함으로써 법질서를 유지하려는 ‘과잉범죄화’ 및 ‘경성(硬性)법치화’ 정책에 대하여, 검찰 내부에서 용기 있는 문제제기가 나왔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검찰이 요구한 정치적 독립성은 자신의 이익이나 입맛에 맞지 않는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성이었을 뿐이었던가. 만약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검사와의 대화 자리를 만든다면, 평검사들은 이 대통령을 과거 노 대통령 대하듯이 할 수 있을 것인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진행되었다. 단지 전직 대통령의 부패 혐의에 대한 엄정한 수사 차원이 아니라, 현 정권의 위기를 타개하는 방안으로 퇴임 대통령에게 ‘개망신’을 주고 그를 ‘물고’(物故) 내자는 정치적 결정이 검찰 윗선에서 이루어지고, 검찰은 이를 집행하려 하였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반면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과의 대결은 주저하고 있다. 검찰에서 이 대통령의 셋째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의 주가조작 의혹 사건, 천신일, 이상득, 정두언씨 등 실력자가 등장하는 세무조사 로비 사건, 이재오씨의 유학 비용의 출처 등에 대하여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만큼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의문이다.
‘검사’(檢事)는 종종 스스로를 ‘검사’(劍士)로 비유한다. 이들은 수사권과 공소권이라는 쌍검을 휘두르며 범죄와의 투쟁을 벌인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부패범죄와 기업범죄를 전담하는 중수부나 특수부 소속 검사들의 헌신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자부심이 권력의 뜻과 이익의 범위 안에서 우쭐대는 것이고, 그 헌신이 권력이 쳐놓은 테두리 안에서 맴도는 것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또한 그 칼이 권력의 눈치를 보는 칼이거나 권력의 의향에 따라 휘두르는 칼이라면 검사의 손에 있을 필요가 없다.
이제 검찰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이 권력의 요구에서 독립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범죄는 죽이고 사람은 살리는 절제된 ‘검무’(劍舞)를 추고 있는지, 아니면 권력의 유혹에 취한 추한 모습으로 마구 사람을 잡는 망나니 춤을 추고 있는지. 정권의 신뢰를 얻는 데 급급하여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검찰에 미래는 없다.
조국 / 서울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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