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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종교

“개신교 창조과학·지적설계론은 사이비” (한겨레신문090619)

by 마리산인1324 2009. 6. 19.

 

<한겨레신문> 2009-06-19 오후 07:13:57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61392.html

 

“개신교 창조과학·지적설계론은 사이비”
“진화론에 대한 두려움서 출발
역사와 신과의 관계 단절시켜”
과학과 종교의 중첩지대 등 모색

 

» 김윤성(위) 한신대 교수, 신재식(사진 가운데) 교수, 장대익(아래) 동덕여대 교수.



〈종교전쟁〉
신재식 김윤성 장대익 지음/사이언스북스·2만2000원

 

종교의 유통기한은 이제 끝나지 않았나?

 

세 사람의 젊은 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호남신학대에서 조직신학, 종교와 과학 등을 가르치며 교회의 합동목사로도 일하고 있는 신재식(사진 가운데) 교수. 현대 종교이론과 문화이론을 토대로 한국종교사, 세계 신화, 양성평등과 종교, 과학과 종교 등을 가르치는 김윤성(위) 한신대 교수. 그리고 진화생물학과 과학철학, 인지과학을 공부해온 과학철학자로서 과학과 인문학 통섭의 길을 찾고 있는 장대익(아래) 동덕여대 교수.

 

이들은 모두 과학 서적들을 열심히 읽는다. 2003년에 결성된 ‘과학과 종교 연구회’ 멤버들이다. 장 교수야 당연하겠지만 두 신학대 교수의 최신 과학지식 역시 수준급이다. 그리고 모두 독실한 개신교 신자들이었다. 김 교수와 장 교수는 한국 주류 보수 기독교가 신봉하는 창조과학을 앞장서 전파하던 열혈 신도였다. 그런데 지금 신도로 남은 사람은 신 교수뿐이다. 김 교수는 성서 내용을 글자 그대로 믿는 문자주의 보수 개신교도였으나 나이 들어 자유주의적 개신교인으로 바뀌었고, 다시 개별 종교를 넘어 종교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종교학자가 됐다가 끝내 무신론에 가까운 불가지론자로 변했다. 장 교수는 카이스트 학부와 대학원 시절 창조과학 신도였으나 지금 그는 대표적인 진화론적 무신론자가 됐다. 이에 견준다면 신 교수는 진화론적 유신론자다. 인간 역사 이래 의심할 여지가 없었던 절대적 초월자 곧 신의 존립 근거를 허물어뜨림으로써 기독교를 존망의 위기로 내몰았던 다윈의 진화론과 유신론의 결합은 어째 이상하지 않은가?

 

» 〈종교전쟁〉
<종교전쟁>. 이 세 사람이 주고받은 전자편지와 좌담 등을 묶은 이 책은 바로 진화생물학을 토대로 종교는 이제 퇴장시켜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묻는 장 교수와, 진화론을 비롯한 현대과학의 놀라운 성과들을 수용하면서, 과학의 성과야말로 실은 종교를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유신론자 신 교수의 공방이 주요 줄기를 이룬다.

 

종교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 자살 폭파범, 9·11테러, 런던 폭파테러/ 십자군, 마녀사냥, 화약음모사건/ 인디언 분리구역,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세르비아·크로아티아·무슬림 대학살…/ 등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

 

장 교수가 인용한 리처드 도킨스의 책 <만들어진 신> 서문에 나오는 존 레넌의 <이매진> 패러디다. 종교에 대한 그의 심정을 대변한다.

 

신 교수는 ‘설명의 다원주의’를 통해 다윈 이후의 현대과학의 성과를 수용하는 존 호트의 ‘진화론적 신학’, 과학의 상대적 자율성을 인정한 기독교 중심주의자 볼프하르트 파넨베르크 등의 생각을 설파하면서 무신론적 진화생물학이라는 ‘우주적 문자주의’나 성서 무오류를 주장하는 창조과학·지적 설계라는 ‘성서적 문자주의’ 양극단 모두를 배격한다. 그는 사회생물학의 창시자 에드워드 윌슨이 지구생태계를 구하기 위해 보수적 남침례교회 쪽에 협력을 호소한 책 <생명의 편지>에서 일방적인 생물학 중심주의를 읽어내고 도킨스에 대해서도 19세기적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김 교수도 “과학이야말로 현대의 절대 기준이자 가치이고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거기에 맞추어야 종교가 살아남으리라는 강박적 사고”에 빠져 있다며 ‘과학의 이데올로기화’를 경계한다. 그는 과학과 종교 사이에는 무수한 중첩지대가 있다고 본다.

 

‘과학은 종교를 어떻게 보나?’ ‘종교는 과학을 어떻게 보나?’를 두고 장대하게 펼쳐지던 이들의 공방은 한 지점에서 전원 합일로 나아간다. 미국 근본주의=복음주의 보수교파들이 1920년대에 창안한 창조과학, 그리고 그것이 좌절당하자 1990년대에 들고나온 유사 판본인 지적 설계론에 대한 이들의 비판은 신랄하다. 김 교수는 한국 개신교 거의 전체가 받아들이고 있는 창조과학과 지적 설계론은 신앙운동일 뿐 과학이 아니라고 했고, 신 교수는 이를 사이비 종교운동, 장 교수는 틀리다 맞다는 논쟁조차 불가능한 사이비과학이라 단정했다.

 

이들이 보기에 창조과학의 출발점은 과학, 특히 진화론에 대한 피해의식과 두려움이 그 출발점이다. 진화론 자체를 거부하며 ‘창세기’ 기록을 무오류의 과학이라 주장하는 것이 창조과학론이고, 그것이 패퇴당한 뒤 진화론만 빼고 현대과학 연구결과들을 수용하되 신이 그 모든 걸 설계해서 일회성 창조로 끝냈다는 게 지적 설계론이다. 신 교수는 태초부터 완성된 상태로 있었고 시간이 지나도 변할 게 없다는 이 모델들에 대해 “기독교의 신은 시간 속에서 세계와 관계를 갖는 역동적인 신”이란 말로 일축했다. 이 모델을 받아들이는 순간 신은 더는 역사에 개입할 수 없고 기독교 신학은 끝장난다. 이를 미국에서 직수입한 한국 보수교회는 아직 지적 설계론조차 마음 편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창조과학을 주장하고 있는 단계다. 세 사람은 소통부재와 돈벼락이 부른 비만증에 허덕이며 무균실에서 연명하고 있는 한국 보수교회가 광야로 나가지 않는 한 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