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일보> 2009/08/18 [10:52]
http://www.saramilbo.com/sub_read.html?uid=10464§ion=sc1§ion2=
국민이 지켜보는 국회의원 이정희 | |||
[이기명 칼럼] 국민은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이 그립다 | |||
노무현을 지지하며 그와 함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한 사람들은 그에 대한 떨칠 수 없는 많은 소중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노무현이 대의와 원칙에 어떻게 충실했으며 원칙에 어긋나는 경우 결코 양보와 타협을 거부한 사실을 기억한다. 20여 년 동안 그를 지켜보면서 원칙에 대한 일관된 신념과 행동은 때로 답답하게 느낄 때도 있었고 참으로 정치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5공 청문회 당시 그는 증인들에게 변명할 여지가 없는 질문을 함으로써 국민들의 갈증을 풀어 주었다. 의원들이 ‘증인님’이라고 부르는 정주영을 비롯해 유찬우, 장세동 등을 추궁할 때 국민들은 진정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실감했다. 몇 번인가 칼럼에 쓴 적이 있지만, 당시 노무현은 별의별 협박과 회유를 받았다. 밤늦게 다니지 말라는 충고에 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는 것이 아니라고. 1986년 2월 28일 밤 11시, 스웨덴의 ‘팔메’수상은 경호원도 없이 극장에 갔다가 스톡홀름 시내에서 피격되어 숨진다. 노무현은 말했다. 총리가 경호원 없이도 밤늦게 거리를 걷는 스웨덴과 총리가 피격되어 사망했어도 동요가 없는 스웨덴이 부럽다고. 5공 청문회의 노무현, 2009 청문회의 이정희 2009년 7월 8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진 국세청장 인사청문회는 슬픈 코미디였다. 코미디의 주인공은 백용호 국세청장 내정자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인공은 국회의원 이정희였다. 이정희 의원의 매서운 추궁에 국세청장 내정자는 말을 잃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못하는 백용호 국세청장 후보가 불쌍하기까지 했다. ‘사랑이 뭐 길래’란 드라마가 있었지만 ‘벼슬이 뭐 길래’였다. "다운계약서가 쓰인 것을 몰랐다"는 내정자의 해명에 "중개업법에 따라 공인중개사는 거래 내용을 허위로 기재할 수 없고, 따라서 본인의 동의가 없었다면 다운계약서를 쓸 수 없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는 대법원 판례까지 찾아내어 청장 내정자의 불법행위를 질타하고 국세청과 백 후보자의 '적법' 주장을 한 마디로 뒤엎는 대법원 판례까지 찾아내어 입을 닫게 만들었다. TV로 생중계되는 청문회를 보면서 국민들은 얼마나 통쾌했을까. 문득 5공 청문회가 기억에서 살아났다. 당시 노무현 의원에게 추궁당하면서 전전긍긍했던 증인들의 얼굴이 백용호 내정자로 바뀌었다. 이정희 의원의 얼굴은 노무현으로 바뀌었다. 5공 청문회 당시 부산의 인권변호사였던 노무현 의원을 가뭄에 단비를 맞은 듯 온 국민이 열광했듯이 국세청장 청문회에서 국민들은 이정희 의원에게 박수를 보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의원들에게 ‘질문은 노무현처럼 저렇게 하는 것’이라고 했듯이 청문회는 이정희 의원처럼 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해찬, "이정희 의원은 보기 드물게 진정성 있는 정치인" 시청 앞 민주광장에서 집회를 하고 시위를 하던 국회의원 이정희는 경찰에 의해 상의가 벗겨지며 경찰에 끌려갔다. 비를 맞으며 삼보일배를 하고 단식을 하고 용산 참사 현장에서 힘든 싸움을 하는 국회의원 이정희. 이해찬 전 총리는 "보기 드물게 진정성 있는 정치인"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전두환 노태우 시절, 치열했던 민주화투쟁을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시위가 있으면 약속한 듯 등장하는 것이 전경과 최루탄이었다. 시위는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불붙고 있었다. 노무현은 부산에서 시위에 앞장섰다. 그 날도 시위는 조방 앞에서 벌어졌다. 시위의 선두에는 노무현을 비롯해 이기택 김광일 등 야당 인사들이 섰다. 그 뒤를 시민들이 따랐다. 경찰이 앞을 가로 막았다. 그들은 해산을 종용했지만 시위대는 전진했다. 최루탄이 쏟아졌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경찰은 몰려오고 시위대는 흩어졌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최루탄 연기 속에서 한 발 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아스팔트 위에 바위처럼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노무현이었다. 흩어졌던 시위대 중에 학생들이 몰려들어 노무현을 중심으로 겹겹이 에워싸고 그를 보호했다. 노무현은 학생들이 보호해야 할 소중한 존재였다. 서울 시청 앞 광장 시위에서 전경들에게 팔다리가 들려 닭장차에 실리는 이정희 의원의 모습에서 노무현의 과거 모습이 떠오른다. 상의가 벗겨지도록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을 취급하는 경찰에게서 20년 전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치고 한나라당이 잃어버렸다는 10년이 몹시도 그리웠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박계동, 이재오, 김문수 그리고 '미디어 법' 5적들 사람은 옳고 바르게 살기를 원한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초심을 잃지 말라고 한다. 광복이후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정치를 지켜 본 사람들은 이 나라 정치인들이 어떻게 처신해 왔는지 잘 안다. 정치인들의 과거란 마치 불로 지진 낙인 같아서 지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분을 바르고 화장을 해도 드러난다. 이미 사라진 인물이야 도리가 없다 하더라도 지금 국민이 매일 이름을 듣고 얼굴을 보는 정치인들의 경우 정치에 첫발을 디딘 초심을 지금껏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기에 기운이 모자란다. 짜증도 난다. 그러나 기억에 너무나 생생한 사람들이 있다. 잊혀지지 않는다. 아마 자기 자신들도 결코 지워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미디어 법’의 주인공으로 지목되어 이른 바 ‘미디어 법 5적’으로 낙인찍힌 정치인. 5적이라면 물어볼 것도 없이 을사 5적이 떠오르는데 김형오 의장을 비롯해 5적으로 지목된 정치인들은 얼마나 마음이 참담할까. 설사 아니라 할지라도 역사가 2009년 7월의 한국 정치를 기록할 때 반드시 ‘미디어 법’ 5적은 기록될 것이다. 먼 훗날 이들의 후손들이 역사를 배울 때 무슨 생각을 할까. 딱하지 않을 수가 없다. 1995년 10월 19일. 국회의사당에서는 민주당의 박계동 의원이 대정부 질문자로 단상에 섰다. 그의 손에는 신한은행 서소문 지점의 예금잔고표가 들려 있었고 이것이 바로 노태우의 비자금이라고 폭로했다. 이것이 바로 박계동에 의한 전직 대통령 노태우의 비자금 폭로이며, 노태우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파렴치범 반열에 오르고 구속된다. 박계동은 이 사건으로 야당투사로서 민주주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전국적인 인물이 됐고 민주투사로서 각종 상도 받았다. 그런 박계동이 한나라당에 입당했고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됐고 지금은 국회 사무총장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학생운동의 차원을 넘어 재야 운동권의 대표적인 활동가로서 눈부신 활약을 보인 박계동. 그런 박계동이 국회사무총장으로서 야당이 이른바 ‘미디어 악법’의 국회날치기 통과 장면을 담은 회의장 CCTV자료를 요구했을 때, '개인자료'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인간은 수도 없이 변한다고 한다. 박계동도 그런 인간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변한 것이 나 뿐이냐고 항의할 수도 있다. 하기야 반독재투쟁과 민주쟁취를 위해 투쟁한 이재오나 김문수 등의 오늘도 박계동의 반발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박계동의 허물이 벗겨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그가 남긴 족적은 그의 변절을 국민들이 용서하기에는 너무나 뚜렷하기 때문이다.. 박계동은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니다. 왜 아니냐고 따진다면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양심이란 보이지 않아도 아프기 마련이다. 기왕에 버린 몸이라고 스스로 치부하고 ‘그래 욕 해 봐라. 나는 듣겠다’ 고 강철심장을 자랑해도 고통스럽기는 한가지다. 더구나 역사와 민족과 민주주의를 들먹이며 반독재 투쟁을 한 박계동에 있어서야 더 말 할 나위가 있으랴. 이정희 의원을 주목하는 이유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못 되게 살거나 정의롭게 살거나 한 세상 사는 것은 다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그럴까. 옳게 살면 마음이 편하다. 불의한 짓을 하고 살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서 바늘방석이란 말도 생겼을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노무현은 양심을 외면하고 살지 않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당당했다. 비록 천명을 다 하지 못했다 해도 그는 죽음을 뛰어 넘어 당당했고 민족과 역사 앞에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는 신뢰를 인간의 최고 덕목으로 소중히 여긴 사람이다. 노무현을 신뢰하지 못할 사람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지금 세상이 온통 불신의 늪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정치를 불신하는 것도 지도자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제 아무리 명심보감을 외워도 믿지를 않는다. 이유는 그들 자신이 걸어 온 길이 온통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정치가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한 좋은 정치는 없고 나라의 미래는 캄캄하다. 정치지도자란 사람들은 국민을 하늘이라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웃는다. 그러나 국민이 웃음의 대상이라고 여기는 그들은 반드시 국민에게 버림받는다.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고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내 한 몸 던지는 정치인이 몹시 그립다. 멀쩡한 강을 개발한다고 환경을 파괴하며 국민의 반대를 아랑곳 하지 않고 수십조 원을 쓴다고 하는데 국민들은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나가 폭등한 물가로 꼭 도둑맞는 기분을 느낀다. 과연 정치는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자기들만의 잔치인가. 콩을 콩이라 해도 믿지 않고 팥을 팥이라 해도 믿지 않는다. 국민이 정치를 믿지 않고 정치지도자를 믿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골수에 파고 든 이 병을 치유할 지도자는 없는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직한 지도자는 진정 없는가. 국민들이 국회의원 이정희를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기명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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