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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세상 여행

[김영조의 문화기행] <1편>'지다이마츠리' 축제가 한국과 비교되는 이유

by 마리산인1324 2010. 1. 4.

<대자보> 2009/11/22 [21:18]

http://www.jabo.co.kr/sub_read.html?uid=30008§ion=sc4

 

 

 

일본 '지다이마츠리' 축제가 한국과 비교되는 이유
[문화기행-제5부] <1편> 백제여인의 아들 간무왕(桓武), 교토신이 되다
 
김영조
 
▲ 헤이안시대 부인 행렬 중 세이쇼나곤(유명한 고전 수필가) 역할의 여인     © 김영조
 
일본 교토를 알려면 기온마츠리(祇園祭), 아오이마츠리葵祭) 그리고 지다이마츠리(時代祭)의 3대 마츠리를 보아야 한다고들 말한다. 7월에 열린 기온마츠리에 이어 10월 22일에 열리는 지다이마츠리를 보러 교토를 향하던 날은 청명한 가을 하늘이었다.  

방안에 있기에는 아까운 가을 날씨 탓인지 공항은 피서철도 아닌데 사람들로 유달리 북적거렸다. 지다이마츠리 행렬이 잘 보이는 오이케도오리에 좌석 예약을 서울에서 마쳐 둔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회원들은 서두를 것 없이 마츠리 하루 전날 오사카에 도착하여 이튿날 아침 일찍 교토를 향했다.  

기온마츠리 때 함께 했던 몇몇 사람들은 석 달 만에 다시 찾은 교토 거리가 낯설지 않은 듯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오사카에서 급행전철로 1시간여에 있는 교토지만 서두른 덕에 오전 10시 무렵 교토역에 도착하여 예약해둔 표를 찾고 마츠리 시작 시각인 오후 2시까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 시간을 이용하여 찾은 곳은 헤이안신궁이다. 헤이안 신궁(平安神宮)은 제50대 간무왕(桓武)과 제121대 효명왕(孝明)을 모시는 사당으로 특히 교토 천도를 주도하고 발전을 이룩한 간무왕을 교토 시민들은 “교토의 신”으로 추앙하고 있다. 이를 기리고자 으리으리한 헤이안신궁을 짓고 해마다 정성스런 제사와 마츠리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 헤이안신궁 출입문인 웅천문도 화려하기 짝이 없다     © 김영조

헤이안신궁 앞에 이르자 제일 먼저 우리를 압도하는 것은 거대하고 화려한 웅천문의 모습이었다. 교토 시민들이 간무왕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사당 출입문을 이다지도 화려하고 크게 만들었을까 싶은 생각을 하며 신궁 안으로 들어갔다. 신궁안은 이날 오후에 있을 지다이마츠리 준비로 부산하다.  

신궁 안에는 엄청난 규모의 정원을 만들어 놓았는데 입장표 사진에는 봄 벚꽃의 흐드러진 모습이 그 화려함을 말해주고 있다. 작은 오솔길과 정자풍의 쉼터, 아기자기한 풀꽃들과 휘늘어진 벛꽃나무 사이로 꽃단풍의 모습이 곱다. 아담한 연못이 있는가 하면 울창한 나무 숲길이 있고 모형처럼 축소해놓은 산신각 같은 작은 신사도 눈에 띈다.  

특이한 것은 후박나무며 단풍나무 앞에 시구를 써둔 작은 팻말들이다. 이 팻말에는 만엽집(万葉集)과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 등에 실린 옛 가인들의 노래가 적혀있다. 고전문학 향기를 느끼게 해주는 발상이 신선하고 깜찍하다. 그저 정원의 풀과 나무를 보고 감상하는 게 아니라 옛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지나갈 수 있게 한 작은 오솔길의 운치는 아름답다. 문화를 사랑하는 헤이안 시대의 여유가 이런 것이었을까? 

▲ 헤이안신궁 안 정원, 각종 나무 앞에는 우리의 옛 시조에 해당하는 와카(和歌)를 적어둔 팻말들을 세워놓았다. (왼쪽) / “눈에는 보이고 손에는 잡히지 않는 달 속의 계수나무처럼 임은 거기 있다네”이 시는 “이세모노가타리”에 나오는 것으로 계수나무를 소재로 쓴 시다. (오른쪽)     © 김영조
  
▲ 헤이안신궁 정원 안에 있는 아름다운 연못     © 김영조
   
▲ 헤이안신궁 정원 안 연못 위의 다리 태평각     © 김영조
 
정원 안 오롯한 산책길을 다 왔다 싶은 곳에는 푸른 하늘을 그대로 비춰주는 아담한 크기의 연못이 있는데 이 연못 위에는 고풍스런 태평각(泰平閣)이란 이름의 다리가 있다. 지친 다리도 쉴 겸 다리 위에 앉아서 백제여인 고야신립이 낳은 아들 간무왕을 그려 보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쌍의 백조가 물살을 가르며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백제여인 고야신립과 그 남편이자 간무왕의 아버지인 고닌왕의 애틋한 부부애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세월은 천여 년이 지났건만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은 남아 역사를 만들고 마츠리를 만들어 오늘 한국의 후손들과 만나게 하다니 아무래도 “교토의 신” 간무왕의 도움인 것만 같다. 

태평각의 아름다운 누각에서 황실 친척이라도 된 양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뒤 일행은 다리 너머 작은 울타리 곁을 넘보다가 그곳에서 그날 오후 지다이마츠리 가장행렬에 참가하려고 뽀얗게 분단장한 어여쁜 아가씨가 사진기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과 만났다.  

작은 울타리 문에는 “외인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쓰여 있었지만 기자들도 그곳으로 드나든 듯 반쯤 열려 있어 우리 일행도 들어갔다. “아, 이쁘다”라는 한국말을 쓰는 우리를 바라다보던 사람들은 함께 와서 사진을 찍으라는 시늉을 한다. 이 아가씨가 오후에 있을 지다이마츠리에서 헤이안신궁에 모신 효명왕의 여동생 역할로 참여하는 여인이다.   
   
▲ 헤이안신궁에 모신 효명왕의 여동생 역할로 참여하려고 분단장을 마친 한 여인의 모습     © 김영조
 
가부키 배우들의 분단장처럼 새하얀 분가루를 칠한 얼굴에 빠알간 입술 연지는 못난 여인일지라도 미인으로 만들 것 같은 마력을 지녔다. 이 주인공은 뜻밖에 만난 한국인들을 향해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사진을 허락했다. 비록 가장행렬이지만 천 년 전의 여인으로 분장한 여인과 잠시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지다이마츠리 사상 이런 뒷무대까지 잠입(?)하여 찍은 사진은 우리가 최초일 것이다.  

효명왕의 여동생과 사진도 찍고 헤이안신궁, 그리고 정원을 둘러본 우리는 서둘러 들어간 웅천문을 빠져나왔다. 지다이마츠리 행렬을 보려고 예약한 좌석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헤이안신궁에서는 지하철로 세 정거장 거리였다. 지하철로 가는 길목엔 보통 사람 키의 몇 배나 될 듯한 신궁 도리이(鳥居)가 있다.  

도리이란 우리나라 향교나 왕릉 앞에 있는 홍살문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헤이안신궁 앞의 도리이가 일본 전국 최고의 도리이가 아닌가 싶을 만큼 크고 육중하다. 도리이의 크기는 도리이 안에 모셔진 사당 주인공의 권력을 상징한다. 새삼 간무왕의 지위가 돋보인다. 

헤이안신궁에서 지하철을 타고 교토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은 오이케도오리에 도착하니 지다이마츠리 협회에서 만든 예약좌석이 눈에 띈다. 이번 지다이마츠리를 위해서는 교토 시내 3곳에 접이식 의자를 수백 개 준비하여 의자에 번호를 붙여서 한 사람당 2,000엔에 팔았으니 마츠리 수입으로는 짭짤했을 것이다. 다소 비쌌지만 편하게 앉아서 마츠리의 모든 과정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예약좌석에 앉아 지다이마츠리 행렬을 보는 관람객들(건너편), 마츠리 참여자 한 사람이 손전화를 하면서 간다.     © 김영조
 
행사 30분 전에 입장하여 자리를 잡아 앉았지만 10월의 햇살이 보통 따가운 게 아니었다. 일행 중 여성회원들은 미처 모자를 준비 못 해 신문지를 접어 임시 모자를 만들어 쓰느라 부산하다. 기온마츠리 때와 마찬가지로 제일 좋은 앞줄을 예매한 까닭은 고국의 독자들을 위해 양질의 사진을 찍기 위함이었다. 신문지 모자도 만들어 쓰지 못한 관람객들은 따가운 햇살을 손으로 막은 채 마츠리행렬이 시작되는 쪽으로 눈과 귀가 쏠려있었다. 

오후 2시 !
드디어 차량통행이 금지된 중앙로 오른쪽에서 악기 소리와 함께 마츠리 행렬이 들어온다. 하지만, 기온마츠리 때에 비하면 구경꾼들이 그리 많지 않다. 7월에 열린 기온마츠리 때는 찜통더위임에도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선 구경꾼들로 인해 도심은 완전히 사우나장을 방불케 했었다. 

그런데 지다이마츠리는 그에 견주면 조용하다 못해 축제다운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왜 기온마츠리와는 다른 분위기일까? 그 답은 마츠리 행렬이 끝나고야 이해하게 되었다.  

드디어 지다이마츠리를 눈앞에서 보다.
        
▲ 무로마치 시대의 아시카가 장군 보좌관     © 김영조
 
▲ 풍신수길의 화려한 우마차     © 김영조

지다이마츠리는 해마다 10월 22일 교토어소(御所)로부터 헤이안신궁까지 가장행렬을 하는 마츠리로 명치유신부터 헤이안시대 옷을 입은 화려한 행렬이 푸른 가을 하늘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뤄 눈요기에 그만이다.

헤이안(지금의 교토) 천도 1100년인 1895년(명치28) 3월 간무왕을 신으로 모시는 헤이안 신궁이 창건되었다. 이를 성대히 축하하고자 각 시대 풍속의 변천을 표현하는 시대행렬을 하자는 의견이 모여 1895년 10월 25일 처음 열린 것이 지다이마츠리의 시작이었다.  

초기에는 교토의 신 간무왕과 명치말기 막부정권 속에서도 꿋꿋이 황실을 지켜낸 효명왕 두 신령을 위한 제례의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는 헤이안신궁에 참배하는 형식이었으나 후에 두 신령이 교토어소로부터 시내를 순행하여 번영된 도시 모습을 시찰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마츠리 날짜는 그 이듬해부터 간무왕이 교토로 천도한 날인 10월 22일로 바꿔 열리고 있으며 2009년은 헤이안 천도 1215년째이다.

지다이마츠리는 초기에 여섯 모듬으로 시대를 나눈 6행렬이었으나 1932년(소화 7)부터 풍신수길 행렬 등이 추가되어 10행렬이 되었다. 2차 대전이 격화되던 1944년 무렵엔 일시 중지되었으나 1950년에 다시 시작했는데 이를 계기로 에도시대, 중세시대, 헤이안시대 등 3시대를 대표하는 여인행렬이 추가되었고 1966년에는 메이지유신 지사 대열이 보태졌다.

▲ 헤이안 시대 부인 행렬 중 귀족 후지와라 씨의 부인 백제여인 명신     © 김영조
   
▲ 에도시대 조정의 중요의식에 참여하기 위한 도쿠가와막부 행렬 중 익살스러운 춤꾼 모습, 이 춤꾼들이 나오는 행렬이 참여자 수가 제일 많다     © 김영조

▲ 전체 행렬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도쿠가와막부 행렬의 무사 모습이다     © 김영조
 
현재의 행렬은 총 20행렬이며 마츠리 행렬에 참가하는 사람은 약 2,000명이다. 뿐만 아니라 70마리의 소와 말이 사람들을 태우고 지나간다. 이렇게 행진하는 길가에는 많은 사람이 각 시대의 화려한 옷과 분장한 인물들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다. 행렬에 쓰이는 각종 옷과 소도구 등은 교토의 장인들에 의해 철저히 고증된 것으로 각 시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이 지다이마츠리는 7월의 기온마츠리에 견주면 그 규모나 구경꾼들이 적다. 기온마츠리는 길가에 사람이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빼곡히 들어차 경찰들이 안전사고에 크게 신경을 쓸 정도였지만 지다이마츠리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특히 기온마츠리 때 보았던 유카타 입은 젊은이들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점도 특이했다. 그렇다. 젊은이들이 모이지 않는 마츠리는 썰렁했다. 역시 젊은피는 마츠리 때도 필요하다. 

왜 사람들이 적게 모인 걸까? 그 까닭은 분명했다. 기온마츠리 때는 32개 가마마다 나름의 볼거리를 가지고 경쟁했기에 끝까지 구경꾼들이 행렬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요소가 있었다. 그러나 지다이마츠리는 화려한 옷차림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가장행렬에 참여한 것 말고는 특별히 볼거리가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행렬 중간 이후가 되자 꾸벅꾸벅 조는 구경꾼이 보이기도 했다. 아무리 마츠리의 나라라지만 교토에서만 한 해에 3번의 큰 마츠리를 하는 것은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칭찬해줄 것은 우리의 많은 잔치와는 달리 마츠리가 철저히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두번째 마츠리를 보면서 우리의 잔치(축제)들이 관주도가 아닌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 본다. 

우리 잔치의 전통이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간악한 문화말살 때문에 그 맥이 끊기긴 했지만 이제라도 원래 우리의 본 모습을 찾았으면 좋겠다. 지다이마츠리를 뛰어넘는 단오 큰잔치가 온 나라 곳곳에서 벌어지는 날은 요원한 것일까?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문화를 사랑하는 전세계인이 물밀듯이 찾아와 한바탕 화끈하게 놀았으면 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제2편 “간무왕 생모 백제여인, 교토를 접수하다”로 이어집니다.


글쓴이
이윤옥(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59yoon@hanmail.net)
김영조(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sol119@empal.com)
<기온마츠리 2009 가마행렬 32기 이모저모 >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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