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이야기/사회

기소권 쥔 검찰 ‘법적용 이중잣대’…성찰없이 적반하장 (한겨레20100121)

by 마리산인1324 2010. 1. 22.

<한겨레신문> 2010-01-21 오후 07:37:16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00314.html

 

기소권 쥔 검찰 ‘법적용 이중잣대’…성찰없이 적반하장
권력 비판자 샅샅이 캐고 삼성떡값 검사는 조사도 안해
노 전 대통령 피의사실 공표엔 “공공의 이익 위한 것”
피디수첩 수사땐 ‘공익 목적’ 눈감고 고의와 왜곡 몰아가
한겨레 김남일 기자/ 노현웅 기자/ 김명진 기자
» 김준규 검찰총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 열린 전국검사화상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날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사립학교에 강제 배정받은 학생들의 종교 자유’와 관련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진행하던 중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검찰이 주요 시국사건에 대한 법원의 잇단 무죄 판결에 “부당한 면죄부”, “고무줄 판단” 등 격한 언사를 동원하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주요 사건의 진행을 지켜본 상당수 법조계 인사들은 “검찰이 스스로를 성찰할 능력이 있다면 자기 입으로 법원을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에 대한 무죄 선고에 “이것이 무죄면 무엇을 처벌할 수 있겠느냐”고 한 검찰이지만, 정작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들이 검찰의 편의대로 어둠 속에 묻혔다. 검찰은 특히 자기 조직이 연루된 사건에서는 이중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이다. 2007년 10월 김용철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의 폭로로 고위직 검사들을 포함한 정·관계 로비 의혹이 불거졌다. 차명계좌 번호 등 구체적 단서가 제시됐지만, 검찰은 “고발장이 접수돼야 수사할 수 있다”며 버텼다. 고발장이 접수된 뒤에는 “로비 대상 검사 명단을 공개하지 않으면 사건을 배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검사는 범죄의 혐의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조항은 무시됐다. 검찰은 여론에 떼밀려 뒤늦게 특별수사·감찰본부를 꾸렸지만 검사들에 대한 수사나 감찰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의 ‘적반하장식 수사’는 최근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안기부 엑스(X) 파일’ 공개 사건에서 극명해진다. 2005년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던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국가안전기획부가 1997년 도청한 테이프 내용을 공개했고, 여기서 ‘삼성 떡값’ 수수 의혹이 있는 전·현직 검사 7명의 실명이 드러났다. 그러나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등의 이유로 금품 제공·수수 의혹이 있는 인사들을 조사하지 않았고, 노 대표만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그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합리성과 이성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검사들에게 금품을 지급했을 것이라고 강한 추정을 하는 게 당연하다”며 검찰의 미흡한 수사를 지적했다.

 

 

 

지난해 ‘스폰서’ 의혹을 받고 낙마한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는 한 기업인과 15억원이 넘는 돈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검찰은 감찰조차 하지 않았다. 그가 평범한 공직자였다면 대가성 있는 금품 거래인지 수사를 했을 법한 사안이다.

 

하지만 권력의 입김이 작용하는 사건에서는 물불 안 가리는 수사-기소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검찰은 용산참사 사건의 수사기록 공개 요구를 “재판과 무관한데다, 관련자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 침해 우려가 있다”며 거부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피디(PD)수첩’ 사건에서는 범죄사실과 관련이 없는 방송작가의 개인적인 전자우편 내용을 원문 그대로 공개했다. 검찰은 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된 검찰 수사팀은 “그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공표한 사실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그러나 피디수첩 사건에서는 ‘공공의 이익’, ‘진실이라 믿을 만한 이유’는 외면하고 ‘고의’와 ‘왜곡’만 부각시켰다.

 

결국 억지스런 법 적용이 유독 이명박 대통령의 ‘정적’들에게 집중되고, 그만큼 무죄 선고 확률이 높아진 게 이번 갈등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게 법원 내부의 시각이다.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은 법원의 조정에 응해 거액의 배임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1심 재판부는 무려 10가지 이유를 들어 검찰의 주장을 배척했다. ‘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걸어보자’는 태도도 최근 시국사건에서 드러나는 특징의 하나다. 피디수첩 사건,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대표 사건에서는 시시콜콜한 대목까지 공소사실에 포함시켰지만, 모두 배척당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검찰이 법원을 탓하고 있지만, 이전 판결을 연구해 보면 최근 검찰 수사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며 “국가 통제의 최후 수단인 형벌은 제한적으로만 사용돼야 한다는 기본 원칙조차 잊은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일 노현웅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