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 2008-06-01 [제2601호]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165151&ACID=116
[취재 현장속으로]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손모내기 현장
발행일 : 2008-06-01 [제2601호]
논에서 땀 흘려 일하며 더불어 사는 삶 배운다
“하느님은 농부이십니다!”(요한 15, 1)
이번호 취재 현장을 결정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성경구절이다. 쌀개방이니 FTA 인준이니 어수선한 사회분위기, 그 안에서 비신자들 귀에도 익숙해진 구절이기 때문인 듯. 농업과 관련한 첨예한 사회 현안들, 귀동냥으로만 듣고 있는 농촌 삶에 대한 선입견 등을 미리 논하진 않기로 하고, 모내기 때 입을만한 반바지를 얼른 취재가방에 구겨넣었다. 오늘은 친환경 우렁이쌀‘밥’을 짓기 위한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본다.
새봄이 시작되면서부터 취재팀에서는 모내기 현장을 물색해왔다. 하지만 일정 맞추기가 녹록찮았다. ‘올봄은 그냥 보내야하나’ 하던 중 서울 한강본당 신자들이 모내기를 떠난다기에 냉큼 따라붙었다. 현장은 청주교구 청천분회가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 일대.
서울에서부터 이동거리가 만만찮다. 결국 도착시간은 여느 농민들이 아침 일과를 마치고 새참을 먹을 시간쯤이었다. 부랴부랴 논에 철퍼덕 뛰어들었다.
논주인은 청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염선업(이시도·?44) 회장이다. 일손을 도우러(?) 온 이들을 위해 오늘은 손모내기를 한단다. 이곳도 여느 농촌과 다름없이 최근엔 모두 이앙기로 모내기를 한다.
막상 논에 들어서고 보니 일손 거든답시고, 못줄 잡고 모 심는 폼내며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서는 물색없는 짓을 하게 될까 내심 걱정스러웠다.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진흙 촉감이 우선 반갑다. 모를 대여섯 포기씩 나눠 잡고 손가락과 함께 슬쩍 진흙에 내려꽂는다. 그런데 웬 걸. 조심조심 심은 모는 물 위에 둥둥 뜬다. 진흙에 잘 박았다 싶으면 보란 듯이 옆으로 눕는다. 잘 심었다 싶으면 물 속에서 잠수를 한다. 회원분들이 보기 전에 수습하느라 마음만 분주하다.
‘못줄잡이나 한번 해볼까?’라고 떠올리던 찰나, 한 회원분이 못줄잡이한테 잘 보여야 모내기가 잘된다고 말한다. 긴긴 줄을 적당한 간격으로 팽팽하게 옮기는게 보통 일은 아니리라. 때문에 예전엔 논주인이 못줄잡이에게만 따로 술상도 봐주곤 했단다.
몇십분이나 지났을까. 허리가 뻐근하다. 주변 회원들이 “이러니 농민들 허리가 아프지 않을 수 있나”라고 거든다.
모를 심어대는 손발이 드디어 척척 맞아들어갈 때쯤, 염회장이 모내기 소리 한가락 구성지게 뽑아낸다. ‘얼쑤’ 추임새가 절로 난다.
‘포기’한 삶 아닌 ‘선택’한 삶
청천면의 모내기는 일반 모내기보다 늦은 6월 초순까지 이어진다. 모든 농사는 무농약, 친환경농법으로 지어, 논농사의 경우 벼물바구미가 한차례 지나가고 모내기를 해야한다. 이곳에선 육모 때부터 목초액과 효소를 이용해 벼 종자를 키우고 농약은 전혀 쓰지 않는다. 또 잡초는 농약 대신 우렁이가 먹어치운다.
염회장은 이 마을에서 4300여 평의 논을 소작한다. 모판 내고, 우렁이 사고, 각종 기계를 빌리는 비용을 이래저래 빼면 풍작이 돼도 수확기에 손에 쥐는 돈이 400~500여 만 원이 될까. 그래서 밭일에도 열심이다. 밭에서는 감자와 배추, 늙은 호박 등을 일군다. 추석과 설날 등 명절 전에는 알음알음 버섯재배에도 나선다.
“솔직히 귀농할 땐 농부도 직업으로 계산해보면 기본 벌이는 괜찮겠다 싶었지요. 직접 살아보니 힘겹기는 하네요.”
하지만 염회장은 먹고사는 기준을 조금만 바꾸면 쉬운 일이라고 덧붙인다. 부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면, 아이들 교육을 생각하면 더더군다나 잘한 선택이라고 자신감을 보인다.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편협한 평가에선 다소 무책임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농촌에서 더불어 사는 것을 배우며 자유로움을 얻었다”고 강조한다. ‘포기’한 삶이 아니라 ‘선택’한 삶이라는 것이다.
온전한 먹거리에 대한 열정
최근 염회장은 요즘엔 논밭일 보다 농민회 일에 훨씬 더 분주하다.
그는 청주교구에서 ‘최단기’ ‘최연소’ 가톨릭농민회 회장 선임 기록을 가진 인물이다. 땅과 함께 평화를 누리고 싶어 귀농한 지 8여 년. 논농사를 지은 지는 5여 년 남짓 된 ‘초짜 농부’지만 땅에 대한 사랑 만큼은, 온전한 먹거리에 대한 열정 만큼은 남다르다.
특히 염회장을 비롯한 청천분회 회원들은 올바른 생태영성을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신앙인들이다. 가장 먼저 각종 생명농법을 소개하고 실천하는데 똘똘 뭉쳤다. 환경보호와 공동체정신을 함양하는데 쉼없이 움직인다.
정권이 바뀌고, 사회가 급변해도 늘 소외되고 관심밖에 머물러 있는 농민들을 위해 아낌없이 역량을 쏟아붓는다.
요즘엔 미국 쇠고기 수입 재협상 촉구를 비롯해 FTA 저지, 대운하 반대 활동 등으로 분주하다. 지난 3여 년간은 지역 내 24개 단체와 연대해 급식 쌀 공급 문제에 힘썼다. 덕분에 지난해부터 괴산군 일대 학교에서는 급식용으로 친환경쌀을 공급받는다. 친환경쌀 급식이 전국적으로 펼쳐질 때까지 관심의 끈은 놓지 않을 예정이다.
“농업은 단순히 보호대상이 아닙니다. 자연과 함께 건강히 살아가고, 우리 후손들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남겨주기 위해 더불어 사는 지혜로운 삶이 필요합니다.”
“요즘 농촌에 일할 사람 없어요”
평야 구석 오목히 자리잡은 작은 논이라 모내기는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진흙을 씻어내기 위해 논 옆 개울에 발을 담그자 알싸한 차가움이 온몸을 감싼다.
그사이 회원들이 갓 버무린 메밀묵에 시원한 막걸리 사발을 돌린다. 땀흘려 일한 후에는 농주(農酒) 한사발 시원하게 들이켜야 한단다.
길가던 마을주민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 사이 할머니들을 한 가득 태운 트럭도 우리 일행 옆에 섰다. 하회탈마냥 자글자글한 주름에 함박웃음을 웃으며 인사한다. 이웃집 품앗이 가는 길이란다.
“저분들이 그나마 살아계시니 고추농사며 깻잎농사도 짓는 거예요. 정말 농촌에는 일할 사람이 없어요. 요즘 하우스농사 하는 집에서는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해요.”
도시 공장에만 있는 줄 알았던 외국인 노동자가 농촌에도 지속적으로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이젠 우리 농산물도 우리 손으로 지어먹기 어려운 현실히 새삼 절감된다.
점심식사 후엔, 곧바로 포대자루를 하나씩 들고 인근 들로 나섰다. 효소를 담글 풀을 거둘 참이다. 식용풀과 꽃은 모두 발효 효소엑기스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 이 ‘도시촌놈’은 풀을 거두는 것보다 식물도감에서나 보던 꽃과 풀 이름을 대조하는데 더 정신을 빼앗겼다. 거둔 풀은 흑설탕과 풀을 잘 섞어 버무려 옹기항아리에 담고, 한지로 단정히 입구를 막았다. 가을이면 달콤한 엑기스를 잔뜩 우려 낼 것이다.
효소담그기가 끝나자 옆 개울가에서는 곧장 천연 염색판이 벌어졌다. 황토 한 바가지 풀어헤치고 광목을 주물럭 주물럭 이겨댄다. 황톳물을 들인 천은 베개며 이부자리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청천분회 김용달(루카)씨가 효소담그기와 천연염색을 두루 살폈다.
“자연은 같이 사는 법 압니다”
뉘엿뉘엿 해가 저물자 농촌의 하루 일과는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농촌 일과는 해뜨기 전 이른 새벽부터 시작돼 대개 해가 지면서 마무리된다.
오늘 모내기에 가장 열심이었던 한강본당 김정이(엘리사벳)씨는 “농민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우리의 먹거리를 지어주시는 분들과 신뢰를 쌓고, 농업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되새기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발걸음 끝, 김용달씨가 한마디 덧붙였다.
“식물은 자기가 선 자리를 한번도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숲의 나무들은 빽빽하게 서 있어도 옆의 나무가 자랄 공간으로 가지를 뻗지는 않습니다.
식물도 동물도 같이 사는 법을 압니다. 자기만을 위한 경쟁을 강조하는 것은 오직 사람 뿐이지요. 농촌에 와서 같이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같이 햇빛을 받고 크는 법을 배웠습니다.”
늦은 밤, 집에 돌아오니 발톱 사이사이에 끼인 진흙이 모내기의 기억을 되살려준다.
쌀과 잡곡, 유정란, 고추, 느타리버섯, 늙은 호박, 토마토, 사과, 머루…. 각종 먹거리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농민들의 부지런한 손길에 보답하듯 탐스럽게 영글고 있으리라.
사진설명
▶서울 한강본당 신자들이 손모내기에 동참하고 있다.
▶청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염선업 회장이 모내기 소리 한가락 구성지게 뽑아내고 있다.
“하느님은 농부이십니다!”(요한 15, 1)
이번호 취재 현장을 결정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성경구절이다. 쌀개방이니 FTA 인준이니 어수선한 사회분위기, 그 안에서 비신자들 귀에도 익숙해진 구절이기 때문인 듯. 농업과 관련한 첨예한 사회 현안들, 귀동냥으로만 듣고 있는 농촌 삶에 대한 선입견 등을 미리 논하진 않기로 하고, 모내기 때 입을만한 반바지를 얼른 취재가방에 구겨넣었다. 오늘은 친환경 우렁이쌀‘밥’을 짓기 위한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본다.
새봄이 시작되면서부터 취재팀에서는 모내기 현장을 물색해왔다. 하지만 일정 맞추기가 녹록찮았다. ‘올봄은 그냥 보내야하나’ 하던 중 서울 한강본당 신자들이 모내기를 떠난다기에 냉큼 따라붙었다. 현장은 청주교구 청천분회가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 일대.
서울에서부터 이동거리가 만만찮다. 결국 도착시간은 여느 농민들이 아침 일과를 마치고 새참을 먹을 시간쯤이었다. 부랴부랴 논에 철퍼덕 뛰어들었다.
논주인은 청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염선업(이시도·?44) 회장이다. 일손을 도우러(?) 온 이들을 위해 오늘은 손모내기를 한단다. 이곳도 여느 농촌과 다름없이 최근엔 모두 이앙기로 모내기를 한다.
막상 논에 들어서고 보니 일손 거든답시고, 못줄 잡고 모 심는 폼내며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서는 물색없는 짓을 하게 될까 내심 걱정스러웠다.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진흙 촉감이 우선 반갑다. 모를 대여섯 포기씩 나눠 잡고 손가락과 함께 슬쩍 진흙에 내려꽂는다. 그런데 웬 걸. 조심조심 심은 모는 물 위에 둥둥 뜬다. 진흙에 잘 박았다 싶으면 보란 듯이 옆으로 눕는다. 잘 심었다 싶으면 물 속에서 잠수를 한다. 회원분들이 보기 전에 수습하느라 마음만 분주하다.
‘못줄잡이나 한번 해볼까?’라고 떠올리던 찰나, 한 회원분이 못줄잡이한테 잘 보여야 모내기가 잘된다고 말한다. 긴긴 줄을 적당한 간격으로 팽팽하게 옮기는게 보통 일은 아니리라. 때문에 예전엔 논주인이 못줄잡이에게만 따로 술상도 봐주곤 했단다.
몇십분이나 지났을까. 허리가 뻐근하다. 주변 회원들이 “이러니 농민들 허리가 아프지 않을 수 있나”라고 거든다.
모를 심어대는 손발이 드디어 척척 맞아들어갈 때쯤, 염회장이 모내기 소리 한가락 구성지게 뽑아낸다. ‘얼쑤’ 추임새가 절로 난다.
‘포기’한 삶 아닌 ‘선택’한 삶
청천면의 모내기는 일반 모내기보다 늦은 6월 초순까지 이어진다. 모든 농사는 무농약, 친환경농법으로 지어, 논농사의 경우 벼물바구미가 한차례 지나가고 모내기를 해야한다. 이곳에선 육모 때부터 목초액과 효소를 이용해 벼 종자를 키우고 농약은 전혀 쓰지 않는다. 또 잡초는 농약 대신 우렁이가 먹어치운다.
염회장은 이 마을에서 4300여 평의 논을 소작한다. 모판 내고, 우렁이 사고, 각종 기계를 빌리는 비용을 이래저래 빼면 풍작이 돼도 수확기에 손에 쥐는 돈이 400~500여 만 원이 될까. 그래서 밭일에도 열심이다. 밭에서는 감자와 배추, 늙은 호박 등을 일군다. 추석과 설날 등 명절 전에는 알음알음 버섯재배에도 나선다.
“솔직히 귀농할 땐 농부도 직업으로 계산해보면 기본 벌이는 괜찮겠다 싶었지요. 직접 살아보니 힘겹기는 하네요.”
하지만 염회장은 먹고사는 기준을 조금만 바꾸면 쉬운 일이라고 덧붙인다. 부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면, 아이들 교육을 생각하면 더더군다나 잘한 선택이라고 자신감을 보인다.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편협한 평가에선 다소 무책임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농촌에서 더불어 사는 것을 배우며 자유로움을 얻었다”고 강조한다. ‘포기’한 삶이 아니라 ‘선택’한 삶이라는 것이다.
온전한 먹거리에 대한 열정
최근 염회장은 요즘엔 논밭일 보다 농민회 일에 훨씬 더 분주하다.
그는 청주교구에서 ‘최단기’ ‘최연소’ 가톨릭농민회 회장 선임 기록을 가진 인물이다. 땅과 함께 평화를 누리고 싶어 귀농한 지 8여 년. 논농사를 지은 지는 5여 년 남짓 된 ‘초짜 농부’지만 땅에 대한 사랑 만큼은, 온전한 먹거리에 대한 열정 만큼은 남다르다.
특히 염회장을 비롯한 청천분회 회원들은 올바른 생태영성을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신앙인들이다. 가장 먼저 각종 생명농법을 소개하고 실천하는데 똘똘 뭉쳤다. 환경보호와 공동체정신을 함양하는데 쉼없이 움직인다.
정권이 바뀌고, 사회가 급변해도 늘 소외되고 관심밖에 머물러 있는 농민들을 위해 아낌없이 역량을 쏟아붓는다.
요즘엔 미국 쇠고기 수입 재협상 촉구를 비롯해 FTA 저지, 대운하 반대 활동 등으로 분주하다. 지난 3여 년간은 지역 내 24개 단체와 연대해 급식 쌀 공급 문제에 힘썼다. 덕분에 지난해부터 괴산군 일대 학교에서는 급식용으로 친환경쌀을 공급받는다. 친환경쌀 급식이 전국적으로 펼쳐질 때까지 관심의 끈은 놓지 않을 예정이다.
“농업은 단순히 보호대상이 아닙니다. 자연과 함께 건강히 살아가고, 우리 후손들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남겨주기 위해 더불어 사는 지혜로운 삶이 필요합니다.”
“요즘 농촌에 일할 사람 없어요”
평야 구석 오목히 자리잡은 작은 논이라 모내기는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진흙을 씻어내기 위해 논 옆 개울에 발을 담그자 알싸한 차가움이 온몸을 감싼다.
그사이 회원들이 갓 버무린 메밀묵에 시원한 막걸리 사발을 돌린다. 땀흘려 일한 후에는 농주(農酒) 한사발 시원하게 들이켜야 한단다.
길가던 마을주민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 사이 할머니들을 한 가득 태운 트럭도 우리 일행 옆에 섰다. 하회탈마냥 자글자글한 주름에 함박웃음을 웃으며 인사한다. 이웃집 품앗이 가는 길이란다.
“저분들이 그나마 살아계시니 고추농사며 깻잎농사도 짓는 거예요. 정말 농촌에는 일할 사람이 없어요. 요즘 하우스농사 하는 집에서는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해요.”
도시 공장에만 있는 줄 알았던 외국인 노동자가 농촌에도 지속적으로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이젠 우리 농산물도 우리 손으로 지어먹기 어려운 현실히 새삼 절감된다.
점심식사 후엔, 곧바로 포대자루를 하나씩 들고 인근 들로 나섰다. 효소를 담글 풀을 거둘 참이다. 식용풀과 꽃은 모두 발효 효소엑기스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 이 ‘도시촌놈’은 풀을 거두는 것보다 식물도감에서나 보던 꽃과 풀 이름을 대조하는데 더 정신을 빼앗겼다. 거둔 풀은 흑설탕과 풀을 잘 섞어 버무려 옹기항아리에 담고, 한지로 단정히 입구를 막았다. 가을이면 달콤한 엑기스를 잔뜩 우려 낼 것이다.
효소담그기가 끝나자 옆 개울가에서는 곧장 천연 염색판이 벌어졌다. 황토 한 바가지 풀어헤치고 광목을 주물럭 주물럭 이겨댄다. 황톳물을 들인 천은 베개며 이부자리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청천분회 김용달(루카)씨가 효소담그기와 천연염색을 두루 살폈다.
“자연은 같이 사는 법 압니다”
뉘엿뉘엿 해가 저물자 농촌의 하루 일과는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농촌 일과는 해뜨기 전 이른 새벽부터 시작돼 대개 해가 지면서 마무리된다.
오늘 모내기에 가장 열심이었던 한강본당 김정이(엘리사벳)씨는 “농민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우리의 먹거리를 지어주시는 분들과 신뢰를 쌓고, 농업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되새기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발걸음 끝, 김용달씨가 한마디 덧붙였다.
“식물은 자기가 선 자리를 한번도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숲의 나무들은 빽빽하게 서 있어도 옆의 나무가 자랄 공간으로 가지를 뻗지는 않습니다.
식물도 동물도 같이 사는 법을 압니다. 자기만을 위한 경쟁을 강조하는 것은 오직 사람 뿐이지요. 농촌에 와서 같이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같이 햇빛을 받고 크는 법을 배웠습니다.”
늦은 밤, 집에 돌아오니 발톱 사이사이에 끼인 진흙이 모내기의 기억을 되살려준다.
쌀과 잡곡, 유정란, 고추, 느타리버섯, 늙은 호박, 토마토, 사과, 머루…. 각종 먹거리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농민들의 부지런한 손길에 보답하듯 탐스럽게 영글고 있으리라.
사진설명
▶서울 한강본당 신자들이 손모내기에 동참하고 있다.
▶청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염선업 회장이 모내기 소리 한가락 구성지게 뽑아내고 있다.
주정아 기자 ( stella@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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