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2010-08-25 오후 4:47:45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825152742&Section=03
4대강 사업으로 완성된 '녹색 파시즘'
[강은 강처럼 흐르게 하라9·끝] 자연을 흉내 낸 가짜 '녹색 칠'
작가선언 6.9와 함께 4박 5일간 낙동강 순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날, 내가 연대하는 홍대 앞 철거 농성장 두리반에 전기가 끊겼다. 그리고 단전 35일이 넘어가는 동안 아직도 암흑 같은 이곳에서 사람들은 열대야에 선풍기도 없이 버티고 잠을 잔다. 개발이 그것으로 이익을 얻는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해 진행될 때 그리고 그것으로 피해를 입게 될 대다수의 약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을 때, 아무리 합법적으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 단박에 깨닫게 된다. 10분만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두리반 농성장에 앉아 있다 보면 말이다.
전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삶의 기반이 박탈되었을 때 존재는 벼랑 끝의 위기로 내몰린다. 무엇보다 이것은 모욕이다. 전기 없이 살라는 것은 원시시대로 돌아가 야만적인 방식으로 생존해보라는 고문이다. 세탁기도, 냉장고도, 형광등도, 컴퓨터도, 보온밥솥과 전자레인지도 없이 비참하게 견뎌보라는 모멸이다. 그 덕분에 두리반에 오면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명료하게 보인다. 작년에 나는 용산참사 현장에서 비정한 시대를 보았고, 올해 나는 '사막의 우물' 두리반에서 생활하며 개발에 중독된 이 세상을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이상엽 |
완성된 에코 파시즘
애석하게도 이 세상은 지금 '환경 참사'로 엉망이 되어 가고 있다. 특히 2010년은 최악의 환경 참사로 기억될 해임이 분명하다. 지진이 일어난 아이티에서, BP가 원유 유출을 일으킨 멕시코만에서, 홍수가 덮친 파키스탄에서 그리고 화산 폭발과 태풍과 물난리와 폭염과 가뭄으로 지구촌 전역에서 셀 수 없는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생태적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춰보면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4대강 사업이라는 희대의 녹색 재앙이 벌어지고 있으니 오히려 그 선두에 섰다고 말해야 옳겠다. 멀쩡히 흐르는 아름다운 강들을 처참히 난도질해 거대한 물웅덩이로 바꾸는 이 사업이야말로 가장 죄질이 나쁜 생명 죽이기가 아닌가.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반성해보다가 나는 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엊그제 이명박 대통령이 세계산림과학(IUFRO) 총회에서 "서울시장 시절 저는 도심에 물과 숲이 어우러진 공원을 만들었다"면서 "서울은 맑은 물에 은어가 헤엄치는 도시"가 되었다고 자랑했다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에코 파시즘이기 때문이다. 먼저 토건 자본이 달려들어 원래의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자연을 흉내 낸 가짜 녹색칠을 해놓는다. 그리고선 환경이 살아났다고 떠벌린다.
이것은 환경을 살린다는 미명 하에 전체주의적 정책을 강제로 동원하는 에코 파시스트들의 전매 특허나 다름없다. 토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죽어가는 자연도 포클레인으로 싹쓸이한 뒤 콘크리트를 쏟아 붓고 그 위에 잔디 좀 깔고 조경수 몇 그루 심고 전기모터를 돌려 쉴 새 없이 물을 흘려보내면 되살릴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아니, 그렇게 해서 서울에 아름다운 숲과 멋진 강물을 창조해냈다는 이명박 씨의 자화자찬을 듣다 보니 나는 창세기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성남훈 |
그는 지금 자신을 신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더니 그는 전지전능한 힘을 동원해 자연을 살리겠다고 난도질을 한다. 이건 딱 봐도 안다. 정치경제 영역에서 시작된 이 정권의 파시즘으로의 회귀가 어느새 4대강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녹색 파시즘이 아니고서야 이 사업이 이렇게 전격적으로, 모든 반대를 틀어막은 채 막무가내로 진행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4대강을 청계천처럼 만들라!
포클레인이 밤낮없이 작업 중인 낙동강 현장을 돌아보는데, 각 공구 현장소장들은 200년 만에 한 번 오는 홍수가 와도 끄떡없다고 자신만만해했다. 설계 홍수보다 훨씬 큰 홍수가 와도 견딜 수 있도록 일괄적으로 슈퍼 제방을 쌓고 있다는 것이다. 모래사장을 없애고 강바닥을 모두 파내 콘크리트로 바르고 수심을 일괄적으로 6m로 유지하자니 당연히 주변 농지에 비해 수위가 올라갈 수밖에 없고, 그러자면 홍수를 막기 위해서 더 높은 제방을 쌓을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아, 4대강 사업에 이렇게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는 이유를 알겠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사업을 강행하려면 절대 권력의 지시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4대강을 서울숲과 청계천처럼 만들라는 높으신 각하의 명령이 있었던 것이다. 위대한 천지창조를 또 한 번 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낙동강 순례단을 안내해준 분들의 설명에 의하면 태백산, 소백산을 이루는 모래들이 낙동강 물길 따라 누천년을 굽이굽이 흐르다 서서히 퇴적되어 보드라운 모래사장들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 옆으로 수달과 고라니와 물새들이 노니는, 자연 습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경천대의 아름다움은 자연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앞에서 경건해졌다. 그런데 영겁의 세월이 만들어낸 이 아름다움을 이명박 정권은 단 몇 년 만에 덤프 트럭과 준설선과 포클레인을 동원해 살려낼 수 있다고 한다.
ⓒ조우혜 |
4대강을 수술대 위에 올려라!
죽지 않은 것을 살려내겠다고 달려드는 꼴이 마치 어떤 돌팔이 의사를 보는 것 같다. 내 동맥과 정맥이 모두 막혔으니 지금이라도 수술을 해서 혈관을 모두 파내고 거기에 인공 판막이를 수십 개 설치해서 원활히 흐르던 피를 가둬두자고 그는 말한다. 나는 거부해보지만 힘이 부족하다. 자신이 명의라도, 아니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라도 되는 것인 양 여기는 그 분은 그래야 빈혈을 막고 혈관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군대까지 동원해 강제 집행을 한다.
뿐만 아니라 내 위장 역시 모두 오염되어 긁어내야 한다면서 나를 지금 강제로 수술대 위에 눕힌다. 소화를 잘 시키려면 일단 모조리 파내고 음식물을 가둬둘 위문과 유문을 수십 개 만들어 열었다 닫았다 해야 한다면서 내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내고 있다. 수술이 끝나고 나면 나는 인조 인간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내 생명은 사라지고 사이보그처럼 작동하는 인공 장기가 들어설 것이다.
그래도 겉으로는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전기와 석유로 작동하는 서울숲과 청계천은 인조인간과 마찬가지로 가짜다. 동물원이고 인공어항에 불과하다. 4대강 사업이 끝나고 나면 여기저기 가짜 생태공원과 위락시설들이 들어설 것이고, 배가 떠다닐 것이다. 슈퍼제방 위로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져 친환경 티를 내겠지만 실은 자동차 전용 도로가 만들어져 주변 생태계는 단절될 것이다.
내 목숨이 달려있다
나는 평화활동가로 본격적인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총으로 대표되는 무기가 실제로는 평화를 위협하는 모습을 보며 그 총을 내리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 그런데 총뿐이 아니었다. 평택 대추리에서 그리고 용산 참사 현장에서 포클레인으로 대표되는 폭력이 농토를 갈아엎고 건물을 파괴하고 생명을 쫓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포클레인의 삽날 역시 멈추기 위해 힘을 기울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랬는데 힘이 부친다. 팔당에서, 성미산에서, 두리반에서 그리고 4대강 현장 곳곳에서 포클레인을 앞세운 토건 자본은 개발을 멈추지 않는다. 멸종되어 가는 생명 앞에서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나의 목숨이 수술대 위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이것은 실제로 내 생명이 달린 문제다.
ⓒ노순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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