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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서울에 포탄이 떨어지는 현실적인 상상 /한겨레21

by 마리산인1324 2010. 11. 29.

<한겨레21> 제838호(2010.12.03)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8555.html

 

 

 

서울에 포탄이 떨어지는 현실적인 상상

 

 

먼 나라 일이라 여겼던 전쟁의 공포를 일상으로 느끼게 된
서울 시민이 전쟁과 평화를 생각하다

 

 

살며시 방문을 열었다. 곯아떨어진 아내가 밤늦게 남편이 온 것도 모르고 잔다. 거친 숨소리만 들린다. 그 옆의 다섯 살 된 딸이 이불을 차내며 옆으로 누웠다. 마루에는 한 달 전에 사온 금붕어가 어항 속에서 꼬리를 흔든다. 딸아이 방에는 종이로 만든 왕관 옆에 알쏭달쏭한 동물을 색연필로 그리다 만 스케치북이 놓여 있다. 평화롭다. 순간 끔찍한 상상이 덮친다. 11월23일 연평도에 떨어진 포탄이 서울의 우리 아파트에 떨어졌다면….

 

북한에서 수도권까지 40km

 

» 분쟁과 갈등으로 치러야 할 대 가는 연평도 포격에서 뼈저리게 절감됐다. 연평도 포격 하루 뒤인 11월24일, 포격 현장에 승용차가 완전히 파괴된 채 나뒹굴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2008 국방백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북한은 평양~원산선 이남 지역에 지상군 전력의 약 70%를 배치하고 있다. 특히 전방 지역 170mm 자주포 및 240mm 방사포는 수도권을 사정권에 두고 있어 현 진지에서 수도권에 기습적인 대량 집중사격이 가능하다.” 북한군 전투기는 약 40%가 평양~원산 이남 기지에 전진 배치돼 있다. 북한은 18만 명의 전방 특수부대로 육상 게릴라전도 준비하고 있다. 1994년 북한 협상 대표는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놨다. 한국전쟁 뒤 북한의 첫 남한 영토 직접 공격인 11월23일 연평도 포격은 더 이상 이런 두려움을 쓸데없는 망상으로만 치부하기 어렵게 만든다. 인구의 절반이 모여사는 수도권은 북한과 기껏 40km 떨어져 있다. 한강의 다리가 파괴되면 서울 강북은 고립된다.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 개성∼판문점∼문산∼서울로 진격해, 개전 하루 만에 의정부를 함락하고 사흘째 오전에 서울을 점령했다. 한국군과 미군이 전진 배치된 북한 포대를 잠재운다고 해도, 그건 막대한 초기 피해를 당한 다음일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자. 1995년 6월 서울에서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사망 501명, 부상 937명이라는 광복 이후 최대 인명 재해가 발생했다. 1995년 4월 대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사고 때는 101명이 숨지고 202명이 다쳤다. 건물 346채, 자동차 152대가 파손됐다. 1994년 10월 서울 성수대교가 무너지면서 버스 등이 추락해 32명이 죽고 17명이 다쳤다. 작은 섬 연평도가 아니라 대도시에 포탄이 몇 발이라도 떨어질 경우 벌어질 피해는 재앙이다.

 

“북한은 평양~원산선 이남 지역에 지상군 전력의 약 70%를 배치하고 있다. 특히 전방 지역 170mm 자주포 및 240mm 방사포는 수도권을 사정권에 두고 있어 현 진지에서 수도권에 기습적인 대량 집중사격이 가능하다.” - ‘2008 국방백서’

 

연평도 포격의 충격은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공포는 희생자 규모를 훨씬 뛰어넘었다. 포탄에 놀라 달아나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속 주민, 아이와 노모를 업고 공포에 질린 채 연평도를 빠져나오는 행렬, 두려움에 떨며 대피소에 넋 잃은 모습으로 모여 있는 주민들, 반파된 집과 검은 연기, 희생자 가족의 통곡…. 먼 중동이나 아프리카 남의 나라 일로 여겼던 낯선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1999년 6월 1차 연평해전과 2002년 6월 2차 연평해전은 군인끼리의 해상 교전이었지만, 이번 공격은 민간인이 희생돼 질적으로 다른 공포다. 북한이 쏘아댄 170여 발, 피어오르는 연기는 우리가 예측불허의 북한이라는 위험한 집단과 총을 겨누고 있다는, 자주 잊고 사는 현실을 소름 끼치도록 깨닫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분단, 휴전 중이었다. 이 상상과 공포만으로도 남북 갈등과 분쟁의 대가는 막대하다.

 

이스라엘보다 높은 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

 

삼성경제연구소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경제효과를 쏘나타자동차 100만 대, 30만t급 초대형 유조선 165척 수출과 맞먹는 21조5500억~24조6400억원으로 예상했다. 한국무역협회는 31조2700억원으로 평가했다. 99%는 국가브랜드 홍보효과다. 이런 경제효과를 검증하기는 어렵지만, 연평도의 치솟는 연기가 전세계에 생중계된 상황은 G20 개최에 따른 경제효과보다 영향이 적다고 할 수 있을까? 서울에 머물고 있는 한 재외동포는 연평도 포격 뒤 “괜찮냐?”는 전화와 전자우편을 외국의 친구들에게 여러 통 받았다고 전했다. 여행사에는 한국 관광을 취소하겠다는 전화가 줄을 이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라스무센이 11월2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68%가 “연평도 포격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곧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물론 전문가들은 북한이 서울을 공격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이는 사실상 전면전을 뜻하고, 북한에 자멸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8 국방백서’를 보면, 한국과 북한의 경제력 차이는 2007년을 기준으로 36.4배에 이른다. 무역총액은 한국이 247.6배나 된다. 남북 군사력은 북한이 수적으로 많지만 질적으로는 한국이 크게 앞선다. 하지만 서울이 아니더라도 서해 5도 등에서 제2, 제3의 국지적 도발이 재발할 가능성은 커졌다. 북한군은 개머리 등 서해안 주요 기지와 섬에 130mm 대구경포(사거리 27km)와 170mm 자주포(사거리 27km) 등 해안포 및 곡사포 1천여 문을 배치했다. 서해 5도는 북한 해안포 진지에서 10여km 거리에 있다. 이번에도 연평도 1·2차 포격 뒤 공군의 KF16 및 F15K 전투기 8대가 출격하고, 2대는 ‘슬램ER’(사정거리 250km의 공대지미사일)을 장착한 상태였다. 확전을 우려해 폭격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공격이 이뤄졌더라면 추가 인명 피해와 확전은 불가피했다.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국지전에 대비한 ‘작전계획 5028’을 세워놓고 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의 공격으로 민간인이 숨지고 신뢰가 깨진 상황에서 평화비용을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의 충격과 공포가 생생한 지금이 오히려 평화비용을 따져볼 좋은 기회다. 통일연구원이 2005년 10월 발간한 ‘평화비용의 의미와 실익’을 보면, 통상 통일 이전 한반도 평화 유지와 정착을 위해 지불하거나 지불해야 할 비용을 모두 합쳐 ‘평화비용’으로 부른다. 한반도 전쟁 억지 및 안보 불안 해소를 위해 직간접적으로 지불하는 모든 형태의 비용이다. 넓은 의미로는 남북경협 및 대북지원에 드는 비용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평화비용에 포함한다.

 

남북한 간 군사적 대치, 북한 핵문제 등 한반도 불안정성은 국제시장에서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또는 한국의 ‘컨트리 리스크’의 가장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한국은 국가불안 정도를 지표로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분쟁이 되풀이되는 이스라엘과 비슷하거나 최근에는 오히려 높을 때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에서 쌀·비료 지원 등 경제적 대북지원은 평화적 환경 조성의 기반이 돼왔다. 북한의 인도적 상황 개선은 물론, 군사적 긴장 요소를 제거하는 평화유지를 넘어 적극적인 한반도의 평화 만들기 수단인 것이다. 개성공단은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으로서 대표적인 사례다.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은 개성공단에 대해 “북한의 전략적 군사시설을 경제시설로 만들고 북한이 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북한에 4조원을 지원했다며 ‘퍼주기’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평화비용의 성격상 이것은 남북한 통일에 대비하는 사전적 비용이다. G20 1박2일 행사의 경제적 효과가 21조~31조원에 이른다면, 남북 평화를 위해 10년간 쓴 4조원이 감당하지 못할 큰돈은 결코 아니다. 통일 시점까지 서독의 대동독 지원은 연평균 1인당 50달러, 통일 직전인 1989년은 서독 국내총생산(GDP)의 2.9%에 이르렀다. 최근 5년 내 최다를 기록한, 2007년에 집행된 남북협력기금 비용은 7150억원으로, 국민 1인당 약 1만5천원이다. 2005년 통일연구원은 서독의 동독 지원 규모와 같은 수준이 되려면 대북지원은 2000년 대비 1인당 지원 규모에서 20배 정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는 170배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평화비용은 남북한 통일에 대비하는 사전적 비용이자 수익적 성격을 지녔고, 비용보다 실익이 더욱 크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2011년 국방예산안을 올해보다 5.8% 증가한 31조2795억원으로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서해 5도의 전력 강화를 위해 2600여억원이 증액되면, 국방예산안은 약 31.5조원으로 늘어나고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9%에서 6.6%로 늘어나게 된다.

 

대화 채널마저 끊어버린 MB 정권

 

» 인도적 대북지원 (민간 지원 포함)

대북지원과 경제협력을 통한 남북 화해 분위기는 그동안 긴장 완화의 핵심 수단으로 작용했다. 북한이 도발하면 잃을 게 더 많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다. 남북의 서해교전은 2009년 11월 대청해전을 빼면 김대중 정부에서 두 차례 일어났다. 1999년 6월 1차 연평해전 뒤 북한은 ‘금강산 관광선을 띄워도 되냐’는 현대아산의 문의에 “서해 사태는 금강산 관광과 무관하다. 정상적으로 운항되길 원한다”고 회신하는 등 남북관계에 큰 영향이 없었다. 2002년 6월 2차 연평해전 때도 북한은 “현지에서의 우발적 사고다.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뒤 평화 무드가 조성되고, 미국의 대북특사 방북이 거론되던 시점이다. 또 북한이 신의주와 개성에 특구를 설치하고, 북한식 개혁·개방 등을 모색하며, 한국·일본·중국·러시아 등과 협력을 논의하던 시기다. 당시 이용된 핫라인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이다. 그 뒤 2002년 8월12~14일 7차 남북 장관급 회담 개최 등을 계기로 긴장의 강도가 누그러졌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심각한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통일 시점까지 서독의 대동독 지원은 연평균 1인당 50달러, 통일 직전인 1989년은 서독 국내총생산(GDP)의 2.9%에 이르렀다. 최근 5년 내 최다를 기록한, 2007년에 집행된 남북협력기금 비용은 7150억원으로, 국민 1인당 기준 약 1만5천원이다.

 

하지만 이번 연평도 포격은 우발적 충돌이 아니다. 북한은 분명한 의도를 갖고 치밀하게 공격을 감행했다. 지금은 금강산 관광과 남북교역 및 인도적 지원 등이 없으니 잃을 게 없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는 전투가 일어나면 상호 비방은 해도 마주 앉아 회담을 하는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런 도발을 했는지’ 물어볼 채널조차 끊어졌다. 암담하다”고 말했다. 북한으로서는 지금과 같은 봉쇄와 고립 상태에서 벗어나 체제를 보장받는 게 최대 목표지만, 남북·북-미 대화가 중단된 상태에서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다.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이번 포격과 관련해 ‘김정은 후계 체제 안정을 위한 내부 결속’이라는 동기를 무시할 수는 없어도 “미국과 한국을 자신이 원하는 협상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북한의 고강도 극약 처방”(김근식 교수)이라는 분석에 동의한다.

 

올해 남북협력기금 중 정부출연금 0원

 

» 남북 군사력 비교 (2008년 12월 기준)
 

우리와 마찬가지로 미국도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별다른 추가 제재 수단이 없어 중국만을 쳐다보는 상황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국이 북한에 대해 분명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중국의 대북지원을 끊어야 한다는 요구다. 국제사회는 중국을 바라보지만 원자바오 총리는 11월24일 북한을 비난하는 대신 “관련국은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다른 말을 했다. 한국 정부는 중국 정부를 설득해야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는 ‘20년 만에 최악의 상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은 이런 상황에서 11월26~27일로 예정됐던 양제츠 외교부장의 한국 방문을 갑자기 연기해, 한-미 서해 군사훈련에 대한 항의로 해석되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24일 6자회담 재개를 강조하는 등 한국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과 거리를 두고 있다. 동북아의 안정은 중국 대외정책의 최우선 목표고, 오바마 대통령도 재선을 앞두고 북한 문제에서 성과가 필요한 시점이다. 언젠가는 국면 전환이 불가피하다. 이들의 주도로 6자회담이 재개되면 한국이 설 자리는 없어질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한계가 드러난 대북강경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래 살기 어렵고, 김정은 후계 체제는 실패할 것이며, 압박하면 북한이 굴복할 것’이라는 논리에 젖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북한이 무릎 꿇기 전에 얼마나 더 희생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천안함 사태 뒤 항공모함까지 동원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했지만, 북한은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 공개라는 강수를 선택하더니 이번 공격에까지 이르렀다. 북한에 대한 압박과 강경책은 결코 답이 될 수 없으며, 긴장과 대립에 따르는 비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드러낸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이 지난해 6자회담 이전에 북-미 양자협상 방침을 밝히자, 핵 포기와 경제적 지원 문제의 일괄타결을 통해 단박에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게 만들겠다는 ‘그랜드바겐’ 주장으로 북-미 협상을 반대했다. 또한 통일부 자료를 보면, 2006년 1조6266억여원에 이르렀던 남북협력기금 조성액은 올해 9월 현재 5152억여원으로 떨어졌다. 2006년 당시 6500억원에 이르던 정부 출연금이 올해 0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2009년에는 총조성액이 1554억여원으로, 최고를 기록한 2006년에 비해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집행 현황도 마찬가지다. 2007년 7157억원에 이르렀던 집행액은 올해 10월 487억원으로, 약 15분의 1에 그쳤다. 당국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은 2007년 3613명이었지만, 2008년에는 단 한 명도 이뤄지지 않았고 지난해는 888명에 그쳤다.

 

“안보 철학이 없는 이명박 정부”

 

»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 교류협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 10월25일, 현 정부 처음으로 남북협력기금을 재원으로 마련한 대북 수해 지원 쌀 5천t을 실은 배가 전북 군산항에서 환송을 받고 있다.한겨레 신소영

무고한 민간인까지 희생시킨 도발의 책임은 분명 북한에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분노와 흥분이 아니라, 앞으로 제2, 제3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조건과 상황을 만들고 남북 평화의 해법을 찾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한국 정부가 정책을 전환할 것인지 여부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북-미 대화를 통한 고립 탈피다. 역사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의 개방은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이뤄졌다. 리비아나 베트남 모두 그러했다. 한반도의 경우 남북과 북-미가 함께 가야 한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은 빌 클린턴 행정부 임기 말 북-미 관계가 개선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양무진 교수는 “결국 한국이 다리를 놔야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고 북한의 개혁·개방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잘못은 분명 북한에 있고, 북한은 사과해야 한다. 고장난 자주포를 교체하고 북한의 추가 공격에 대비하는 것은 기본이다. 김근식 교수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적절한 관계를 맺으면서 평화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에 남한 사람 약 700명이 인질로 잡혀 있고 민간인 수천 명의 희생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왜 전투기 폭격을 하지 않았느냐’는 흥분보다는 확전을 우려한 국방부의 대처가 현명했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를 윽박지르면 잠시는 그칠지 몰라도 다시 떼를 쓰고 조르기 마련이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11월23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더 이상의 확전은 안 된다”며 “평화와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남북 교류협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장은 장성급 회담 등을 통해 군사적 행동을 자제한다는 합의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박선원 전 비서관은 “평화를 말하기 전에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무력충돌을 막기 위한 대화를 우선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다음은 불안한 지금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 평화협정 체결, 상호 불가침 등을 논의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도 “(연평도 공격의) 북한 메시지는 정전협정 대신 영구적 평화조약을 수립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이 연평도를 공격한 데는 북방한계선(NLL)을 분쟁지역화함으로써 정전체제 문제를 정면에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북한이 끊임없이 정전협정 무력화를 시도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국전쟁 60주년이 되는 올해는 불안한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양무진 교수는 “‘대화’와 ‘압박’의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화를 지키면서 평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양 교수는 “튼튼한 국방과 활기찬 남북협력이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현 정부는 국방에만 초점을 맞췄고 평화를 지키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전쟁을 불사하는 적개심이 아니라 전쟁이 아닌 길을 개척하는, 보복의 악순환을 끊는 현명한 정치가 지금 한반도에도 필요하다. 1999년의 1차 연평해전 1년 뒤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하지만 지금 전망은 어둡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길을 택하려면 지난 3년간의 대북 노선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박선원 전 비서관은 “대북관계는 상호작용의 결과인 만큼 뼈저린 자기반성과 함께 ‘튼튼한 안보와 국방을 바탕으로 한 화해협력으로 한반도 평화를 안착시키고 북한의 장기적 안정을 통한 통일로 간다’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지만, 현 정부는 보수적 집단의 대북강경 정책의 레토릭만 강화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군사외교전문지 <디앤디포커스>의 김종대 편집장은 “초기에는 신중하다가 조·중·동이 떠들면 강경주의로 바뀌는 식의 위기관리를 보며 안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철학·전략·시스템이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고 비판했다.

 

척박한 토양에서 평화를 만들어야

 

강경책은 효과는 단기적이지만, 갈등과 더 깊은 분쟁의 불씨가 된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예방약 1g이 치료약 1kg보다 낫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치르는 평화비용은 결코 바가지가 아니다. 그는 지난 8월30일 이런 글을 자신의 홈페지에 올렸다. “분단 이후 한반도라는 토양이 척박해진 가장 큰 원인은 주민들이 굶주린 가운데 핵무기를 만들고 인권을 탄압하고 시대착오적 세습을 도모하는 북한 정권이다. 이런 환경하에서도 우리는 평화, 번영, 통일이라는 작물을 길러야 하는 운명을 갖고 있다. 북한 정권을 포함한 그 누구를 탓하고만 있을 수가 없다.” 평화는 진정 돈으로 사면 안 되고 살 수도 없는 것일까? 아이의 뺨에 입 맞추고 침대에 누웠다.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