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912호(2011년 02월 15일)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102081550031&code=115&s_code=n0002
[표지인물]“잘못된 선거가 낳은 결과 심각하게 깨달아야”
“곤이부지(困以不知·곤경을 겪고도 깨닫지 못한다)에서
곤이지지(困而知之·곤경을 겪고 깨닫는다)로”
감옥에서 20년을 산 사람이 있다. 흔히 말하는 장기복역자다. 27세 생일에 감옥으로 끌려가 47세에 세상에 나왔으니, 젊은 시절을 감옥에서 몽땅 보냈다. ‘통일혁명당’ 흔히 ‘통혁당 사건’이라는,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간첩사건에 휘말려 무기수로 20년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는 기억하기 싫어할 법한 20년 감옥 생활을 “나의 대학 시절”이라고 표현한다. ‘긍정’의 힘이다. 사람들은 그의 말과 글에서 위안과 용기를 얻고, 사색을 하게 된다.
시대의 석학으로 불리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힘이다. 그는 <주간경향>과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탁현민의 시사콘서트’ 첫 번째 강연자로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 나섰다. 이번 공연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힘들어 한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든 위로하고, 일어설 수 있는 소통의 장소로 만들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이번 강연의 주제는 자유(자기에 대한 이유)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가 오랫동안 부자유스러운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유의 개념에 대해 강연을 할 수 있었다. 자유라는 근본적인 담론을 통해 이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시사 문제를 직접 언급하는 것보다 철학적인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곳에서 신 교수를 초청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학 강연 이외에는 사람들 앞에 자주 나서지 않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년퇴임 후 대학원 수업을 계속했는데, 이번 신학기에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을 시작한다. 대학에 있다보니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데, 젊은이들이 혹독할 정도로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수많은 총학생회가 기반을 잃고 있다. 취업난 때문일 것이다. 학생이기 때문에 떠안아야만 하는 사회적인 문제도 많다. 하지만 이들의 장점은 굉장히 자유로운 감성과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유목민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다. 젊은이들은 변화의 가능성이 아주 많다. 다만 지금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는 시기라고 본다.”
아들과 50년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들에게 잔소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데, 그것이 가능한가. (신 교수는 출소 이듬해인 1989년 일곱 살 연하의 방송국 PD와 결혼했고, 아들은 현재 서울대 인문학부에 재학 중이다.)
“나와 아들은 반세기 차이가 난다. 기본적으로 내가 아들의 일에 관여할 입장이 아니다. 아들 세대가 직면해야 할 문제, 그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를 내가 정확하게 전망하기 어렵다. 나보다는 아들과 젊은 세대가 미래에 대해 더욱 정확하게 전망하고 있다. 아들을 신뢰하기 때문에 잔소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소설가 조정래는 신영복 교수의 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영복의 글은 부드럽고 따뜻하고 너그럽고 온화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역사와 사회와 인간이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냉철하고 준엄한 비판의 칼이 들어 있다.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삶을 배우고 또 문장의 극치에 도달한 아름다움을 배우는 것이다.”
신 교수는 화려한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그는 말과 글에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를 사용한다. 신 교수의 대표저서로 꼽히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도 읽기 어려운 책이 아니다. 당시 사회분위기처럼 현실참여를 강조했던 글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20여년이 지난 후에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여전히 찾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글이 가진 힘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출간됐던 때는 현실참여 운동이 활발했던 때다. 당시 분위기와 잘 어울리지 않았던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생각하나.
“그 책은 기본적으로 2~3중의 검열을 마친 글이다. 교도소 당국의 검열, 자기 검열, 수신자를 걱정해야 하는 검열까지 거쳤기 때문에 사색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민주화의 열기가 고조됐던 때다. 그런 시기에 사람들이 내 책을 찾는 것이 놀라웠다.(웃음) 2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절차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뤄졌고, 경제도 성장했다. 하지만 민주화의 내면, 다시 말하자면 일반 국민들이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민주주의는 상당히 부실하다. 거대담론으로서 민주주의의 입지는 계속 좁아지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느끼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의 책을 찾는 것 같다.”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10년에 대해 보수층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한다. 이런 말에 동의하나.
“앙드레 말로는 ‘프랑스 혁명이 실패했다’는 말에 분노했다. 한 사회의 변혁과 승패에 대해서는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보수층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여러 면에서 성취를 이뤄왔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에는 민주화의 의미를 격하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신 교수는 ‘톨레랑스’를 뛰어넘는 소통을 강조한다. 너와 나의 차이를 인정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차이 속에서 공통점을 찾아보자고 역설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소통의 부재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는데, 현 정부에 대한 쓴소리는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정부의 실정에 대해 현실적인 발언을 하는 게 조금 어렵다. 강단에서는 이론적인 담론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여러 상황에 따라 견해를 표명할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진보진영에서는 신 교수의 역할에 기대하는 것도 있다. 정치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없는가.
“한 분야에서 정년을 마치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가 아닌 일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교수로서, 그 사회의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좋다.”
“사회적 실천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해야 한다.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하는 것만이 민주화 투쟁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위치에서 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한 사회의 변혁은 오케스트라와 같은 예술이다. 단순한 논리로 민주화 투쟁의 배후에 있다,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소아병적인 일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이 뜨거운 관심사다. 진보진영에서는 승리하기 위해 연대와 통합을 이야기하는데 가능하다고 보나.
“현실 정치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진보진영이 여러 정당으로 분리되어 있는 상태라면 총선과 대선은 상당히 불리하다. 거대 여당에 맞서서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연대와 연합을 해야만 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민주정부 10년의 기간이 있었지만, 보수는 예상보다 견고하다. 정치는 정권 재창출이 전부다. 한나라당은 정권 재창출을 위한 치밀한 작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수많은 정책 실패로 비판을 많이 받지만, 진보진영이 반사이익을 얻는 것 같지는 않다. 진보진영이 (시민으로부터) 사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진보는 그 가치로서 소중하다. 이제는 진보가 나아가야 하는 길이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거 군사정권에 대한 반군사독재 실천 운동의 형식은 바꿔야 한다. 대중들의 변화된 지점을 알아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대치전선도 굉장히 다양해졌다. 진보진영은 이런 변화를 빨리 소화하고 적절하게 대응하고 변해야 한다. 진보진영도 유연성을 가져야만 한다.”
2011년 소망은 무엇인가.
“올해 소망이 있다면 사람들이 ‘곤이부지(困而不知·곤경을 겪고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의 상태를 탈피해서 ‘곤이지지(困而知之·곤경을 겪고 깨달음을 얻는다)’ 상태가 됐으면 한다. 잘못된 선거가 어떤 곤경을 가지고 오느냐를 심각하게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 2012년 총선에서 진보진영이 과반을 확보하고, 여세를 몰아서 남아 있는 민주화의 과제를 이어가는 해가 됐으면 한다.”
<글·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곤이지지(困而知之·곤경을 겪고 깨닫는다)로”
감옥에서 20년을 산 사람이 있다. 흔히 말하는 장기복역자다. 27세 생일에 감옥으로 끌려가 47세에 세상에 나왔으니, 젊은 시절을 감옥에서 몽땅 보냈다. ‘통일혁명당’ 흔히 ‘통혁당 사건’이라는,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간첩사건에 휘말려 무기수로 20년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는 기억하기 싫어할 법한 20년 감옥 생활을 “나의 대학 시절”이라고 표현한다. ‘긍정’의 힘이다. 사람들은 그의 말과 글에서 위안과 용기를 얻고, 사색을 하게 된다.
시대의 석학으로 불리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힘이다. 그는 <주간경향>과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탁현민의 시사콘서트’ 첫 번째 강연자로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 나섰다. 이번 공연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힘들어 한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든 위로하고, 일어설 수 있는 소통의 장소로 만들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이번 강연의 주제는 자유(자기에 대한 이유)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가 오랫동안 부자유스러운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유의 개념에 대해 강연을 할 수 있었다. 자유라는 근본적인 담론을 통해 이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시사 문제를 직접 언급하는 것보다 철학적인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곳에서 신 교수를 초청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학 강연 이외에는 사람들 앞에 자주 나서지 않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년퇴임 후 대학원 수업을 계속했는데, 이번 신학기에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을 시작한다. 대학에 있다보니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데, 젊은이들이 혹독할 정도로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요즘 대학생들의 현실참여 의식이 낮아졌다는 비판이 많다. 요즘 학생들을 평가해달라.
“수많은 총학생회가 기반을 잃고 있다. 취업난 때문일 것이다. 학생이기 때문에 떠안아야만 하는 사회적인 문제도 많다. 하지만 이들의 장점은 굉장히 자유로운 감성과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유목민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다. 젊은이들은 변화의 가능성이 아주 많다. 다만 지금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는 시기라고 본다.”
아들과 50년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들에게 잔소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데, 그것이 가능한가. (신 교수는 출소 이듬해인 1989년 일곱 살 연하의 방송국 PD와 결혼했고, 아들은 현재 서울대 인문학부에 재학 중이다.)
“나와 아들은 반세기 차이가 난다. 기본적으로 내가 아들의 일에 관여할 입장이 아니다. 아들 세대가 직면해야 할 문제, 그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를 내가 정확하게 전망하기 어렵다. 나보다는 아들과 젊은 세대가 미래에 대해 더욱 정확하게 전망하고 있다. 아들을 신뢰하기 때문에 잔소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소설가 조정래는 신영복 교수의 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영복의 글은 부드럽고 따뜻하고 너그럽고 온화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역사와 사회와 인간이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냉철하고 준엄한 비판의 칼이 들어 있다.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삶을 배우고 또 문장의 극치에 도달한 아름다움을 배우는 것이다.”
신 교수는 화려한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그는 말과 글에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를 사용한다. 신 교수의 대표저서로 꼽히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도 읽기 어려운 책이 아니다. 당시 사회분위기처럼 현실참여를 강조했던 글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20여년이 지난 후에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여전히 찾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글이 가진 힘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출간됐던 때는 현실참여 운동이 활발했던 때다. 당시 분위기와 잘 어울리지 않았던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생각하나.
“그 책은 기본적으로 2~3중의 검열을 마친 글이다. 교도소 당국의 검열, 자기 검열, 수신자를 걱정해야 하는 검열까지 거쳤기 때문에 사색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민주화의 열기가 고조됐던 때다. 그런 시기에 사람들이 내 책을 찾는 것이 놀라웠다.(웃음) 2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절차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뤄졌고, 경제도 성장했다. 하지만 민주화의 내면, 다시 말하자면 일반 국민들이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민주주의는 상당히 부실하다. 거대담론으로서 민주주의의 입지는 계속 좁아지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느끼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의 책을 찾는 것 같다.”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10년에 대해 보수층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한다. 이런 말에 동의하나.
“앙드레 말로는 ‘프랑스 혁명이 실패했다’는 말에 분노했다. 한 사회의 변혁과 승패에 대해서는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보수층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여러 면에서 성취를 이뤄왔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에는 민주화의 의미를 격하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신 교수는 ‘톨레랑스’를 뛰어넘는 소통을 강조한다. 너와 나의 차이를 인정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차이 속에서 공통점을 찾아보자고 역설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소통의 부재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는데, 현 정부에 대한 쓴소리는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정부의 실정에 대해 현실적인 발언을 하는 게 조금 어렵다. 강단에서는 이론적인 담론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여러 상황에 따라 견해를 표명할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진보진영에서는 신 교수의 역할에 기대하는 것도 있다. 정치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없는가.
“한 분야에서 정년을 마치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가 아닌 일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교수로서, 그 사회의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좋다.”
‘탁현민의 시사콘서트’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
현실적인 참여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이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06년 신 교수를 두고 ‘상징적 진보’ ‘진보가 아니다’ 등의 논쟁이 벌어졌는데,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나.
“사회적 실천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해야 한다.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하는 것만이 민주화 투쟁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위치에서 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한 사회의 변혁은 오케스트라와 같은 예술이다. 단순한 논리로 민주화 투쟁의 배후에 있다,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소아병적인 일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이 뜨거운 관심사다. 진보진영에서는 승리하기 위해 연대와 통합을 이야기하는데 가능하다고 보나.
“현실 정치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진보진영이 여러 정당으로 분리되어 있는 상태라면 총선과 대선은 상당히 불리하다. 거대 여당에 맞서서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연대와 연합을 해야만 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민주정부 10년의 기간이 있었지만, 보수는 예상보다 견고하다. 정치는 정권 재창출이 전부다. 한나라당은 정권 재창출을 위한 치밀한 작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수많은 정책 실패로 비판을 많이 받지만, 진보진영이 반사이익을 얻는 것 같지는 않다. 진보진영이 (시민으로부터) 사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진보는 그 가치로서 소중하다. 이제는 진보가 나아가야 하는 길이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거 군사정권에 대한 반군사독재 실천 운동의 형식은 바꿔야 한다. 대중들의 변화된 지점을 알아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대치전선도 굉장히 다양해졌다. 진보진영은 이런 변화를 빨리 소화하고 적절하게 대응하고 변해야 한다. 진보진영도 유연성을 가져야만 한다.”
2011년 소망은 무엇인가.
“올해 소망이 있다면 사람들이 ‘곤이부지(困而不知·곤경을 겪고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의 상태를 탈피해서 ‘곤이지지(困而知之·곤경을 겪고 깨달음을 얻는다)’ 상태가 됐으면 한다. 잘못된 선거가 어떤 곤경을 가지고 오느냐를 심각하게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 2012년 총선에서 진보진영이 과반을 확보하고, 여세를 몰아서 남아 있는 민주화의 과제를 이어가는 해가 됐으면 한다.”
◇ 신영복 약력
1941년 경남 밀양 출생
1963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 구속
1988년 특별가석방 출소
출소 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역임
2006년 정년 퇴임
(현)성공회대 석좌교수 재직 중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 <나무야 나무야>(1996),
<더불어 숲>(2003), <처음처럼>(2007) 등
1941년 경남 밀양 출생
1963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 구속
1988년 특별가석방 출소
출소 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역임
2006년 정년 퇴임
(현)성공회대 석좌교수 재직 중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 <나무야 나무야>(1996),
<더불어 숲>(2003), <처음처럼>(2007) 등
<글·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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