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2011.12.02 10:47:33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500
종편 개국을 언론 운동의 기회로
종편 개국은 언론 운동의 어제와 내일을 잇는 '웜 홀'
큰 틀에서 보면, 2000년 이후 언론운동의 흐름은 크게 세 갈래였다. 우선 가장 큰 흐름은 ‘안티조선운동’으로 상징되는 수구언론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공영방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내부 투쟁과 외부의 연대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대안적 언론 환경의 구축을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이다.
▲ 종편 채널 출범 반대 및 미디어렙 입법 촉구 집회ⓒ언론노조 |
정파 논리, 진영 대결로 축소 ‘안티조선운동’
종편의 개국으로 이제 세 갈래의 흐름은 중간 결산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모두 ‘실패’했다. 수구언론과의 싸움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이른 사회적 ‘절정’을 맞기도 했지만 이후 급속히 정파적 논리, 진영 간의 대결로 축소되며 시들해졌다. 이는 이후 언론 운동 진영 내부의 정파적 갈등과 맞물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노무현의 당선이 곧 안티조선운동의 승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MB의 당선은 결정적 역행이었다. 시대의 저편으로 떠밀려가는 줄 알았던 조중동의 위세는 다시 가장 강력한 현실의 문제로 대두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 조중동이 다른 차원의 확장된 플랫폼을 소유하게 됐다는 것은 그 자체로 수구언론과의 싸움에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빛바랜 공영방송 강화 노력
공영방송의 강화 노력 역시 빛이 많이 바랬다. 지금 공영방송 내부에서 ‘제작 자율성’과 ‘심층성의 강화’를 외치는 이들은 정말 한 줌이다. 그 사이 방송사 내부엔 해고를 통한 직접적 탄압과 저항하는 인사들의 좌천이 일상화됐다. 한 때, ‘저널리즘의 별’이라고까지 불리며 전체 언론의 흐름을 주도하던 몇몇 프로그램들에 유무형의 철퇴가 가해졌고 보도국은 외부와 단절된 그들만의 세상으로 고립됐다. 저항의 피로감에 휩싸여서인지 방송은 최근 얌전히 ‘종속’의 길을 걷고 있다. 상황은 대놓고 ‘공영방송의 강화’를 말하기도 민망할 지경이며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하는 것인지도 막막한 지경이다. KBS와 MBC 기자들이 가장 뜨거운 이슈의 현장에서 회사 로고를 가리고 취재해야하거나 아예 출입을 금지당하는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강화’는 별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결국, 방송의 공공성을 몇몇 프로그램들의 성과와 인상적인 개인들의 개인기로 치환해 사고해왔던 것의 실패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방송의 민주적 구현 여부를 그 동안 단순하게 사고해왔다는 점 역시 인정해야 할 것이다. 공영방송의 시스템은 전혀 공공적이지 못했고, 공영방송의 제도적 민주성은 사회 일반의 그것에도 미치지 못하는 얄팍한 것이었다. 이는 단순히 누군가에 의해 방송이 장악됐다는 사실 이상의 문제다.
물음표의 대안 언론 환경
대안적 언론 환경의 구축 역시 물음표가 찍힌다. 겉으로 보기엔 인터넷 언론의 눈부신 약진과 트위터 등 SNS 기반의 활성화로 대안적 언론이 양적 성장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안 언론의 제도적 성과였던 시민방송RTV의 몰락이나 이제는 요식행위가 되어버린 공영방송 내의 ‘퍼블릭 엑세스’ 프로그램까지 내실을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날로 획일화되고 있는 언론 환경 자체가 반대안적이다. 그나마 '나는 꼼수다’ 정도가 반 언론적 성격을 표방하며 대중의 지지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앞서 공영방송의 실패에서 짚었던, 구조 개선이 아닌 몇몇 인상적 개인들의 유명세에 의존해 위험해 보이긴 마찬가지다.
▲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종편 개국 기념쇼에서 원더걸스가 기념공연을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
‘유령과의 싸움’에서 ‘현실 투쟁’으로
종편 채널들이 전파를 쏘아 올리며, 최근 몇 년간 지속되던 언론 운동의 국면이 ‘유령과의 싸움’에서 ‘현실 투쟁’으로 전환됐다. 다행히도 종편은 상상 이하의 편성을 내놓았고, 스스로 아직 방송을 할 능력도 준비도 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능력과 준비의 부족은 단순히 ‘그러려니’의 문제가 아니다. 종편에겐 치명적 오류다. 방송 단 하루 만에 종편은 반드시 추가적인 특혜나 배려가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다. 선거를 앞두고 있어 더 이상의 특혜는 여의치 않다는 점은 종편의 앞날에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다.
다소, 이른 진단이 될 수 있겠지만 확실히 말하건대 종편은 죽는다. 개국과 함께 언제 죽을지 모를 룰렛 게임은 이미 시작된 셈인데, 종편의 준비 정도와 인식 수준을 보건대 생각보다 죽음의 시간이 더 빨리 찾아올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 가능한 상황이다. 단순한 주관적 판단과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의 눈높이에 종편이 맞지 않다는 아우성은 퍼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들어 상대적으로 정치권력의 영향력이 막대해졌지만, 긴 흐름에서 보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이미 오래 전에 자본으로 넘어갔다. 지금 종편으로는 그 자본의 흐름에 부합하기 어려워 보인다. 종편 첫 날의 반응은 한 마디로 ‘정파성은 제쳐두고, 너무 후져서 손발이 오그라들어 못 보겠다’는 것이다.
대마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왔다
그래서 다시, 큰 틀이 필요해 보인다. 안티조선으로 언론의 이념적 지형도를 바꾸고, 공영방송을 강화해 여론의 상식 수준을 높이고, 대안언론 활성화로 사회의 진보성을 강화하고자 했던 언론운동의 전술과 전략은 우수한 구성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적 전투에선 패배했다. 종편은 그 패배의 상징적 귀결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여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종편은 별로 대단치 않다. 정말 고작 이걸 하려고 그 난리법석을 부렸던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종편이 아직 유령일 때, 누군가는 ‘종편으로 조중동을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유토피아적 예언을 내놓은 바 있다. 대마는 잡기가 쉽지 않지만, 아주 미세한 축에 균열이 생기면 전체가 곤경에 빠지는 것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종편에게 남은 생존의 수단은 광고주들을 겁박하며 떼를 쓰는 것뿐이다. 조중동은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착시의 세계에서 스스로 이제 콘텐츠를 만들 돈을 벌기 위해 앵벌이를 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 앞으로 나왔다. 조중동이 생존을 위해 비굴함을 택할 수밖에 없단 사실은 한국 사회의 언론 지형도가 바뀔 수 있다는 진단과 맞닿아 있다.
누가, 조중동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나
1차적으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비 종편 매체들이 나서야 한다. 1일자 1면에 백지광고를 넣은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를 비롯해 흡사 ‘레지스탕스 방송’을 내보낸 CBS, 그리고 정말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지방 언론까지 이제 작심한 듯 가감 없이 종편의 ‘부당거래’를 폭로해야 한다. 조중동이 정권과의 친밀성을 바탕으로 막후의 정치력으로 방송을 손에 넣기까지 비종편 매체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뒤집어졌다. 조중동이 생존을 위해 자본에 손을 벌리고, 강탈을 도모하는 현상을 그대로 보도하기만 해도 조중동을 나락으로 몰 수 있는 상황이다. 이는 비 종편 매체들이 생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으로 방법도 쉽다. 종편의 부당거래 정보를 내부에서만 ‘공유’하지 말고 외부로 ‘공개’하면 그뿐이다.
종편 개국은 침체에 놓여있던 언론 운동에게 오히려 공수 전환의 시작을 알린다. 안티조선운동의 협소화는 결국, 그 운동이 조중동을 제외한 전체 매체와의 협력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문제다. 이제 조중동을 제외한 전체 매체의 생존적 이해관계와 언론운동의 목적이 일치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다. 조중동은 천신만고 끝에 방송을 차지했지만 사방의 적에게 포위됐다.
조중동은 종편 개국으로 ‘미디어 빅뱅’의 시대가 왔다고 하지만 종편은 언론운동의 ‘웜 홀’(worm hole)이 되지 않을까 싶다. 종편은 어제의 언론 운동과 내일의 언론 운동을 잇는 통로가 될 운명이다. 조중동은 방송을 선택하며 스스로 자본의 지배에 완전히 속박되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 이념 지향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설정된 의제로 세상을 주무르는 위상을 잃었다. 무엇보다 그 자체로 자본의 일원인 방송은 이념을 전면화하기 어려운 매체이다. 비종편 매체들이 연합의 태세를 갖추었단 건 고무적이다. 이제 문제는 언론운동이 단순히 종편을 모니터하고, 공영방송의 어떤 이들과 연대하고, 나꼼수 콘서트에 참가하는 것을 뛰어넘는 방향과 진로를 모색할 수 있느냐의 여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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