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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2012-01-05 오전 8:40:47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20105071913§ion=01&t1=n

 

"얼치기 저격수의 비극"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48> 홍준표의 지피(知彼) 지기(知己)

 

1996년 YS의 손에 이끌려 초선 국회의원이 될 때부터 홍준표 의원은 날리던 저격수였다. 상관도 잡아넣은 '모래시계 검사'라는 전력도 있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단 '저격수 홍준표'가 항상 조준하고 있던 표적은 DJ였다. 그의 주군(主君)인 YS와 정치적인 라이벌로, 대척점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서, 그가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던 것은 DJ가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다고 스스로 고백한 '20억 원' 문제였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DJ 주변에서조차, "그 이야기를 지금 털어놓으면 어쩌자는 것이냐"고 만류하던 그 20억 원이었다. DJ가 받았다는 20억 원은 역시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 때 YS에게 건넸다고 자서전에서 밝힌 3000억 원의 0.67%에 불과한, 그야말로 좁쌀 규모였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 측이 차떼기로 받은 823억 원과 비교해도, 2.4%에 불과한 액수였다. 그런데도 그 무렵 DJ는 그런 홍준표 의원을 부담스러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홍 의원은 '무서운 저격수'였던 것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 ⓒ뉴시스


작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나경원 선거대책위원회에 맡겨 놓았더니 헛발질만 한다"고 불평하며, 저격수가 갖춰야 할 '3박자'에 대해 강조한 보도가 있었다. 첫째, fact(사실) 검증 둘째, naming(사건 이름 붙이기) 셋째, 정무 감각으로, 그중에서도 사실 검증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그렇게 공격하고도 소송 한번 당해보지 않았다"고 자랑했다는 것이다.

사실관계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공격'에서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말하자면 이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란 병법에 해당한다. 문자 그대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싸우는 대로 다 이긴다는 뜻이다. 적의 전력과 형편을 자세히 알아야 하는 것 못지않게, 나의 처지나 사정도 객관적으로 잘 파악하고 싸워야 한다는 소리다.

혹시라도 어거지 부리며 내 힘을 과대평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 약점은 없는가, 내 처지가 공격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상태는 아닌가 하는 점까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게 바로 겸손하고 정직한 '지기'다. 소크라테스도 "Know yourself(너 자신을 알라)" 하지 않았던가. 허나 '저격수 홍준표'는 '지피(知彼)'에는 강하나 '지기(知己)'에는 약한 듯 하다. 바로 그가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다.

정가에서는 그가 '지기'를 잘못해서 위태로웠던 때가 많았고, 실제로 적지 않게 손해도 봐왔다고 말들 한다. 자기 쪽인 YS의 '3000억 원' 이야기를 모른 채, 상대방인 DJ의 '20억 원'을 '저격'한 것도, 이제와 생각하면 그냥 우스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8·24 무상급식 투표 결과를 놓고 "사실상 이긴 것"이라 한 것이나, 10·26 재보선 투표 결과를 두고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니다"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도 '지기'를 잘못해서 생긴 '참화(慘禍)'로 지적된다.

당 대표가 자기 당의 처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오해에서 비롯된 사태였다. 그런 그가 최근 한나라당 김종인 비대위원 등을 향해 "사퇴하라"며, 앞장서서 또 저격수 노릇을 한 것도 바로 '지기'가 안 돼서 생긴 소동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가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김종인 씨의 18년 전 전과 사실을 지적했으나, 홍 전 대표는 그보다 더 가까운 12년 전, 국회의원 직까지 잃었던 선거법 위반 전과자였다. 그런 처지를 계산하지 않은 듯 하다. '얼치기 저격수'란 이야기는 그래서 나온다. 누구의 편을 들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피' 보다 '지기'가 약한 홍 전 대표의 처신을 필자가 집요하게 거론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홍 전 대표는 그 까닭을 알고 있을 리도 없고,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의원직 상실에까지 이른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지 않는 그의 부적절한 처신을 비판하다가, 필자는 30년 넘게 다니던 신문사를 떠난 아픈 기억이 있다. 악연이라면 악연이다. 그가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의원직을 잃은 것은 1999년 3월 9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선거법을 어겨서 법원이 그렇게 판결한 게 아니라, "DJ 저격수에 대한 정권의 표적 사정"이라고 외치고 다녔다.

아무리 전후사정을 살펴봐도 오해의 소지는 없어 보였는데도 그랬다.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던 필자는 그 점을 기명 칼럼으로 지적했다. 칼럼은 4주 만에 한번 씩 차례가 돌아오는 그해 3월 18일자 신문에 실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데스크인 송 아무개 논설주간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필자 칼럼의 게재를 거부했다. "뭘 조무래기 국회의원을 갖고 그러느냐"고도 했다.

혹시나 해서 당시의 사시(社是-2000년 9월 29일 '중앙일보의 길'로 바뀌었다)를 펴놓고 뚫어져라 들여다봐도 필자의 글에 사시와 어긋나는 대목은 없었다. 요컨대 "홍준표 전 의원을 비판하는 칼럼은 중앙일보에 실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사회 정의-당파초월-정론환기-민족의 목탁 등 바른 소리를 외치는 사시를 회사 스스로 어겨 가면서, 기자가 쓴 글을 정치적인 이유로 게재 거부하는 건 테러라고 보았다. 그만두고 나가라는 소리로 들었다.

1999년 3월 20일 사표를 썼다. 입사 이후 30년 3개월 20일이 되는 날 그랬다. 며칠 뒤 송 논설주간이 집에 찾아와 "함께 회사로 가자" 했으나, "칼럼이 게재되면 가겠다" 했다. 칼럼은 끝내 실리지 않았다. 다음 글은 1999년 3월, 중앙일보가 게재를 거부했던 필자의 칼럼 전문이다.

 

'죄없는 죄인' · '죄있는 죄인'

죄인 취급당하는 게 당당하고 자랑이 되기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부도덕한 정권의 부당한 억압에 맞서는 일이 죄가 되던 때였다. 저항 인사들이 붙잡히지 않기 위해 숨어 다니면서도 수치를 느끼지 않은 것은 우선 본인들이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는 데다, 죄가 없는데도 억울한 죄인으로 몰린 속사정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기 때문이었다. 그 속사정은 바로 '부당한 정치권력으로부터의 핍박'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죄있는 죄인'이 엉뚱하게도 정치적 박해의 피해자임을 주장하면서 '죄없는 죄인' 행세를 하려 드는 '악용사례'까지 등장했다. 도망 다니던 일반 잡범이 '피신 중인 운동권'이라고 속이며 주민의 도움을 받는 일이 생기는가 하면, '문제'가 있어서 해직된 사람이 훗날 '5공의 피해자'라고 주장해 명예가 회복(?)되는 경우도 극소수였지만 실제로 있었다.

정치적 이유로 고초를 겪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사실 관계가 규명되기 이전이라도 관대히 대해줬다. 우대하기도 했다. 수십 년간의 군사통치가 빚어낸 사회심리 현상이 그렇게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범법 사실로 하여 벌금 500만 원의 유죄 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잃으면서, 피를 토하듯 정치 보복임을 강조한 홍준표 씨의 경우도 바로 그 같은 풍조에 편승한 하나의 사례라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홍 씨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 전날인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신상발언을 통해 자신은 편파 사정을 당했으며 자신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정치 보복이 없기를 바란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튿날인 9일의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사법의 칼을 빌린 이 정부의 결정으로 국회를 떠나게 됐다며 정치적인 박해에 의해 '죄없는 죄인'이 되었음을 역설했다.

사실 그의 명예는 남다른 측면이 있다. 이른바 그는 '모래시계 검사'로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 하면서 대선배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추상 같은 법 집행자요, 고결한 정의의 사도였다. 그게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런 그가 '죄있는 죄인'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홍 씨의 선거법 위반 사건 전말을 살펴보면 정치적으로 핍박을 당한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96년 4·11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당선된 후 그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으나 검찰에 의해 불기소 처분된다. 유죄일 수 없으므로 재판에 부칠 필요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불기소 처분이 부당하다며 당시 야당인 국민회의가 다시 재판 회부를 요구(재정 신청)하자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97년2월 21일,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집권하고 있을 때의 법원이 그렇게 홍 씨를 재판에 넘겼다. 따라서 이 대목도 정치 보복으로는 볼 수 없게 돼있다. 오히려 검찰이 내린 당초의 불기소 처분이 야당의 주장대로 부당한 '정치적 특혜'였음이 입증됐을 뿐이다. 홍 씨의 혐의 내용은 '불법 선거운동 비용 2,400만원' 에 '선거운동 비용 허위지출 보고서 제출'까지 얹혀 있었다. 100만 원 미만의 벌금(80만 원)을 선고받아 의원직이 유지됐다 해서 흔히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홍문종 의원의 혐의는 '불법 선거운동 비용 840만 원'과 '친목계모임에 양주 1병 및 3만원 제공' 이었다. 법조계에서는 불법비용의 규모도 그렇지만 홍준표 씨의 경우 법정에서 유죄임을 부인했던 완강함이, 유죄임을 시인했던 홍문종 의원과 비교됐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말하자면 '죄 있는 자의 무죄 주장'과 '죄 가벼운 자의 유죄 인정'의 차이도 있었으리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최근의 사법부는 이른바 '총풍' 관련 피고인들에게 보석을 허가할 정도로, '바람'을 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홍 씨가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놓고 정치 보복이라며 승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은 '추상 같은 법 집행자였던 사람의 거듭되는 준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있다. 총선 기간 중 선거법을 어긴 데 이어, 유죄 판결을 수용하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준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정치 보복'이나 '편파 사정'을 들먹거리기만 하면, 웬만한 과오는 물론 실정법 위반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고 명예도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악을 쓴다고 해서 죄있는 사람이 죄없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만으로도 그건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큰일 날 사회다. '정치 보복', '편파 사정', '명예 회복'…, 지금은 이런 말들의 제자리를 확실히 찾아줘야 할 때다.


이 이야기에는 에필로그가 있다. 필자가 중앙일보를 떠난 그해 9월,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이 보광그룹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 된다. 바로 이어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가 IPI(국제 언론인협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서 김영희 대기자가 "97년 대선에서 중앙일보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며 선거법 위반 사실을 실토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섞어놓았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대목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 기반인 전라도 출신의 직원 3명이 화를 내며 사임하면서 사태는 악화 되었습니다. 이들 3명은 지역 차별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전라도 출신 3명은 언론계에 알려져 있듯이 필자와 박준영 씨(현재 전남지사), 고도원 씨('고도원의 아침편지' 필자) 등을 지칭한다. 분명한 것은 3명 모두 '지역 차별을 받았다고 믿으면서 화를 내' 사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기자 김영희 씨가 곤궁한 처지를 모면해 가기 위해 거짓을 말한 것이었다. 지역감정 조장이었다. 용서 받을 수 없는 행패였다.

필자는 칼럼 게재를 거부하며 중앙일보가 내친 경우이고, 박준영 씨는 월간지 주간에서 광고부장으로 강등 전배 발령이 나자 신문사를 떠났다. 고 씨도 중앙일보의 대선 전략문건 유출 사건의 용의자로 마녀사냥 당하듯 몰려, 후배가 팀장으로 있는 부서의 차장으로 강등 발령이 나자 울면서 회사를 떠났다. 말하자면 3명 모두 회사 측이 사표를 내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구석으로 몰아넣은 것이었다. IPI의 서류철에는 지금도, 필자 등이 지역 차별을 받았다고 느끼며 스스로 사임했다는 '대기자 김영희 씨의 어처구니없는 편지'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

흔히들 소홀히 하는 '지기(知己)'는 역시 '지피(知彼)' 못지않게 중요한 덕목이다. 정직해야 할 '지기(知己)'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을 조작하는 행태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새해엔 그렇게 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오홍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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