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논란 속에 정부가 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 관광미항) 크루즈선박 입출항에 따른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도출했지만, 후폭풍이 거세다.
서쪽 돌출부두가 없는 상황에서 시현된 시뮬레이션이 역설적이게도 돌출부두가 있으면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설계오류 및 안전성 논란이 더 가열되고 있다.
강정마을회와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 군사기지저지와 평화의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는 1일 오전 10시30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설계오류가 재확인된 이번 시뮬레이션은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정부·제주도 합동 태스크포스가 시뮬레이션 시현결과 항만구조상 문제가 전혀 없다는 결론이 나왔으나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있다.
쟁점은 크게 3가지 정도다.
◇ 돌제부두 있으면? “크루즈 접·이안 안전성 보장하려면 설계변경 불가피”
이번 시뮬레이션 시현은 가변식 돌제부두가 아닌 돌제부두 자체를 없앤 조건에서 시행됐다.
이와 관련, 이동섭 시현T/F 팀장은 “서측 돌제부두가 있는 경우에 대해선 답변하기 곤란하다. 최악의 조건 하에서는 돌제부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단장은 ‘설계변경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그건 제가 답할 성격이 아니”라고 즉답을 피했다.
이에 대해 강정마을회 등은 “서측 돌제부두가 없어지는 설계는 민군복합항이 민항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군항 기능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의미 한다”며 “접·이안 안전성을 보장하려면 설계 변경과 공사 중단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 강정마을회와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 군사기지저지와 평화의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는 1일 오전 10시30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설계오류가 재확인된 이번 시뮬레이션은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제주의소리
◇ 20여척 동시접안 가능한 기지라면서? “기동전단 전개기지 역할 포기하는 결과”
기동함대를 수용해야 하는 해군기지의 수용능력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당초 제주해군기지는 함정 24척이 동시 접안이 가능한 군사기지로 설계됐다. 민군복합 관광미항으로 사업계획이 바뀌면서 남방파제와 서방파제는 크루즈 접안시설로서 무역항으로 지정됐다. 군항 기능을 상실하면 5선석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여기에 이번 시뮬레이션이 시현된 조건인 돌제부두를 없애면 추가로 4선석이 줄어든다. 돌제부두가 있던 자리에 1선석을 확보한다고 해도 3선석이 줄어들어, 결국 군함선석은 총 8선석이 줄어드는 셈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해군과 국방부가 주장하는 사업목적에 배치된다. 대형함정 20여척이 동시에 계류할 수 있는 기동전단의 전개기지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앞으로 항내에 함정 5척 이상이 계류할 경우 크루즈선박의 입출항은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강정마을회 등은 “이러한 중대한 설계변경을 해군이 감수하겠다는 것이냐”고 반문한 뒤 “이러함에도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며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나서는 총리실, 해군, 국방부는 그야말로 무책임하다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강정마을회와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 군사기지저지와 평화의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는 1일 오전 10시30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설계오류가 재확인된 이번 시뮬레이션은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제주의소리
◇ 1.2차 시뮬레이션과 3차 시뮬레이션은 별개? “선행조건 무시, 원천 무효”
이러한 설계변경이 불가피하게 된 원인을 들여다보면 선회반경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15만톤 크루즈선박의 선회장은 ‘항만 및 어항 설계기준’에 따라 대상선박 길이의 2배인 690m가 돼야 한다. 하지만 제주해군기지 선회장은 520m로 설계돼 너무 협소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남방파제에 대형 항공모함이나 대형선 부두에 KDX-Ⅲ이상 함선이 접안할 경우 선회장 반경은 더욱 침범받아 크루즈의 입출항 및 접이안 안전성은 더욱 담보하기 어렵다.
이번 시물레이션에 참가한 도선사들도 “항 입구 압류에 주의가 요구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더구나 이번(3차) 시뮬레이션은 앞서 진행된 1.2차 선행 시뮬레이션과 완전히 별개로 취급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시뮬레이션 조건과 동일한 항로환경·표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항로의 수심과 조류 등 해양환경을 시뮬레이션 시 적용한 환경과 같아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번 시뮬레이션은 앞서 진행된 선행 조건을 완전히 무시한 가운데 진행됐다. 선회장 및 항고 설계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애써 눈은 감은 셈이다.
이에 대해 강정마을회 등은 “과학적인 조사도 없이 수행된 이번 시뮬레이션은 선행조건을 완전히 무시한 실험에 불과해 원천 무효”라며 “거짓을 바탕으로 구성된 과학은 그 결과도 거짓”이라며 시현결과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이들은 “정부는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뇌이며 공사를 강행할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설계오류를 인정하고, 해군기지 공사를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우근민 제주도정을 향해서도 “정부 방침에 부화뇌동할 게 아니라 도민의 편에 서서 제주역사를 책임지는 결단으로 즉각적인 공사중단과 전면 재검토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홍기룡 범도민대책위 집행위원장은 “해군이 의도하는 데로 짜맞추기를 하다보니까 결론적으로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결과가 도출된 것”이라며 “박근혜 당선인과 정치권도 이러한 사실을 직시해서 전면 재검토에 나서야 할 것”고 말했다.
앞서 제주도의회 민주통합당 소속 의원들은 31일 “돌제부두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돌제부두를 가변식으로 하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면서 “설계오류가 확인된 만큼 이번 시뮬레이션 결과를 놓고 억지로 봉합하려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 제주도당도 “시뮬레이션 결과가 해군기지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 국회가 권고한 부대조건을 이행한 후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밝히는 등 시뮬레이션 시현결과가 또 다른 쟁점을 낳으면서 이를 둘러싼 여진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