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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아나키즘

‘아나키스트’ 말고 ‘아나키적’ 운동 /weekly수유너머20120411

by 마리산인1324 2013. 5. 28.

<weekly 수유너머> 2012년 4월 11일

http://suyunomo.net/?p=9920

 

‘아나키스트’ 말고 ‘아나키적’ 운동

- 박은선(리슨투더시티) -

 

노암 촘스키는 “아무도 아나키즘이란 용어를 독점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 몇 년간 현재 두리반, 마리, 4대강, 희망버스, 서울 오큐파이 등지에서 함께 활동해온 친구들은 다양한 직접행동을 한 청(소)년들은 분명 아나키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직접행동을 창조하고 거창한 이론보다는 행동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합리적인 지식을 지지하며 지독한 반권위주의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아나키라고 할 수 없는데다, 그 중 아나키라는 문제의식에서 직접행동을 한다고 해도 아나키라는 용어로 굳이 자신의 행동을 정의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현장에서 다양한 직접행동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다 보니 행동의 근거들을 자연스럽게 찾을 수 밖에 없었고 길거리에서, 약자들이, 목소리 없는 것들이 탄압받을 때 우리는 왜 직접행동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윤리적(ethical)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두리반과 마리에서 만난 직접행동을 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아나키즘 세미나를 하고 있다.

좌파 안의 좌파들

함께 활동하고 있는 아나키적 성향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국가 권력과 자본의 폭력을 규탄하지만 더욱본질적인 공통점은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반나이주의 반성별주의 반학벌주의를 기본으로하고, 운동의 중심이 되는 인물을 만드는 것을 불편해하며 지양한다. 이 조건들이 기본적으로 존중되지 않는 운동이 있다면, 그들은 규탄을 서슴치 않는다. 사회주의적 운동이 만약 인간의 평등과 자유 그리고 자율성을 지지한다면 우선적으로 주변의 누군가를 억압한 후 후에 성취하는 평등이란 명백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11년 철거농성장 카페 마리의 전체회의는 모두가 참여하여 의견을 내놓는 평등한 코뮨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설사 완벽한 평등은 아니었을지라도 소외된 의제들을 중심에 내 놓으려고 모두가 고군분투한 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 혹시 그 누군가에게 무게 중심이 쏠리게 되면 힘이 집중되지 못하도록 끊임없는 제제를 해왔다. 비록 많은 것들을 세세히 다루려다 보니 시간이 길어졌지만 최대한 공평하려고 노력했으며, 지금 미국 오큐파이 운동에서 이뤄지고있는 참여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총회의인 제너럴 미팅(General Meeting)과 방식이 흡사했다. 이들의 출신과 관심사는 모두 달랐다. 활동가, 예술가, 학생, 탈교자, 대학거부자등 다양했으며 관심이있는 운동도 철거민 주거권운동, 노동문제, 대학생문제, 비정규직문제, 성소수자문제, 여성문제, 청소년인권문제, 4대강문제 등등 다양했다. 다양한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그들이 자발적으로 이 공동체에 참여하여 강제퇴거에 처한 세입자들과 연대를 하고 있는 점, 연대하는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 이와 같이 평등한 회의를 겪어본 적이 없었다.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말 한마디 건네는게 나이 많은 사람에게 말 건네는 것을 어려워해야 하는 점, 2차 성폭력에 대해 강제적 강의를 들어야만 했던 점들은 모두 기존 내가 참여했던 공동체안의 힘의 균형과는 달랐다. 끊임없이 권위를 제거하는 과정은 평등한 공동체를 실현하는 방법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철거 농성장에서 성폭력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것에 대해 토의했던 시간이었다. 물론 이 문제는 철거 농성과 직접적 관련은 없었지만 철거농성장이나 농성장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여성의 문제를 전면에 문제시 하는 계기였고, 철거 농성장이라 할지라도 여성문제 등 소외된 주변의 논제를 함께 이야기 하려는 시도 자체가 중요했다. 반면 철거농성장인데 우선 세입자들을 우선으로하는 의제를 주로 다루어야한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좀 더 중요한 문제를 위해 작은 것을 덮어주자는 암묵적 약속은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공동체 의식에 정면 위배된다. 2008년 한 노조 간부가 한 동료여성을 성폭행 하려는 사건이 유명한 사건이 있었는데, 다른 간부들은 이명박 정부와의 투쟁을 위해 사건을 덮자고 피해자를 무마 또는 위협하려던 의혹이 드러났다. 어떤 환경단체는 한 산 을 지켜려하던 활동가 몰래 정부와 타협하여 불필요한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 그들의 비리를 폭로하려 했을때 그 단체는 지금 당신이 폭로한다면 급하게 다뤄야 하는 다른 환경문제에 치명적 타격을 입으니 함구해달라 요구했다.

 

하나의 일로 권리를 위한 투쟁과 그것을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을 모두 한 번에 폄하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는 분명 평등한 세상을 추구하는 정신에 모순되며 평등하지 못한 과정에서 나오는 운동은 늘 실패한다. 그래서 지금 신자유주의 구도 안의 운동은 아나키적이어야한다. 권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최소화 하는 것, 내부의 소수의 목소리를, 우리 공동체의 소수의 문제를 은폐하지 않는 것이 아나키적 운동의 방식이며 투명한 스펙타클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모두가 주인공인 노동절

그래서 돌아오는 5월 1일에는 노동자 총파업선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카페 마리나 두리반에서 만난 사람들 혹은 오큐파이농성장이나 작은 규모의 시민운동을 펼쳐나가던 사람들 예술가들 운동에 관심이 그닥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이 주체가 된다. 우리는 중심을 거부한다. 공동체 안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거리로 꺼낼수 있는 노동자 비노동자 사람과 사람이 아닌것들이 주인이 될 수 있는 총파업을 제안하려고 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아닌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드려고한다. 뉴욕열전의 저자 고소 이와사 부로는 ‘스펙타클은 부르주아의 산물이지만 퍼포먼스는 민중의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즐거운 퍼포먼스로 거리를 점령하며 도시를 도시민의 것으로 만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