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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이석기 이후 통합진보당의 딜레마 /미디어스20131007

by 마리산인1324 2013. 10. 9.

<미디어스> 2013.10.07  17:08:40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441

 

 

이석기 이후 통합진보당의 딜레마

 

다른 운동 역량 끌어 올려야

 

한윤형 기자  |  a_hriman@hotmail.com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는 통합진보당 당내 경선에서 대리투표를 한 혐의로 기소된 최모씨 등 45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12년 총선 이후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의원 선출 당내 경선에서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폭로가 나왔고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수습이 되지 않아 분당으로 치닫는 가운데 검찰 수사가 이루어져 20명이 구속기소되고 442명이 불구속기소되었다. 

 

판결은 일정하지 않았다. 지난 1월 대구지법은 같은 혐의로 기소된 당원 허모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또 지난 7월 광주지법은 윤모씨 등 2명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였다. 이번 무죄판결은 전국 법원에서 진행 중인 나머지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 측은 판결에 반발하며 "전국 법원에서 동일한 사건에 대해 11건이 이미 유죄가 선고돼 대법원에서 확정됐거나 대법원, 항소심 재판 계류 중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날 보수언론과 방송들을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에서 통합진보당 등 외부세력이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통합진보당원들이 동네 주민들이 ‘무덤’이라 부르는 구덩이를 파고 목줄을 다는 등 투쟁을 극단화시키는 일을 주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책위는 통합진보당원들의 역할은 제한적이었고 구덩이를 파고 목줄을 단 건 주민들 자신이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원들에 대한 무죄 판결은 수긍할 만한 일이다. 비례대표 경선부정 사건이 애초 법리적인 차원이라기보단 정치적인 차원에 놓여 있는 것이었단 점을 생각하면 그렇다. 판결 취지를 보자면 비록 대리투표가 긍정적인 일은 아니고 마냥 허용되어서는 곤란하지만, 공직선거가 아닌 정당 내 선거에서 어느 정도의 대리투표는 법적 처벌의 대상은 안 된다는 것이 요지다. 비밀투표 원칙을 정당 내 선거에도 관철시키기보다 정당 자율성을 좀 더 중시한 판결이다. 

 

그렇다면 이 판결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경선부정 사건과 이후 통합진보당 측의 행보의 정치적 평가와는 무관한 것일 게다. 무죄를 받았다고 그 선거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죄가 나오면 공안탄압을 말하고 무죄가 나오면 결백이 증명되었다고 말하는 아전인수격인 해석은 지양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밀양에서의 상황은 통합진보당 문제에 대한 보다 복합적인 고민을 던진다. 물론 보수언론이 이 투쟁에 종북의 색깔을 칠하기 위해 통합진보당 측의 활동비중을 과장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을 진행하는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은 이 목줄을 “적화통일 혁명 광장의 단두대”라고까지 불렀다. 보수세력 입장에선, 사람들에게 종북세력이라 각인된 통합진보당을 활용하면 어지간한 사회운동은 모두 종북으로 몰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한 꽃놀이패가 없다.

 

그러나 비록 다소의 과장은 있더라도 통합진보당 등 소위 통일운동세력의 활동력이 운동 사회 내부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민주노동당 시절 당원의 숫자로만 보면 평등파도 자주파에 버금갔지만 활동력은 크게 달랐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운동을 할 때 통일운동세력의 영향력은 컸고, 이는 ‘이석기 회합 사건’처럼 내란음모죄 적용과는 상관없이 정치적 비판이 가해져야 되는 사건이 터져도 진보진영이 그들을 매섭게 비판하지 못하는 한 원인이 되었다. 

 

물론 통합진보당의 활동력이 언제까지나 운동 사회에서 다수는 아닐 것이다. 현장에 결합하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으나, 현재의 통합진보당은 현장에 결합하면 적어도 담론차원에서는 투쟁을 불리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존재가 되었다. NL 운동권 출신조차도 작년 총선과 대선에서 통합진보당의 행보를 보고 당에서 이탈하여 지역사회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증언도 있다. 

 

‘RO’ 사건 이후 그러한 경향성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막연한 민족주의와 통일문제에 대한 열정으로 통합진보당을 지지하고 후원했던 이들도 이석기 의원이나 ‘RO’의 세계관에 동의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통합진보당의 역량이 두드러지는 현실은, 한국 사회운동이 봉착한 어려움을 보여준다. 활동역량을 보존한 조직이나 이념이 거의 없기 때문에, 통합진보당은 전체 진보운동에 해악을 끼치면서도 본인들이 현장만 열심히 돌아다니면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재기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예전의 운동의 모방을 넘어 새로운 운동의 좌표를 제시하고 역량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한국 사회의 진보운동은 끝끝내 ‘친북’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진보운동이 회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예정된 미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