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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있게 한 누구나의 힘

 

- jimmani -

 

 

영화가 끝나고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시사회도 아니고 영화제도 아닌, 개봉영화의 어느 상영 회차에서. 한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일이다. 한 두 명의 외마디 박수도 아니고 박수소리가 물결을 이룬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목소리에 구구절절 공감을 했다는 의미일 테다. 영화는 30여년 전의 사건을 이야기하는데, 21세기의 관객들은 그걸 신기하듯 바라보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부대끼며 공감한다. 현재가 행복하려면 더 팍팍했던 과거는 신기하고 그저 안타까워야 한다. 공감이 아니라. 공감한다면, 현재도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알고 보면 슬픈 의미다.

 

영화 <변호인>을 두고 하는 얘기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했고, 그의 인생을 바꿨다고 알려진 1981년의 '부림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는 '허구'라고 시작부터 주장하지만 실제 인물과 사건이 떠오르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떠오르는 그 시절의 규모는 어느 한 사람의 범위를 이미 넘어서 있었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 이상의,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상식이 있고, 불의를 보면 분노할 줄 알고, 그 불의를 당하는 사람을 보면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사람이라면 누구나의 이야기가 될 영화. 이게 어쩌면 이 영화에 근거 없이 반대하는 이들에겐 더욱 만나기 싫은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라면 누구나에 해당할 이야기를 부정한다면야 뭐. 따지고 보면 <변호인>은 헌정영화다. '누군가'만을 위한 헌정을 넘어선, 절망으로 시작한 80년대를 희망으로 내딛게 한 '누구나'를 위한 헌정.

 

 

1978년, 부산상고 졸업 학력으로 대전지방법원에서 판사까지 지낸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이 부산으로 돌아온다. 판사 일은 재미없다고, 변호사 일로 돈 좀 벌어보자면서. 빽도 없고 돈도 없지만 우석은 부동산 등기, 세금 자문 등의 틈새 공략 덕분에 이내 부산에서 가장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된다. 젊은 날 건설 노동 현장에서 꿈만 꾸었던 아파트로 이사도 간다. 그리고 어려웠던 시절 따뜻한 국밥 한 그릇으로 위로를 주었던 국밥집 아줌마 순애(김영애)네도 오랜만에 방문해 인연을 이어간다. 시절이 하수상하지만, 돈도 원하는 만큼 들어오는 이 세상에서 우석은 자신의 일과 가정에 그저 충실하고자 한다. 그러던 1981년. 사상적으로 불순한 자들을 잡아들이려는 광풍이 전국을 휩쓸던 때에 부산에서도 사건이 터진다. 독서 모임을 갖는 대학생들이 '이적표현물 학습'과 '반국가단체 찬양 및 고무'라는 죄를 뒤집어쓰고 무더기로 잡혀 들어간 것이다. 이는 대기업 스카우트를 눈 앞에 둔 우석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국밥집 아줌마 순애의 하나뿐인 아들인 진우(임시완)가 이 사건으로 인해 잡혀 들어간 것이다. 그 후 2달 간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이 행방불명된 진우는, 어머니와 우석 앞에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참혹한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8차선 탄탄대로가 눈 앞에 있던 우석은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이러면 안되는 사건이 눈 앞에서, 사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은, 돈과 성공 밖에 모르던 이 속물 변호사가 마침내 사람의 존엄을 위해 싸우는 인권 변호사의 길로 접어들게 한다.   

 

<변호인>을 치켜세울 만한 근거는 많다. 그러나 다른 모든 근거를 차치하고라도, 송강호의 연기만으로 이 영화는 '까방권'(까임방지권)을 획득한다. 늘 관객을 탄복시키는 연기를 보여 준 그이지만, 송강호의 연기는 인물에 온전히 몰입하는 메소드 연기보다는 인물과 한발짝 떨어져서, 이미 몸에 밴 듯 약간의 여유를 곁들여 자신의 색깔에 인물이 물들게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변호인>에서의 변호사 송우석은, 그런 그가 그야말로 혼신을 쏟아부을 때 어떤 차원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귀중한 예다.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송강호는 실제 모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는 대신 철저히 자신만의 친소시민적 캐릭터와 융화시키는 방향을 택한다. 그러나 이런 방향 속에서 이번에 그가 택하는 연기 노선은 살짝 다른 듯 하다. 작은 소시민이었던 인물이 느끼는 좌절과 각성, 분노와 고양의 감정이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늘상 너털웃음을 짓게 했던 소시민적 면모로 출발해서는, 분노해야 할 세상에 분노할 줄 아는 '깨어난 인물'로 거듭나는 그의 모습이 유례없이 파워풀하다. 그동안의 송강호의 연기와 '인간적 면모'와 '비인간적 면모'로 나눠볼 수 있었다면 이런 파워풀함은 '인간적 면모'보다는 <박쥐>나 <복수는 나의 것>처럼 '비인간적 면모'에서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변호인>에 이르러 이 파워풀함이 '인간적 면모'와 합쳐지니, 관객이 굴복하지 않을 여지가 없다. 감정의 부스러기까지 빨아들이며 관객을 완벽히 몰입시킨다. 송강호는 우리 시대의 명배우로 불려왔지만, 이 영화를 기점으로 그는 '대배우'의 반열에 오를 듯 하다.

 

 

송강호 뿐만 아니라 <변호인>에는 연기에 있어 이른바 '구멍'이 없다. 주조연급 배우들 각각이 보여주는 연기력의 밀도 또한 유례없는 수준이다. 송우석의 삶을 바꾸는 국밥집 모자를 연기한 김영애 씨와 임시완의 연기부터 짚어보자. 힘든 청춘을 보듬는 인심과 아들을 그리는 절절한 모성애를 아우르는 김영애 씨의 연기는, 얼굴만 나와도 가슴이 먹먹해질 지경이다. 그녀의 얼굴이 나오는 장면이라면 어느 곳이든, 눈물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실제 사건이지만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는 이 영화에서 김영애 씨가 표현하는 절절한 어머니의 마음은, 정치나 이념 같은 것에 관심 없는 보통 사람들이 이 사건의 비극성을 가장 절실히 느낄 수 있게 하는 결정적 안내자가 된다. 국밥집 아들로서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는 대학생 진우 역의 임시완의 연기까지 매우 준수하다. 물론 <해를 품은 달>, <적도의 남자> 등의 드라마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준 바 있지만 영화는 또 다른 환경이고, 역사적 배경과 캐릭터가 겪는 고초를 생각하면 이 영화 속 진우 역은 별개로 어려운 연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임시완은 아이돌 그룹 출신이라는 배경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영화 속에서의 성실하고 선량한 모습, 고문으로 피폐해진 정신을 절제되고 깔끔하게 소화해냈다. 부산 출신이기에 부산 사투리가 자연스러운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송우석과 대립하거나 협력하는 인물들의 연기 또한 옹골차다. 영화 속에서 가장 악한 인물로 등장하는 차동영 경감 역의 곽도원의 연기는 특히 눈부시다. 아버지를 잃은 상처, 나라를 위한 충성, 더 큰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뒤엉켜 탄생한 괴물의 모습을, 곽도원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소름끼치는 냉정함으로 소화하며 관객들을 분노케 한다. 자신의 반인륜적 행동에 과거와나라를 앞세우는 모습은, 막장 드라마 속 악역 캐릭터를 넘어 괴물 같은 현실이 만들어낸 괴물 같은 사람으로서 공포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그리고 곽도원은 그러한 괴물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전달함으로써, 관객이 그 인물에게만 분노하는 것이 아닌 그런 인물을 낳은 당대에 분노하게끔 만든다. 송우석 변호사와 차동영 경감이 맞붙는 네번째 공판 장면은, 이런 배우들의 빛나는 에너지가 충돌해 빚어내는 가장 강력한 하이라이트다. 블록버스터 이상의 긴장감과 짜릿함을 자아내는 장면을 법정 영화 속 공판 장면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여담이지만, 곽도원이 왜 시사회 무대인사에서 관객들에게 그렇게 앞장서서 피로회복제를 돌렸는지 이해하겠더라. 마지막으로 송우석이 걷는 가시밭길을 옆에서 뒤에서 받쳐주는 조력자 연기를 보여주는 박동호 사무장 역의 오달수, 송우석의 동창이자 신문사 기자인 이윤택 역의 이성민의 연기까지 든든하다. 이 모든 배우들이 한껏 에너지를 쏟아 보여주는 연기의 향연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변호인>을 치켜세우고 싶은 또 다른 이유는 내고자 하는 목소리를 내기 이전에, 그 목소리가 더 잘 들릴 수 있게 하는 기반이 잘 다져져 있다는 것이다. 굴곡 많았던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들 중 상당수는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강렬함에 다소 의존했는지 영화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만듦새에서 아쉬움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경우 메시지를 봤을 때는 지지하고 싶으나, 그 전에 영화가 갖춘 모양새를 봤을 때는 영화라는 독립된 창작물로서 지지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도 하게 되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변호인>을 보고 나서는 그런 고민이 들지 않았다. 일단 영화라는 독립된 창작물로서 단단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뜨겁게 끓어오르지만 음악의 사용은 의외로 절제되어 있어, 관객의 감흥을 무리하게 끌어내려 하지 않는다. 또한 그저 편하게 살고 싶었던 소시민의 모습이 번듯한 변호사의 모습으로, 그리고 정의를 추구하는 인권 변호사의 모습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지나친 극적임 없이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대중 영화로서 지녀야 할 극적 긴장감을 색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시도도 서슴지 않는다. 후반부 벌어지는 다섯 번의 공판 장면은 제한된 공간에서 오로지 말로만 벌어지는 싸움을 쫀쫀한 템포로 긴장감 넘치게 묘사한다. 특히 두번째 공판에서 송우석 변호사의 변론으로부터 시작해 이어지는 3분 여 동안의 롱테이크 장면은 긴장이 감도는 법정 안의 모습을 현장감 있게 전달할 뿐 아니라, 진심을 담아 돌진하는 송우석 변호사의 기세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영화가 담고 있는 목소리를 굳이 염두에 두지 않아도, <변호인>은 한 인간의 성장을 담은 캐릭터 드라마로서, 긴장감과 통쾌함이 잘 버무려진 법정 영화로서도 손색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렇게 기본으로 깔아놓은 영화적 완성도 위에서, <변호인>은 더 효과적이고 더 잘 들리는 목소리로 하고팠을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언뜻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느낌의 것이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어느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젊은 시절부터 비범했던 사람의 영웅적 활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했던 인간의 각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반대하는 이들이 그토록 입에 거품을 물고 강조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미화'와는 관련이 거의 없어 보인다. 영화의 전반부, 송우석 변호사는 전형적인 '속물적 인간'이다. 비열하고 이기적인 악인이 아닌, 딱 우리 보통 사람들만큼의 속물 근성이랄까. 돈 많이 벌고 싶고, 편안히 살고 싶은 그런 마음을 품은 사람 말이다. 부동산 등기일을 하면서 본의 아니게 그 일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의 밥그릇을 일정 뺏기도 한다. 또한 돈을 벌 만큼 벌고 있는 상황에서는 TV 뉴스에 나오는 대학생들의 집회시위에 대해 '공부하기 싫은 대학생들이 나와서 데모하고 빨갱이 따라하는 거 아니냐'며 폄하하기도 한다. 조용히 사색 좀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언론에서 '호화요트'라고 보도했다는) 작은 요트를 몰고 나가 연습하기도 한다. 물론 그가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마음껏 누리려 하는 것은, 법전을 팔아가면서까지 생계를 마련해야 할 만큼 고단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전반부 송우석의 모습은 가난을 보상 받고자 악착같이 벌고 많이 누리고자 하는, 딱 보통의 우리만큼의 속물적 근성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다 그에게 각성의 순간이 찾아온다. 젊은 시절 자신에게 국밥 한 그릇을 심심찮게 말아줬던 아줌마와 아들이 생각지 못한 고초를 겪는 것이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독고다이'의 환경 속에서 한때 자기가 잘 해서 성공한 줄 알고 있었던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그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나와는 별개일 줄 알았던 광풍이 자신의 주변에 들이닥치고, 자신의 지난 시절의 온도를 1도씨나마 올려 준 이들을 덮치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이 세상과 상관없이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된다.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말이 안 되는 일들이 더 이상 팔짱 끼며 뉴스 안에서만 보면 그만인 일이 아님을 알게 되고, 내가 아는 사람들과 내 가족의 미래까지 좌우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송우석은 금전과 지금의 안위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음을, 그 모든 것들을 떠나 세상이 더 이상 '이러면 안되는' 수준까지 치닫지 않게 깨어 있어야 함을 알게 되고, 곧 실천으로 옮기기에 이른다. 그 어떤 법보다도 위에 있는 대한민국 헌법이 명시한 국민의 기본권과, 그 모든 기본권은 빈부를 떠나 모든 이들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기반으로, 송우석은 각성하고 성장하게 된다. 그렇게 송우석이 가슴에 새로 새기게 되는 가치는 그 어떤 이념도 아닌 사람은 사람답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상식이고, 불의에 의해 고통받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불의에 분노할 줄 아는 '측은지심'이다. 국가가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국민을 이용하는 상황에서, 송우석이 외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 위에 설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심지어 국가조차 국민 위에 설 수 없다는 당연한 원칙이다. 모든 이념이나 정치적 신념을 떠나 인간이라면 능히 지향해야 할 이상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변호인>이 전하는 이야기는 생각 이상으로 보편적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영화는 이렇게 각성한 인물을 있게 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 엄혹한 시기에 어떤 특출난 인물 한 명이 등장해 나라에 빛을 밝힌 것이 아니라, 상식과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에 분노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함께 가시밭에 길을 만들었음을 이야기한다. 그 길 위에는 송우석의 젊은 시절 국밥 한 그릇으로 속을 데워주고, 외상을 떼어먹고 도망쳤어도 다시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안아 준 국밥집 아줌마가 있었다. 날달걀을 맞아가면서 험한 시간을 겪고 있는 친구에게 암말 하지 않고 버린 옷을 대신할 양복을 벗어주던 친구가 있었다. 당신은 지금 눈 앞에 굴러 들어온 복을 찬 거라며 원망했었지만 홀로 겪을 시련이 걱정돼 묵묵히 곁에서 도와주는 동료가 있었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이 험한 길에 주저와 원망 없이 뛰어들 수 있게 한 이유가 된 가족이 있었다. 영화는 극적인 변화와 진보를 겪은 주인공의 주변에는 그가 그처럼 용기 있는 걸음을 내딛게 북돋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외면하지 않는다. 곧 우리가 박수를 보내야 할 대상은 어떤 한 명의 '누군가'만을 넘어선, 그 누군가를 만들고 세상을 밝힌 '누구나'에게 향하게 된다. 누구나의 힘은 특별한 누군가를 만들고, 그 누군가의 힘이 새로운 누구나들을 일어서게 만든다. <변호인>에서 가장 빛나는 가치는 바로 사람이 상식과 선을 외면하지 않는 한, 세상이 앞으로 더 힘차게 나아가는 물결을 얼마든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30여년 전 이야기라면 지금 세대의 입장에서는 '저런 일도 있었구나' 하며 신기하게 바라봐야 마땅한데, 사무치게 공감이 된다는 게 어찌 보면 매우 슬픈 일이다. 그러나 <변호인>은 그 사무친 공감에서 끝나지 않고, 인간은 언제나 선과 상식을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끝내 펼쳐보이며 든든한 존재감으로 자리매김한다. 내가 속한 국가마저 내 편이 아닌 것 같은 이 하수상한 시기에, 이로써 <변호인>은 '우린 당신들의 편'이라며 우리들에게 손을 건넨다. 이 영화의 제목이 '변호사'가 아니라 '변호인'인 건, 변호라는 행위가 특정한 직업군이 하는 일이 아닌 사람이라면 응당 할 수 있는 일임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대변하고 보호하는 것. 사람이라면 내가 누군가를 위해 할 수도 있고 누군가가 나를 위해 해 줄 수도 있는 일. 그래서 우리는 제아무리 하수상한 시기라도 끝내 사람을 향한 시선을 놓지 않아야 하고, 서로가 안녕한지 묻는 걸 잊지 않기를 이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는 듯 했다. 그 때 비로소 한명 한명의 국민은 달걀을 깨고 나온 살아있는 존재로서, 죽은 바위를 넘을 수 있겠지. 그렇기에 나는 <변호인>이 이념이나 정치적 신념을 초월하고,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영화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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