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336호] 승인 2014.02.25 08:5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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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흘기던 일본, 미국에 차이고 ‘멘붕’
일본 우익은 지금 또 한번의 전쟁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아베가 중국과의 전쟁도 불사하는 듯한 발언을 한 배경이다. 그러나 미국이 일본을 도와줄 의사가 전혀 없음이 드러나면서 국면이 바뀌었다.
남문희 대기자 | bulgot@sisain.co.kr
“전쟁이 터지면 중국이 잃을 게 많다. 무력 충돌은 경제성장을 늦출 것이고, 이로 인해 중국 지도부는 정통성을 상실할 수 있다.” 현재의 중·일 관계를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과 독일처럼 “경제적 이해관계가 큰데도 물리적 충돌이나 분쟁이 갑자기 발생할 수 있는 관계”로 묘사했던 일본 아베 총리 발언의 뒷부분이다. 지난 1월22일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있었던 아베의 발언은 일국의 총리가 상대국과의 전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그의 발언 뒷부분을 보면 전쟁이 날 경우 일본의 승리를 장담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당장 중국 측으로부터 “전쟁이 나면 일본이 불바다가 될 것이다”라는 반발(중국군사과학학회 뤄위안 부비서장)이 나왔다.
아베의 발언이나 인민해방군 측의 발언은 간과할 수 없는 진실의 한 단면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짚어볼 만하다. 아베는 왜 이렇게 호전적이며 그가 말하는 ‘전쟁의 결과’는 과연 맞을지, 그리고 과연 중국은 일본 본토를 향해 미사일을 날릴 수 있을지.
ⓒAP Photo 2012년 9월 센카쿠 열도 주변에 중국 선박(사진 뒤쪽)이 나타나자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경고방송을 하며 맞서고 있다. |
일본에서 발행되는 월간 <세카이(世界)>는 지난해 9월호에 다쿠쇼쿠 대학 사토 다케오 교수의 글(‘도쿄는 바이마르가 아니다’)을 실었다. 현재의 일본을 제1차 세계대전 패배 후 제2차 세계대전을 벌이기 직전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 비유한 내용이다. 1차 대전 패전 후 독일은 단독으로 전쟁 책임과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더구나 당시의 전쟁 종결은, 주요 참전국이 참호전을 벌이며 교착 상태가 지속되는 와중에 후방에서 일어난 수병들의 반란과 독일혁명 같은 내란에 의해 갑자기 이뤄졌다. 적의 군사력에 굴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독일 처지에서는 ‘패전의 실감이 없는 패전’이었고, 이런 요인들이 히틀러와 나치즘 등장의 원인이 되었다. 따라서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에 끼어 있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는 두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이라는 뜻에서 ‘전간기(戰間期)’라 부를 만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2차 대전 패전이 여러 면에서 이와 유사하다는 게 사토 다케오 교수의 시각이다. 특히 일본 본토에서 결전이 없었다는 점에서 역시 ‘패전의 실감이 없는 패전’이었다. 당시 본토에서 벌어진 지상전으로는 오키나와 전투가 유일했고, 나머지는 본토에 대한 공습과 원폭 투하로 사실상 전쟁이 끝났다. 이 때문에 사토 교수는 “독일은 한 번의 패전으로 부족해 두 번째는 수도인 베를린에서 육박전까지 치르며 마침내 패전을 실감하고 새로운 나라로 거듭났는데, 이제 일본이 두 번째 패전을 필요로 하는가”라고 묻는다.
ⓒAP Photo 일본 시민들이 2012년 9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그의 글에서 분명한 것은 아베를 필두로 한 일본 우익들이 현재 1차 세계대전 패배 뒤의 히틀러나 나치의 심리구조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독일에서는 1차 대전 이후 30년이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는 전간기였다면, 지금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치달아가는 일본에게는 1945년 패전 이후 최근까지의 평화 시기가 전간기에 해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지난 20년에 걸친 장기 불황의 타개책으로 등장한 아베노믹스가 1920년대 쇼와 불황 당시의 ‘다카하시 재정’을 모방한 데서도 드러난다. 당시 다카하시 재정의 끝은 1931년부터 시작된 중·일 전쟁이었고, 일본은 군수경제 체제로 들어서서야 불황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 더욱이 현재 일본의 극우 세력은 맥아더 군정청(GHQ)에 의한 평화헌법 및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도쿄 전범재판 등으로 이루어진 미국 주도의 전후 질서를 부정하고,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또 한 번의 전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1972년 중·일 수교 당시 덩샤오핑의 제안대로 ‘선반 위에 올려놓고 논의를 유보하기로 했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를 국유화니 뭐니 하면서 일본 우익이 분쟁화한 배경에도 그런 맥락이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우익은 성장하는 중국이 일본을 겨냥하면 할수록 환영하는 입장”(도쿄의 외교 소식통)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일본이 중국과 충돌할 거면 빠를수록 좋고, 늦으면 오히려 불리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즉 지금 전쟁하면 중국에 승리할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일본의 한 세미나에서 자위대와 중국군의 해군·공군력 간에 가상 전쟁게임(war game)을 벌인 적이 있는데, 앞으로 5년 이내에는 일본이 승리하지만 5년 이후에는 중국의 군사력이 일본을 압도하게 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5년 이내에 전쟁 나면 일본이 이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본 우익의 이 같은 계산에 중대한 허점이 드러났다. 바로 미국의 태도다. 5년 이내에 전쟁이 터지면 일본이 이긴다는 가정에는 미국이 어떤 식으로든 일본을 돕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중국 중시’로 돌아서면서 중·일 전쟁이 벌어져도 일본을 돕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먼저 중·일 전쟁의 예상 시나리오를 놓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짚어보자. 5년 이내에 전쟁하면 일본이 승리한다는 가정은 바로 제공권과 제해권에서의 승리를 상정했기 때문이다. 센카쿠를 둘러싸고 중·일 간 분쟁이 터지면 일본은 조기경계 관제기인 E767의 실시간 정보 수집 능력을 기반으로 F15J 전투기가 조직적으로 전투 능력을 발휘해 중국 전투기를 압도한다는 계산이다.
또한 바다에서도 P3C 대잠수함 초계기나 F2 공대공 미사일 등으로 중국 해군을 제압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중국이 당하고만 있을 리 없다. 당연히 사이버 공격과 더불어 미사일 공격에 나서게 된다. 이때의 미사일은 비핵탄두 미사일로 주 사정거리 1700㎞인 동풍21D와 순항미사일인 DH10으로 오키나와와 야에야마 제도, 그리고 일본 열도의 자위대 기지를 집중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관계자가 언급한 ‘일본 열도 불바다론’이 이것이다. 중국 미사일 공격에 대해 일본 자위대는 아직까지 적군 기지 공격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반격할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유일한 방법은 미군의 도움이다. 미군은 오하이오급 원자력 잠수함을 개조한 특수 잠수함을 4척 보유하고 있는데 제각기 사정거리 1500㎞에 이르는 순항미사일 154발씩을 장착했다. 이것으로 동중국해 바깥쪽에서라도 중국의 미사일 기지인 선양·후베이·허베이 등의 기지들을 맹타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 바로 이런 도움을 주느냐 여부에 따라 전쟁의 양상이 달라지게 되어 있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당연히 도와주리라 보고 중국을 자극했지만, 미국이 도와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과연 중국을 상대로 도발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일본은 다음 상대를 고르게 될 공산이 크다. 동북아에서 일본의 외교적 입지를 고려하면 사실 한국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여태까지는 한국과의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게 일본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중국과의 전쟁이 불가능해질 경우에도 그럴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센카쿠 대신 독도에서라도 한판 붙자고 나올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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