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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신영복

신영복 선생 <강의-나의 고전독법> 출간 강연(프레시안 050110)

by 마리산인1324 2007. 1. 16.

 

<프레시안> 2005-01-10 오후 2:07:22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50110115650&s_menu=문화

 

 

"냉엄한 사회성찰 통해 지치지 않는 개혁 이뤄야"

 

  신영복 선생 <강의-나의 고전독법> 출간 강연
 

 

2005년 광복 60주년을 맞는 한국 사회에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던진 화두는 ‘만남’을 통한 사회속에서의 냉엄한 성찰과 관계의 회복, 물에서 배우는 ‘낮은 곳에서 위치’하는 진보의 원리와 양심에 따른 지치지 않는 개혁 의지이다.
  
  최근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돌베게 펴냄)이라는 책을 낸 신영복 교수는 지난 5일 열린 출간기념 강연회에서 “우리 사회는 주역에 나오는 석과불식(碩果不食) 즉 잎을 다 떨군 감나무에 단 하나만 남아 있는 감과 같이 위태로운 상황과도 같다”며 “잎이 다 떨어진 감나무처럼 우리들이 갖고 있는 허위의식을 떨쳐 내고 우리 사회의 근본적이 구조를 맞대면 하는 성찰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이어 “이러한 절망의 상태에서 벗어나 희망을 찾기 위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과 사회를 성찰하고 더 나은 사회로 개혁하기 위해 물과 같이 끊임없이 유유히 흘러가는 개혁을 민초들이 주도해 나가야 한다”며 “과거 고전들을 통해 현대 사회를 재해석하고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찾아야"
  
  신 교수는 묵자의 ‘不鏡於水 而鏡於人 鏡於水 見面之容 鏡於人 則知吉與凶’라는 구절을 언급하며 “물에 얼굴을 비추지 말라. 사람에 비추어 보라”고 성찰이 개인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에 얼굴을 비추면 겉모습만 보일 뿐, 다른 사람에 자신을 비춰보아야 진정한 자신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신 교수는 그 예로 어느 목수의 ‘집 그리는 순서’를 예로 들었다. 신 교수는 자기 자신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을 그릴 때 지붕부터 그리는데, 그 목수는 주춧돌부터 그리고 마당, 기둥, 문짝을 그린 뒤 가장 나중에 지붕을 그리더라는 것이다. 집을 짓는 순서대로 그린 것으로 일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관점이다. 신 교수는 이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목수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된 것이다.
  
  신 교수는 결국 “나의 정체성은 결국 타인과 칼 같이 단절되고 구분되는 배타적 정체성이 아니라 내가 만나고 경험한 것의 총체적 합”이라고 강조했다. 즉 나의 정체성(identity)는 개인만의 것이 아닌 사회성(sociality)라는 것이다.
  
  “‘ 만남’이 없는 사회는 인간성을 잃어가는 사회”
  
  신 교수는 ‘사회’에 대해서도 “‘사회’라 하면 여러 가지 정의가 있겠지만,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가 지속적으로 작동되는 질서”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얼굴 없는 생산과 얼굴 없는 소비자가 서로 상품교환 형식으로 만나는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관계에서도 보편적 현상”이라고 비판하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만남'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간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레시안

  그 재밌는 예로 신 교수의 아파트 윗 층에 발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운 녀석이 살았다고 한다. 신 교수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상 가서 꾸짖지도 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놀이터에서 그 아이를 만나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사귀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전히 발소리가 시끄럽지만 덜 속상하더라는 것이다. 예전에 모르는 아이가 그러면 많이 속상했는데, 그래도 아는 녀석이 그러니까 덜 속상하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만남’이 없는 사회로 인해 전쟁이 더 잔혹해졌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사람들을 보지 않고 하늘 위에서 버튼 하나로만 폭탄을 투하하기 때문에 대량 살상이 이뤄지는 것이다. 즉 자기 중심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관계를 배려치 않으며 독립적인 자기 존재성 강화에만 치중하는 서구 근대사회의 원리가 현대 사회의 비극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서구 근대사회의 원리는 자본주의를 낳았다. 자본은 기본적으로 자기 증식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개인이든 회사든 국가이든 자기 경쟁력만을 중시하고 키워 나가며 그 과정에서 충돌이 생기면 적절하게 제압하는 역사를 되풀이해왔다.
  
  그 극명한 예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패권주의’를 들었다. 미국은 석유시장 결재 화폐를 유로화로 교체하려는 후세인을 제거하고 ‘달러’로 대변되는 자신들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다. 사실 미국의 패권은 세계의 통화가 된 달러화와 그 달러를 찍어내는 경제지배 구조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 교수는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전혀 배려치 않는 이러한 일국 패권주의는 역사적으로 볼 때 반드시 패망했다”고 지적하는 한편, “우리 개개인도 다른 사람과 상관없이 존재한다는 근대론적 인식을 철저하게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노자)
  
  그렇다면 이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방법론에는 무엇이 있을까? 신 교수에 따르면 노자는 물을 최고의 선(上善)이라 격찬했다. 물은 만물을 대단히 이롭게 한다.(水善利萬) 물은 다투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다.(不爭) 물은 즉 산이 나오면 멀리 돌아가고, 큰 바위가 막으면 비켜 가며, 웅덩이를 만나면 다 채우고 나아간다.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처하는데(處衆人之所惡) 이는 '낮은 곳'을 뜻한다. 물이 상선인 이유이다.
  
  신 교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가장 큰 물을 만들어 낸 것이 바다이고, ‘다 받아 들인다’고 해서 이름이 ‘바다’”라고 말했다.
  
ⓒ프레시안

  신 교수는 “흔히들 사람들이 ‘나를 물로보지 말라’고 말하듯이 물은 대단히 약한 것”이라며 “그러나 물은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방법으로 험난한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민초들의 전술이다”고 말한다.
  
  신 교수는 “물의 철학은 우리 사회에도 상징성을 가진다”며 “언론, 기업, 종교, 관료 인텔리 재생산의 보수적 구조에서 물과 같은 하방연대의 실천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는 정치권력을 장악하면 사회를 신속하게 구조적으로 개혁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졌으나, 20세기에 가장 강력한 정치권력을 가졌던 파시스트나 프롤레타리아 독재정권도 모두 실패했다”며 “우리 현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권을 장악하면 정권을 유지하려는게 고작이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더불어 “정치권력이 할 수 있는 개혁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진정한 사회의 개혁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정치적 관점이 아닌 민중들의 새로운 실천적 관점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타인을 배려하고 관계 소중히 생각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진짜 강한 사람”
  
  그렇다면 이러한 개혁들을 이뤄 나가기 위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신영복 교수는 “오래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래 버티기 위해선 “대단히 양심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

  신 교수는 감옥에서 20년을 보낸 후 20년 전 같이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찾아봤다고 한다. 당시에는 생각이 상당히 진보적이고, 뭔가 사명감이 있으며 조직력과 실천력, 설득력을 갖춘 굉장히 정렬적인 사람들이 선호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그렇게 뛰어나고 사명감이 투철했던 사람들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그 자리엔 당시엔 별 볼일 없던 사람들만 남아 있다고 한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무슨 사명감이나 뛰어난 역량을 갖고 참여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들어온 사람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 때문에 들어온 사람들만 지금까지 그 자리에 남았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처럼, 바람 속에서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처럼. 아주 놀라운 발견이었다”고 한다.
  
  신 교수는 “그들이 대단히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양심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즉 우리가 맺고 있는 이러저러한 관계성을 잘 성찰하는 마음이 양심이고, 이런 사람들이 진짜 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한 사회도 마찬가지로 한 사회의 역량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있는 인간관계로 질서 지어지는 사회, 이게 진정한 사회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냉엄한 자기 성찰 필요”
  
  신 교수는 마지막으로 장자의 ‘厲之人 夜半生基子 遽取火而視之 汲汲然 唯恐基似己也’ 구절을 들었다. ‘불구자가 야밤에 자식을 낳고 급히 불을 들고 자식을 살펴봤다’는 이야기인데, 신 교수는 “이 구절은 아주 냉엄한 자기성찰을 요구하는 구절로, 선생들은 항상 자신을 닮으라 하지만 자신을 닮지 않기를 바라는 어머니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 사회의 양심은 기본적으로 성찰적이어야 한다”며 “자기와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두루 배려하는 마음을 길러내는 교육이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신 교수에게 강연 문의가 쇄도해 2월 이후에는 지방을 찾아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날 계획이다.
   
 
  김하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