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브리핑> 2007.02.17
[노 대통령 기고]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 |
진보적 가치 실현 위해선 유연성과 책임성 중요 |
최근 진보진영 내에서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글은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정체성에 대한 논쟁’ ‘참여정부 정책에 대한 논쟁’ ‘진보진영 평가를 둘러싼 논쟁’ 등을 보고 솔직한 생각과 의견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대통령은 이 글을 유럽 순방을 떠나기 전 작성했습니다. 저는 요즈음 소설을 읽거나 TV드라마를 보면서, 아내에게 “작가는 참 좋겠다.” 이런 푸념을 곧잘 합니다. 그런데 학자들의 비판이나 논쟁을 보면서도 역시 ‘학자들은 참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학자는 말하는 사람이고, 집권한 정치인은 실행을 하는 사람입니다.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제약이 없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논리구조의 제약은 있겠지만, 현실을 해석함에 있어서 현실의 중요한 변수를 외면할 수도 있고 자유로이 온갖 가정을 동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천을 하는 사람은 상황의 제약을 단 하나도 도외시 할 수 없습니다. 마음대로 가정을 동원할 수도 없습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가능한 것을 선택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다만 장기적인 전략으로, 또는 의제화·담론화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당장의 가능성이 낮은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각오해야 합니다. 신문에서 참여정부를 비판하는 분들 간의 논쟁을 보면서 난감함을 느낍니다. 사실에 대한 인식이나 논리 모두 할 말이 있으나, 논점이 너무 많고 어려운 전략논리와 개념을 사용하고 있어서 일일이 반론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서 지난날의 저의 경험에서 시작하여 몇 가지 의견과 생각을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고시합격을 위해 유신헌법을 공부했습니다. 한때 이 일을 부끄럽게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유신헌법 책을 쓴 학자들도 민주주의의 원리에 관하여는 소상하게 써놓아서, 민주주의를 받치고 있는 상대주의 철학을 접할 수는 있는 기회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은 일생동안 저의 생각을 지배하는 철학이 됐습니다. 저는 이것을 참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유신과 5공은 저에게 새로운 사상에 접할 기회와 방황할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80년대 초 변호사시절, 단지 정의감만으로 시국사건 변론을 맡으면서 많은 사회과학분야 서적과 자료를 접하게 됐습니다. 물론 심오한 이론이 담긴 원론서도 접하기는 했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종속이론, 사회구성체이론, 민족경제론,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5.18 광주 이후 계속된 당시의 숨막히는 현실이 이런 이론과 유사하다는 점에 동의하여 비타협적 투쟁을 실천도 하고 주장하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고나서도 젊은 대학교수들을 모셔서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론이니, 식민지 반봉건 사회론이니 하는 이론적 조류에 대한 강연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때는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지원하는 것이 국회의원으로서의 활동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해 버리려 한 일도 있고, 89년 전민련이 결성되었을 때에는 거기에 은근히 기대를 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우리 현실은, 우리가 읽고 말하던 이론이 예언했던 방향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습니다. 외채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했던 우리경제는 이를 극복했고, 87년 이후 90년대 중반까지 4배의 임금인상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지속하며 격차를 줄이고 있었습니다. 진보진영은 개방을 할 때마다 “개방으로 나라가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했으나 우리경제는 모든 개방을 성공으로 기록하면서 발전을 계속했습니다. 이제는 2만불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급속한 구조조정과 97년 외환위기로 많은 국민들이 고통에 몰린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정책으로 교정할 문제이지 시장경제원리나 세계화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민주진영은 단결을 내세웠지만 작은 차이로 분열하는 일도 많았고, 대의를 내세웠지만 이기주의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들어왔던 논리가 틀렸거나 현실이 논리를 배반한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저는 논리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더욱이 체계적으로 정연한 논리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논리에 빠져 현실에 맹목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해 왔습니다.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아주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상체계의 완결성을 신봉하거나, 현실을 사상과 논리체계에 억지로 끼워맞추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사실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보진영이라 하여 분명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도 아무 지적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이름을 걸고 도와주다가 ‘그것 맞느냐’고 물으면 ‘그냥 이름만 걸어준 것’이라고 변명하는 무책임도 옳지 않습니다. 참여정부가 민심의 지지를 잃은 책임을 묻는다면 저는 그저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아무 한 일도 없이 국정에 실패만 했다고 한다면, 구체적인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따져보자고 말합니다. 참여정부 때문에 진보진영이 망하게 생겼다고 원망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얘기입니다. 진보진영 스스로 전체를 돌아봐야 할 일은 없을까요. 참여정부에 진보적 정책이 없다는 비판도 사실이 아닙니다. 참여정부 동안에 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맞습니다. 저도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과거 외환위기와 가계부도라는 경제적 위기에서 심화된 것이고 참여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습니다.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해서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4년 동안 재정에서 차지하는 복지지출 비중이 20%에서 28%로 증가했습니다. 이것은 지난 어느 정부보다 빠른 속도입니다. 그리고 지방재정에서도 복지예산을 31%에서 36%로 늘렸습니다. 이것 역시 이전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점입니다. 그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 재정에서 차지하는 복지지출 비중은 유럽국가들과 비교해 절반수준에 불과합니다. 우리 정부의 공공서비스는 국민들의 기본적인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공공서비스로 기회가 공정하게 제공되지 못하면서 빈곤이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 복지지출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동반성장, 양극화 해소를 위해 국민총생산 대비 복지지출을 2020년까지는 현재의 미국·일본 수준으로, 2030년까지는 현재의 유럽 수준으로 높이자는 ‘비전 2030’도 이전에 없던 국가 장기발전 계획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과거에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는 저출산·고령화·양극화가 계층간 부문간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를 방치하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비전 2030’ 미래전략입니다. 이것은 혁신주도형 경제로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사회투자를 통해 동반성장을 추구하자는 전략입니다. 이에 대해 진보진영에서 얼마나 진지한 관심을 가졌는지 의문입니다. 진보가 진보다우려면 미래문제에 대해 보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용산 미군기지가 서울을 떠납니다. 진보진영의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진보진영의 일부는 평택기지 건설을 반대해 정부를 곤경에 몰아넣고, 이를 지원했습니다. 주한미군 나가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타당한 일이고 가능한 일입니까. 국제정치의 현실도 현실이지만, 국내 사정으로 보더라도 우리나라가 진보진영만 사는 나라입니까. 진보진영이라고 다 미군철수를 타당하다고 생각합니까. 앞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은 한국군이 단독으로 행사하게 됩니다. 단지 상징적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사시든 평상시든 남북관계나 대외관계 등 한반도 문제에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일입니다. “노 정권은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 주었다”는 주장은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협상은 상대가 있는 것입니다. 권력을 등에 업고 특권을 누리는 국가기관은 지금 없습니다. 권력이 합리화되고 정경유착이 끊어졌습니다. 정치와 권력뿐만 아니라 시장과 사회의 투명성이 높아졌습니다. 공정한 경쟁의 규칙이 확립되어 가고 있습니다. 권위주의도 해소되었습니다. 언론권력은 여전히 막강하지만 권언유착의 근절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됐습니다. 언론의 행태도, 언론을 보는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참여정부가 끝나면 더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일부 언론권력도 참여정부에서는 한 발도 물러설 수 없을 것이나, 이후에는 지금과 같은 행태를 계속하지 못할 것입니다. 계속하다가는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참여정부 동안에는 ‘앞으로 계속 그래서는 곤란하다’는 학습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흔히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에 불만을 가진 표현이라고 생각하여, 이 말을 잘 쓰지 않지만, 어떻든 이것은 이제 완성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진보진영이 보기에는 이 모두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입니까? 이라크 파병, FTA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사실은 인정합시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따질 것은 따지는 것이, 지식을 가지고 논리를 말하는 사람들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여 ‘지역주의가 별 문제 아니다’거나 ‘일부 언론권력, 정치언론의 횡포가 별 것 아니다’는 논리까지 나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정부는 지금도 지역주의, 언론권력과 싸우고 있을 뿐, 책임모면이나 ‘알리바이’를 위해 지역주의나 언론 이야기를 한 일은 없습니다. 참여정부가 진보진영의 비주류라서 실패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발견입니다. 오래전 저는 어느 모임에서 진보진영의 학자 한 분에게 “나는 비주류 중의 비주류라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했던 일이 있습니다. 지금은 참여정부를 매도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그 분은, 그 때 “그럴 것”이라고 상당히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런 제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어려운 처지의 저와 참여정부를 흔들고 깎아내리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신자유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나 일부 정치언론이 말하는 그런 좌파도 아닙니다. 저는 진보의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이지만, 무슨 사상과 교리의 틀을 가지고 현실을 재단하는 태도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개방도, 노동의 유연성도 더 이상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 효용성의 문제입니다. 세계시장이 하나로 통하는 방향으로 가는 시대의 대세는, 중국의 지도자들도 거역하지 못한 일입니다. 이런 마당에 개방을 거부하자는 주장이나 법으로 직장을 보장하자는 주장은 현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난 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입니다. 비판 가운데엔 ‘진정성’이라는 말과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까지 시비가 돼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엉뚱한 오해입니다. 청와대는 정권에 대한 평가에 대해 책임회피를 하자고 진정성이라는 말을 쓴 일은 없습니다. 개헌이 정략이니 아니니 하는 논쟁의 와중에서 누군가가 진정성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고 청와대도 이 말을 따라 쓴 모양이나, 이것을 가지고 청와대가 진정성을 내세워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려고 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입니다.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우스개 표현마저 심각한 논란이 되는 현실은 비극입니다. 제가 이 말을 한 것은, 참여정부를 굳이 교조적인 이념의 틀에 가두어 놓고 두드리려는 의도로 한 쪽에서는 ‘좌파정부’라 비난하고, 한 쪽에서는 ‘신자유주의’라고 비난하는 상황이 못마땅하여, 이런 비판을 교조적 논리라고 비꼬아서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두고 언론이 진지한 표정으로 무슨 뜻이냐 묻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하는 바람에 난감한 기분이 든 일이 있습니다. 이제는 학자들마저 이 말을 정색하면서 받아들이고 무슨 의미를 붙이니, 입장이 참으로 난처합니다. 다시 한 번 더 밝힙니다. 이 말은 참여정부를 교조적 사상으로 재단하는 현실을 비꼬아서 쓴 말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니 더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제 우리 진보가 달라지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필요하면 그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든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이든 채택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져야 합니다. 유럽의 진보진영은 진작부터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참여정부의 노선은 이런 것입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유연한 진보’라고 붙이고 싶습니다. ‘교조적 진보’에 대응하는 개념이라 생각하고 붙인 이름입니다. 저 때문에 진보진영이 다음 정권을 놓치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 정권에 대한 지지가 다음 정권을 결정한다면, 지난번에도 정권은 한나라당에 넘어갔을 것입니다. 저는 다음정권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일도 없습니다. 저 또한 대세를 잡고 있지 못한 지금의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선거에서 민주 혹은 진보진영이 성공하고 안 하고는 스스로의 문제이고,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저에게 다음 정권에 대한 책임까지 지우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차라리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았더라면 진보진영이 행동하기 좋았을 것이라는 말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진보진영이 무엇을 잘하자는 것이 아니라 반사적 이익을 보자는 것입니다. 진보진영이 무엇을 잘해서 정권을 잡을 일이라면 참여정부 시대에도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반사적 이익을 보겠다는 말이라면 다음에도 기회는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거기서 더 나아가 민주세력 무능론까지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대단히 부당한 논리입니다. 과거의 군사정권과 비교해서 무능하다는 것인지, 다른 나라 민주세력과 비교해서 무능하다는 것인지 기준을 알 수가 없습니다. 비록 민주화 이행과정에 있어서 갈등과 혼란이 적지 않았습니다만, 이것은 어느 나라고 할 것 없이 사회변동과정에서 있는 보편적 현상이라고 봅니다. 87년 이후 우리나라가 이룬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전 세계 사람들이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난 20여년 민주주의를 주도하고 경제발전을 이끌어 온 민주진영은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지지도가 낮다고 하여 민주세력 무능론까지 대두되는 최근 상황을 보면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와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가 근거와 논거를 갖춰 이뤄지길 바라는 것과 같이, 민주세력의 공과(功過) 역시 시대적 요구를 중심으로 비교의 기준과 사실적 논거를 갖고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민주화와 사회발전 과정에서 생긴 분열과 좌절의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아직 분열은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작은 차이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에게 주어진 민주화 과정 20년의 한 획을 긋는 나름대로의 소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난 4년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보람과 자부심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진보진영의 논쟁이 서로가 책임을 다하는 범위 안에서 애정과 이해를 가지고 냉정하게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2007.2. 대 통 령 노 무 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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