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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생활

'시앗'을 쓴 김서영씨의 기막힌 ‘첩살이’ /레이디경향

by 마리산인1324 2007. 9. 14.

 

[레이디경향   2007-09-11 14:54:57] 

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10&artid=9960

 

 

30년 산 남편에게 25년 된 ‘첩’이 있다니…김서영씨의 기막힌 ‘첩살이’

나의 죄명은… ‘남편을 너무 믿은 죄’였다”
 
 


주부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시앗」(남편의 첩)이라는 책은 환갑을 눈앞에 둔 평범한 가정주부가 쓴 에세이다. 이 책은 ‘남편의 배신 그리고 첩과의 동거’를 다룬 충격적인 내용뿐 아니라 더욱 놀라운 것은 ‘실화’라는 것. 시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 앉는다는데…. 책 속의 주인공인 저자는 가슴 저린 이야기를 간결하고 깔끔하게 그리고 담담한 태도로 써내려갔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왜… 이혼 안 하세요?”

 

김서영씨가 30년 동안 살아온 남편에게 25년 된 여자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은 5년 전이다. 처음에는 “깊은 사이가 아니다"며 "헤어지겠다”고 호언장담하는 남편을 믿었다. 하지만 남편은 김씨 몰래 계속 그 여자를 만났고, 김씨는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이 서로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치를 떨어야 했다. 김씨는 충격으로 수차례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남편과 함께 살아온 30년 세월…. 이제 와서 ‘이혼’을 선택한다면, 지금껏 살아온 세월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김씨는 ‘이혼’이라는 극약 처방 대신 ‘첩’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지금의 자리에서 한 치도 물러나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 이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내 남자인 줄 알았던 남편이 알고보니 그 여자의 남자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김씨가 첩의 존재를 인정한 뒤, 남편은 자연스럽게 양쪽 집을 왕래했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하루는 이 집, 또 하루는 저 집. 시앗 역시 애교 섞인 목소리로 ‘형님~’을 외치며 김씨의 집을 드나들었다.

김씨의 집으로 술과 고기를 사가지고 와서 놀다가 술에 취해 쓰러져 나란히 잠들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맛있는 삼겹살이 먹고 싶다며 애처럼 조르는 그들.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다며 한가득 옷을 사들고 들어와 패션쇼를 한다. 해외여행을 간다며 당당하게 여행가방을 꾸리고. ‘여보, 당신’이라 호칭하며 대놓고 닭살 애정행각을 벌인다. 이런 그들을 바라보는 김씨의 가슴은 하루하루 타들어갔다.

이런 기막한 상황을 누구에게 속시원히 털어놓을 것인가. 시간이 흘러 이런 기억이 잊혀지는 게 억울했다. 누군가는 이런 마음을 알아줬으면 했다.

그래서 ‘아줌마 닷컴’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일기 형식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미처 예상치 못한 반응에 김씨가 더욱 놀랐다. 그녀의 글은 다른 글들에 비해 조회수가 3배 이상 높았고, 댓글도 끝없이 달렸다.

요즘 시대에는 좀처럼 있을 수 없는 ‘한 남자와 두 여자의 동거’라는 상황이 사람들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 있는 사람답지 않게 담담하고 냉정한 김씨의 글은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머…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말도 안 돼. 소설이 아닐까’라는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 결국은 ‘이혼을 해야 한다 vs 누구 좋으라고 이혼을 하느냐’는 열띤 공방까지 벌이기도 했다.

김씨의 글이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자 ‘아줌마 닷컴’의 운영자가 그녀에게 ‘책을 내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책을 낸다는 것은 인터넷과는 또 다른 ‘부담’이었다. 김씨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들’에게 돌을 던지기 위함이 아니라, 너무 아파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비명과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김씨는 ‘책’을 내는 모험을 강행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숨’을 쉬고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몰래 쓴 책, 남편과 시앗이 알아버렸다


지난 6월,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난 김씨. 올해로 60세를 맞은 그녀는 한눈에 보기에도 온화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차분하고 조용한 말투, 따뜻한 미소가 인상적인 중년의 주부였다.

5년 전 시앗의 존재를 알고 남편과 정신적 싸움을 해온 터라 원래 좋지 않던 건강이 더욱 나빠졌다. 특히 최근에는 그녀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책’의 존재를 남편과 시댁 식구들 그리고 시앗이 알아버린 것이다.

“영원히 모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언젠가는 그들도 알게 될 거라고 각오는 했죠. 내 기대는 책을 읽고 난 뒤, ‘많이 아팠구나’라며 내 마음을 남편이 알아줬으면 하는 거였는데 전혀 아니더라고요. ‘이럴 수 있는 거냐’며 무조건 화를 내서 많이 실망했죠. ‘창피하다’ ‘그렇게 통속적인 글을 쓸 수 있냐’며 흥분하더라고요.”

그녀는 화난 황소처럼 흥분하는 남편에게 다시 한번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 봐달라는 거였다. 하지만 남편은 ‘그 유치한 걸 내가 왜 읽냐’며 단번에 거절하며 화만 냈다.

시앗의 반응은 더욱 가관이다. 책을 본 시앗이 그녀의 집에 쳐들어온 것. “시앗이 집에 쳐들어왔죠. 본처가 시앗 집에 찾아가는 경우는 봤어도, 시앗이 본처 집에 쳐들어오는 경우는 참 드물죠?(웃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거죠. 자기 욕하는 것은 괜찮지만, 부모님 이야기는 빼달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시앗은 남편과는 달리 그녀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시앗이 이 책을 보면서 많이 울었대요. ‘내 행동이 이렇게까지 상처가 됐구나’라고 반성도 많이 했다면서 “미안하다, 사죄한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남편보다 더 저를 이해해줬어요.”

그런 시앗에게 그녀는 “내가 너를 완전히 미워하는 게 아닌 거 알지”라고 했더니 “안다”고 답하더란다.
스물여덟의 나이에 이혼을 한 시앗은 이혼 직후 김씨의 남편을 만났다. 하지만 남편이 부인(김씨)과 이혼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미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남편은 미국까지 쫓아와 시앗을 찾았고 그후 이들의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고 했다.

김씨는 평생 남의 남자 ‘세컨드’로 만족하며 살아온 시앗에게 안쓰러운 마음도 있다. 같은 여자 입장에서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성격도 쾌활하고, 돈도 많고, 애교도 많은 시앗. 사람 자체만 보면 딱히 미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단지 ‘내 남편을 빼앗아갔다’는 사실만 빼면.

 

“남편은 내가 엄마로 보이나 봐요”

 

 김서영씨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이 시점에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여자는 육감이라는 것이 있는데, 김씨는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남편의 이중생활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그 이유에 대해 그녀는 ‘남편을 맹신한 죄’ 때문이라고 말한다.

“남편을 무조건 믿은 거죠. 매일 만나는 여자는 많다고 말해요. 외국인 회사에 다녔으니까 여직원, 거래처 직원 등 여자들은 많았겠죠. 평소 남편은 여자를 가리고 무시해서 여자들에게 결벽증이 있는 줄 알았어요. 나만 좋아하는 줄 알았죠. 잘난 척하다가 이렇게 뒷통수 맞은 것 같아요(웃음).”

김씨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남편을 밖으로 나돌게 만든 이유가 다 ‘내 탓’이라고 말한다. 남편을 너무 믿었다는 것. 남편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는 사실이다.

“상상도 안 해봤어요. 다른 집에서 남편이 바람났다고 해도 그냥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죠. 가정이 있는 남자가 바람을 피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김씨가 이렇게 철썩같이 믿을 정도로 그녀의 남편은 양쪽에 너무 잘(?)했다. 김씨의 눈과 귀를 꽁꽁 막을 만큼 남편의 행동은 철저했다. 아니 원래 성품이 그렇게 타고난 것 같다. 매일 “당신을 따라갈 여자가 누가 있겠냐”고 칭찬하며, 외박을 할 때도 아침, 저녁으로 안부 전화를 빼놓지 않아서 혼자 잠이 들어도 전혀 외로움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가끔 주위 사람들이 ‘남편에게 분명히 여자가 있다’고 조언하는 것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어. 어제도 사랑한다고 말했는데?”라며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미워했다.

김씨는 이런 남편의 성향은 아무래도 유전인 것 같다고 한다. 남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첩’이 있었다는 것. 또 여자를 좋아하고 자상한 성격이 시아버지와 판박이란다. 이어 김씨는 “정년 퇴직하고 경제적인 능력도 없는데, 시앗이 아직 저렇게 붙어 있는 거 보면 남편이 참 능력이 좋다”고 말하며 웃는다.

김씨도 그들의 사랑을 바라보는 것에 많이 지쳤다. 괜찮은 척해왔지만, 이제는 아니다. 시앗을 아우로 인정하고, 자주 왕래하다 보니 너무들 하는 것 같다.

“남편은 내가 엄마로 보이나 봐요. 자기 여자를 데리고 와서 ‘먹을 것 좀 해달라’고 부탁하는 걸 보면요. 이제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게 비위가 상하고, 속이 메슥거려요.”

 

“이제 ‘이혼’… 하게 되면 하려고요”

 

‘책 출간’ 사실이 밝혀지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뒤, 더 이상 시앗은 김씨의 집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 시앗을 보고 싶지 않은 김씨의 결정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과 시앗’, 그들의 관계는 여전히 변함없다. 시앗이 집에 오지 않는 대신, 남편이 일주일에 3~4일은 시앗의 집으로 간다.

그리고 남편은 ‘책’의 존재에 대해 여전히 화를 가라앉히지 않고 있다. 더 이상 책을 내지 말라고 조건도 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의 책은 조만간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다. 남편은 이 역시 강하게 반대한다. 그런데도 김씨는 여전히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남편은 더 이상 그녀에게 ‘글쓰기’만큼 위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글을 쓰지 말라는 것은 저보고 죽으라는 거예요. 손 놓고 앉아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요. 날 계속 괴롭히면 저도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겠지요. 이혼을 하게 되면 하는 거고, 안 하게 되면 안 하는 거죠. 제 마음이 반반이에요.”

그녀는 ‘이혼’에 관해 이야기한다. 책이 두 권이나 나올 때까지 전혀 이혼할 생각이 없었다는 그녀.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책을 읽은 뒤 자신을 대하는 남편의 태도에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두 권의 책에 절절하게 하소연을 쏟아냈다. 그런데도 자신의 속마음을 짚어내지 못하는 남편이 정말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만약 ‘이혼’을 한다고 해도 ‘책’을 낸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제는 평범한 가정주부가 아닌, ‘작가’로서 그동안 잠들어 있던 꿈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명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젊은 시절 꿈이 소설가였다. 하지만 결혼과 함께 소설가의 꿈을 바로 접었다. 김씨의 친정 아버지는 딸이 결혼 후 전공은 잊어버리고 살림만 하는 게 내심 속상했던 터라, 그녀가 ‘작가’로서 꿈을 펼치는 것을 무척 기뻐하신다. 이제야 딸이 제 길을 간다고.

인터넷에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면서 꿋꿋하게 이런 상황을 견디고 있는 김씨에게 어느 날 친언니가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 이런 경우 미치거나 쓰러지는데, 그걸 글로 적어가면서 견디고 있다니 너는 독한 거니, 강한 거니, 아님 바보니”라고. 이에 김씨는 “셋 다”라고 웃으면서 답했다.

 

“시앗을 떼어놓든가, 내가 포기해야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김씨가 바라는 ‘행복’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차라리 끝까지 ‘시앗’의 존재를 몰랐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그럼 죽을 때까지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살았을 것이다.

“제가 원하는 행복이요? 음… 남편이 시앗과 헤어지고, 떨어져서 사는 애들과 다 같이 모여사는 거죠. 하지만 이런 상황까지 왔으니까 남편은 남편대로 즐겁게 살고, 저는 저대로 즐겁게 살아야죠. 무늬만 ‘부부’지 이미 서로를 잡고 있던 끈은 끊어졌다고 생각해요.”

김씨는 책을 낸 뒤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통해 ‘남편을 바라보는 눈’도 객관적으로 변했다.
“난 책을 내기 전에는 이 남자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시앗도 반할 만하다고 생각했죠(웃음). 그런데 좀 떨어져서 다른 사람들의 남편을 보니 이제야 남편의 허물이 보이네요. 그래서 가슴 아픈 것도 많이 없어졌어요.”

이제는 남편을 보는 것이 담담하고, 객관적이다. 사실 이제 남을 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속이 편하다. 김씨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처음 ‘시앗’의 존재를 알았을 때, 어떤 쪽으로든 결정을 내렸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앗을 떼어놓든가, 자신이 손을 놓아야 했다는 것.

김씨는 마지막으로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젊은 주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남자의 ‘배신’은 여자가 쉽게 용서해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쉽게 용서해주면 금세 잊어버리기 때문. 별거 등의 강한 조치를 통해 남자가 스스로 뭘 잘못했는지 반성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아예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충고한다.

“남편에게 여자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 우선 ‘계속 살 것이냐 vs 안 살 것이냐'를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이혼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뒷조사를 하세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면 더 이상 같이 살기는 어려워요. 사람이 누구의 소유가 될 수는 없지만, 더 이상 내 남편이 아닌 것 같거든요. 다른 여자의 남자 같죠(웃음).”

오랜 시간 시앗의 존재를 몰랐던 자신을 ‘자책’하며 남편을 ‘믿은 죄’가 크다고 말하는 그녀는 본처의 자리만은 시앗에게 내주지 않겠노라 결심했었다. 남편과 시앗의 애정행각에 큰 상처를 받았지만 글을 쓰면서 겨우 편하게 ‘숨’이 쉬어졌다고 한다. ‘책’을 내고서야 남편이 객관적으로 보인다는 그녀는 이제 ‘이혼’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환갑이 돼서야 ‘남편’이 아닌 자신의 ‘자아’를 위해 살겠다고 말하는 그녀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은 후 여자 김서영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젠 여자로서가 아니라 ‘작가’로서 또 다른 인생에 도전장을 내민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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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경향> 2010년 9월호

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4&artid=201009081440291

 

 

 

 남편의 두 집 살림을 참지 못해 이혼 선택한 소설가 정희경

 

 

5년 전, 「시앗(남편의 첩)」이라는 책이 인터넷과 서점가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반평생을 믿고 살았던 남편에게 25년 된 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본처의 자리를 내주고 싶지 않아서 ‘첩살이’를 했다는 충격적인 내용. 당시 ‘김서영’이라는 필명으로 「시앗 1, 2」를 출간했던 이 책의 주인공이 ‘정희경’이라는 실명을 내걸고 「한 남자 두 집」이라는 자전적 소설을 펴냈다. 지난해 마침내 ‘첩살이’에 마침표를 찍고, ‘이혼’을 통해 인생 제2막을 위한 출발선상에 선 그녀를 만났다.


반평생 믿었던 남편에게 25년 된 여자가 나타났다!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들의 어머니로 평범하게 살아왔던 결혼 39년 차 정희경씨(64). 하지만 9년 전 갑작스레 남편의 숨겨진 여자가 나타나면서 그녀의 인생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 됐다.

무려 25년이나 정씨를 속이고 두 집 살림을 해온 남편. 그녀는 남편과 첩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본처’의 자리를 내놓지 않기 위해 첩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첩은 그저 첩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는데, 마음에 상처를 받은 것은 오히려 정씨 자신이었다.

아내에게 첩의 존재를 인정받은 남편은 당당하게 첩의 집으로 갔고, 첩도 자연스럽게 정씨의 집에 드나들었다. 두 사람은 정씨가 마치 ‘엄마’라도 되는 듯 행동했다. 맛있는 것을 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함께 쇼핑해온 옷들을 봐달라고도 하고, 둘이 함께 해외여행 가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공항까지 배웅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들의 닭살 애정행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도를 넘어섰고, 정희경씨는 그들 앞에 ‘투명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반평생 그녀의 눈을 가리고, “사랑한다”고 말했던 남편이 알고 보니 ‘그 여자의 남자였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녀도 숨쉴 곳이 필요했다.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정씨. 젊었을 때는 글을 곧잘 쓰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 후 남편의 반대로 글쓰기를 중단하고 집안 살림만 해왔다. 그녀는 숨쉴 공간을 인터넷에 마련해놓고 그곳에 ‘저절로 터져 나오는 비명’처럼 글을 써서 올리기 시작했다. 첩과 함께 생활한 지난 몇 년간의 시간들을 조목조목 나열했다.

담담하게 일기처럼 써내려간 정씨의 글은 순식간에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일부에서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냐’, ‘요즘 같은 시대에 첩살이를 하다니 말도 안 된다’, ‘빨리 이혼을 해라’, ‘첩에게 본처의 본때를 보여줘라’, ‘힘내라’ 등의 수많은 댓글과 격려의 글이 쏟아졌다.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소통을 시작한 정씨는 그제야 겨우 숨을 쉴 수 있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녀가 하루하루 써내려간 글들은 2006년 「시앗(남편의 첩)」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넘볼 수 없는 본처 자리 지키고 싶었다

 

첩과의 동거를 기막힌 시선으로 바라보던 세상 사람들은 정씨에게 “왜 이혼을 하지 않냐?”고 물었고, 그때마다 정씨는 “본처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첩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고, 감히 넘볼 수 없는 나의 가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했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어가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책이 출간된 것이 집안에 알려지고 나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남편은 책 속에 담긴 정씨의 상처받은 마음은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책에는 가명으로 기재됐음에도) 집안과 자신을 대대적으로 망신시켰다는 이유로 불같이 화를 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남편의 첩 역시 마찬가지였다. 첩은 책을 보자마자 그녀의 집에 쳐들어와서 “자기를 욕하는 것은 괜찮지만, 자신의 부모님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화를 냈다. 시댁 식구들 역시 일제히 그녀에게 등을 돌렸다. 40여 년 동안 시집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온 세월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남편과 시댁 식구들은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크게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집안일이 세상에 알려져 망신이다’라는 사실뿐이었다.

시댁 식구들은 부모님 제사와 명절 때도 더 이상 그녀의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40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다해 시댁 식구들을 위해 살았던 정씨에게 그들은 냉정하고 모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남편과 시댁에 마음을 둘 이유를 찾지 못했다. “자식을 낳고 반평생을 함께한 조강지처의 자리는 저 혼자만의 자부심으로는 지켜지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것을 인정해 주고 지켜주는 남편이 없으면 지속될 수 없는 것이었죠.”

남편과 시댁의 냉대, 결국 이혼 결정

정씨의 인내심은 한계에 이르게 됐고, 지난해 이혼을 했다. 그녀는 이혼 결심을 굳히고 집을 나와서 변호사를 통해 이혼 조정 신청을 했다. 합의 이혼으로 시간을 끌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집을 나온 그녀는 11월에 최종적으로 이혼 서류를 받았다.

남편은 “한 번이라도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며 어떻게든 그녀를 설득하려 했으나 정씨는 6개월 동안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마음이 약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씨는 자신의 명의로 오피스텔을 사놓았기 때문에 혼자서 독립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이혼을 받아들인 남편은 “원하는 대로 다 해줄 테니, 대신 첩을 상대로 소송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본 정씨는 ‘역시 이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깜짝 놀랐을 거예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집을 나왔으니까요. 그래도 느낌에 제가 집을 나갈 것 같았나 봐요. 앨범 정리만 해도 ‘그거 가지고 나가려고? 나 버리면 안 돼…’라고 말하곤 했어요. 하지만 늘 그 여자와 함께 있는 걸 바라봐주었으면 하더군요.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몰라요. 처음에는 궁금했는데, 이제는 궁금하지 않아요. 서로 전화번호도 바꾸고 연락을 안 하니까요. 서로 소식 두절인 게 바로 이혼이라는 거더군요.”

이혼 후, 그녀는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평화를 느끼고 있다. 처음 3, 4개월은 남편이 보고 싶기도 했고, 좋았던 시절의 추억이 생각나 괴롭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과 ‘남편의 술주정을 더 이상 안 봐도 된다’는 사실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가끔은 ‘자유와 고독’ 사이에서 고민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남편하고 같이 살 때도 고독한 건 마찬가지였어요. 단순한 고독이 아니라,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외로움이었죠. 제 앞에서 태연하게 그 여자와 ‘여보, 당신’을 부르는 그들에게 기만당하고 짓밟히는 느낌이었거든요. 이제는 아무에게도 짓밟히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40년 전 첫사랑을 다시 만나다

사실 정씨는 남편과의 만남이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을 수도 있다고 고백했다. 20대 초반 그녀는 부모님의 반대로 첫사랑과 강제로 헤어졌다. 이에 정씨는 첫사랑을 따라 집을 나가기도 했지만, 결국은 다시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 정씨의 부모님이 딸의 상담을 맡긴 사람이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다. 당시 명문대를 졸업하고 이미 대기업에 취직했던 남편. 부모님은 모두 남편을 좋아했고,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졌다.

남편은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당신을 얻는 것은 세상을 얻는 것과 같다”고 말했을 정도로 아끼고 사랑해줬다. 하지만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남편은 신혼 초, 툭하면 첫사랑 이야기를 꺼냈다. “신혼 초 남편이 제가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마 마음이 허전해서 다른 여자를 찾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20대 때의 찬란했던 첫사랑.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니면 운명인지, 정씨가 이혼한 후 첫사랑의 그 남자가 다시 그녀를 찾아왔다. 첫사랑은 그녀의 이혼 소식은 물론, 과거에 출간했던 책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책을 읽은 첫사랑의 남자는 그녀에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줄 알았더니,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참 신기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어색하더니, 두세 번 만나고 나니까 40여 년 전 그때의 말투와 행동 그대로 하게 되더라고요. 그 사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그도 그 시절 그때의 저를 보는 것 같대요. 오랜만에 만나서 정말 기뻤죠.”

첫사랑도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다. 그는 정씨와 헤어진 후, 한동안 방황하다가 결혼을 했지만 끝내 순탄한 결혼생활은 하지 못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첫사랑의 남자는 “이제는 당신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정씨에게 다가왔다. 과거에 함께 들었던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고, 서로의 추억이 묻어 있는 해운대 바닷가와 춘천 등으로 여행을 갔다 오기도 했다.

첫사랑의 남자는 스무 살 때 찍었던 정씨 사진들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그 사진들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던 게 이혼의 발단이 됐다고 한다. 또 그 당시 습작처럼 썼던 글들 역시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40여 년이라는 세월은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자꾸만 정씨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정씨는 “그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말한다.

“저는 다시 그 첫사랑과 시작하고 싶지 않아요. 남자하고는 살아볼 만큼 살았고, 이제 다시 남자를 위해 밥을 해주고 싶지 않아요. 혹시 제 나이가 40대라면 다시 시작하는 걸 고려해볼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제 자신을 위해 살고 싶어요. 글을 쓰면서 자유롭게 말이죠.”

‘작가’의 꿈 이뤄 행복합니다

혹시, 전남편이 첩을 정리하고 정씨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면 다시 받아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그녀는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혼을 선택한 건 단지 첩의 존재 때문만은 아니었다. 남편은 인격적으로 그녀를 기만했고, 인생을 짓밟았다. 그러고는 너무도 당당하고 떳떳하게 행동했다. 정씨는 그런 남편을 다시는 받아주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앞으로 정씨는 젊었을 때 남편의 만류로 하지 못했던 ‘글쓰는 일’에 매진할 예정이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냥 ‘정희경’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싶다는 것. 그리고 그녀는 「시앗 1, 2」와 최근 발간한 「한 남자 두 집」을 통해 젊은 시절 이루지 못했던 ‘작가’의 꿈도 이루었다. 엄마와 아내로서 최선을 다해 살았던 40여 년의 세월. ‘정희경’이라는 이름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그녀는 환한 미소와 함께 이렇게 말한다. “여자 그리고 작가 ‘정희경’의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가끔은 ‘자유와 고독’ 사이에서 고민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남편하고 같이 살 때도 고독한 건 마찬가지였어요. 단순한 고독이 아니라,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외로움이었죠. 제 앞에서 태연하게 그 여자와 ‘여보, 당신’을 부르는 그들에게 기만당하고 짓밟히는 느낌이었거든요. 이제는 아무에게도 짓밟히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이성원 취재 협조 / 지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