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앙> 2008년 06월 13일 (금) 16:23:36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0093
여성 본능과 시민의 발랄함 승리하다 | ||||||||||||
[촛불혁명] 어떤 프랑스 68세대 "그런데 당신들의 문화주권은?" | ||||||||||||
08촛불혁명 : 아나키즘의 화려한 탄생
독일이 아닌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날 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듯이, 부동산 선거에 각자의 주권을 묻어버린 암울한 한국사회에 전세대가 연대하는 직접 민주주의가 광장에서 실천되는 시민혁명이 이루어질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유치원에서 유기농 소녀로 불리는 딸아이 칼리가 “이명박이 나쁜 고기를 사람들에게 먹으라고 했다”는 엄마의 설명으로 즉각 의식화되어, 집에서만 외치던 “이명박 물러가라”를 드디어 외치게 된 것이다.(초기 집회에 참석한 바 있었지만 그땐 아직 우리 집에서와는 달리 “이명박 물러가라”까지 구호가 진전되지 않아, 실망했던 칼리였다)
왼쪽 옆으로는 나의 언니와 초등학교 6학년인인 조카가 자리했다. 집회가 시작된 지 1시간쯤 뒤, 뒤에서 화장을 고치던 그녀의 남친이 여친의 구박을 한 몸에 받으며 등장한다. 08 촛불혁명의 상징이 촛불소녀이듯, '女초에 女주도'가 사방으로 뚜렷하다. 아슬아슬한 순간마다 들려오는 비폭력의 구호는 그 본질을 되새김질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은 살림과 돌봄을 본능으로 하는 이들이다.
그들의 주장은 생명을 살려내고 돌보는 것을 주관하는 자들의 근본적인 요구이므로 그 어떤 어정쩡한 타협도, 정치적인 이용도 통할 수 없는 직설적 요구이다. 쇠고기 문제로 거대 언론들의 기만을 직시하게 된 이들은 삽시간에, 정보의 옥석을 가릴 줄 아는 현명함과 생활이 곧 정치인 현실을 터득하고 있는 중이다. 엄마와 함께 부르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노래가 대형스피커를 타고 연신 들려오는 것에 칼리는 어깨를 들썩였고, 가장 흥분해서 사방팔방으로 집회장을 헤집고 다녔던 사람은 그의 아빠 희완이었다.
대학생들의 이 '일상적인 분노'는 좌우를 막론한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의 모든 구태들에 대한 저항으로 번졌다. 먹거리 안전의 문제에서 소통을 거부하는 정권에게 직접 민주주의를 행사하고, 경제를 살리기 전에 국민의 건강한 삶을 살리는 것이 우선임을 가르치는 전면적인 생활정치의 혁명으로 번지는 지금의 모습은 68혁명과 묘하게 닮아 있다.
“왜 CHICAGO, BOSTON, NEW YORK이라고 잔뜩 써 있는 티셔츠를 여기까지 와서 봐야 하는가? 굳이 저렇게 아무 의미도 없는 도시 이름을 옷에 적어 다녀야 한다면, 왜 한국에는 서울, 부천, 수원 이렇게 써 있는 티셔츠는 없느냐. 'US ARMY'라고 써 있는 티셔츠를 입고 전경에게 두들겨 맞는다 해도 동정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의류 뿐 아니라, 학용품, 과자 등 거의 모든 일상의 공산품은 불필요한 영문으로 도배되어 있다. 집회장에 굳이 '국민이 이긴다' '촛불 소녀' 등의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오는 것은 우리의 분명한 의지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그리고 그 일상의 일부인 시위 현장에서도 이미 오래 전 미국화된 우리의 의식은 자각을 완강히 거부한다. 시카고, 보스턴, 뉴욕 따위의 티셔츠는 그보다 더 강력하게 미국이 우리 삶의 일부이며, 우리의 삶이 그들을 쫓아가고 있음을 질기게 역설하고 있음에도. 전세계 쇠고기 거래의 중심지이자 맥도날드사의 본사가 있는 시카고가 버젓이 미국산 쇠고기로 빚어진 이 거대한 민주주의의 축제를 내려다 보고 있는 이 광경은, 한국을 자신들의 쓰레기통쯤으로 여기는 미국의 오만방자함, “그래봤자 너흰 이미 우리 식민지잖아” 하는 조롱처럼 희완의 눈에 해석되었다.
“나는 한국인들이 정치적으로 새롭게 깨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흥분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의 정치적 자각이 거대한 물결이 되어 신자유주의에 휩쓸려 있는 전세계를 깨어나게 했으면 한다. 그러나 한 가지 크게 아쉬운 점은 여기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문화를 동시에 쉼없이 소비하고 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는 10초마다 하나씩 지나가는 대형 영문티셔츠를 손가락을 가리켜 보여주어도, 사람들은 도시 뭔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익숙한 티셔츠가 미국문화에 대한 프로파간다라고 우린 더 이상 생각할 수조차 없다.
식량주권에 대한 위협에 파르르 떨지언정 문화주권은 이렇게 자발적으로 헌납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걸까.
그렇다면 그의 “수단과 방법 안 가리고 돈 한 가지에 주력”하는 그 주특기에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걸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좀 구리긴 해도, 미국, 일본에 가서 굽신거려 가며, 딴에는 장사 좀 더 '씨언씨언'하게 해보겠다는데, 국민들 대다수가 반대한다는 사실을 그는 도통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것이다. 자기처럼 돈에 눈멀었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생명에 더 집착하게 되었는지를.
뉴타운 지정되어서, 집값 상승의 평범한 재산증식을 한 번 누려보기도 전에, 아이들의 머리에 구멍이 송송 뚫릴 수도 있음을 알려준 언론이 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선 조갑제의 지적은 명확하다. 지금 상황의 그 첫 번째 배후는 'PD수첩'이었다. 그 이후는 물론 모두가 아시는 그대로다.
정부는 어쩌면 그렇게 하루도 안 빠지고 국민들을 투사로 만들어주는 데 공을 들였고, 정보를 소통시켜주는 거대한 토론의 장 '아고라'가 우리에게 있었다. 6년 전 희생된 여중생 2명이 수백만의 촛불을 처음 점화하였듯이, 이번엔 언니들이 남친들을 끌어들였고, 엄마들은 아들들은, 아내들은 남편들을 광장으로 끌어들였다.
군화발에 머리가 짖이겨진 음대 여학생이 밋밋하던 서울대생들의 가슴에 불을 당겨주기도 했다. 집회 내내, 그들의 저명한 한 선배는 집회장 맞은편 전광판에서 연신 민망한 엉덩이춤을 추고 있기도 했지만 말이다. “명박 지옥, 탄핵 천국” 광신 기독교도를 패러디 한 아저씨. “야옹아 잡어” 고양이 머리를 그려서, 쥐박이를 잡으러 나선 여고생들. 마우스를 길게 끌고 가는 청년. “새우깡에서 이명박 머리가 나왔어요” 새우깡 봉지를 들고 깔깔대며 외치는 젊은 아가씨들.
“나의 배후는 … 나의 마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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