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2008-06-25 오후 6:17:21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625180900
[박상표 칼럼] 국민 속인 '추가 협상 문서'
쇼가 끝나고 무대 뒤에서 화장을 지우는 늙은 쇼걸의 모습은 추하다 못해 측은해 보인다. 정부가 공개한 쇠고기 추가 협상 문서는 늙은 쇼걸의 화장기 없는 추한 얼굴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는 검역 민영화를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자 검역 기능을 한국의 수입업자와 미국의 수출업자에게 통째로 넘겨주었다. 지금부터 쇼가 끝난 무대 뒤로 가서 덕지덕지 분칠로 범벅이 된 쇠고기 추가 협상 문서의 화장을 하나하나 지워보도록 하자.
QSA는 협상 성과가 아니라 미국 정부 방침
첫째, '품질 시스템 평가(QSA)'가 협상의 성과라고 부풀렸던 대국민 사기극이 드러났다.
미국 측 서신의 첨부 자료에는 "국가들이 국제적으로 인정된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기준을 준수하게 되면서 미국 농무부는 '수출 증명(EV)' 프로그램의 근간이 되는 QSA 프로그램을 선호하여 EV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월령,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SRM) 부위 등의 제한을 의무적으로 보증해야 하는 EV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QSA 프로그램으로 대체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협상 전 구체적 협상 목표를 제시하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QSA가 협상의 성과인 양 국민을 속였다.
게다가 30개월 미만을 수입하는 것도 일시적인 '경과 조치(transitional measure)'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소비자들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때"를 누가 판단하느냐 인데, 이것 역시 민간 자율에 맡겨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 수입업자와 미국 수출업자가 언제든지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
혹 떼러 갔다가 혹까지 붙이고 돌아온 SRM 규정
둘째, SRM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광우병 안전의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SRM에 관한 한 혹 떼러 갔다가 오히려 혹을 붙이고 온 꼴이다. 정부가 강행하려는 고시 부칙 8항에는 "30개월 미만 소의 뇌, 눈, 머리뼈 또는 척수는 특정 위험 물질 혹은 식품 안전 위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 4개 부위는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타이완, 홍콩, 베트남, 타이 등에서는 SRM이 맞다. 정부가 전면적으로 수입을 허용한 곱창(소장), 막창(대장)도 EU에서는 SRM이다. EU는 십이지장에서부터 직장에 이르는 모든 내장과 장 사이에 붙어 있는 장간막까지 제거를 의무화하고 있다. 내장과 장간막은 인간의 식용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동물의 사료로도 사용할 수 없다. 이렇게 위험한 부위를 수입업자의 주문에 맡겨둔다면 결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을 수입하는 일본의 경우에도 모든 연령에서 SRM 제거를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6년 수입 위생 조건에서 30개월 미만의 뇌, 눈, 척수, 머리뼈 등 4개 부위뿐만 아니라 등뼈까지 SRM으로 규정한 바 있다. 게다가 2006년 수입 위생 조건에는 혀, 곱창, 분쇄육, 회수육(AMR) 등까지 모두 수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이번 쇠고기 협상에서는 이러한 위험 부위들이 수입 금지 품목에서 제외됐다.
그런데 이번 추가 협상에서는 SRM 중 뇌, 눈, 머리뼈, 척수 등 4개 부위에 '혹이 붙어서' 식품 안전 위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수입업자가 이들 제품을 주문하면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고 수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검역주권 포기 각서 한 번 더 쓰고 돌아와
셋째, 검역 주권을 강화했다는 정부의 허풍과는 달리 검역 주권 포기 각서를 한 번 더 쓰고 돌아온 사실이 확인되었다.
수입 위생 조건 7조와 8조를 보면 이 협상이 얼마나 불평등 협상인지 확인할 수 있다. 중대한 위반이 발생한 경우, 미국 식품안전검사청(FSIS)은 해당 공정을 중단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다(7조). 그러나 한국 정부는 현지 점검에서 중대한 위반을 발견하더라도 해당 공정을 중단시키거나 해당 작업장의 승인을 취소할 권한이 전혀 없다(8조).
한국정부는 중대한 위반을 적발하더라도 그저 미국 정부 관계관과 협의를 할 수 있을 뿐이다. 4주 이내에 협의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검역 중단이나 작업장 취소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단지 이후 수입되는 다섯 번의 선적분에 대해 검사 비율을 조금 높일 수 있을 뿐이다.
더욱 한심한 일은 미국 작업장에 대해 전수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도 없다는 것이다. 대표성이 있는 표본에 대한 현지 점검을 할 때, 점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특정 작업장을 점검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을 뿐이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불구하고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금번 한미 양국 간 추가 협상을 통해 국익과 국민 여러분의 뜻이 반영된 방안이 마련된 데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는 허언을 하고 있다.
과연 농림부 장관이 말하는 국익이 한국의 국익인지, 아니면 미국의 국익인지 의심스럽다. 진정 추가 협상이 미국 국민(축산업자)의 뜻이 반영된 것인지, 혹은 한국 국민의 뜻이 반영된 것인지 되묻고 싶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팔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국 의회 비준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 과연 국익이라는 말인가?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소중한 국익은 없다. 만일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포기한 각서인 고시 강행을 한다면 쇠고기 쇼의 결말은 처참한 비극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박상표/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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