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8년 06월 25일 18:07:5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6251807575&code=990339
[이대근칼럼]이명박의 ‘국가 정체성’을 묻는다 |
두 달 가까이 계속되는 촛불집회도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이지만, 이명박의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태도 역시 예상한 것 이상이다. 이 나라 전체가 촛불로 뒤덮여 아우성일 때도, 대응이 너무 늦는 것 아니냐며 여당이 발을 구르며 초조해 할 때도, 지지율이 한 자릿수를 향해 추락할 때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촛불이 지칠 때까지 참고, 또 기다렸다. 이런 그의 인내와 기다림은 보상을 받았다. 촛불집회 규모가 지난 6·10 백만 대행진을 정점으로 작아진 것이다. 숫자를 중시하는 그에게 이 사실은 결정적이다. 재협상을 거부하고, 대운하 외에는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기업 민영화는 선진화로, 무한경쟁의 교육자율화는 교육제도 개선으로, 재벌중심 경제정책은 규제개혁으로 이름만 바꾸고는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게 불만이라면 백만 촛불대행진을 또 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촛불은 할 말을 다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호소했으면 된 것 아닌가. 촛불은 지쳤다. 그러나 지칠 줄 모르는 이명박은 더 해보자고 한다. 수석뿐 아니라 장관을 다 내주는 한이 있어도 기존 국정 방향과 통치 방식을 고수할 테니 저항할 힘이 남아 있으면 더 해보라고 한다. 촛불이 졌다. 이명박이 이겼다.
촛불 줄자 ‘반국가세력’ 모함
이런 승리는 그가 시민 의사에 귀기울였다면 결코 얻을수 없는 전과이다. 이명박이 국민과 소통한다면서도 촛불집회의 시민들과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이유가 있다. 반대세력은 늘 있게 마련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반대세력의 존재와 규모는 대통령의 잘잘못의 크기과 별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그는 믿는다. 따라서 그들의 의견은 국정 운영에 참고할 만한 가치가 별로 없다. 그가 국정에 반영하지도 않을 의견을 듣는 것처럼 위선을 부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국민의 뜻을 받들지도 않았고, 반대 의견에 귀기울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라고 했다. 반대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가장 중요한 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앞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말은 믿을 수 없는 빈말로 분류하는 게 마땅하다.
뼈저리게 반성했다는 그의 말도 오해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국정방향과 정책의 잘못을 반성한다는 뜻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기가 제시한 국정방향과 국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던 자신을 자책한다는 의미이다. 추가 협의가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확보해 시민의 상한 자존심을 회복시킬 것으로 믿은 것도 잘못이다. 김종훈 본부장은 미측에 백만 촛불대행진 사진을 보여주며 이게 과학으로 설명되는 것이냐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미국 역시 한국의 주장에 일리 있어서가 아니라, 동맹차원에서 고맙게도 양보해 주었다는 것이 청와대 대변인의 자랑이다. 당당하게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확보하라는 것이 시민의 요구였다. 그러나 정부는 과학, 권리, 논리로 설득하는 대신 정서적 호소를 했다. 미국이 잘못한 것은 없지만, 과학을 잘 모르는 한국인들이 떼를 쓰고 있으니 달래줘야 한다고 매달리자, 부시가 그런 한국의 처지가 안쓰러워 조금 양보해 줬다는 게 그들이 말하는 추가협상이다. 한·미 양국 정부가 시민을 바보로 만들고 모독했다. 이명박이 시민을 가벼이 여긴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사례를 더 들 수 있다. 촛불의 숫자가 많을 때 빈말일지언정 두 번 사과하고, 여러 번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겠다고 다짐했던 그는 그 숫자가 줄면서 촛불이 사위어가고 시민들이 지치고 약해 보이자 국가정체성에 도전하는 세력이라며 역습을 가했다. 돌아서는 촛불의 등에 칼을 꽂았다.
‘국가정체성’ 지킨 시민들 모독
국가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어떤 국가여야 하는가에 대한 시민들의 의사의 총체이다. 시민들은 촛불집회에서 그것을 표출했다. 시민들은 신자유주의 난폭성으로 인한 삶의 파괴, 주권과 건강을 양보한 대외관계, 우리 사회가 기반하고 있는 가치와 합의의 붕괴를 막기위해 나섰다. 국가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촛불을 든 것이다. 그런데 시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시민을 반국가 세력으로 모함했다. 적반하장이다. 누구의 국가인가. 시민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그의 국가인가. ‘다른 국가’를 꿈꾸며 국가를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그는 누구인가. 이명박의 국가 정체성을 묻는다.
<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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