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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종교

[스크랩] 원광 경봉스님(1892~1982)

by 마리산인1324 2006. 12. 30.
원광 경봉스님
응당 머무름이 없다(應無所住)
“믿음, 거기서 모두가 이루어진다”


항상 말하지만 법문은 종사가 법상에 오르기 전에 다 됐고, 법문을 들으려는 대중이 자리에 앉기 전에 다 마친 것이다. 부처님이 49년간 설법을 했는데 나중에 영산회상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꽃 한 송이를 인천대중(人天大衆)에게 들어보였다. 거기에 무슨 말과 글이 필요하겠는가.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이 몸을 얼마나 유지하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나 하고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이 법회에 승속(僧俗)이 많이 모였는데 많은 대중이 100년만 지나면 서로가 다 어디에 가 있는지 행방조차도 알 수 없고 얼굴 또한 볼 수 없게 된다. 이렇듯 우리의 일상은 늘 덧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이 몸을 꿈과 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풀끝의 이슬과도 같고 번갯불과 같은, 참으로 허망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허망한 가운데 허망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무엇이 허망하지 않은 물건인가.

옛 조사가 말했다.

“한 물건이 사람 사람에게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며 명자(名字)도 없고 위로는 하늘을 버티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며 천지보다 더 크고 해와 달보다 더 밝으며 검기로는 칠통보다 더 검은데 이러한 물건이 우리의 행주좌와(行住坐臥)와 어묵동정(語默動靜)의 일상생활하는데 있으니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니 하루 24시간 가운데 9시간 일하고 6시간 잠자고 5시간 놀면 4시간이 남는데, 이 4시간 남는 시간을 정신을 통일하고 집중해서 이 알 수 없는 것을 참구해야 한다. 이것이 처음에는 잘되지 않는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물 흘러가듯 자꾸만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지면 정신을 통일하는 묘를 자연히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고 한바탕 멋들어지게 연극을 하다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멋들어지게 하는 것인가. 가령 연극배우가 비극의 배역을 맡았다고 하자. 그 배우가 마음 가운데 딴 생각을 비우고 자신이 그 극중배역과 혼연일치가 되는 연기라야 사람들이 감동한다. 사바세계에 와서 우리가 맡은 배역대로 연극을 잘 하려면 우선 물질에 대한 지나친 애착과 삶에 대한 애착을 비워야 한다. 물질 아니면 사람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머리가 아프다. 우리가 사바세계에 나온 이유는 머리 아프고 가슴 아프려고 나온 것이 아니다. 빈 몸 빈손으로 옷까지 훨훨 벗고 나왔는데, 공연한 탐욕과 쓸데없는 망상으로 모두 근심걱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릴 때는 누구를 해칠 생각도 근심걱정도 없었다. 그런 천진난만한 동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실대로 자기 정성대로 노력하기만 하면 세상은 될 만큼 되는데, 망상이란 도둑놈 때문에 근심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에 대산청만(大山靑巒)이라는 문학박사가 있다. 그 사람에게는 늙은 하녀가 있었는데 병자를 앉혀놓고 뭐라고 중얼거리기만 하면 병이 금방 낫곤 했다. 박사가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가관이었다. 그것이 미신인 것만은 분명한 듯한데 병이 완쾌되니 말이다. 그래서 하루는 하녀를 보고 무엇을 이르냐고 물었다. 하녀는 “오무기 고무기 오소고고 오무기 고무기 이소고고”라 한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박사가 생각해보니 ‘오무기’는 보리요 ‘고무기’는 밀, ‘이소고고’는 두 되 다섯 홉이란 말이다. ‘보리 밀 두되 다섯 홉’이란 말에 병이 나을 까닭이 없는데 병이 잘 낫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일본에서 문학박사가 되자면 불교를 모르고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불교경전에는 문학과 관련 깊은 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가 〈금강경〉을 보다가 경 가운데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즉 ‘응당 머무름 없이 그 마음을 낸다’고 하는 구절을 보게 됐다. 육조 혜능대사도 다른 사람이 〈금강경〉을 읽을 때 이 구절을 듣고 도를 깨달았다고 하는 이 구절의 일본 발음이 ‘오무소주 이소고싱’. 아마도 하녀는 누가 이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잘못 외어 ‘오무기 고무기 이소고고’라는 말을 늘 외운 것이다.

박사가 하녀에게 외우는 것이 잘못됐으니 다시 외우라고 고쳐주었다. 하녀는 그런가보다 하고 다음부터 환자들에게 제대로 된 금강경 구절을 외워줬는데, 진짜지만 병이 낫지 않았다. 그래서 ‘오무기 고무기 이소고고’라고 또 다시 바꿔서 읽으니까 그제야 병이 나았다.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박사가 말해준 것은 진짜이지만, 많이 외우지도 않았고 또 이렇게 하면 정말 병이 나을까,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의심이 나서다. 〈화엄경〉에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라 모든 성현의 법을 길러낸다고 하였다. 믿음, 거기서 모두가 이루어진다.”


한 물건이 있는데 천지보다 먼저요

형상이 없어 본래 고요하도다.

능히 만상에 주인이 되고 사시절을 따라 마르지 않는데

장부에겐 누구나 하늘을 찌를 듯한 기개가 있거니

북두(北斗)와 남성(南星)을 등을 지고 보아라


〈거기 누고〉에서 발췌

정리=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경봉스님 (1892~1982)

경남 밀양 태생이다. 속명은 김용국(金鏞國), 법명은 정석(靜錫), 경봉(鏡峰)은 법호며, 원광(圓光)은 시호다. 1907년 양산 통도사 성해(聖海)스님을 은사로 출가, 이듬해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청호(淸湖)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1912년 4월 해담(海曇)스님에게 보살계를 받은 스님은 불교전문강원 대교과를 수료한 뒤 양산 내원사, 합천 해인사, 김천 직지사 등 선원을 다니며 화두를 참구했다. 이후 통도사 극락암에서 3개월간 장좌불와(長坐不臥)하며 정진하기도 했다. 또 스님은 1932년 통도사 전문강원장, 1935년 통도사 주지, 1941년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선풍(禪風)을 진작시켰다. 1953년에 통도사 극락호국선원 조실로 추대된 스님은 입적하는 날까지 많은 납자들을 제접했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1973부터 1982까지 매월 정기법회를 열어 대중설법을 했으며, 법회 때마다 참여하는 불자들이 1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동화사, 내원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겸하며 후학들을 지도했던 스님은 82년 7월17일 극락호국선원에서 입적했다. 세수 91세, 법랍 75세. 스님은 한시와 필묵에도 뛰어나 많은 선화를 남겼으며, 특히 18세부터 85세까지 67년간 쓴 일지는 한국불교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 : 念佛萬日會 淨土寺
글쓴이 : 應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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