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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아나키즘

시민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 아나키즘 /성대신문

by 마리산인1324 2009. 3. 8.

<성대신문> 2005년 9월 10일

http://www.skk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23

 

 

시민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 아나키즘

2005년 09월 10일 (토) 00:00:00 함초아 기자 choa84@skku.edu

   
 
   
 

1999년 미국 시애틀에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를 저지하기 위해 수 천 명의 시위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초국가적 기구의 출범을 반대했고 이런 반 자본주의·반 세계화 운동은 프라하의 국제통화기금(IMF) 반대시위, 퀘벡의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반대시위로 이어졌다. 미국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 같은 반발이 세계 도처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중앙 집중적이고 위계적인 권위를 부정하는 ‘아나키즘’ 의 부활이라는 견해로 이어졌다.

 

21세기, 반 세계화의 물결과 함께 다시 떠오르게 된 아나키즘, 이 사상에 깔린 근본적인 신념은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청사진을 제시해 줄 것인가? 

 

아나키즘이란


아나키즘(Anarchism)의 어원은 권력 또는 정부나 통치의 부재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의 ‘anarchos’에서 유래한다. ‘선장 없는 배’ 또는 ‘키잡이가 없는 배’ 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말은 단지 지배자가 없는 ‘무권력’ 의 의미가 강했지만 근대에 들어와서는 정부를 부정한다는 의미로 많이 쓰였다.

아나키즘은 대게 ‘무정부주의’로 번역되지만 이 말은 아나키즘의 진정한 목표인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이상사회를 추구하는 긍정적 측면보다 정부를 없애자는 부정적 측면이 강조된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에 아나키즘 정치사상 및 운동 단체인 '한국 자주인 연맹' 의 김영천 회장은 “아나키즘을 무조직, 무질서와 결부시키는 건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 것” 이라며 “개인의 자발적 합의와 그에 기초한 자율적 연대와 연합이 아나키즘의 기본” 이라고 말했다. 즉, 아나키즘은 개인과 자유의사로 결합된 집단들의 자율적 사회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이념이다. 

한국의 아나키즘


우리나라는 1880년대부터 아나키즘을 비롯한 사회주의가 소개됐지만 아나키스트 운동이 역사 전면에 등장한 것은 3·1운동을 전후해서였다. 구한말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사회진화론을 극복하기 위해 아나키즘이 민족주의, 대동사상과 함께 민족해방운동 이념으로서 수용됐다.

일제강점기 한국인 아나키스트들은 다양한 아나키스트 사회 건설 방법론을 제시했다. 우선,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에서 잘 나타나는 ‘테러적 직접행동론’ 은 민중들을 각성시키고 아나키스트 혁명에 동참하게 만드는 사상으로 무력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의 운동을 뒷받침 해줬다.

또한 아나키스트들은 농민자치의 아나키스트 사회를 건설하자는 혁명근거지건설론, 노동자의 경제적 행동을 통하여 식민지 권력을 타도하자는 경제적 직접행동론 등을 주장했다.

그러나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했던 아나키스트 세력은 1930년대 중반 무렵부터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이들은 자주적 민족국가 수립을 위해 정치운동과 국가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고, 결국엔 해방 이후 조성된 좌우 대립구도 속에서 우익 진영에 편입되고 만다. 그러나 한국의 아나키즘은 사상적 독자성은 상실했지만 민족해방운동과 자주독립국가 건설에 이바지했으며 민족의 통일전선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아나키즘과 반 세계화 운동


한국의 아나키즘은 이념으로서 실패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21세기,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다양한 영역에서 대안이념으로서 다시 떠오르고 있다. 또한 여성운동과 생태공동체 운동 등 시민운동도 아나키즘과 연결되고 있다.

현대의 아나키즘은 국가 권력을 무조건 거부하거나, 암살을 계획하는 등 직접 투쟁하는 테러리즘의 모습이 아니다. 반 자본주의, 반 세계화 운동으로 대표되고 있고, 현실참여와 비폭력 평화시위를 내세운다. 이와 관련 김 회장은 “시민운동의 다양성과 자율성의 모습은 아나키즘의 분권과 자치의 논리에 다가서는 것” 이라며 “대안학교의 대두, 지역 화폐운동, 생태공동체 운동 등이 아나키즘을 현실적으로 적응시킨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아나키즘은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전북대 강준만(신방) 교수는 『나의 정치학 사전』에서 “아나키즘은 신자유주의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거나 적어도 완화시키는 자세를 갖도록 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낙관적 아나키스트들의 인류를 위한 실천적 운동이 지속돼 자율적 상호연대의 세상이 실현된다면, 더 이상 아나키즘은 사라진 이데올로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