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09-03-29 오후 09:24:52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46871.html
[기고] 검사들의 천국
» 김승환 한국헌법학회 회장, 전북대 교수
“국법질서의 확립이나 사회정의의 실현에 치우친 나머지 국민의 인권을 최대한 지켜내야 한다는 소임에 보다 더 충실하지 못했던 안타까움이 없지 않았다.” 지난해 10월31일 검찰 창설 60돌 기념식에서 임채진 검찰총장이 한 말이다. 사회정의의 실현과 인권의 수호를 충돌하는 가치로 바라보는 검찰총장의 법 인식에 아연할 뿐이었다.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대한민국 검찰은 오욕 그 자체다. 진보당 사건, 인혁당 사건 등 수많은 간첩조작 사건은 검찰권의 행사가 아니라 검찰 살인이었다. 검찰 내부에서조차도 잘못된 검찰 수사로 꼽는 납북 태영호 반공법 조작 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경찰관 기소유예 등 검찰이 저지른 악랄한 행위들은 이루 매거할 수 없을 정도로 쌓여 있다.
그런 검찰이 단 한 번의 참회의 눈물도 없이 헌법의 기본권 장전을 뒤틀고 있다. <문화방송>(MBC) ‘피디수첩’ 제작진에 대한 수사는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에 대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는 보도매체의 방송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 민주주의, 공인의 명예가 충돌하고 있다. 2007년 6월15일에 대법원의 명예훼손 사건 판결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문이나 월간지 등 언론매체의 어떠한 표현행위가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인지 여부는 당해 기사의 객관적인 내용과 아울러 일반의 독자가 보통의 주의로 기사를 접하는 방법을 전제로 기사에 사용된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 기사의 전체적인 흐름, 문구의 연결 방법 등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여기에다가 당해 기사가 게재된 보다 넓은 문맥이나 배경이 되는 사회적 흐름 등도 함께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이 판결문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비록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였더라도 그 허위의 사실이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침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면 형법 제307조 소정의 명예훼손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위 판례는 보도매체의 보도내용에 대해서 명예훼손죄라는 형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데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보도매체의 보도내용에 대해서 섣불리 국가형벌권을 발동할 경우 중대한 헌법적 가치들이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도의 자유를 통해서 국민의 알 권리가 충족되고, 알 권리의 충족을 통해서 민주주의가 실현되며 사회정의가 구현되도록 하는 헌법적 가치들의 연결고리가 풀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방송과 신문은 국가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라는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 방송과 신문이 그러한 공적 기능에 눈을 감으면 그것은 공기(公器)가 아니라 공적 쓰레기일 뿐이다. 장관 등 공직자의 공적 명예가 방송과 신문의 정당한 보도나 논평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헌법이 그렇게 말한다. 위 대법원 판례가 암시하는 것처럼, 방송과 신문의 보도내용에 대한 검찰권의 행사는 최대한 자제되어야 한다.
검찰에 묻는다. 피디수첩, <와이티엔> 노조, 국회의원, 촛불집회 등에 대한 수사를 통해서 검찰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누구든 예외 없이 평등한 존재로서 국법질서를 엄숙히 지키라는 것인가, 아니면 정권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불편하게 생각하는지 잘 살펴서 처신하라는 것인가? 불행하게도 후자 쪽이라면, 언젠가 정권이 바뀌고 검찰의 과거사 정리 문제가 제기될 때 검찰총장은 ‘국법질서의 확립과 사회정의의 실현에 몰입한 탓에 국민의 인권을 지키지 못해서 유감이다’라고 말할 것인가? 이 나라가 인간의 천국이 되어야지 검사들의 천국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김승환 /한국헌법학회 회장,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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