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
김수행 교수와 함께 하는 한국경제, 세계경제 알기
2008년 7월 2일 강의
제7강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
1. 스웨덴 모델
1) 1930년대부터 1960년대 말까지 스웨덴의 사회민주당(SAP. 사민당으로 약칭하기도 한다. 1889년 창당)과 ‘생산직 노동조합 총연맹’(LO)이 발전시킨 스웨덴 특유의 경제사회운영 모델을 스웨덴 모델이라고 부른다.
2) 스웨덴의 사회민주당은 1932년 이래 1976년 10월-1982년 10월과 1991년 10월-1994년 10월을 빼고는 2006년 10월(부르주아 정당인 ‘중도당’Moderate Party이 총선에서 이겨 현재 집권 중이다)까지 계속 집권했기 때문에, 스웨덴을 사회민주주의의 모델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장기간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계급(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모두)의 대다수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사회민주당과 연대를 맺었고, 사회민주당이 노동조합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3) 스웨덴 사회민주당 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해 거대기업 편향적인 자유주의적 산업정책과 케인스주의적 경기안정화정책을 채택하면서, 경제성장의 과실을 조세를 통해 국가로 흡수해 적극적인 사회보장정책(국민연금, 주택, 공공탁아제도, 교육과 의료의 무료 제공)을 실시했다. 적극적인 사회보장정책은 한편으로는 산업합리화와 경제성장을 지원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에 뒤따르는 사회문제를 완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사용자연합(SAF)과 LO 사이의 중앙단체교섭에 의거한 협력주의적 노사관계는 순조로운 경제성장을 뒷받침했고, SAF, LO 등 주요 이익단체들과 사민당 정부 사이에 형성된 조합주의적(corporate) 의사결정구조는 스웨덴 모델을 공고하게 했다.
2. 협력주의적 노사관계
1) 스웨덴에서는 고도로 중앙집권화한 생산직 노동조합총연맹(LO)과 사용자연합(SAF)이 자율적 협상을 통해, 국가의 개입을 될수록 배제하며 노사간 분쟁사항을 해결함으로써, 장기간에 걸친 산업평화를 달성했다.
2) 협력주의적 노사관계가 정착된 것은 스웨덴의 경제성장과 수출을 주도하는 금속․기계공업부문의 사용자연합(VF)과 금속노련이 각각 SAF와 LO를 지배하고 있었고, 이들은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계급협조적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3) 1956년부터 1983년까지 단체협약은 SAF와 LO 사이의 중앙단체협약이 가장 핵심적이고, 그 다음으로 산업별 단체협약, 그리고 기업별 단체협약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중앙단체교섭에서 합의한 임금인상률이 산업별 그리고 기업별 교섭에서 하나의 지침으로 작용하는데, 매우 번창하는 산업과 기업은 중앙단체협약의 임금인상률을 초과하는 수준을 노동자에게 주었다. 이런 차이를 임금유동(wage drift)이라고 부른다.
3. 연대임금정책
1) ‘연대임금정책’(solidaristic wages policy)은 동일한 노동에 대해서는 각각의 기업의 사정에 관계없이 동일한 임금을 지불하는 정책이다. 이것은 물론 사용자연합(SAF)과 생산직 노동조합총연맹(LO)이 전국적인 차원에서 중앙집권적인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으며, LO가 제안한 것이다.
2) 수익성이 낮은 기업들은 손실을 보아 도산하고, 수익성이 높은 기업들은 축적 여력이 생겨 생산을 확대하게 된다. 정부는 도산하는 기업에서 방출되는 노동자들이 수익성 있는 산업에 취업할 수 있게끔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을 실시했다. 구직자에게 취업정보를 제공하고 기업에게는 구직자 정보를 제공하며, 전직 희망자를 재교육시키고, 취업으로 다른 지역에 이주하는 사람들에게 이주와 정착을 지원하며,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크게 창출했다.
3) 노동조합이 이 정책을 제안하게 된 것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임금균등화를 달성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평등주의적 노동조합 이데올로기였다. 사용자들이 이것을 받아들인 것은 수익성 있는 기업들에 대한 ‘너무 높은’ 임금인상 요구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정부는 노동조합들이 경쟁적으로 임금인상률을 높임으로써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고, 또한 수익성이 낮은 기업에게 기술혁신과 경영효율화를 강요하거나 퇴출을 강요해 산업을 재편하기 위해서였다.
4. 공동결정법
1) 1976년에 제정된 ‘공동결정법’은 오랫동안 경영자의 권리로 간주되어 온 사항들(인사 ․투자 ․ 경영 전략)을 단체교섭의 대상으로 삼아 노동자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입법과정에서 경영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기업과 노동조합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기업은 독자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공동결정법은 노동자들의 진정한 이익을 옹호할 수 없게 되었다.
2) 노동조합은 공동결정이 책임의 분담만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고 공동결정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1970년대에 불황 ․ 실업 ․ 인플레이션이 긴급한 문제로 등장함에 따라 산업민주화의 과제로 공동결정법을 추진해 성립시킨 것이다.
5. 임노동자기금
1) 1971년 LO 총회에 다음과 같은 요구가 제출되었다.
가. 연대임금정책으로 말미암아 고수익 기업들이 막대한 초과이윤을 얻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수익률이 높은 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예: 금속노련)은 연대임금정책이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역할만 할 뿐 기업가는 초과이윤을 향유하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나. 사민당 정부와 LO가 거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에, 거대기업의 주식을 집중적으로 소유한 거대 주주에게 주식재산과 경제적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 스웨덴 사민주의 세력은 이제까지 분배문제에 치중했는데, 앞으로는 소유문제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특히 기업이 얼마만큼 어디(국내 또는 해외)에 투자하는가가 노동자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에, 기업을 노동자가 소유하는 문제를 고려해야 했다.
2) 1976년 LO총회는 LO의 연구그룹이 만든 ‘임노동자기금’(wage-earners’ fund)을 만장일치로 수락했다. 이것의 내용은, 기업의 초과이윤에 대한 과세와 노동자들의 추가적인 기여금으로 임노동자기금을 만들고, 이 기금이 기업의 주식을 매입해 대주주가 됨으로써 기업의 투자행위를 노동자들의 관할 아래에 두려고 한 것이다.
3) 사민당은 임노동자기금 문제가 선거 쟁점으로 등장한 1976년 10월의 총선에서 44년 동안의 장기집권을 마감해야 했으며, 1979년 10월에도 다시 패배했다.
4) 1982년 사민당이 다시 집권하고, 1983년에 입법한 임노동자기금은 1984-90년까지의 한시적인 기금이 되었으며 기껏해야 스웨덴 주식시장에서 10%의 주식을 매입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이것마저도 1991년에 집권한 부르주아 연립정권은 폐기했다.
6. 중앙단체협약의 붕괴
1) 중앙집권적 단체교섭제도와 연대임금정책은 1983년부터 붕괴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기업가측이 기업별 단체교섭과 개인별 임금협상을 요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구성이 생산직 ․ 사무직 ․ 전문직 등으로 다양화하고, 산업별 ․ 기업별 임금지불 능력에 큰 차이가 남에 따라, 노동자측에서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이라는 제도의 철폐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2) 금속․기계공업 사용자연합(VF)은 1983년 금속노조와 바로 산업별 단체협약을 체결해 버렸다. 1930년대 중앙집권적 단체협약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VF가 1980년대에는 그것을 해체하는 주도세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가. 1970년대 이래 진행된 각종 노동입법과 임노동자기금 논쟁을 경과하면서, 스웨덴의 노사관계는 크게 악화되었다. LO가 급진적인 정책을 추구함에 따라 사용자연합은 LO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LO 권력의 기반인 중앙단체협약을 폐기하고자 한 것이다.
나. 연대임금정책은 임금유동 때문에 임금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사용자연합은 연대임금정책을 폐기하려고 한 것이다.
다. 중앙단체협약과 연대임금정책은 그 동안 진행된 산업구조의 변화에 잘 부합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확산되었다. 중앙단체협약의 해체를 주도한 VF는 극소전자혁명에 따른 국제경쟁조건의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려면, 노동력의 질이나 노동력의 사용방식도 더욱 다양화․차별화․유연화되어야 하므로, 경직성을 띨 수밖에 없는 중앙단체협약과 연대임금정책은 더 이상 금속․기계공업의 경쟁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7.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평가
1) 현재의 스웨덴의 경제사회운영 모델은 스웨덴모델 전성기에 비해 거시경제정책의 측면에서 재정금융 긴축정책이 한결 강화되고 경제정책 전반에서 시장주의적 요소가 한결 강화되었다는 점에서는 영미모델에 가까워진 측면이 있으나, 사회복지지출의 규모가 매우 크고 사회복지제도가 보편주의적 원리에 의해 편성되어 있으며 조합주의적 의사결정구조가 어느 정도 남아 있다는 점에서는 영미모델과 크게 다르다.
2) 스웨덴 사민주의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와 시장메커니즘에 의한 자원 배분이라는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골격을 유지하면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평등주의적 소득분배를 달성할 수 있으며, 원활한 경제성장과 평등주의적 재분배정책이 상당한 정도까지 양립가능하고, 높은 수준의 참여민주주의(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으며, 평화와 연대의 문화가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3) OECD의 사회적 지출/GDP (단위: %)
1980 2001
스웨덴 28.8 28.9
미국 13.3 14.8
OECD 평균 18.3 22.5
4) 최상위 10%의 납세 뒤 소득/ 최하위 10%의 납세 뒤 소득 (단위: 배수)
1980년경 2000년경
스웨덴 2.4 3.0
미국 4.7 5.4
OECD평균 3.4 3.7
5) 빈곤율(=소득 중앙값의 50% 이하의 소득을 버는 사람 수/ 전체 인구) (단위: %)
(2000년 또는 1990년대 말)
스웨덴 6.4%, 미국 17.0%, 영국 12.3%.
6) 복지국가는 정치적인 행동에 의해 창조됐고, 지난 30년 동안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치적 행동에 의해 방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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