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의 시선> 2009/05/14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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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협력 의사를 밝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을 수행하고 있는 황석영은 기자들을 만나 진보세력에 대한 평가, 현 정부에 대한 평가 등을 내놨다.
많은 얘기들을 했지만 결론은 "큰 틀에서 (현 정부에) 동참해서 가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었다. “욕먹을 각오가 돼 있다”는 말까지 꺼낸 것을 보면 작심하긴 한 것 같다.
이명박 정부가 중도실용정권?
자신은 중도론자이며 "이 대통령이 중도적 생각을 뚜렷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나는 봤다“고 그는 주장했다. "일각에서 현 정권을 보수우익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스스로는 중도실용 정권이라고 하고 있다"는 것이 황석영의 말이다.
황석영이 이번에 이 대통령을 수행하며 출국할 때부터 이런 예감은 들었다. 특히 그의 수행은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청와대 요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황석영은 얼마전 보수인사 일색으로 구성된 '국립대한민국관 건립위원회' 민간위원에 진보인사로는 예외적으로 위촉되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사진=청와대
사실 정치에 대한 황석영의 관심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새 정치질서 만들기에 총대를 매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당시 손학규 후보를 중심으로 한 새판짜기를 시도했지만 별다른 성과없이 실패로 끝났다.
당시에도 문단안팎에서는 황석영의 그런 움직임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았지만, 그는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광의의) 정치적 참여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중심인물이 손학규에서 이명박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의아하지만 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황석영이 내걸고 있는 중도의 기치를 인정한다. 모든 것을 진보와 보수로 구분하는 방식이 얼마나 소모적인가에 대해서는 나 역시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도의 깃발을 드는 그의 실행전략이 1~2년 사이에 갑자기 바뀐데 대해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2007년 대선 이전만 하더라도 그는 민주세력의 대동단결을 통한 중도의 실현을 내걸었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이명박 대통령을 앞세운 중도의 실현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물론 황석영은 이 대통령이 중도적 생각을 갖고 있다고, 이명박 정부가 중도실용정권이라고 규정하며 자기 정당성을 부여하려 하고 있다. 황석영의 판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 부분에 대해 우리는 동의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과연 이명박 대통령은 중도적 생각을 갖고 있는가, 이명박 정부는 중도실용정권인가. 이 물음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만 할 수 있다면 나는 황석영이 이 정부에 협력하든 참여하든 시비를 걸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열려있는 사고와 행동을 권장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은 중도와도, 중도실용과도 거리가 멀다. 중도니 실용이니 하는 말은 대선 때에나 등장했을 뿐이고, 집권한 이후 이미 정권 내부에서는 폐기된 구호들이다.
황석영의 주장이 잘못된 이유
특히 촛불정국 이래로 이명박 정부가 펼쳐온 국정운영의 기조를 보면 과거 권위주의 정권들만큼이나 강한 보수적 색채를 드러내고 있으며, 공안적 통치를 통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이런 마당에 황석영이 중도를 말하고 그 중심에 이 대통령을 놓으려는 것은 현실과도 맞지않는 궤변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현실은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도 아니고, 그동안 쌓아온 민주주의의 성과들이 위협받고 있는 문제가 당면한 정치사회적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를 넘어 중도의 기치를 들자, 그를 위해 이명박 정부에 참여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정세의 흐름과도 맞지않는 주장이 되고 만다.
솔직히 말하면 지난 대선 이전부터 정치적으로 자신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황석영이, 이제 권력의 품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그 뜻을 이루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된다. 그것이 개인의 심사숙고 끝에 나온 결론이라면 굳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대단하지 않은 선택을 하면서 굳이 대단한 대의명분을 갖다붙이는 모습을 보니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권력에 참여하는 것도 다 좋은데, 그래도 때는 가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필이면 정권이 표현의 자유,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위축시키며 공안적 통치를 강화하고 있고, 비판세력에 대한 배제의 정치를 펴고 있는, 그리하여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이 시기에 그 정권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그래도 과거 같은 길을 갔던 사람들에 대한 도리는 아니다. 황석영이 밝힌 정치적 변신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이유이다.
/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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