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시사큐비즘> 2009/05/1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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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황석영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해외 나가서 살면서 광주사태가 우리만 있는 줄 알았는데 70년대 영국 대처정부 당시 시위 군중에 발포해서 30~40명의 광부가 죽었고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가 가는 것이고, 큰 틀에서 어떻게 가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첫째, ‘광주사태’라는 5.18에 대한 규정 자체가 틀렸습니다. ‘사태’가 아닙니다. 법적으로도 그렇고, 헌정사적으로도 그렇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입니다.
둘째, 비교사적인 입장과 선생님의 해외 거주 경험을 통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평가하셨습니다. 비교의 전제가 다 틀렸습니다.
1979년 그해 겨울, 영국에서는 공공부문에서 유례없는 파업이 일어납니다. 언론은 이를 두고 ‘불만의 겨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의 보수당은 43석의 차이로 노동당을 누르고 승리합니다. 79년 5월 4일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총리에 취임합니다. 대처는 이미 75년 여성 최초의 영국 정당의 당수였습니다. 소련의 브레즈네프 정권은 그녀를 ‘철의 여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대처는 이 별명에 대단히 만족해했습니다.
▲ 영국 광산노동조합 파업 당시 일명 '오그리브 전투'
대처는 스스로를 ‘신념의 정치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대처는 복지국가나 공공부문을 포함한 영역에는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노동당과 맺은 암묵적인 협약을 거부합니다. 파업과 피케팅을 불법으로 규정해 나갑니다. 경찰력을 통한 공격적 방어개념을 시위진압에 도입합니다.
1984년 3월 6일 한해 1억 파운드 이상의 손실을 본 국립석탄국은 생산성 없는 탄광 20개를 폐쇄한다고 발표합니다. 전국광산노동조합(NUM)은 아서 스카길이 창안한 공격적인 전술을 따라 파업에 돌입합니다. 문제는 파업이 노조원의 다수결을 거친 것이 아니라, 좀 더 호전적인 대의원들이 주도했다는 점입니다. 파업은 3월 10일에 시작되었고 4월 20일 특별대의원대회에서는 전 노조원 투표에 대한 요구가 69 대 54로 거부됩니다. 파업이 비민주적이고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추진되었다는 사실이 정부에게 유리하게 작동합니다. 스카길을 지지하는 노동자들과 노팅엄셔 광부들이 중심이 된 새로운 민주광산노동조합 간의 분열은 치명적이었습니다.
법원과 경찰력이 파업을 분쇄하는 데 앞장섭니다. 법원은 노조활동을 규제하는 새로운 개혁을 시행했고, 지방정부의 명령을 받는 다양한 경찰조직이 힘을 합쳐 노조를 봉쇄합니다. 파업기간 동안 폭력은 비일비재했습니다.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경찰의 시위진압 전술들이 노동자들에게 가해졌습니다.
“대처는 마치 군사작전처럼 스카길에 대항해나가기 시작했다. 파업하는 광산노동자들 집단에 (국내 담당 정보기관인) M15를 침투시켰다. (BBC 2004년 3월 5일자)”
황석영 선생님은 70년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1984년에서 85년 사이의 일입니다. 시위군중에 발포해서 30-40명의 광부가 죽었다고 했습니다. 이 부분만큼은 중대한 착오에 기초한 듯 합니다.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5만명의) 노조원을 (스카길 측의 노조원이 중심이 된)시위대가 피켓으로 저지하는 과정에서 경찰력과 충돌하여 사망자와 부상자들이 생겼으며 노조의 가족이 파업 파와 반 파업파로 갈라져 골육상잔을 하는 비극도 발생했다. (구로이와 도루 <대처 리더십>, 2007, 김영사, 243면)”
경찰력에 의한 사망으로 오인되기에 충분한 대목이지요. 좀 더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파업은 또한 매우 폭력적이었고, 다섯 명의 인명으로 앗아갔다. 1985년 5월 16일 남웨일스(South Wales) 광부 두 명이 택시 운전사를 살해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택시 운전사는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광부들을 일터로 데려다주었다는 이유로 뜻밖의 불행을 당했다. 살인에 연루된 광부 두 사람은 우발적인 살인으로 감형되었지만 유죄 판결을 받았다. (폴 존슨 <모던타임스 2>, 2008, 살림 697면)”
이것이 이 사건의 본질입니다. 발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넓은 의미의 시위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했고, 그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것 또한 사실로 보입니다. 하지만 시위 군중에 대한 발포로 30-40명이 죽었다는 황석영 선생님이 인용한 역사적 사실은 분명한 오류입니다.
문제는 사실착오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사태’로 만들었고, 여느 사회나 겪는 과정으로 포폄해버린 일입니다.
셋째, 시위과정에서 시위대 간의 충돌로 인한 사망, 시위과정에서 경찰력에 의한 사망, 시위과정에서 경찰의 발포에 의한 사망, 시위과정에서 군인의 발포에 의한 사망을 구분하지 않는 치명적 실수를 천하의 황석영 선생님이 범하신 것 같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너무나 뻔한 상식을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근대국가는 사병(私兵), 즉 개인병력을 철폐하고 대중군대를 조직합니다. 국민을 외부의 적인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하는 일은 군대가 담당하고, 국민을 내부의 적, 즉 범법자로부터 보호하는 일은 경찰이 나누어 갖습니다. (공진성 <폭력>, 2009, 책세상, 47면)
그런데 광주민주화운동은 공수부대라는 특수부대가, 외적의 침략을 물리치라는 국민의 군대가 존립의 기초인 시민을 향해 총을 난사한 일입니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는 것과는 하늘과 땅차이입니다. 이것조차도 구분하지 않으셨습니다.
5.18 당시 ‘폭도’는 역사적 평가를 바탕으로 ‘시위대’가 됐고, ‘광주사태’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평가된 지 이미 오래 전입니다. 5.18 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특별법이 있었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당시 전두환 등 신군부의 헌정질서파괴행위에 대해 12.12는 군사반란(쿠데타)이고, 5.18은 신군부의 내란이라고 분명하게 확정지었습니다. (최재천, <끝나지 않은 5.18> 1999/2004, 향연) 그리하여 이번엔 전두환 등 신군부 일당이 교도소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사형선고를 받았던 내란음모사건의 수괴 김대중 피고인은 역사적 평가를 바탕으로 대통령이 됐고, 나중에 재심절차를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역사적 평가가 바뀌기까지 20년이 걸렸습니다. 국민의 힘입니다. 이런 역사 평가를 2009년 황 선생님이 뒤집고 있습니다.
황 선생님의 이러한 의도된 역사왜곡은 광주시민에 대한, 민주화운동으로 사망하신 영령들에 대한, 민주시민의 저항권에 대한 역사적 모독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넷째, 전후 사실관계가 이렇게 다르고, 법적 평가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도, 큰 틀에서의 역사적 흐름정도로 평가하셨습니다. 물론 역사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 선악공과가 끊임없이 교직하면서 그래도 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겠지요. 그런데 역사적 기초관계를 왜곡시켜서 역사의 발전 법칙을 해석하셨습니다. 이는 역사의 왜곡으로 이어집니다. 다름 아닌 뉴라이트적 역사관입니다. 분명한 역사인식과 진보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데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결국 다른 사람의 진보의식을 탓하신 것이 선생님 자신이 갖고 계신 진보의식의 치명적 결함, 역사인식의 무책임한 오류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슬픈 상황을 연출하고 말았습니다.
“(진보측으로부터) 욕 먹을 각오가 돼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사람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과 태도와 가치관의 변화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받아들입니다. 인정합니다. 다원주의야말로 민주주의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왜곡된 사실에 기초한 비뚤어진 역사인식은 잘못된 비전과 가치관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된 역사인식이 왜곡된 진보의식으로 똬리 틀고 말았습니다. 결국 역사인식과 진보의식의 문제였습니다.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으로가 아닙니다.
보수에서 진보로가 아닙니다.
다른 변화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변화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더라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시대정신, 나아가 인간의 존엄과 진보에 기초한 시민의식만큼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으로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Come Back 황석영, Come Back 5.18
최재천/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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