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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노무현

[시론]안녕, 우리들의 노짱 (경향신문090529)

by 마리산인1324 2009. 5. 30.

 

<경향신문> 2009-05-29 16:14:1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91614155&code=990303

 

 

[시론]안녕, 우리들의 노짱

 

 

이명원 | 문학평론가

 

 

흐린 눈으로 당신의 서거 소식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너무도 비현실적인 것이어서 믿을 수 없었습니다. 황혼녘에야 날기 시작한다는 미네르바의 올빼미도,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에트나 화산에 몸을 던진 엠페도클레스도 아니건만, ‘바보 노무현’이 그토록 허망하게 우리의 곁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당신과 함께한 우리세대의 청춘

그렇습니다. 당신은 삶을 종결짓는 그 순간조차 바보다운 엄격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에게서 치욕을 견디며 노회하게 와신상담하는 정치가의 모습을 요구하는 일은 어쩌면 모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바보 노무현’은 국회의원답지 않게 비열한 증인에게 명패를 집어던지고, 품위를 고려하지 않는 구어체의 직설화법을 즐기며, 아내를 버리느니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반문하는 그런 정열이 살아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당신의 그런 비정치적 면모를 사랑하고 열광하기까지 했으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흔해 빠진 정치인다운 경륜과 품위와 때로는 정략적 사고도 요구하는 이중구속에 가까운 요구를 당신에게 해왔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보 노무현’에 대해서는 열광했지만, ‘정치인 노무현’에 대해서는 싸늘했으며, 당신이 막다른 고민의 장막 안에서 괴로워할 때에도, 세속적인 우리들은 ‘어떤 반전의 카드가 있을 거야’ 하는 식의 정략적 사고에 도리어 익숙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우리를 떠나가는 것과 동시에 우리 세대의 청춘도 종언을 고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회고해 보니, 우리의 삼십대는 당신과 함께 시작했고 저물었습니다. 당신의 대통령 선거 전날, 우리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한나라당에 가 있는 한 정치인의 배신 앞에서 우리는 절망했으며, 그래서 밤을 새워 가족을 이끌고 투표장에 가는 오기를 부리기도 했지요.

그렇게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은 도처에 가득했습니다. 촛불을 들고 우리는 다시 광장에서 응원했고, 당신은 다시 대통령의 자리로 귀환했지만, 대체로 당신은 무기력해 보였습니다. 애초에 당신을 인정하지 않았던 기득권 세력들의 조롱의 언어는 더욱 우악스러워졌고, 당신이 ‘바보정신’을 저버렸다고 비판하면서 지지에서 냉소로 전향하는 사람들도 늘어만 갔습니다.

당신이 한나라당에 통째로 권력을 내놓을 수도 있다고 말했을 때, 저도 분노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노무현은 한 개인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열망이었고, 그 열망에 부응하는 일은 정치 민주화와 경제 민주화 모두를 실질적으로 완성시키는 데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직에서 은퇴한 당신이 다시 ‘바보’의 자리로 돌아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꾼다는 사실은 분명한 희망이었습니다. 저는 당신의 그 소탈한 귀향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민했다는 ‘진보’에 대한 암중모색이 열매 맺기를 기원했습니다. 그러나 이 괴상한 정부가 들어선 이후의 정치적 기후는 암담하고 또 절망적이었습니다. 봉하로 몰려가고 있던 시민들은 당신에게서 희망의 근거를 찾고 싶어 했고, 이 정부는 그것이 소름끼치게 두려웠을 것입니다.

못다이룬 그 열망 완성하렵니다

고백하건대, 당신의 정치인생 시작과 우리 청춘의 시작은 죽음으로 충만했습니다. 20대가 시작되자마자 강경대가 죽었고 김귀정이 죽었으며 박승희가 죽는 식으로, 우리의 청춘은 비만한 죽음으로 시작되었죠. 30대의 끝에서 당신의 죽음에 다시금 직면했으니, 저와 같은 세대는 청춘의 시작과 종언이 온통 죽음으로 가득차 있는 셈입니다.

우리의 청춘기는 사실상 죽어간 친구들에 대한 부채감으로 가득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존재는 그런 납덩어리 같은 부채의식과 시대에 대한 책임감이 찾아낸 열망의 형식이었습니다. 이제 30대의 끝에서 당신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부채감은 우리 삶의 본질이 된 셈이지만, 희망은 더욱 단단해져야겠습니다. 당신이 그곳에서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안녕, 노짱.

<이명원 |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