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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노무현

[금요논단]부엉이바위에서 던진 메시지(경향신문090528)

by 마리산인1324 2009. 5. 30.

 

<경향신문>  2009-05-28 18:06:2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81806205&code=990000

 

 

[금요논단]부엉이바위에서 던진 메시지

 

 

하태훈 고려대 교수·법학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부엉이바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짐으로써 정의로운 삶을 참으로 안타깝지만 명예롭게 마감하였다. 답답하게도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분이 왜, 무엇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는지. 무리하고도 무례한 검찰수사, 명예와 자존심을 난도질한 언론보도에 의혹을 보내지만 법적으로 따지자면 인과관계는 없다. 책임 있고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따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각자가 그 분의 죽음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편안히 잠드시길 기원하면서 우리 모두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자신의 결백을 스스로 몸을 던져 항변하려 했거나 가족이나 친지를 보호하기 위한 개인적 목적으로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평생의 삶과 소신에 비추어, 일국의 대통령을 지내신 분이므로 바위덩이에 온 몸을 내던져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감내했다면 세상을 향해 무엇인가 던지고자 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편가르기에 설 땅 없는 비주류

그의 육신이 부딪힌 바위덩이는 바로 견고한 성곽 같은 대한민국의 주류였을 것이고, 죽음의 방법으로 선택한 벼랑 끝 한발 내디딤은 임기 내내 자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하는데 인색했던 주류를 한 번 깨부수어 보고자 했던 것이며, 명예고 자존심이고 다 내팽개쳐진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서 영원히 벗어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의 투신은 벼랑 끝으로 내몬 주류에 대한 항거의 몸부림이자 역설적으로 화합이라는 화두를 메시지로 던진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 쓰여 있는 것처럼 그 분은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좌우 진보·보수의 편 가르기와 반목, 주류와 비주류의 상호 비방과 증오로 가득 차 있다. 비주류가 있으므로 주류가 존재할 수 있음에도 주류는 비주류를 밀어내려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비주류가 설 땅이 없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이후 더욱 더 그렇다. 일류와 이류,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 도시와 농촌, 끊임없는 편 가르기가 더해 가고 있다. 결코 이 사회의 주류라 볼 수 없는 상고출신이어서 국민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지만 대통령으로 인정하지도, 예우하지도 않은 일부 언론과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임기 내내 노골적으로 그 분을 무능력과 증오의 화신으로 묘사하였다. 임기 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죽은 권력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짓이겼다.

죽어서도 그렇다. 서거(逝去)라 이름 붙여서는 안 된다, 국민장에 세금을 1원이라도 써서는 안 된다, 청소년 모방 자살이 두렵다는 등 온갖 무시와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그것이 전직 대통령에게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예우란 말인가. 그들은 사자(死者)에 대한 예의도 모르는 근본 없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하긴 그들은 노 전 대통령 임기 내내 ‘능력과 자격이 안 되는 비주류 인물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며 무시와 증오로 그를 공격했던 사람들이다. 비주류의 한 표 한 표가 모여 어렵게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의회주류는 ‘의회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치적 사망을 선고하려 했다. 그 분이 주변인이라서 죽어서도 넓디넓은 광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또한 그를 추모하는 수많은 시민들도 한 쪽 구석에서 경찰에 포위된 채 숨죽이며 슬퍼해야 했다.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 만드는것

자유민주주의 정치는 자기편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자기편으로 만들어 자신의 정치적 이념이나 정책을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민주국가의 국민도 마찬가지다. 생각에 차이가 있고 이념이 다르더라도 상대편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주류에 속하든 비주류에 속하든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이다. 서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하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동시대의 친구들이다. 그 분 말씀처럼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그 분이 던진 메시지에 화답하는 것이다. 그런 세상이 오는 날까지 우리 모두 그 분의 정의로운 삶, 명예로운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태훈 고려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