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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김선주칼럼] 못다 쓴 유서를 … 쓰자(한겨레신문090601)

by 마리산인1324 2009. 6. 2.

 

<한겨레신문> 2009-06-01 오후 09:22:12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58107.html

 

 

 

[김선주칼럼] 못다 쓴 유서를 … 쓰자

 

 

신문도 텔레비전도 보기 싫었다. 글을 쓸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 숨을 쉬기도, 말을 하기도 갑갑했다. 그런 열흘이 지나갔다. 고인이 남긴 유서를 읽고 또 읽었다. 말과 글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길 즐겼고 또 자료로 남기길 원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너무나 짧은 유서를 읽고 또 읽는다. 행간에 혹시 다른 해석이 가능한 무엇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렇게도 시시비비를 가리기 좋아했던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딴지에도 숱하게 걸려들었다. 대통령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갑자기 시시비비 가리기를 멈추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하고 대충 넘어가는 것이야말로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그가 이다지도 짧은 유서를 남겼다.

 

신문과 방송이 쏟아내는 말들과 추모영상이 거짓말 같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말인가. 무엇이 고맙다는 말인가. 무엇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다는 말인가.

 

일인당 국민소득 6000달러가 넘으면 민주주의 국가가 전체주의 국가로 변질되는 역사적 사례는 없다고 정치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은 단언했다. 오판이다. 그의 퇴임 뒤 나는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절대권력의 시대를, 그 강을 건넜다”고 썼다.(2008년 3월5일치 ‘노무현씨 나와 주세요’) 취소한다. 임기를 끝낸 대통령이 봉하마을의 이장쯤으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나의 바람이었다. 안이한 생각이었다.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6000달러가 넘었으면서도 전체주의 국가로 변해가는 역사를 지금 써가고 있다.

 

박경리 선생이 만년에 쓴 시를 모은 유고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를 읽었다. ‘… 박정희 군사정권 시대/ 우리 식구는 기피인물로 살았고/ 유배지 같은 정릉에서 살았다./ 수수께끼는 우리가 좌익과 우익의 압박을 동시에 받았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가를 뼈가 으스러지게 눈앞에서 봐야 했던 태평양전쟁과 육이오를 겪었지만 그런 세상은 처음이었다./ 악은 강력했고 천하무적이었다/ 역적은 삼족을 멸한다는 옛날 관념에 사로잡힌 친지들도 우리를 뿌리치고 가는 …/’ 바로 그런 시대로 우리는 돌아가고 있다.

 

봉하마을에서 그가 겪었을 천하무적의 악은 무엇이었을까. 강한 것에 약하고 약한 것에 강한 사람들 마음 밑바닥의 비겁함이었을까.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고 전화와 이메일이 도청되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을까. 촛불시위로 사면초가가 되었던 이명박 대통령이 봉하마을의 그를 언론에 먹잇감으로 내준 것일까. 그가 돌려준 권한을 정권이 바뀌자 제발 우리를 주구로 삼아 주십시오라고 권력에 갖다 바친 검찰일까.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은 고졸 출신의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조롱했다. 대통령직을 물러나 낙향을 하자 이것 또한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손녀를 태우고 논두렁길을 달리는 그의 평화로운 노년도 눈꼴시어서 보아줄 수 없었다. 이제 그의 자살도 질투를 한다. 먹잇감이 없어졌으니까. 그의 화장과 작은 비석 하나도 질투를 한다. 가진 것이 많아서 자기들이 못하는 짓이니까. 그 정점에 수구 기득권 언론이 있다.

 

누가 화해와 용서를 말하는가. 죽은 권력에 난도질을 하고, 시정잡배로, 길거리 건달로, 그가 사는 흙집을 아방궁으로 묘사하며 모욕했던 언론이 제일 먼저 나서서 화해와 용서를 말한다. 죽음의 본질을 흐리게 하려는 짓이다. 화해를 먼저 청하는 것은 속이 뜨끔한 세력들이다. 그의 죽음에 직간접으로 간여했던 세력들이다. 천하무적의 악이다. 언론법을 빨리 처리하지 않는다고 안면 몰수하고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선 그들이다. 시시비비를 가려서 그가 못다 쓴 유서를 국민의 힘으로 써야 한다. 정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면.

 

김선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