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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시간끌고 혐의 흘리고…검찰, 인권과 거리 멀었다 (한겨레신문090604)

by 마리산인1324 2009. 6. 4.

 

<한겨레신문> 2009-06-04 오전 07:54:31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8588.html

 

 

시간끌고 혐의 흘리고…검찰, 인권과 거리 멀었다
검찰, 노 전 대통령 수사 ‘전범·준칙’도 무용지물
저인망식 싹쓸이 수사…소환·신병처리 차일피일
혐의 입증과 관련없는 내용까지 파헤치며 압박
‘권양숙씨 외화 송금내역’ 언론공개 위법 논란도

 

 

 

 

“검찰 스스로 검찰권의 내재적 한계를 성찰하고 이를 준수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인권을 보장하겠다는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비전과 노력이 필요하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12월 검찰 창설 60돌을 맞아 수사 전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담은 <검찰수사 실무전범>(전범)을 발간했다. 그에 앞서 ‘인권보호 수사준칙’, ‘수사사건 공보에 관한 준칙’도 정했다. 검찰은 이를 통해 관련 법률과 실제 사건 사례, 국내외 판례와 학설까지 한데 모아 정치적 중립성, 표적·편파·과잉 수사, 피의사실 공표 등을 쟁점 사항을 두루 점검한 뒤 검사가 따라야 할 ‘기준’을 제시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서, 이 <전범>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노 전 대통령 관련 의혹을 수사한 것 자체에 대해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그 방식이 과거와 판이하게 달랐던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표적·편파·과잉 수사 논란

표적·과잉 수사는 ‘특정 범죄’가 아니라 ‘특정인’을 겨냥해 어떤 범죄 사실이 드러날 때까지 수사하는 것을 말한다. 편파 수사는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가운데 특정인만 차별적으로 수사하는 것을 지칭한다.

 

이에 대해 <전범>은 △현 정부와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전 정부 주요 인사 등이 수사 대상인 경우나 △정권 교체기 직후 이전 정부 주요 인사들에 대한 수사는 ‘전 정부 흠집내기’를 위해 검찰권이 발동되었다는 표적 수사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검찰은 이런 “정치적 공세”를 불식한다며 △수사 착수 전 편향되지 않은 범죄 정보의 수집과 검토 △비례와 형평의 원칙 준수 △사건 관계인의 인권 보장 △반드시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릴 것 등을 주문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검찰의 수사 태도는 <전범>과 각종 준칙을 따르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수사 착수 경위부터 석연치 않다. 검찰은 전형적인 고발 사건이라고 말하지만, ‘세무조사 → 국세청 고발 → 검찰 수사 → 노 전 대통령 관련 진술 확보’로 물 흐르듯 이어진 사건 경과를 볼 때 이미 ‘예정’된 수사가 아니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특히 100만달러가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씨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당시 동선을 파악하려고 청와대 비서관 대부분을 소환하는 ‘집요함’을 보였다. 노 전 대통령 아들 노건호씨 역시 “진술 번복”을 이유로 6차례나 소환됐다. 결국 혐의 입증과는 관련이 없는 미국 아파트 구입 자금을 확인하겠다며 딸 노정연씨와 사위한테까지 수사가 번졌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와는 거리가 있는 ‘먼지털기식 수사’가 이뤄진 것이다.

 

반면,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벌인 것으로 드러난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는, “청탁을 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추 전 비서관의 말로도 충분하다며 더 이상의 조사를 하지 않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의 혐의가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검찰 수사 과정이나 방법의 정치적 중립성은 없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실상의 공개수사 논란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의 ‘타깃’으로 등장한 것은 지난 3월 말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 500만달러 수수 의혹이 불거지면서부터다. 노 전 대통령은 이때부터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은 4월30일까지 한 달 동안 경쟁적인 언론 보도와 여론의 파상적인 공격에 노출됐다. 특히 소환 조사를 받은 뒤 3주일이 지나도록 검찰이 신병처리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 뉴욕의 아파트 구입 자금과 같이 혐의 입증과 무관한 내용들이 부각되는 것에 상당한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전범>은 특별수사의 경우 “충분한 내사를 통해 비리를 확인하고 이를 입증해 유죄 판결을 받아낼 수 있는 증거를 입수할 수 있는 자신이 설 때 착수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를 위해 철저히 수사 보안을 유지한 상태에서 은밀한 내사를 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수사 정보가 유출될 경우 여론에 수사가 끌려가 진상 규명이 어려울뿐더러 인권 보장 등을 소홀히 해 검찰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그 이유다.

 

노 전 대통령 수사는 시작부터 이런 기준과 어긋났다. 검찰이 내부적으로 정했던 애초 일정과 달리 노 전 대통령의 ‘혐의’가 일찍 노출되면서 ‘명품시계’ 등 노 전 대통령 쪽에서 ‘망신주기’로 받아들여질 내용들이 브리핑이 아닌 다른 통로를 통해 언론에 보도됐다. 하태훈 고려대 교수(법학)는 “피의자 소환은 충분한 증거를 모은 뒤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최종적인 절차가 돼야 하는데 노 전 대통령은 소환 조사 뒤 3주 동안이나 ‘방치’됐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피의사실 공표 논란

<전범>은 형법과 인권보호 수사 준칙 등에 따라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법무부 훈령인 ‘인권보호 수사 준칙’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언론사의 과당 경쟁으로 인한 오보 방지 등 중대한 공익상의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사건에서는 ‘필요한 최소 범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브리핑 내용이 너무 자세해, 보도 내용만으로도 범죄 사실을 구성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특히 범죄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피의자의 인격이나 사생활에 관한 사항을 공개했다는 논란을 둘러싸고는 대검 훈령인 ‘수사사건 공보에 관한 준칙’을 위반했다는 지적도 제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준칙은 이런 사항을 공개할 수 없다고 규정하면서, ‘검찰 공무원이 이 준칙을 어겼을 경우 문책한다’고 정해 놓았다.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검찰이 넘겨받은 권양숙씨의 40만달러 외화 송금 내역도 브리핑 과정에서 노출됐는데, ‘특정금융거래 정보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은 이를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브리핑이나 금융정보분석원 자료가 공개되는 과정도 알 권리 차원에서 보면 피의사실 공표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하지만 수사 보안이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수사 내용을 흘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