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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잘나가던’ 한예종 ‘정치적 타살’ 당하나 (한겨레090605)

by 마리산인1324 2009. 6. 5.

 

<한겨레신문> 2009-06-05 오전 08:34:26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newspickup_section/358782.html

 

‘잘나가던’ 한예종 ‘정치적 타살’ 당하나
[뉴스쏙]
보수 예술단체·매체·정권 “좌파 온상” 협공
총장 내몰더니 학사 조직개편 의도 드러내
통섭교육·서사 창작·이론학과 존폐 위기
교수·학생들 “명백한 표적감사” 집단 반발
한겨레 노형석 기자 김진철 기자
» 지난달 22일 서울 석관동 한예종 교정에서 열린 학생 비상대책위 출범식. 연극원생들이 문화부의 표적성 감사와 한예종의 위기를 빗댄 애도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최성열 기자

 

‘한예종이 대체 어떤 곳이야?’

 

흔히 ‘한예종’으로 일컫는 국립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뉴스 초점으로 떠올랐다. 1992년 전문 예술인 양성을 목표로 설립되어 국제 예술 콩쿠르·경연대회 수상자를 다수 배출한 이 예술학교가 난데없이 ‘좌파 운동권의 온상’이란 색깔론 포화를 맞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30일 황지우 총장이 낸 사표를 전격수리했다. 황 총장은 앞서 3~4월 학교에 대해 벌인 문화부의 집중 감사가 “총장 퇴진과 학교 구조개편을 겨냥한 표적성 감사”라고 비판하며 지난달 20일 사퇴서를 냈다. 문화부는 전날 저녁 통보한 종합 감사 처분 요구서에서 주력 사업이던 통섭 교육(학제간 융합 교육)의 중단, 관련 교수 중징계, 이론 관련 학과 축소, 서사창작과 폐지 등을 요구했다. 아울러 공금유용 등을 이유로 황 총장을 중징계 처분하겠다는 방침도 전달했다.

 

황 총장의 퇴진은 애초 국립기관장의 진보 인사 몰아내기 ‘완결판’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감사 내용이 알려지면서 문화부가 총장 퇴진을 넘어 한예종 학사 편제 자체를 뜯어고치려는 것으로 비춰졌고, 논란은 학교 정체성을 둘러싼 공방으로 확대됐다. 황 총장도 사퇴 선언 당시 “건강 검진이 아닌 생체 해부에 가까웠다”며 감사의 과녁은 한예종의 학사 조직 개편 내지 리모델링이었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 지난 2일 사퇴한 황지우 전 총장이 한예종 영상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현재 박인석 교학처장이 총장 직무를 대행중인 한예종 교내에는 위기감이 감돈다. 무엇보다 외부 압박이 심상치 않 다. 보수 인사들의 단체인 문화미래포럼과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은 지난해 9월 심포지엄을 함께 열어 한예종 6개원 해체 축소 등을 요구하며 한예종 비판을 본격화했다. 여기에 올해 들어 보수 인터넷 매체들도 나섰다. 3월 <미디어워치><빅뉴스> 등이 통섭 과정 부실, 진보 인사의 교수 임용 등을 문제 삼는 기사들을 일제히 내보냈다. 뒤이어 문화부가 화답하듯 표적성 감사로 학교 운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에 맞서 학생들은 지난달 22일 비상대책위를 결성했고, 교수들도 25일 황 총장 사퇴 무효와 감사 처분 철회를 요구하는 전체 결의문을 냈다. 국가 기관의 감사에 산하 피감기관이 정면 철회를 요구한 것은 거의 전례 없는 일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6달 안에 학교가 해체될 것이라는 ‘한예종 괴담’이 떠돈다.

 

한예종 감사 과정을 들여다보면 학교쪽이 분석하는 ‘음모론’ 코드에 들어맞는 요소들이 적지않다. 문화부가 지난달 학교쪽에 통보한 종합 감사결과와 앞서 4월 1차 전달한 감사확인서를 보면 한결같이 U-AT(유비쿼터스 앤드 아트테크놀로지)통섭교육과 관련 교원 임용, 이론학과 확충, 협력 과정의 서사창작과에 관련된 문제점을 집중 언급한다. 통섭교육은 실기 전공과 인문·과학 기술 융합 교육을 위해 추진한 사업으로, 외부 보수 인사들이 가장 각을 세워 비판해왔던 부분이다. 종합 감사결과는 ‘통섭교육 사업추진 부당’이란 항목에서 연구원 채용 부적정, 기자재 과도 구입, 장관의 중단 지시 위반 등 5개 소항목에 걸쳐 문제를 지적했다. 1차 감사 확인서에도 통섭사업 지적 항목이 4건, 전공에 맞지 않는 무자격자나 ‘위인설관’적 요인이 있다고 지적한 교원 채용 의혹이 3건이다. 지적 사항에 반복 거명된 교원은 문화연대 등에서 활동하면서 통섭 교육을 주도해온 심광현 영상원 교수, 이동연 전통예술원 교수, 미학자 진중권씨다. 이들은 모두 보수 인터넷매체들이 전문성 없는 좌파라며 공격해온 인사들이다.

 

통섭 교육은 지난해 3월 사업 주체인 미래교육기획단(단장 심광현)을 꾸리면서 시작됐다. 11개 분야의 예술-과학기술 융합형 랩(교육실험실)을 만들어 4년간 연구 개발한다는 것이 뼈대였다. 이에 대해 감사 문건은 “투입 예산에 비해 성과가 부실하고 다른 학교 과정과 중복되며, 기자재 비용도 낭비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실무자들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펄쩍 뛰고 있다. 융합형 문화 콘텐츠가 각광 받는 시대 흐름에 맞춘 교육 모델로 추진했고, 기자재 비용도 2억5천만원 이상 절감했는데도, 해명들을 반영하기는커녕 거꾸로 곡해했다는 것이다. 심 교수는 “새 융합 교육 모델은 국제 심포지엄 등에서 호평을 받았고, 38건의 보고서와 자료집 등의 결과물을 냈다”며 “3월 개원한 서울대 융복합 기술원도 우리 안을 거의 그대로 활용했다”고 반박했다.

 

이론학과와 협동과정 축소·폐지에 대해서도 학내에서는 이념 잣대 로 학교를 구조조정하려는 의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폐지 대상인 서사창작과가 황 전 총장이 재직하는 학과이고, 진보 성향 교수들 상당수가 이론과 소속이란 점을 겨냥했다는 분석이다.

 

왜 문화부는 통섭 사업과 이론학과, 협동과정에 감사의 칼날을 겨눴을까? 그 배경에는 다른 예술대들과의 뿌리 깊은 갈등이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문화부에 설치, 운영을 위탁한 한예종은 법적으로 ‘각종학교’다. 대학이 되면 경쟁이 불가피한 다른 예술대가 반발할 것을 의식한 결과였다. 한예종은 이런 제한 때문에 이후 석박사 학위가 가능한 국립예술대학 설치법 제정을 추진해왔으나, 실기 학교라는 설립 취지에 위배된다는 예술대쪽 반발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황 총장이 주력한 통섭 교육과 협동과정은 이런 한계를 감안한 현실적 대안이었다는 설명이다. 이 구상은 지난해 예산 32억여원을 얻어 실행됐으나 정권 교체 이후 ‘설립 취지와 다르니 중단하라’는 유 장관의 지시와 예산 삭감으로 지난 연말 사업 주체인 미래교육단이 폐지되고 규모도 크게 줄었다. 문화계 일각에서는 보수 예술계 인사들과 인터넷 매체들이 ‘통섭교육은 학교를 장악한 운동권 인사들의 자리 만들기’라고 색깔론 시비를 제기한 것이 감사의 포석을 깔아줬다고 본다. 정진수 성대 교수 등 문화미래포럼 관계자들이 문화부 정책자문단에 참여하는 점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진보 논객인 진중권씨가 지난해 한예종 객원 교수 채용된 뒤로 색깔론 논쟁이 불거졌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학내 인사들은 진씨가 지난해 촛불 집회 현장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뒤로 ‘한예종=좌파 강습소’ 식의 비난이 본격화했다고 말한다. 이런 흐름이 3월 보수 인터넷 매체에서 제기한 통섭 사업 부실 운용과 객원교수 임용 과정의 의혹 등으로 응집됐고, 곧장 문화부 감사로 확대됐다는 것이다. 실제 두 감사 문건에서 진씨 관련 항목은 4개에 이른다. 지난해 객원교수로 채용한 진씨가 설치령에 규정한 실기자나 특수 자격자가 아니므로 채용 규정 위반이며. 2학기 강의를 하지 않았으니 급료 1700여만원을 반환하라는 내용이다. 진씨는 이에 “지난해 1, 2학기 강의와 통섭 관련 연구 출판 작업을 맡는 것이 채용 조건이었다”며 “2학기 강의를 하지 않은 것은 학교쪽 요구였으며, 다른 연구ㆍ출판 과제는 충실히 수행한만큼 계약 위반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진씨는 2일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 쓴 칼럼에서 보수 환수를 요구한 감사의 근거를 대라고 문화부에 공개 질의하는 한편 부당 채용 의혹을 제기한 보수 매체들을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규정상 한예종쪽은 감사 통보 뒤 2달 안에 지적 사항을 시정하거나 집행계획을 보고해야 한다. 따라서 그 기간 안에 이의 제기 절차를 거쳐 문화부쪽과 최종 시정안을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부는 감사에 대한 언급은 피하면서 원만한 협의를 강조하고 있다. 유 장관은 2일 학내 6개 원장단, 비대위 학생들과 만나 “감사는 감사일 뿐 이론 전공 축소, 서사창작과 폐지 등을 강행할 생각은 없다. 총장 선출 등과 함께 학교쪽에 일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신재민 1차관은 같은날 서울 서초동 음악원에서 교수들과 만나 “황 총장이 현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유럽에서는 좌파 정부가 집권하면 총장도 좌파에서, 우파가 집권하면 총장도 우파에서 나와 협력한다”고 엇갈린 발언을 내놓았다.

 

이처럼 겉다르고 속다른 듯한 태도에 문화부에 대한 한예종 내부의 불신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감사에서 ‘한예종 길들이기’의 속내를 내비친 문화부가 학교쪽 견해를 앞으로 얼마나 수용할지가 가장 큰 변수인 셈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뉴라이트 장단에 예술대교수연합회 맞장구

 

한예종을 뜯어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양축은 문화미래포럼과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회라는 두 단체다. 그 성격은 다소 다른데, 문화미래포럼이 한예종을 ‘좌파의 소굴’이라고 공격하는 반면 예술대교수연합은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를 내세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뉴라이트 계열들의 ‘좌파 몰아내기’에 한예종의 성장에 위기감을 느껴온 사립대 예술계 교수들이 편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술대교수연합의 주축은 중앙대·동국대·한양대 등 영화·연극 관련 학과 교수들이다. 한예종이 설립 이후 문화예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이들은 한예종을 강하게 견제해왔다. 문화관광부가 1999년과 2005년 한예종을 국립예술대학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국립예술대학설치법 제정을 추진하자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저지에 나섰고, 이후 상설 단체로 예술대교수연합을 세워 한예종의 축소 또는 해체를 요구해왔다.

 

예술대교수연합은 지난해 9월 문화미래포럼과 함께 ‘예술교육, 무엇이 문제인가’란 심포지엄을 열고 한예종 비판을 본격화했다. 당시 주제 발표한 정재형 동국대 교수는 “한예종은 대규모 종합대학처럼 통합교육 과정, 예술경영 과정, 아시아동반자사업 등 지나치게 확장을 일삼고 있다”며 “설립 취지에서 벗어난 한예종의 운영은 국내 예술교육 정책의 실패작이므로 구조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를 위해 한예종에 설치된 이론과 및 협동과정을 폐지하고, 기존 예술대학과 중복되는 전공을 폐지해 축소된 형태의 영재조기교육학교로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미래포럼은 노무현 정부의 문화 예술 정책에 반대하며 2006년 창립한 단체로 소설가 복거일, 정진수 성균관대 교수, 정과리 연세대 교수, 강위석 전 중앙일보 논설고문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지난해 9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에게 ‘문화예술계 현안과 과제’라는 자료를 내어 △민예총·예총 등 문화예술단체의 개혁 △한예종의 개혁 △영화계 좌파 세력의 청산 등을 주요 현안으로 꼽았다. 특히 “한예종은 문화예술 분야의 좌파 엘리트 집단의 온상으로 새 정부가 들어선 마당에 전면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