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09-06-05 오전 07:29:32
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358777.html
조선·중앙·동아의 ‘증오’…죽은 권력 물어뜯기로 지면 도배 | |
되짚어 본 ‘노 전 대통령 보도’ 검찰이 흘린 내용 그대로 받아쓰며 사실 단정 과장·추측 확대재생산…수사팀도 “오보 남발” 노 전대통령쪽 반박·해명엔 ‘궁색한 변명’ 딱지 | |
박창섭 기자 | |
“인신공격성 공격 저널리즘”
“기본적인 사실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질 낮은 저널리즘의 전형”
신문과 방송들은 지난 4월부터 1면 등 주요 지면을 할애해 집중적으로 검찰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정작 취재 보도의 기본원칙을 제대로 지켰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조선·중앙·동아 등 일부 언론의 보도는 ‘증오 저널리즘’에 가까웠다는 게 많은 언론학자들의 지적이다. 이번 사안을 다루면서 노 전 대통령에게 증오에 가까운 공격적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가령 노 전 대통령을 파렴치한으로 묘사하는 ‘인격학살’에 가까운 기사를 들 수 있다. <중앙일보>는 4월11일치 34면 자사 논설위원인 정진홍의 기명칼럼 ‘화류관문, 금전관문’에서 “(박연차가) 돈이 아니라 똥을 지천으로 뿌리고 다녔다… 그 똥을 먹고 자신의 얼굴에 처바르고 온몸 전체에 뒤집어쓴 사람들이 지난 시절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고 그 부인이었으며 아들이었”다고 썼다. 이 신문은 5월1일치 2면에서 노 전 대통령 해명을 “‘아내 일 남편은 몰랐다’ 구차한 3류 드라마”라고 조롱했다.
<동아일보>는 4월11일치 5면에서 “600만불의 사나이, 완쇼남(완전 쇼하는 남자), 뇌물현, 노구라 등 노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신조어가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은 4월27일치 30면 칼럼에서 인신공격적 표현으로 노 전 대통령을 공격했다. 그는 이 칼럼에서 “노무현 게이트에 얽힌 돈의 성격과 액수를 보면, 그야말로 잡범 수준이다. … 지금은 사람들이 흥분하고 철저수사를 주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야말로 치사하고 한심한 생각만 남을 것이다”라고 썼다.
저널리즘의 제1원칙인 ‘사실 보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도 언론들이 반성할 대목으로 지적된다. 담당 수사팀조차 신문과 방송에서 대형 오보가 여러 차례 나가 브리핑을 수시로 하게 됐다고 말할 정도다. 동아(4월11일), 조선(4월14일)과 중앙(4월15일)은 노 전 대통령이 100만달러를 받은 다음날 과테말라 순방길에 미국에 1박2일간 머문 것을 두고 유학중이던 아들 노건호씨에게 이 가운데 일부를 생활비로 건네려고 그랬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조선(5월4일치 1면)은 노 전 대통령의 노트북이 노건호씨 회사에 건네진 것을 두고 사업 참여 의혹까지 인다고 했다. 하지만 이 기사들은 단순 의혹 제기에 그쳤고 사실 확인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중앙은 5월4일치 6면에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건호씨가 유학 생활 중 수억원대 투자를 했다가 손해를 봤다”는 정보보고를 했다는 의혹도 검찰이 조사중이라고 보도했지만, 국정원과 검찰 모두 부인했다.
<에스비에스>가 5월13일 ‘뉴스8’에서 “권양숙 여사가 1억원짜리 명품 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한 보도에 대해서도 검찰은 즉각 이를 부인했다. 그런데도 동아일보(5월15일치 8면)는 “포털 누리꾼들이 봉하마을 논두렁에 2억 시계를 찾으러 가자는 글들을 올리고 있다”며 오보성 기사를 ‘확대재생산’했다.
노 전 대통령 쪽의 해명은 가볍게 다루면서 혐의 내용은 단정적으로 보도하는 편향성도 지적됐다. 조선은 4월15일치 4면 머리기사에 검찰 쪽 주장을 그대로 옮겨 “노 전 대통령이 요구해 가족이 받아 쓴 포괄적 뇌물”이라고 단정적인 제목을 뽑았다. 이 신문은 소환조사가 끝난 뒤에는 “유죄가 인정되면 중형 불가피하고, 1심 판결은 연내 나올 것 같다”(5월1일치 5면)는 식으로 아예 재판관까지 자임하고 나섰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누리집(홈페이지)을 통해 해명을 할 때마다 일부 신문들은 “궁색한 변명”으로 몰아붙였다.
전문가들은 검찰의 브리핑이나 특정 취재원 1~2명의 말을 그대로 믿고 받아쓴 결과로 오보성 혹은 추측 기사가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형상 변호사는 “뉴욕 타임스 보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대립되는 취재원 4명 이상의 확인을 거쳐야 함에도 우리나라는 오직 하나의 ‘빨대’에 의존해 쓰면서도 ‘~라고 밝혀졌다’는 식의 단정을 한다”고 꼬집었다. 한국신문협회, 한국기자협회 등이 채택한 ‘신문윤리실천요강’ 3조 보도준칙은 “수사기관이 제시하는 피의사실은 진실 여부를 확인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최영재 한림대 교수는 “언론이 경쟁적인 정치권력을 공격할 목적으로 극도로 편향된 뉴스 전략을 구사하는 공격 저널리즘 현상이 이번에 특히 심각했다”며 “건전한 비판 보도는 아플 뿐이지만, 비판을 넘어선 공격 보도는 분노를 일으키고 그것이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하나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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