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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2009-06-10 오전 10:04:13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090609164403&Section=01

 

 

"盧 추모 열기, 깊고 오래 가 선거로 나타날 것"

[인터뷰] '노무현의 입' 천호선 "검찰, 사회적 흉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기간 동안 몇몇 인사들도 국민의 주목을 받았다. 단 한 순간도 흐트러짐이 없었던 문재인 전 비서실장, "대통령님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조사를 낭독해 심금을 울렸던 한명숙 전 총리, 분노를 감추지 않아 보는 이에게 공명을 일으켰던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 등.

'봉하 마을 대변인'으로 깔끔하게 일을 처리한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그 중 한 사람이다. 천 전 수석은 노무현 정부 후반기 인터넷과 K-TV로 생중계된 청와대 정례브리핑(정권 교체 이후 생중계는 물론 일일 정례브리핑도 사라졌다)을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졌다. 하지만 그를 설명하기에 '전 대변인'이라는 문구는 부족하다.

▲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프레시안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인터넷기획실 실장이었던 천 전 수석은 노무현 정부 출범 때 참여기획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해 정무기획비서관, 정무팀장, 국정상황실장, 의전비서관 등 핵심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그는 2006년 8월 청와대를 떠났지만 8개월 만에 청와대 대변인으로 컴백해 끝까지 노 전 대통령 곁을 지켰다. 노 전 대통령의 수많은 참모 가운데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정도를 제외하면 이 정도 경력을 갖춘 인물을 찾긴 어렵다.

지난 주말에도 봉하에 다녀왔다는 천 전 수석을 8일 오후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천 전 수석은 대변인 출신답게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은 삼갔지만 현직에 있을 때보단 거침이 없었다.

"'손발 묶기'넘어 '삼족 멸하기'로 느껴진다"

일단 천 전 수석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에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특히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퇴임하면서 "정당성과 당위성을 인정해달라"고 말한 데 대해 "검찰이 피의 사실을 공표하고, 아주 의도적으로 여론을 이끌어나가면서 기소 정당성을 만들어가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정당한 수사가 아니다"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정당성을 인정해달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검찰을 향해 "사회적 흉기가 될 수도 있다"고까지 말했다.

'참여정부에서 검찰을 놓아주긴 했지만 개혁은 못한 거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천 전 수석은 "논쟁적 대목"이라고 일부 문제제기를 인정하면서도 "제도적 개혁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강조했다.

'검찰을 통해 손발을 묶겠다는 의도였을까, 아니면 아예 삼족을 멸하라는 의도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천 전 수석은 "지금 현 정권의 의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결과적으로는 후자로 느껴질 수밖에 없게 주위 사람들이 체험하고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검찰은 권력에서 독립했다'는 인식이나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민주주의를 되돌릴 순 없다'는 인식은 착각이었을까? 노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정권이 바뀐다고 세상이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었다.

ⓒ프레시안
천 전 수석은 "제일 어려운 질문"이라면서 "노 대통령은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확보된 민주주의적 권리 같은 것들은 기본적으로 쉽게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 한편으로 있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미약한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주권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재임 중 진보진영과 논쟁 때로는 신경전은 적잖았다. 서거 이후에도 인터넷 상에서 지지자들과 진보진영 사이에서 비슷한 논쟁이 전개되는 모습도 보인다.

핵심적 논란거리였던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에 대해 천 전 수석은 "두 문제는 좀 달랐다"고 말했다. 이라크 파병의 경우 노 전 대통령 본인의 고민도 컸지만 한미 FTA에 대해선 확신이 있었던 것.

하지만 천 전 수석은 "하나 하나의 정책을 놓고 그 정책이 진보냐 보수냐 판단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본다"면서 "하나 하나 쪼개놓으면 보수적일 수도 있지만 큰 국정운영을 진보적 방향으로 하기 위해 때로 양보해야 할 것과, 타협해야 할 것들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일반 민주주의 퇴행 국면에서 이른바 개혁 진영과 진보 진영의 연대가 나름대로 굴러가고 있다. 하지만 이 대목은 여전한 논쟁거리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장기적 국면에서 어떻게 정리될지 주목해야될 지점이다.

"민주당, 지켜보고 격려하겠지만 한계가 있어"

현실 정치 문제에 대해서도 천 전 수석은 조심스러웠지만 말을 아끼진 않았다. 그는 "추모 열기가 깊고 오래 갈 것이다. 각급 선거까지 갈 것이다"고 내다봤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남겨준 자산과 숙제를 어느 누구가 독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대통령과 함께 정치를 해왔던 분들이 앞으로 더 큰 역할을 하겠지만 '친노냐 아니냐'해서 배타적 정치세력을 형성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유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관계에 대해선 "앞으로 지켜보고 격려하겠지만, 한계가 있다"고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친노진영 내에서도) 단기 처방은 틀리고 서로 연합하고 연대하고 하는 과정들이 있을 것"이라는 자신의 말처럼 천 전 수석이 친노진영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이른바 친노정치세력화는 민주당 안과 밖, 투 트랙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단일 구심을 형성할 사람도 마땅찮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는 "두 분은 지금도 훌륭하지만, 더 큰일을 통해 훌륭한 지도자로 더 거듭나실 것으로 기대한다"고만 말했다.

이렇든 저렇든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친노세력은 '폐족 신세'를 완전히 벗어던졌다. 유시민, 한명숙이 차기 서울시장 가상 대결에서 오세훈 시장을 따돌리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물론 '노무현 후광효과'가 이 정도 크기로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지방선거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이른바 '진보개혁 진영' 혹은 '반MB진영'에서 친노세력은 주요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천 전 수석의 희망대로 친노세력은 '노무현 정신'을 계승할 수 있을까?

다음은 한 시간 반 동안 진행한 인터뷰 전문이다.

"수사 정당성 인정해달라? 언어도단이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임채진 전 검찰총장의 퇴임사에 보면 "노 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자신이 '보혁'의 중간에 끼어서 마음 고생이 심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어떻게 생각하나

천호선 : 나름대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지 않나. 검찰의 독립성을 진정으로 지키는 게 중요한데, 독립성은 양면이 있다.

하나는 외부로부터의 독립성, 하나는 내부에서 스스로 어떤 정치적 편견 갖지 않게 치우치지 않게 지키는 것이다.

임 전 총장이 청와대나 법무부의 박연차 수사에 대한 지휘 여부에 대해선 '노코멘트'라던데….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지금 와서 고충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싸워줬어야 하는 문제다. 지금 이야기는 자기 변명 아닌가?

프레시안 : 이인규 중수부장 체제로 수사를 마무리하고 가는 것 같다. 어쨌든 임 전 총장은 "안타까움은 있지만 수사의 정당성과 당위성은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게 검찰 전체 입장인 것 같은데

천호선 : 아주 정의로운 집단이 있고, 그런 집단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부여되서 정의를 지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영화, 드라마를 보면 그런 검사가 나오고 일부 법을 뛰어넘는 행위가 용인된다. 간혹 국민들이 그런 검사상을 바랄수도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검찰은 다른 어느 나라와 비교해볼 때도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이 검찰의 주류 세력이 정치적 편견이나 선입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주어진 법 조건을 뛰어 넘어서 위법적이고 불법적 권한까지 행사하는 것이 정당하다? 그리고 그에 대해 사후에 아무런 문제 제기 되지 않고, 또 처벌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검찰이 때로는 사회적 흉기가 될 수도 있다.

검찰이야말로 법치주의의 첨병이어야 한다. 지금 갖고 있는 법적 권한으로도 정의를 세우는데 부족하지 않다. 검찰이 주어진 권한을 뛰어넘어, 피의 사실을 공표하고 아주 의도적으로 여론을 이끌어나가고, 그것을 통해 실질적인 재판을 이끌어 나가고, 기소 정당성을 만들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정당한 수사 아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 정당성을 인정해달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프레시안 : 방금 '검찰 주류 세력'이라고 언급했는데 참여정부 시절 임명장을 받은 임채진 전 총장은 물론이고 이인규 중수부장 역시 그때도 아주 잘 나가던 검사다. 노무현 정부의 검찰 개혁이라는 게 뭐였을까? 천정배 법무장관 시절 수사지휘에 반발하면서 김종빈 당시 총장이 사표를 쓰며 저항했고, 나아가 '차떼기 수사'로 범국민적 인기를 끌었던 송광수 총장도 검찰개혁에 반발했었다.

'검찰 주류'는 참여정부 때도 지속적으로 강화됐다. 개혁이라기보다 그냥 '놓아버린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천호선 : 노 전 대통령은 기존 대통령이 가져왔던 초법적 권한을 스스로 내려놨다.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나온 메시지는 대통령 당신이 법을 뛰어넘는 권한을 스스로 내려놨듯이 검찰도 법을 뛰어넘는 수사나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자기 편 사람, 또는 개혁적이라 일컬어지는 사람을 (수뇌부에) 임명해서 이끌어나가려 했다기보다, 검찰 스스로의 자기 개혁을 기대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민주주의, 역행할 수 없는 수준까지 왔을까

프레시안 : 검찰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지만, 몇 번 부딪혀 보다가 검찰 자체에 넘긴 것은 어떻게 보면 책임방기 아닌가?

천호선 : 논쟁적 대목이다. 우리 안에서도 논쟁이 있었다. 박연차 리스트 사건 터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했겠나. '그것 봐라, 검찰을 바꿨으면 이런 고생은 안 했을텐데…'라고. 하지만 대통령께선 '그런 부분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자율적으로 개혁해 나가는 게 옳다'는 식의 생각을 주변 분들에게 이야기했다.

프레시안 : 그럼 검찰을 자정 능력 혹은 자기개혁 능력을 갖춘 집단이라고 신뢰했다는 이야긴가

천호선 : 자정능력을 신뢰했다기보단,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고 제도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할 일이라고 보는 것인데. 제도적 개혁은 대통령 권한으로 하루 이틀 이뤄질 게 아니다.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시간을 갖고 여야가 합의하고, 법조계 전체가 동의 과정을 끊임없이 거쳐야 하는 거니까. 실제로 시도하려 했던 것이 몇가지 있다.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 같은 것. 경찰 수사권의 독립 등 이런 것이 제도적 접근인데 그런 부분들에 대해 엄청나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뤄지진 못했다. 제도적 개혁을 신경쓰지 않았다는 지적은, 제 입장에선 편견인 것 같다.

프레시안 : '이미 검찰은 권력으로부터 독립했다. 다른 권력기관도 마찬가지다'는 인식, 나아가 '일반 민주주의는 비가역적이라는 인식' 예컨대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역사가 거꾸로 가진 않는다"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도 있었다. 그건 노 대통령 뿐 아니라 어떻게 보면 진보진영도 가지고 있었던 인식이다. 돌이켜보면, 잘못된 생각이었을까?

천호선 :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저는 대통령께서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확보된 민주주의적 권리나 권리 같은 것들은 기본적으로 쉽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은 한편으로 있었다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 당신이 대통령 된 것도 '참 운이 많이 따른 일'이라 한 것처럼 아직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적인 제도나 이런 게 서구 나라처럼 오랜 투쟁 과정을 통해서 이뤄졌다기보다 갑자기 주어진 게 적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 주권운동 등도 지속적으로 전개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쉬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을 지켜내는 시민들의 노력도 커져야한다'는 양면의 생각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본 게 아닐까 싶다.

"파병과 FTA에 대한 대통령의 태도는 달랐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노 대통령 재임 중에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언급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연세대 특강(보수와 진보에 대한 구별에 대한)도 그렇고 최근 공개된 유고(진보주의 연구)를 보면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진보적 문제의식에 천착했구나 싶다.

참여정부에 대해 진보적 관점에 입각한 논의가 많지만 논란꺼리는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두 개로 집중된다.

천호선 : 진보, 보수 혹은 좌파, 우파까지 말이 많다.

어쨌든 일단 진보라고 놓고 말해보자.

대통령께선 국정운영을 하면서도 진보를 고민했고, 유고에도 남아있지만 퇴임 후에도 국정운영을 반추하고 자기성찰을 하는 과정을 갖고 있었다.

파병에 대해선 재임 중 공식적 자리에서도 "나중에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받을지 모르겠다"는 말씀이 있었다.

다만 대통령 생각이라기보다는, 제 생각에는, 진보라는 것을 결국 다수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본다면 하나 하나의 정책을 놓고 그 정책이 진보냐 보수냐 판단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본다. 하나 하나 쪼개놓으면 보수적일 수도 있지만 커다랗게 국정운영을 진보적 방향으로 하기 위해서 때로는 양보해야 할 것과, 타협해야 할 것들이 존재할 수 있다.

이라크 파병이 전형적인 그런 케이스일 수 있다. 파병 자체로 보면 진보적 결정이라 볼 수 없지만 당시 남북관계과 한미동맹 상황을 놓고 보면 동맹으로써 최소한의 의무를 수행하면서 남북관계에 있어서 미국에 보다 유연한 태도를 촉구해나가는 것은 커다란 의미에서 보면 진보적인 성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옳으냐 그르냐를 이 자리에서 말할 것은 아닌데, 어쨌든 이라크 파병은 대미관계에 있어 어떤 레버리지를 삼기 위한 불가피성 등에 대한 깊은 고민 같은 것이 엿보였다. 반면 한미 FTA 경우는 '수단적으로도 맞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노무현식 개혁을 위한 노무현식 외부충격론으로 설명하는 시각도 있다.

천호선 : 한미 FTA를 통해 통한 개방과 도약을 의도했던 것은 사실이다. 분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봐야 할 것 같다. 반대하는 쪽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었다. 개방 자체를 반대하는 것도 있었고, 개방도 좋은데 한미 간에 먼저 하는 것은 전술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개방은 불가피하고, 개방을 통해 한국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불가피하게 약화 되거나 피해보는 부분이 있지만 그런 부분은 개방을 안 해도 장기적으로 마찬가지 피해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예를 들어 농촌 문제 등인데, 그 쪽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세우자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개방이 되면 꼭 양극화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주장이 많이 제기됐기 때문에 개방에 대한 복지 정책의 실현 등을 모색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한미 FTA와 비전2030은 한 패키지의 정책이다. 한 패키지의 매우 거대한 정책이라고 보면 될것 같다.

프레시안 : 경찰 수사권 독립, 검찰권 독립 같은 문제랑 마찬가진데 한미 FTA의 경우, 재계나 이른바 기득권 층에선 자기들한테 유리한 것만 받아들이고 비전2030 같은 것은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모습이었다. 지금 온데 간데도 없다

천호선 : 모든 사회 집단이 다 그렇다. 특이한 현상이라 보기 어렵고,

"현 정부, 정치적 협량함 뛰어넘지 못해"

프레시안 :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거대한 추모열기. 대체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내지는 '나도 그에게 돌을 던졌다'는데 대한 후회가 첫 번째 인 것 같다. 두 번째는 후퇴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안타까움. 이게 겹합된 것 아닌가 싶은데

천호선 : 우리는 상을 치르느라 이 열기를 객관적으로 자료를 갖고 분석해본 적은 없다. 저는 여러 가지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분노도, 안타까움도, 미안함도. 그 중 미안함이 큰 동기 중 하나 아니냐는 해석에 공감이 간다.

프레시안 : 퇴임 후 현 정권과 관계를 짚어보자. 첫 번째로는 서거 이후 장례를 치르는 동안의 관계가 있을 것이고 두 번째는, 대통령 기록물 논란이 났을 때를 포함해 대선 이후 지난 1년 반 동안의 이야기가 있을 것인데. 첫 번째부터 이야기 해보자. 실무자들한테 확인해봤는데, 봉하 마을에 도착한 이명박 대통령의 애도화환을 택배 기사가 들고 왔더던데

천호선 : 화환을 수석 혹은 비서관 등 어떤 '인사'가 가져온 것은 아닌 게 맞다. 그런데 저도 김영삼 전 대통령 생신 때 난을 들고 가봤지만 좋은 일이 생기축하난은 '인사'가 들고 간다. 그런데 전 대통령 서거 같은 일이 있을 때 일단 애도 화환이 먼저 따로 갈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더 큰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 애도화환 문제로 뭐라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프레시안 : DJ조사나 만장 깃대 문제 등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

천호선 : 정부가 행정적으로는 굉장히 열심히 도와주려 애썼다고 생각하는데, 추도사나 노제 문제를 보면 정치적 협량함을 뛰어넘지 못했다고 본다.

추도사 문제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오지도 않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하라고 해도 안했을 것인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라는 약간의 파격이나 배려를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사안이 어디까지, 최고위층'까지 보고된 뒤 결정됐는 진 모르겠지만..

프레시안 : 서거 전에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참여정부 인사들이 부당한 탄압을 받은 사례를 모으고 있다고 그랬었다. 퇴임 후 일년 반 쭉 짚어보자. 사례를 전해줘도 좋고

천호선 : 참여 정부의 모든 인사를 대상으로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주요 인사를 대상으로 해서 무언가 사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꼬투리를 찾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검찰, 국세청, 감사원이 동원된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감사원이 대부분 공기업을 몇 달씩 특별 감사 했다.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사장, 감사가 무슨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았는지 찾아내려고 했고, 일부 그런 것들을 예단하고 기사를 흘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거의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국세청은 대통령과 인연을 가진 한둘 밖에 안 되는 기업인을 타겟으로 해서, 기업인들의 일반적 취약점이 있지 않나, 어떤 목표를 세우고 세무조사를 한 것이다.

프레시안 : 노 전 대통령이 잘 가던 효자동의 삼계탕집 토속촌 세무조사했다는 소식도 있다. 이건 참 너무 '찌질한' 것 같은데 또 다른 케이스가 있을까?

천호선 : 대통령 측근 모 인사를 도와준 어떤 사람의 통장을 털다가, 그 통장에서 사업하는 자기 후배에게 돈을 꿔줬다가 받은 것을 보고 그 업체를 압수수색했다. 모 인사도 아니고 모 인사를 도와준 사람이, 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꿔 준건데, 왜 꿔줬는지 보려고 압수수색했다는 말이다.

"'환상 속의 공포'에 사로잡힌것 아닌가?"

프레시안 : 노 대통령 '측근이라는 대표적 인물 한 두 명을 손 봐서 손발을 묶겠다는 의도 였을 수 있고, 아니면 아예 '삼족을 멸해라'는 의도였을수도 있다. 뭘까? 서거 직전 국면 을 보면 후자였던 것도 같은데

천호선 : 지금 현 정권의 의도를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후자로 느껴질 수밖에 없게 주위 사람들이 체험하고 체감하고 있다.

프레시안 : 촛불 정국 때 인터넷 등에서 노 전 대통령과 현 대통령을 비교한 글과 사진이 넘치는 등, 어떻게 보면 과도할 정도의 이른 재평가가 엿보이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현 정권의 위기의식을 자극했을까

천호선 : 현 정권에는 '노무현이 정치를 재기할 가능성 있는 것 아니냐'부터 '참여 정부 세력의 존재 자체가 국정운영에 부담이 된다'까지의 폭을 가지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이 대통령 본인이 어느 정도로 생각했는진 모르겠지만.

그건 참 잘못된 생각이다. 퇴임 후부터 서거 직전까지 현 정부가 수행하는 중요한 정책을 먼저 나서서 비판한 경우는 거의 없다. 정치는 본인이 세력을 만든다는 것인데 '노무현이 정치를 재개 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자신들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 속의 공포일 뿐이다.

"배타적 정치세력 형성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봉하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유지인 진보주의 연구에 동참을 제안하는 글도 나왔다.

결국 현실정치와 연결될 수 밖에 없는데

천호선 : 함부로 해석할 순 없지만 제가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대통령께서 스스로를 던지신 것은 자리를 비켜주신 것이다.

두 가지인데 당신이 존재하는 이상 주변 사람의 탄압과 모욕, 그리고 고통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하나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대통령과 함께 해왔던 참여 정부 인사들이나 대통령 적극 지지하는 지지자들이, 노무현의 존재, 노무현 때문에 함께 씌워진 굴레 때문에 어떤 과제를 앞으로 해결해나가는 데 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 짐은 당신이 진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저희가 보기에, 참여정부가 왜곡되고 저평가 되고 있는 문제를 풀어가는 게 굉장히 오래간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재평가가 있겠지만 긴 호흡을 가지고 활동을 하려 했는데 대통령이 비켜주시면서 우리 사회와 국민들이 기존에 가졌던 어떤 왜곡된 인식, 선입관, 편견들이 치워졌다. 참여정부의 성과가 갑자기 눈 앞의 자산이 됐다.

이 자산을 어떻게 앞으로 국가 발전에 도움 되는 형태로 만들어갈 것이냐가 큰 숙제가 됐다. 하나는 시민주권운동으로 풀 과제가 있고 또 하나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이 있는 것이다. 길게 가져갈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당면의 문제로 다가와 치열하게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가야하게 됐다.

프레시안 : 진보주의연구는 미래발전연구원에서 맡고, 또 현실 정치에 조응하는 부분은 다른 쪽에서 맡게 될 텐데. 역할 분담이라든가 실질적 적용이 어떻게 될까? 이른바 '친노'라고 해서 모두 생각이 완벽하게 같은 것도 아니지 않나? 게다가 어느 한 사람이 '내가 대장이다. 내가 진짜 후계자다'이러고 나설 수도 없는 것이고

천호선 : 남겨진 자산과 숙제를 어느 누구가 독점할 수 없을 것이다. 크게 얘기를 벌려서 보자면, 노무현이 던진 자산과 숙제는 모두의 것이고, 누구든지 자기 성찰적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참여정부 인사도 그렇고, 보수 언론에는 기대 하지 않지만 진보적 내지 양심적 언론도 그렇고, 지식인 사회도 그렇고, 국민들도 성찰적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큰 부분은 정치적 실천에 있을 텐데, 그것도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역할을 하기보다는 다양하게 소화할 수 있는 것이라 본다. 흔히 '친노 독자세력화' 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대통령과 함께 정치를 해왔던 분들이 많은 자산도 받았고 숙제도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큰 역할을 하겠지만 '친노냐 아니냐'해서 배타적 정치세력을 형성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유지에도 맞지 않는다.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선 대통령 주변 사람들 중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지켜보고 격려하겠지만 한계가 있다"

프레시안 : 결국 현실 정치로 귀결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예컨대 민주당과의 관계는? 정세균 지도부 같은 경우 이른바 친노진영과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안희정 최고위원도 민주당 지도부의 일원이다. 당밖에 있는 정동영 의원은 그 반대 케이스다. 민주당 등과 관계 설정은 어떻게 될까?

천호선 : 결국 대통령 추모 열기 속에서 생긴 국민들의 의식 변화는 매우 깊은 것이고 그래서 멀리 갈 것이다. 노제를 치르며 경복궁부터 서울역 광장까지 갈 때 운구 행렬 맨 앞에서, 국민들의 말을 듣고 표정을 봤다. 당장 무엇을 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열심히 도와줄 테니, 노무현이 이루지 못한 정치적 꿈을 이루어라'는 것으로 봤다. 그래서 결국 당장에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대중적 움직임을 넘어 앞으로 선거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보는 게 내 인식이다.

국민의 이런 깊은 문제 의식이나 멀리 갈 추모 열기를 정치적으로 모두 담아내는 데는 민주당이 한계도 있어 보인다. 민주당 내에도 노무현 대통령을 존중했온 사람도 있고, 또 몇 가지 문제에서 비판적이었지만 존중 자체를 잃진 않은 사람도 있고, 또 적지 않게는 그렇지도 않은 사람들도 있다.

민주당이 작년 촛불이나 지금 추모 열기에서 나타난 국민의 요구를 담는 데는 세력적으로나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민주당 노력을 앞으로 지켜보고 격려하겠지만, 한계가 있다. 이런 부분에서 앞으로 국민들의 의지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담아나갈 것인가는 큰 숙제다.

프레시안 : 그 부분은 아주 예민한 지점이다. 예컨대 친노신당론이 있고, 영결식에서 가장 주목된 장면 중 하나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오열하는 부분이 상징할 수 있는 민주당으로 대동단결론이 있을 수 있다. 이 두 이야기 사이에서 긴장관계가 깊어질까?

천호선 : 그 부분은 일단 접자. 49재까지 잘 치르고, 잘 보내 드리고 나서 다양한 국민적 토론이 일어나지 않겠나.

프레시안 : 추모의 흐름이 깊고 길어 선거에 나타날 것이라고 했는데, 내년 지방선거가 곧바로 서거 1주기 즈음에 치러진다.

천호선 : 상중에 벌써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던데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이건 객관적 분석 틀이니까. 그리고 지금 유시민, 한명숙 등의 이름이 거론된다. 그것 자체가 정치적 동력이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5.18때 광주 가고 5.23(서거일)에 봉하 가는 것이 영호남 민주화세력의 통합 기제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현실 정치에 주요 변수다.

"차이를 인정하고 연합해 나가지만 결국 하나 된다"

천호선 : 그건 그렇다. 어쨌든 (이른바 친노 안에서)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은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대로, 정치하는 사람은 정치하는 사람대로, 민주당 안에 있는 사람은 안에 있는 사람대로, 밖에 있는 사람은 밖에 있는 사람대로 나름대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해나갈 것이다. 단기 처방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가 될 것이다.

당장의 민주대연합론식의 이야기들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차별성을 인정하고, 차이를 존중하면서 연합하고 연대해 나가는 게 정치의 본질이라 보면, (친노 내에서도) 단기 처방은 틀리고 서로 연합하고 연대하고 하는 과정들이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서거 정국에서 국민들 눈에 세 사람이 들어왔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의 절도 있고 격조있는 모습들, 품격 있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워낙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인물이니…. 그리고 한명숙 전 총리 역시 온화하면서 격조있는 모습을 어필했다. 분노를 감추지 않는 유시민 전 장관의 모습도 지지자들 사이에 많은 공명을 일으켰다. 이런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망해본다면?

천호선 : 너무 저널리스틱한 질문이다. 잘못 답변하면 무지 욕먹을까봐 추상적으로 재미없게 답하련다.(웃음) 추모 열기가 깊고 멀리 갈 거라고 이미 말했는데, 지금 한 두 사람이 어느 공직에 출마하느냐 자체는 부차적인 문제다. 다만 내 개인적 소망을 이야기한다면, 어느 분이든, 개인적 거취 문제를 뛰어넘어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에서 이루고자 한 꿈을 이룰 수 있는 근본적 방안을 찾는 노력을 해주길 바란다.

프레시안 : 앞으로 정국 전개가 중요하겠지만, 노 전 대통령이 그랬듯이, 정치인이 성공하려면 권력 의지가 어느 정도 크냐가 중요한 문제다. 두 사람을 보면 그런 부분이 좀 부족한 것도 같다.

천호선 : 지금 이런 정국이 되면서 '누가 다음 지도자 될 수 있을까'라는 국민의 관심이 있다. 지도자가 정치에서 꼭 필요하지만, 지도자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지도자 개인을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정치인 노무현'의 뜻에도 맞지 않다. 당신이 계속 꿈꾸고 이루려고 했던 것은,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긍정적으로 지켜보고 공감한 것처럼,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사고를 가진 정치세력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방금 언급한 분들은 지금도 훌륭하지만, 바로 이런 것들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더 큰일을 통해 훌륭한 지도자로 거듭나실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 게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게 아니겠나

 

/윤태곤 기자,박세열 기자,여정민 기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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