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09-06-12 오후 07:56:43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60196.html
[특별기고] “대통령님, 국민을 때리지 마십시오”
» 수경 스님 / 화계사 주지
천릿길을 기었습니다. 지리산 하악단에서 계룡산 중악단을 거쳐 임진각까지, 124일 동안 오체투지로 생명의 어머니인 대지의 품에 안겼습니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고자 했습니다. 참으로 많은 분들이 길동무를 해 주었습니다. 그 순수하고 뜨거운 연대의 걸음에 대한 고마움을 다 표현하자면 지구를 한 바퀴 오체투지로 돈다고 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소박한 일상의 차원에서든 구경의 차원에서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아름답지 못합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전지구적으로는 인간의 ‘오만’이, 우리 사회에서는 ‘탐욕’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이 시점에 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시름이 깊습니다. 원인 제공자인 현 정부는 아랑곳 않습니다. 어디 단단히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 국민의 ‘건망증과 탐욕’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억을 좀 되살려 보겠습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분수령이 된 1987년 6월10일은 ‘민주정의당’이 노태우를 간선제 대통령 후보로 지명한 날이었습니다. 불같이 일어난 국민들은 4·13 호헌조치 철폐와 군사독재 타도, 민주헌법 쟁취를 외쳤습니다. 소위 ‘절차적 민주주의’는 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와 땀의 대가로 우리 곁에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위기는 ‘모든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였습니다. ‘부자’라는 말에 ‘탐욕’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을 노예 부리듯 하는 데는 나름대로 확고한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젖줄인 강물을 콘크리트로 막아서라도 ‘돈’만 풀면, 모든 아이들에게 국제중, 특목고 보내 주겠다고 약속만 하면 결국은 나를 따를 것이라고 믿는 것이겠지요. 이것이 이명박 정권이 군사 독재 정권과 다른 점입니다. 그래서 아주 당당하게 ‘법치’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법’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바로 ‘인권’입니다. 모든 법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법치는 국민의 헌법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인에게 주어진 자유는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공권 폭력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질 자유밖에 없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전근대적 권위주의 리더쉽은 ‘경제 지상주의’에 갇혀 있습니다. ‘돈’을 모르는 국민은 바보로 보일 수밖에 없겠지요. 철권통치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께 되살려 드리고 싶은 기억은, 병적인 절대 권력 추구의 길을 걷다가 몰락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말로입니다. 아직 시간은 많습니다. 더 늦기 전에 이쯤에서 그쳐야 합니다.
인간의 행복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이웃과 더불어 세끼 걱정 않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 아니겠습니까. 진시황이 다시 살아 돌아와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단순한 진실 앞에서 솔직해져야 합니다. 그러면 길이 보입니다. 경제위기를 걱정할 게 아니라 사람다운 삶을 걱정해야 합니다. 강 살리기인가 대운하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생명이냐 반생명이냐를 따져야 합니다. 북핵 위기와 대북 정책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 전에 ‘평화 정착’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체투지를 통해 찾은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찾은 길은 새로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늘 열려 있었으나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탐욕’만 내려놓아도 ‘행복’이 보였습니다. 이것이 사람으로서 추구해야 할 생명과 평화의 길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께 간절히 바라는 바도 이것입니다.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이 길을 앞장서서 열어가 달라는 것입니다.
어렵게 얘기할 것 없이 소박 단순하게 말하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국민의 탐욕을 부추기지 마십시오. 때리지 마십시오. 모든 생명이 채찍을 두려워할진대 사람이라면 오죽하겠습니까. 미네르바를 구속하고, 촛불 시민을 강제로 잡아 가두고, 국민의 입을 틀어막는 방식으로 국민을 겁주지 마십시오. 우리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수경 스님 / 화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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