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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천주교 사제 1178명 시국선언 (오마이뉴스090615)

by 마리산인1324 2009. 6. 16.

 

 

 

 

 

"MB, 그 막중한 직무에서 깨끗이 물러나야"
용사참사 현장에서 시국미사... 천주교 사제 1178명 시국선언
09.06.15 23:18 ㅣ최종 업데이트 09.06.15 23:48 김환 (kimhwan)

  
15일 저녁 8시 30분 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 앞에서 열린 시국미사에는 200여 명의 신부들이 참여했다.
ⓒ 김환
시국선언

"이 사람아, 주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 (미가 6장 8절)

 

전국의 천주교 교구사제들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이명박 정부가 그동안 보여줬던 무리한 국정운영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 것이다.

 

"대화와 소통은 범법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천주교 교구사제들은 15일 저녁 8시 30분 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 앞에서 시국미사를 봉헌한 뒤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신부들의 수는 1178명이었고, 이 중 미사에 참여한 신부들은 200여 명이었다.

 

'한국천주교사제 1178인 일동' 명의로 발표한 시국선언문에서 이들은 이명박 정부의 반성을 촉구했다.

 

이들은 특히 "각종 이권과 특혜는 오로지 극소수 특권층에 집중시키고, 경제난국의 책임과 고통을 사회적 약자들의 어깨에만 얹음으로써 극구 공생공략의 생명원칙을 파괴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 묻고 싶다"며 "어렵사리 이룩한 민주주의의 성과와 평화통일로 가는 화해와 상생의 기조를 대수롭지 않게 파탄으로 몰고 가는 현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작년 백만의 촛불은 광화문의 컨테이너로 가로막았고, 올해는 오백만의 국화행렬을 서울광장의 차벽으로 둘러치면서 대화와 소통이라는 당연한 요구를 범법행위로 규정하고 있다"며 "이는 거듭 국민을 모독하는 불경이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어떤 유화 조처도 근본적인 치유는 될 수 없다"며 "대통령이 이토록 국민의 줄기찬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헌법준수 의무를 저버릴 바에야 차라리 그 막중한 직무에서 깨끗이 물어나야 옳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중대한 시련을 겪으면서 생명평화라는 새로운 가치에 활짝 눈을 뜨게 되었다"며 "청소년들이 민주주의의 근본을 지적했다는 점과 대중매체의 속임수를 깨닫게 된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수확이며 새로운 사회공동체를 위한 희망의 씨앗이다"고 말했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 흐르고 있으나 조금만 욕심을 덜어내고, 조금만 더 남을 배려하면 그 자체로도 세상은 환해지고 따뜻해질 것이다"고 전했다.

 

또한, 천주교 교구사제들은 같은 날 오후 3시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렸던 시국토론회를 통해 결정된 내용을 발표했다. 이들은 용산참사 유가족과 철거민들에게 ▲매주 전국 성당에서는 민주주의 회복과 생명평화를 위한 미사를 열 것 ▲전국의 모든 교우들이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해 추모하도록 할 것 ▲매주 각 교구를 순회하며 우리 사회의 화해와 상생을 요구하는 시국기도회를 개최할 것 등을 약속했다.

 

경건하게 진행된 시국미사... 전종훈 신부 "단식기도 이어 가겠다"

 

  
시국미사는 전종훈 신부 등 정의구현 사제단 대표 신부들이 공동으로 집전했다.
ⓒ 김환
시국선언

한편, 이날 시국미사는 전종훈 신부 등 정의구현 사제단 대표 신부들이 공동으로 집전했다. 제단에는 용산참사로 숨진 철거민 5명과 자살한 고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회장의 영정사진이 놓여졌다.

 

제단 앞으로는 용산참사 유가족과 철거민, 200여 명의 신부들, 300여 명의 시민들이 자리를 잡았다. 또 용산참사 유가족과 철거민들, 신부들은 한손에 촛불을 들고 미사에 참여했다. 몇몇 철거민들은 봉헌성가를 부를 때마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또한 이들은 천주교 미사에서는 듣기 힘든 노래 '헌법 1조'를 다함께 합창했다. 익명을 요구한 50대 남성은 "미사에서 이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게 안타깝다"며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않으니 문제가 많은 것이다"고 꼬집었다.

 

  
15일 저녁 8시 30분 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 앞에서 열린 시국미사.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제일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 김환
시국선언

용산참사로 숨진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는 "150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게 없다, (검찰은)이런 영광스러운 날에도 용산 동지 1명을 구속 시켰다"며 "검찰이 내놓지 않은 3000쪽을 반드시 받아서 사랑하는 동지를 석방시키고 사랑하는 남편 5명의 명예회복을 시키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전종훈 신부는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이 못된 정권에 강한 저항의 의미를 담아서 용산참사 현장에서 단식기도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용산참사 유가족과 철거민들은 "감사합니다, 신부님"이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이날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시국미사가 끝난 후 여러 신부들과 껴안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전문]한국천주교사제 1178인 시국선언문

"이 사람아, 주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미가 6장8절)

 

작년 여름 우리는 이웃 종교인들과 함께 공권력에 마구 짓밟혔던 광장의 민심을 어루만져주며 이제 촛불일랑 자신을 바로 세우는 성찰의 힘으로 삼자고 말씀드렸다. 그 후로 대부분의 시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갔고, 덕분에 대통령은 본분에 충실할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다음 벌어진 일들을 보면 국민의 기대는 물론이고 대통령 자신의 반성과 언약을 속이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각종 이권과 특혜는 오로지 극소수 특권층에 집중시키고, 경제난국의 책임과 고통으 사회적 약자들의 어깨에만 얹음으로써 극구 공생공락의 생명원칙을 파괴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 묻고 싶다. 고작 자기들만의 행복을 영영세세 누리자고 어렵사리 이룩한 민주주의의 성과와평화통일로 가는 화해와 상생의 기조를 대수롭지 않게 파탄으로 몰고 가는 현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추모민심에서 극명하게 나타났고 최근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이 담고 있는 충정어린 호소를 좌우의 이념갈등으로 격하시키는 모습에서 우리는 비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용산참사의 모든 책임을 희생자들에게 뒤집어씌우고 공권력의 절대적 정당성을 강변하는 몰염치는 바야흐로 벼랑 끝에 몰린 비정규직 등 서민대중을 장차 어떻게 대할 것인지 예고하고 있다. 난국을 타개할 지혜는커녕 용서를 구하는 최소의 겸덕조차 갖추지 못한 권력인지라 그저 미디어 악법으로 여론에 재갈을 물리고, 인터넷과 광장이라는 공론의 장을 봉쇄하면서 국민의 저항을 공포정치로 다스릴 징후가 역력하다. 아울러 경찰과 검찰 그리고 보수언론들이 나서서 빈자들과 저항과 개혁세력의 주장을 거칠게 제압할 기세다. 이런 점에서 자신과 이웃의 생존권을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현명과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해졌고 양식을 갖춘 시민들 특히 종교인들의각성과 분발이 요청되는 국면이 닥쳤다.

 

이명박 정부는 작년 백만의 촛불을 광화문의 컨테이너로 가로막았고, 올해는 오백만의 국화행렬을 서울광장의 차벽으로 둘러치면서 대화와 소통이라는 당연한 요구를 범법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거듭 국민을 모독하는 불경이다. 최근 대통령의 사과나 내각의 총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대통령은 일찌감치 말의 진정성을 잃어버렸고, 실용정부의 배후라 할 기득권 세력의 양보와 반성이 없는 한 그 어떤 유화 조처도 근본적인 치유가 될 수 없다. 대통령이 이토록 국민의 줄기찬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헌법준수 의무를 저버릴 바에야 차라리 그 막중한 직무에서 깨끗이 물러나야 옳다는 것이 우리 사제들의 입장이다.

 

이제 국민이 해야할 것은 대통령을 향한 애달픈 호소가 아니라 진짜 국가공동체를 차분하고 냉정하게 준비하는 일이다. 공적인 것(Res publica)은 바로 국민의 것(Res populi)이라는 대원칙을 성립시키는 나라를 꿈꾸며 토론하고 기도해야 할 때다. 천만다행으로 우리는 대운하, 광우병소고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등 중대한 시련을 겪으면서 경쟁과 욕망을 예찬하던 삶의 방식을 깊이 성찰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생명평화라는 새로운 가치에 활짝 눈을 뜨게 되었다. 특히 청소년들이 민주주의의 근본을 지적했다는 점과 대중매체의 속임수를 깨닫게 된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수확이며 새로운 사회공동체를 위한 희망의 씨앗이라고 하겠다.

 

경인운하와 4대강사업으로 인한 자연파괴와 신문방송법 등 소위 엠비악법, 북핵문제, 자본권력에 대한 사법부의 굴욕 등 오늘의 암울한 현실 이면에는 긍정과 희망의 청신호들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슬프고 힘들었던 과거의 저항에서 벗어나 작년 촛불광장의 사례처럼 밝고 환한 마음으로 맞서야 한다.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욕심을 덜어내고, 조금만 더 남을 배려하면 그 자체로도 세상은 환해지고 따뜻해질 것이다. 이런 착한 마음으로 서로 도와가며 오늘의 어려움을 이겨내자.

 

마지막으로 우리 사제들부터 자기 본분에 철저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자기도 모르게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더욱 멀어졌고 우리는 세상과 동고동락하기를 꺼렸다. 이제 우리는 우리 산하를 덮친 모든 재앙과 파국에 사제들의 책임도 크다는 점을 통감하며 이 땅에 화해와 일치의 강물이 넘치도록 복음을 전하는 일에 신명을 다 바칠 것을 삼가 서원한다.

 

2009년 6월 15일

6·15선언 9주년에

한국천주교사제 1178인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