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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09-02-01 오후 06:55:47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336206.html

 

‘사람과 자연’ 새살 돋은 무주 ‘공공건축’
면장실 대신 목욕탕·땡볕 관중석에 등나무·면사무소 앞 천문대…
한겨레 김소민 기자  신소영 기자
» 건축가 정기용씨가 설계한 전북 무주군 부남면 천문대. 무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공공건축이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전라북도 무주에서 그 답을 찾아볼 만하다. 건축가 정기용(65·기용건축 대표·성균관대 석좌교수)씨는 당시 김세웅 무주군수와 손잡고 1996년부터 10년 동안 면사무소, 박물관, 버스정류장 등 30여개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무주에서 벌였다. 정씨가 허병선 목사의 부탁으로 안성면 진도리에 마을회관을 짓게 된 걸 계기로 김 전 군수가 면사무소 리모델링 등을 제안했다. 자치단체장과 건축가의 ‘무모한’ 뚝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사업이었다. 최근 그 성과를 글로 집대성한 <감응의 건축>이라는 두툼한 책을 펴낸 정씨와 함께 지난 20일 그 ‘무한도전’의 현장을 찾아갔다. 정씨는 “공공디자인은 삶을 조직하는 과정”이라며 “우리는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주민들이 원하는 건 뭔가에 대한 답을 먼저 찾아야 형태가 따라온다”고 말했다.

 

건축가 정기용씨·군수 의기투합
10년동안 30여개 건물 리모델링
권위 걷어내고 주민들 요구 담아
자부심 상처난 농촌마을에 ‘생기’

 

■ 시대를 반영하는 건축

7~8년 전 정씨가 부남면을 찾아갔을 때 마을 위로 별이 쏟아졌다. 그는 뻐드렁니처럼 어긋나고 서로 떨어져 있던 면사무소 건물과 보건소 중간에 별을 볼 수 있도록 작은 천문대를 만들었다. 그는 “농촌은 항상 개량의 대상으로 무시당하고 고유의 미적 감각과 정체성을 박탈당해 왔다”며 “그들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북돋는 건축물을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천문대는 농촌마을 부남면이 ‘하늘의 질서에 맞닿은 청정한 마을’이라는 정체성을 키우기 위한 씨앗이었다. 지난 7년 동안 그 씨앗은 잘 자라 천문대 관광객 수도 연간 2천여명에서 요즘은 4천명으로 뛰었다. 6년째 이곳 별지기인 유수상(36)씨는 “원래 소외된 지역이었는데 별 보는 마을로 인지도가 높아졌다”며 “사람들이 찾아오니 주변 상가들이 물건 하나라도 더 팔아 활력이 돈다”고 말했다.

 

정씨는 ‘시대를 생각한 건물’로 무주 추모의 집을 꼽는다. 납골당에 무슨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는 걸까? 그는 “제주 4·3 등으로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아무도 그 죽음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았고 그 죽음들은 잊혀가고 있다”며 “죽음을 잊은 사람들은 오로지 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기억할 줄 아는 삶’을 바라며 무주에 세상에서 가장 밝은 납골당을 짓기로 했다. 건물 가운데 소나무를 심고 천장을 뺑 둘러 햇볕이 들어올 수 있도록 창을 냈다. 건물의 외관은 땅의 경사를 살리고 주변 인삼밭을 닮게 만들었다. 청소년 문화의 집, 복지시설, 노인요양원에도 공을 들였다. 그는 “도시인들을 돌아오게 하는 매력적인 장소로서 무주의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무주읍의 공설운동장.

■ 주민과 땅이 말하는 답

안성면 주민자치센터에는 면장실 대신 목욕탕이 있다. 처음에 정씨가 뭐가 필요하냐고 물으니 주민들이 “목욕탕”이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목욕탕 규모는 크지 않아 남녀 격일로 운영하는데 하루에 100여명씩 들른다. 이날 목욕을 하던 박순례(69) 할머니는 “이제 다른 동네에서 찾아온다”며 “2주에 한번 오는데 무척 편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정씨는 “일본 강점기부터 면사무소는 권위의 장소였는데 주민의 집으로 바꾸려 했다”고 말했다. 목욕탕에 온 김에 치과도 들르라고 보건소가 이어져 있고 2층에는 청소년들이 컴퓨터를 하면서 놀 수 있는 공간과 예식장을 만들었다.

 

원래 자동차가 차지했던 무주군청 뒷마당도 사람들에게 돌려주려고 주차장을 지하로 넣고 그 위에 잔디를 깔았다. 김상선 무주군청 홍보계장은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공을 차고 봄이 오면 직원들이 나와서 점심을 먹는다”며 “이곳에서 작은 공연도 열린다”고 말했다. 군청의 권위를 드러내던 앞면을 바꾸고 담과 내부 칸막이도 없앴다.

 

정씨가 고집스럽게 무주군 건축물에 새겨넣은 개념은 이곳 주인이 사람과 식물이라는 것이다. 공설운동장은 행사 때마다 텅 비기 일쑤였는데 김 전 군수가 그 이유를 주민에게 물으니 “군수만 본부석에서 햇볕 피하고 우리는 땡볕에 서 있으라고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관중석에 등나무를 심었고 정씨는 이 나무들이 잘 자라도록 줄기 크기에 맞추되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지지대를 만들었다. 봄이면 등꽃이 흐드러지는데 주민들은 그 꽃 덩굴 아래서 영화도 본다. 정씨는 “농촌의 건축은 원래 자연의 한 부분으로 되바라지지 않은 것이 특징”이라며 “옛것과 똑같을 필요는 없지만 그런 정신은 이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가 건물마다 담쟁이를 심어 타고 올라가도록 한 까닭이다.

 

무주/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기적의 도서관’ 설계한 ‘건축계 공익요원’

 

» 정기용(사진)
정기용(사진) 건축가에게는 별명이 여럿 있다. 사람과 땅의 의견을 듣는 ‘감응의 건축가’이자 공공건축의 대가여서 ‘건축계의 공익요원’이다. 그는 삶을 조직하는 건축의 기능을 강조하며 “건축가는 자연과 주민, 사회에 답하는 조절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공공건축의 대가’로서 그를 대중에 알린 것은 <문화방송> 등이 기획한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에서 순천·진해·서귀포 등의 어린이 도서관 설계다. 응용미술을 전공한 그는 프랑스 유학을 떠나 건축으로 전공을 바꿨고 1986년 돌아왔다. 문화연대 공동대표를 지냈고 문화재위원회 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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