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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노무현

[스크랩] [딴지일보] 노대통령 49재 안장식 현장취재

by 마리산인1324 2009. 7. 11.

[봉하 49재] 서 버린 수레바퀴, 한 바보가 밀고 갔네

2009.7.10.금요일

어제 오후 봉하마을과 정토원을 갔다 오고 오늘 아침 다시 안장식을 가면서, 솔직히 조금 걱정이 앞섰다.

사실 어제의 봉하마을은 좀 썰렁했었다. 지난 번 인산인해를 이루어 걷기도 힘들던 마을 진입로는 택시로 분향소 앞까지 들어올 수 있을 만큼 한산했고, 마을회관 앞 공연장 앞에 모인 사람도 불과 백여 명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몇 시간 후면 사라질 분향소는 전에 봤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참배객이 거의 없어서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정토원에서 내려오자마자 쏟아지기 시작한 장대비.

전에 여기까지 왔던 사람들이야 내일이 49재라는 걸 기억은 하겠지. 하지만 과연 평일인 금요일 낮 12시에, 이 날씨에, 이 먼 곳까지 다시 와 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지난 번에 왔으면 됐지...

이런 잡념들 속에서 봉하마을 입구에 도착한 것은 예정된 행사보다 조금 이른 10시 반 경이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아침부터 쏟아지는 뙤약볕 아래 모여드는 사람, 사람들의 행렬.

그럼 그렇지. 의리로 살고 의리로 죽은 노무현을 그렇게 의리 없이 보낼 리는 없지.

아침 9시부터 유가족만이 참석한 정토원에서의 49재가 치러지는 동안, 마을 광장에서는 공연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권해효의 얼굴이 보인다. 좀 걱정이다. 가수들은 음반이나 팔고 공연이나 하지만 배우는 티비에서 불러줘야 먹고 사는 사람인데, 이 양반 이렇게 자꾸 나오면 방송국 윗사람들한테 찍힐 텐데.

에휴. 본인이 알아서 더 큰 마음으로 살겠다는데, 괜한 걱정은.

공연에는 오랜만에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언제적 정태춘 박은옥이냐. 내가 대학교 때 초에도 이미 두 사람의 이름은 서로 붙어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어 억울한 자리, 맘 아픈 자리, 한 맺힌 자리에서 함께 하곤 했다. 이제 오늘 여기서 이 분들 노래를 다시 듣는구나.

이 곳에 참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 무대가 대통령 노무현의 유골을 안장하는 자리라는 이 가당찮은 비현실감만은 그들의 노래로도 지워지지는 않는다.

손발이 뒤틀리고 못난 얼굴을 했지만 소박하고 진실된 탈바가지의 모습. 어딘가 바보 노무현을 연상시킨다. 웃음이 아닌 눈물을 끌어낸 그 모습과 동작들. 바보의 진심도 잘 모른 채 그저 바보라고 놀려대고, 그래서 그 바보는 떠나갔구나.

이 자리에서는 모두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미안함 속에서나마 크게들 박수를 친다. 그저 반가워서.

이제 공연은 끝나고 안장식장 쪽으로 향한다. 일반인에게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 구역이다. 공식적인 언론사도 아닌 데다가 외견상으로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 아마 지역 구인신문보다도 못한 본지 취재진의 위용. 당근 초대장도 없고 빽도 없다. 우리의 취재는 이렇게 폴리스 라인 바깥에서 끝나야 하는 걸까.

허나 이제 진정한 일보로 자리매김한 본지, 기동성과 현장성에서 커다란 약점을 노출하던 과거의 우리가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출입증을 구해 식장에서도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 유가족들이 앉은 바로 뒤쪽까지 진출한다. 아마도 행사 공식 중계팀을 제외하면 거의 최고의 자리일 것이다.

솔직히 인정하마. 옛날에는 귀찮고 뽀대 안 나서 이런 짓 안 했다. 방구석에 앉아 천리를 내다 본다며 머든지 글빨로 다 뭉개버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젠 이렇게까지 설친다.

머 현장 모습이야 티비 보면 다 나오겠지만 우린 우리 나름대로의 접근과 해석을 하고 싶었다. 더 이상 남이 찍은 사진을 보면서가 아니라, 직접 우리 스스로 현장에서 딴지 독자들이 보고 싶어할 사진들을 찍으며 말이다. 물론 노무현이 우릴 이렇게 만든 거다. 젠장.

추모영상이 상영된다. 비슷한 영상들을 봉하마을에서만 여러 차례 봤지만, 볼 때마다 반갑다, 저런 이가 우리 대통령이었는데, 우리는 그게 고마운 일인줄 몰랐다.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외에 지금 이 순간 무슨 다른 할 말이 더 있으랴.

 

본지 취재진 건너편 쪽에 낯익은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다. 김근태와 강기갑 등 유명 정치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지만, 가장 슬퍼 보이는, 또 피로해 보이는 이들은 역시 유시민과 안희정이다. 정치적, 역사적인 무게뿐 아니라 개인적인 짐까지 떠 안고 있는 이들이니.

이들의 거취에 대해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다시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뛰어들 것인가? 아니면 슬픔과 절망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 가거나, '현실을 깨닫고' 하고 많은 정치인들 중 하나가 되어가 버릴 건가. 시간이 말해 줄 거나.

사회를 보는 문성근은 나름대로 표정 관리를 해야 할 입장이지만 심신이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머리 속에는 어떤 생각이 스칠까. 나는 왠지 돌아간 부친 문익환 목사가 떠올랐다. 노무현은 현실 정치에서 바로 그런 이상을 실현해 보고자 했던 이였기에.

그래서 문성근은 노무현을 따랐던 걸까.

문재인 이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돌부처다. 서거 첫날부터 시작해서 한 순간도 흔들림이라곤 없다. 슬픔과 고통이 이렇게 얼굴에 드러나지 않은 사람을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무척이나 감성적이라고 할 노무현과는 너무나 다른 이. 그 다름 속에서의 서로에 대한 흔들리지 않은 신뢰. 다름이 낯섦이 아닌 믿음과 존중으로 커온 관계.

하지만 나는 그가 정치에 뛰어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도 정치하지 않겠다는 이를 반강제로 끌어들여야만 할 정도로 남은 우리는 약한 건가. 이런 일을 겪고 다시 그를 모진 운명 속에 새롭게 밀어 넣을 건가. 우리 대신 또 목숨을 내 놓으라고 할 건가.

이제 유골함을 넣고 흙을 덮는다. 가족을 떠나 보낸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화장터에 문이 닫히는 순간과 무덤에 흙을 덮는 순간이 가장 힘들다는 것을 안다. 대통령 노무현은 이 둘을 다 겪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의 문이 닫히고 마음 속의 그에게 흙을 덮는 일만은 허락해서는 안 된다.

볼 때마다 위태로운 유가족들. 그 중에도 권양숙 여사가 가장 걱정이다. 장담하건대, 우리가 아무리 힘들다 해도 권여사의 발치도 따라갈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후회하고 죄책감 속에 통곡한다 한들 그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어떤 명목으로도, 여하한 경우에도 권여사를 더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 그건 고인을 다시 욕 보이는 거나 마찬가지다.

비석은 크레인으로 유골 위로 옮겨진다. 이런 노동을 지휘하는 이는 명계남이다.

내가 이번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통틀어 가장 안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그다. 남들처럼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앉아 화면빨이라도 받고 눈물 흘리는 감동적인 광경 하나 세상에 남기지 못한 채, 구석쟁이에서 혼자 눈물을 닦으며 마당쇠처럼 궂은 일들을 하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아무런 사심이나 계산 없이 인간적으로 노무현을 가장 좋아하고, 그가 죽은 후 가장 깊이 슬퍼하고 좌절한 사람은 아마도 그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공자에게 자로가 있었다면 노무현에게는 명계남이 있었던 걸까.

그래서, 이렇게 구석에서 눈물짓는 뒷모습을 조용히 찍었다. 이게 나서기 싫어하는 그가 이 자리에서 남기고 싶은 모습일 것 같아서.

봉분을 닮은 비석은 이제 유골 위에 묵직하니 자리를 잡는다. 노무현은 영원히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49일간의 아쉬움도 이제는 접어야 한다.

꿈이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자기가 태어나고 죽은 곳 바로 옆의 작은 터에 자리를 잡고 영면에 들어간다. 63년간의 긴 여행, 수많은 희망과 절망들 속에서 떠나고 돌아온 이곳 봉화산 기슭에.

안녕 노무현.

 


... 여기서 글을 마쳐야 간지가 나겠지만, 그래도 하나 더 덧붙일란다. 안장식이 끝나고 뙤약볕에 파김치가 된 몸을 끌고 봉하마을을 나오다가, 진입로 돌 경계석에 그려진 작은 벽화들을 발견했다.

사실 더 멋진 그림들도 많았는데 나는 유독 위의 것이 좋았다.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로(그저 바삐 살아가는 걸까 아니면 봉하마을로 가는 걸까) 아무 생각 없는 순진한 오리들이 같이 걸어간다.

그린 이는 아마도 오리농법을 표현한 거겠지만, 내 눈에는 이 오리들이 노무현으로 보였다. 무척이나 어린애 같던 사람, 죽고도 어느새 작은 희망으로 돌아와서 얼굴 없고 무심한 사람들 다리 사이에서 살짝살짝 채여가며 걸어 간다. 때론 앞을 보고, 때론 옆을 보며, 그렇게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를 알게 모르게 같이 걸어 가는 거다.

그렇지... 서 버린 수레 바퀴, 한 바보가 밀고 가네. 여전히.

* 취재에 많은 도움을 준 전 딴지스 이승철님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사진 : 신짱 (woolala74@gmail.com)
글 : 파토 (patoworld@gmail.com)
     트위터 : patoworld
 

출처 : 노공이산을 기리는 사람들
글쓴이 : 솔뫼농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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