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국무장관의 말실수로 드러난 비밀
2010년 5월 26일 힐러리 클린턴(Hillary R. Clinton) 국무장관이 서울 도렴동에 자리잡은 외교통상부 청사 3층에 있는 국제회의장에 들어섰다. 중국 베이징에서 미중 경제전략대화를 마치자마자, 전용기편으로 당일 오전 11시 40분에 서울공항에 내린 그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이명박 대통령을 차례로 만난 뒤 오후 3시 45분에 서울을 떠났다. 불과 네 시간밖에 되지 않은 체류일정을 마감하면서, 그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런데 공동기자회견에서 클린턴 국무장관이 꺼내놓은 발언이 눈길을 끌었다. “천안함 조사결과에 대해 중국이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기자의 말을 듣고, 클린턴 국무장관은 “보고서는 400페이지 분량으로 굉장히 철저하고 전문적인 보고서였다.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의견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측에 그 보고서를 검토하라고 촉구했고, 추가적인 정보와 브리핑이 필요하다면 제공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전에도 이따금 말실수를 하여 구설수에 올랐던 클린턴 국무장관은, 그 날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을 얼떨결에 공개하는 말실수를 하였다. 천안함 사고에 관한 400쪽짜리 보고서가 있다는 비밀사항이 그의 발언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그가 얼떨결에 말해버린 비밀보고서는 무엇일까? <동아일보> 2010년 6월 12일부 보도에 따르면, <동아일보> 기자가 국방부와 외교통상부에 각각 문의하였는데, 그들은 400쪽짜리 보고서를 만든 적이 없다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김태영 국방장관도 6월 11일 국회 천안함 특위에서 400쪽짜리 보고서를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400쪽짜리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면, 그 보고서는 누가 작성하였을까? 두말할 필요 없이, 미국이 작성한 것이다. 워싱턴에서 천안함 사고의 수습과 대응을 주도한 쪽은 국무부가 아니라 국방부이므로, 400쪽짜리 비밀보고서는 미국 국방부가 작성한 것이다.
클린턴 국무장관이 베이징 방문 중에 중국 정부 고위관리들에게 그 보고서를 검토해보라고 권하였다고 공동기자회견에서 말한 것을 보면, 그 자신이 이미 그 보고서를 받아보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s) 국방장관은 그 보고서를 클린턴 국무장관에게만 보낸 것이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에게 먼저 보냈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고위관리들도 회람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중국 정부 고위관리들을 만난 클린턴 국무장관이 400쪽짜리 보고서를 검토해보라고 그들에게 권했노라고 공동기자회견에서 밝힌 것 역시 그의 말실수였다. 그는 자기가 그 보고서를 받아보았으므로, 중국 정부 고위관리들도 그 보고서를 받아볼 것으로 착각하였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미국 국방부가 작성하고 미국 국방장관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한 비밀보고서를 다른 나라 고위관리들에게 검토해보라고 권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미국 국방부가 작성한 비밀보고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안에서만 회람된다.
그렇다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회람된 비밀보고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클린턴 국무장관이 얼떨결에 말실수를 하였으나, 중국 정부 고위관리들에게 그 보고서를 검토해보라고 권한 것을 보면, 그 보고서는 천안함이 인민군 어뢰공격으로 침몰하였다는 내용으로 작성된 것이 분명하다. 만일 그런 내용이 아니라면,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 정부 고위관리들에게 검토해보라고 권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클린턴 국무장관은 그 보고서를 “전문적인 보고서”라고 평하였다. 전문가들이 집필한 보고서인 것이다. 전함 침몰사고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는 문외한은 그처럼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쓸 수 없으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문외한이 쓴 문서를 회람할 만큼 한가한 곳도 아니다.
천안함 사고 조사활동을 주도한 미국 조사단만이 400쪽짜리 비밀보고서를 쓸 수 있다. 만일 미국 조사단이 조사활동을 주도하지 않고 단순히 남측 합동조사단의 조사활동을 지원이나 해주었다면, 그들은 그처럼 방대한 분량의 비밀보고서를 쓸 수도 없고, 써야할 요구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남측 합동조사단은 그처럼 방대한 보고서를 쓰지 못하였는데, 미국 조사단이 그처럼 방대한 비밀보고서를 쓴 것은, 미국 조사단의 조사활동이 남측 합동조사단의 조사활동을 압도하였음을 말해준다. 남측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보고서는 미국 조사단의 비밀보고서를 줄여놓은 축약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언론매체들은 남측 합동조사단이 조사활동을 주도하고, 미국 조사단은 이명박 정부의 요청을 받고 조사활동에 단순 참여하여 지원한 것처럼 오보하였다.
<연합뉴스> 2010년 4월 8일부 보도에 따르면, 월터 샤프(Walter L. Sharp) 주한미국군사령관은 2010년 4월 7일 워싱턴에서 로벗 게이츠 국방장관, 개리 럭헤드(Gary Roughead) 해군참모총장을 만나 미국 조사단을 남측에 파견하는 문제를 “최종 협의”하였다고 한다. 최종적으로 협의하였다는 표현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승안한 조사단 파견안에 제기된 몇 가지 실무적인 문제를 마지막으로 점검하였다는 뜻이다.
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직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게이츠 국방장관이 제출한 미국 조사단 파견안을 일찌감치 승인한 바 있다. 그런 까닭에, 2010년 4월 5일 한국군 고위급 지휘관과 주한미국군 고위급 지휘관 14명이 한국군 국방부 청사 7층에 있는 합참본부 회의실에서 진행한 “천안함 사고대책 한미 군수뇌부 협조회의”에서 월터 샤프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이미 워싱턴에 이 사항을 건의하여 승인을 받았고, 미국의 최고 전문가팀을 파견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가 미국에게 조사단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하기 전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먼저 조사단 파견을 결정하였으나, 외부의 눈을 의식해서 이명박 정부의 요청을 받고 파견하는 식으로 모양새를 갖추었던 것뿐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승인을 받은 게이츠 국방장관은 미국 조사단을 급히 편성하여 남측에 파견하였고, 미국 조사단은 2010년 4월 16일 경기도 평택에 있는 한국군 2함대사령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조사단을 지휘한 해군 소장의 정체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이 말해주는 것처럼,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백령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사고가 미국 잠수함이 천안함을 들이받은 충돌사고였다면, 미국 국방부가 진정으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 대상은 미국 잠수함과 충돌한 천안함이 아니라 천안함과 충돌한 미국 잠수함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시각으로 보면, 천안함은 다른 나라 초계함이고 천안함을 들이받은 잠수함은 자국 잠수함이다. 따라서 미국 국방부는 다른 나라 초계함의 충돌사고를 조사하는 것보다 자국 잠수함 충돌사고를 조사하는 것을 훨씬 더 중시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게이츠 국방장관이 천안함과 충돌한 미국 잠수함에 대한 비밀보고서를 만들라는 명령을 미국 조사단에게 내렸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미국 조사단이 집필하고, 게이츠 국방장관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한 천안함 충돌사고에 대한 400쪽짜리 비밀보고서가 있지만, 미국 조사단이 그 보고서 이외에 미국 잠수함 충돌사고에 대한 별도의 비밀보고서도 집필하였을 것으로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 국방부는 당연히 자국 잠수함의 충돌사고를 조사할 잠수함 전문가를 미국 조사단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미국 조사단 성원 15명 가운데 잠수함 전문가는 몇 명이었을까? 미국 조사단 성원의 경력이 언론에 공개되지 않아서, 그들 가운데 잠수함 전문가가 누구인지 알기 어렵지만, 게이츠 국방장관이 조사단 단장에 임명한 토머스 에클스(Thomas J. Eccles) 해군 소장의 특이한 경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뉴욕 타임스> 2010년 5월 10일부 보도에 따르면, 그는 “잠수함 탈함(脫艦) 및 구조(救助)의 전문가(expert in submarine escape and rescue)”라는 것이다. 그의 자세한 군 경력은 미국 해군 공식 웹싸이트에 나와있다. 그는 미국 매사츄세츠 공대(MIT), 미국 해군전쟁대학, 미국 방어체계관리대학 등에서 해군공학을 전공하였고, 잠수함 분야, 심해잠수 분야, 해난구조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고, 잠수함 연구와 건조 및 잠수함 탈함과 구조를 포괄하는 첨단수중체계(Advanced Undersea Systems) 담당관(program manager)으로 임명되어 씨울프급(Seawolf-class) 핵추진 잠수함 지미 카터호(USS Jimmy Carter) 건조사업을 직접 지휘하였으며, 무인자동잠수함 컷트롯(unmanned autonomous submarine Cutthroat)을 설계하고 건조하는 사업도 직접 지휘하였다. 현재 그는 해군 수중전 및 수중기술 사령부 부사령관이며, 해군수중전투센터(Naval Undersea Warfare Center) 지휘관이다.
그런데 만일 미국 국방부가 수상함 사고를 조사하려고 하였다면, 수상함 전문가와 해난사고 전문가에게 조사활동을 지휘하는 임무를 맡겼어야 정상이다. 그렇지 않고, 미국군 잠수함에 정통한 해군 소장을 조사단 단장으로 임명한 것은, 천안함이 미국 잠수함과의 충돌로 침몰하였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다른 한 편, <연합뉴스> 2010년 5월 17일부 보도는, “군의 한 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하면서, “한국과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전문가들이 합류한 합조단의 정보, 작전분석팀은 천안함을 향해 어뢰를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잠수함(정) 침투경로와 이동정황, 천안함 침몰 전후 북한군 통신감청 내용 등을 집중 분석 중”이라고 하였다. 또한 <조선일보> 2010년 5월 21일부 보도에 따르면, 합동조사단 관계자는 “미군의 경우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정보, 첩보를 다 전달해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이 두 가지 보도기사를 보면, 조사단이 천안함 사고원인을 인민군 어뢰공격이라고 규정한 뒤에, 그 규정을 뒷받침하는 인민군 잠수함에 관한 군사정보를 분석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인민군 잠수함에 관한 군사정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쪽은 미국이므로, 미국 국방부가 천안함 사고원인을 인민군 어뢰공격으로 꿰어맞추려면 인민군 잠수함에 관한 군사정보를 다루는 정보분석 요원을 당연히 조사단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미국 조사단 성원들 가운데 인민군 잠수함에 관한 군사정보를 다루는 정보분석 요원은 누구였을까?
미국 조사단에 망라된 정보분석 요원들이 누구였는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쌔뮤얼 콕스(Samuel J. Cox) 해군 소장이 미국 조사단에 들어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그는 해군 정보분석 전문가다. 2010년 4월 29일 해군 소장으로 승진한 그의 경력을 보면, 미국 해군 통신전사령부(Naval Network Warfare Command)의 함대정보 담당국장(director of Fleet Intelligence) 및 기획정책국장(director of Plans and Policy)을 지냈고, 현재는 워싱턴에 있는 국가해양정보센터 국장(director of National Maritime Intelligence Center)이다.
미국 조사단 편성계획은 왜 바뀌었을까?
미국 국방부는 미국 조사단을 당초 8명으로 구성하겠다고 하였다가 얼마 뒤에 15명으로 늘렸다. <연합뉴스> 2010년 4월 8일부 보도는 미국 국방부가 “장성급을 단장으로 해군안전센터 2명, 함정구조분야 5명 등 8명의 해난사고 정밀조사팀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보도하였는데, <조선일보> 2010년 5월 21일자 보도는 미국 조사단이 과학수사, 폭발유형 분석, 선체구조 관리, 정보분석 등 4개 분과로 나뉘어 조사활동을 벌였다고 하였다. 미국 조사단의 시각으로 보면, 과학수사는 범죄사실을 조사하는 것이고, 폭발유형 분석은 어뢰폭발을 조사하는 것이고, 정보분석은 인민군 잠수함에 대한 군사정보를 조사하는 것이다. 미국 조사단 편성계획이 바뀐 것은, 미국 국방부가 해난사고 조사단을 파견하려던 당초 계획을 바꿔 과학수사요원, 폭발유형 분석요원, 정보분석요원으로 보강, 확대된 어뢰폭발 조사단을 파견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 국방부가 조사단을 편성하고 있었던 2010년 3월 말에 그들은 이미 천안함이 충돌사고가 아니라 어뢰공격으로 침몰하였다고 단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4월 7일 남측 합동조사단이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4월 15일 천안함 함미를 인양하기 전에, 그리고 미국 조사단을 남측에 파견하기 전에 미국 국방부는 천안함 사고원인을 어뢰공격으로 일찌감치 단정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 국방부는 천안함 사고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한 것이 아니라, 천안함 사고원인을 인민군 어뢰공격으로 미리 단정해놓고, 조사활동을 어뢰폭발 각본에 꿰어맞추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 조사단은 사고원인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조사한 것이 아니라, 미국 국방부가 미리 짜놓은 각본에 억지로 꿰어맞춘 것이다.
미국 조사단은 경기도 평택 부근에 있는 미국군 기지 캠프 험프리즈(Camp Humphreys)에 머물렀다. 미국 조사단이 그 곳에 활동거점을 차린 까닭은, 남측 합동조사단이 활동거점을 차린 한국군 2함대사령부와 가까운 곳에 머물면서 사고현장에서 수거된 잔해와 파편을 손쉽게 조사할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오산에 있는 미국 공군기지와 가까운 곳에 머물면서 미국 잠수함 파편을 비롯한 결정적인 물증이 발견하는 즉시 미국으로 공수하기 편하였기 때문이며, 또한 그 미국군 기지에 대형 헬기장이 있어 천안함 사고현장을 군용헬기로 쉽게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백령도 앞바다 사고현장에서는 많은 파편들이 계속 수거되었다. 이명박 정부 핵심 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0년 5월 18일부 보도기사는, “국방부가 사고해역을 집중 수색한 결과, 어뢰로 보이는 상당수의 파편이 발견된 것으로 알고 있다. 마지막 날까지 파편이 계속 발견되고 있어 증거능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고현장에서 수거한 파편은 일단 캠프 험프리즈로 공수되어 미국 조사단의 1차 검사과정을 거쳐야 하였다. 수거한 파편들 가운데서 어느 것이 천안함 파편이고 어느 것이 미국 잠수함 파편인지 가려내는 것은 미국 조사단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조사단은 미국 잠수함 파편과 천안함 파편을 가려낸 뒤에, 천안함 파편만 골라내 한국군에게 넘겨주었다. 또한 미국 조사단은 미국 잠수함 파편들 가운데 정밀 분석이 요구되는 것은 미국으로 보냈다. <연합뉴스> 2010년 5월 10일부 보도에 따르면, “일부 증거물은 정밀 분석을 위해 미국으로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미국 조사단 성원의 위장발언
미국 조사단에 망라된 전문가들은 천안함 절단면을 정밀 조사하기 전에도 그 절단흔적이 비접촉 어뢰 폭발로 생긴 흔적이 아니라 잠수함이 들이받아 생긴 흔적임을 금방 알았을 것이다. 눈썰미 있는 비전문가가 봐도 천안함 절단면에 남아있는 흔적이 비접촉 어뢰 폭발로 생긴 흔적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데, 하물며 각종 군함의 선체구조와 폭발사고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험 많은 전문가가 어찌 그처럼 명백한 흔적을 금방 알아보지 못하였겠는가.
그런데 2010년 6월 15일 <통일뉴스>와 대담한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의 발언은 사정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신상철 대표가 미국 조사단 성원을 만나 천안함 사고에 관해 나눈 대화를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문답 식으로 다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신 대표 - “배가 가라앉으면 무게 때문에 앞 쪽이 먼저 내려가는데, 뒤쪽이 먼저 내려간 것도 아닌데 그렇게 찌그러지나?” 조사단 성원 - “앞이 쿵 박고 뒤가 쿵 떨어져서 부딪쳤다.” 신 대표 - “그렇다 치더라도 밑에는 모래 아니면 뻘인데, 그 정도로 손상이 나겠나?” 조사단 성원 - “아무튼 그 정도 났다.” 신 대표 - “그럼 어떻게 프로펠러 5개가 다 오그라들었나?” 조사단 성원 - “엔진이 돌았다.” 신 대표 - “배가 부서져서 엔진이 작살나서 올 스톱(완전 정지라는 뜻-옮긴이)됐는데 프로펠라가 왜 돌아갔나?” 조사단 성원 - “물 속에서 이렇게 돌아갔다.”
명백하게도, 위에 나온 미국 조사단 성원의 답변은 전문지식이 없는 문외한의 답변이다. 오죽 했으면, 신상철 대표가 “미국 대표단(조사단이라는 뜻-옮긴이)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런 초딩(초등학생이라는 뜻-옮긴이) 같은 소리를 하나” 하고 웃고 말았었다고 <통일뉴스> 기자에게 말했겠는가.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미국 조사단 성원이 그렇게 답변한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각종 군함에 관한 전문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를 늘어놓은 이상한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천안함 사고원인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가 사고원인으로 볼 수 없는 엉뚱한 답변을 늘어놓았다면, 그것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낸 것이 아니라 사고원인을 신상철 대표에게 말해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무지로 위장하였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위의 대화에서 드러난 미국 조사단 성원의 위장발언은, 그들이 사고원인을 인민군 어뢰공격으로 단정해놓고, 사고에서 발생한 모든 현상을 자기들이 단정한 사고원인에 억지로 꿰어맞추었음을 말해준다.
의견이 서로 어긋난 미국 조사단과 스웨덴 전문가들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조사는,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미국 조사단이 홀로 진행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스웨덴이 전문가 4명, 오스트레일리아가 전문가 3명, 영국이 전문가 2명을 각각 파견하였고 캐나다에서도 뒤늦게 전문가 3명을 파견하였다. 물론 미국 조사단 15명이 조사활동을 전적으로 주도하였고, 다른 외국 전문가 12명은 미국 조사단의 조사결과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식의 조언역할이나 하였다.
그렇다면, 사고원인을 인민군 어뢰공격으로 꿰어맞춘 미국 조사단의 결론에 대해 다른 외국 전문가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비전문가가 봐도 비접촉 어뢰폭발이 아닌데, 미국 조사단이 비접촉 어뢰폭발을 사고원인이라고 꿰어맞춰 놓았으니, 제 정신이 있는 외국 전문가라면 당연히 그런 식으로 꿰어맞춘 결론에 반대의견을 표명하였을 것이다.
외부와 차단된 미국군 기지 안에서 머문 미국 조사단과 다른 외국 전문가들이 사고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서로 어긋났는지를 외부에서 알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언론매체들이 외국 전문가들 가운데 현역 군인에게는 직접 연락할 수 없어도, 혹시 민간인 전문가에게 직접 연락한다 해도, 그들은 조사활동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외국 전문가들이 조사활동에 참가하기 전에 체결한 합의각서(MOA)가 있는데, 조사과정에서 알게 된 기밀을 외부에 밝히지 않는다는 조항이 그 합의각서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런 조항이 들어있는 합의각서가 체결되었다는 사실은 <연합뉴스> 2010년 4월 24일부 보도에서 밝혀졌다.
그런데 다행하게도, 미국 조사단과 다른 외국 전문가들이 사고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서로 어긋났었다는 사실이 미국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2010년 5월 19일 <워싱턴 포스트>는 “남코리아의 조사를 지원해준 나라들 가운데 스웨덴이 조사결과를 따르는 것을 가장 꺼렸으나, 증거가 축적되자 그들도 북코리아를 비난하는 데 동의하였다. 스웨덴 대사관 대변인은 이에 대한 논평을 거부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같은 날, 미국 텔레비전방송 CBS은 “조사를 지원한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는 모두 조사결과를 뒷받침해줄 준비가 되었다”고 하면서, “조사요원을 파견한 스웨덴만이 북코리아를 비난하기를 꺼리는 동반자(Only Sweden, which also sent investigators, is a reluctant partner in blaming the North Koreans)”라고 보도하였다.
합동조사단 박정이 공동단장은 2010년 5월 20일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조사결과를 발표할 때 어느 기자가 “외국 조사단 일부 요원은 최종 결과에 합의하지 않는다는 보도도 있는데 만장일치인가?”고 묻자, “오늘 발표된 모든 사실은 이번에 참석한 외국 조사단 모두가 완전하게 일치를 봤고 견해가 일치했다. 조사단이 구성되고 단계별로 조사활동을 진행하면서 모든 분과에서 외국 조사단이 동참해 공감대를 형성했고 마지막 결론에도 모두 공감하는 절차를 밟았다”고 답변하였다. 그러나 박정이 공동단장의 답변은 미국 언론의 보도내용과 큰 차이를 보인다.
친미동맹국인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가 파견한 전문가들은 미국 조사단이 사고원인을 인민군 어뢰공격으로 꿰어맞춘 조사결과를 인정하였으나, 중립국인 스웨덴에서 파견한 전문가들은 그 조사결과를 인정하기 꺼려하였다. 스웨덴 전문가들이 미국 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인정하기 꺼려했다는 언론보도는, 미국 조사단이 천안함 사고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워싱턴 포스트> 2010년 5월 19일부 보도기사는 스웨덴 전문가들이 미국 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인정하기 꺼려하다가, 증거가 축적되자 그 조사결과를 인정하였다고 하였다. 그 보도기사에 나온 증거 축적이란 말은 어뢰추진기 잔해가 나온 것을 뜻한다. 천안함 절단면에 어뢰폭발 흔적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스웨덴 전문가들에게 어뢰추진기 잔해의 갑작스러운 출현은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사고원인이 조작되었음을 직감할 때 일어나는 심리적 충격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스웨덴 전문가들이 미국 조사단의 조사결과에 결국 동의하였다고 썼지만, 막판에 과학적인 조사를 포기하는 심정에서 묵인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고진상을 담은 비밀보고서는 따로 있다
2010년 3월 26일 서해에서 한미연합함대가 실시한 대잠수함전 훈련을 ‘독수리(Foal Eagle) 훈련’이라 부른다. 그러나 미국 해군에서 쓰이는 정확한 개념으로 표현하면, 그 훈련은 ‘함선 대잠수함전 준비 및 평가 측정(Ship Anti-Submarine Warfare Readiness and Evaluation Measurement, SHAREM)’이라는 대잠수함전 연안작전연습이다. 훈련 목적은 해양정보 수집 능력과 수중전(undersea warfare)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7함대는 이 훈련을 해마다 두 차례씩 실시한다.
그렇다면 서해에서 ‘독수리 훈련’이 진행되는 시간에 한국군 지휘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놀랍게도, 이상의 합참의장은 지휘통제실을 지키면서 훈련상황을 보고 받지 않았고, 충청남도 대전에서 북서쪽으로 25km 떨어진 계룡산 기슭에 있는 계룡대에서 열린 한국군 내부 토론회에 참석하였다. <한겨레> 2010년 6월 11일부 보도에 따르면, 그는 토론회 뒤에 이어진 회식에서 술을 마시고 만취상태로 대전에서 고속철도(KTX)를 타고 서울로 돌아갔고, 밤 10시 42분께 국방부 지휘통제실에 도착해 10분 남짓 긴급회의에 참석한 뒤 지휘통제실에서 나가 잠에 골아떨어졌다고 한다.
한미연합함대를 동원한 군사훈련 중에 한국군 합참의장이 지휘통제실을 벗어나 계룡대 토론회에 참석한 것은, 그 군사훈련이 전적으로 미국군의 지휘통제에 따라 진행되었음을 말해준다. ‘독수리 훈련’을 지휘통제하지 못하는 한국군 합참의장은 미국군 현장 지휘관으로부터 ‘독수리 훈련’ 상황에 관한 보고를 받지 못한다. 미국군 현장 지휘관이 한국군 합참의장에게 ‘독수리 훈련’ 상황을 보고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독수리 훈련’의 보고체계는, 미국 해군 지휘함에 승선한 미국군 사령관→일본 요코스카 미국 해군기지 지휘통제실에 있는 7함대사령관→하와이 히컴기지 지휘통제실에 있는 태평양함대사령관→워싱턴 국방부 지휘통제실에 있는 미국군 합참의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독수리 훈련’을 한미합동군사훈련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마치 미국군이 한국군과 대등하게, 합동으로 실시하는 군사훈련인 것처럼 세상에 잘못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합동군사훈련이 아니라 7함대의 대북침공작전 연습에 한국군이 ‘곁다리’로 동원된다. 한국군 잠수함(최무선함)이 7함대의 반잠수함전 연안작전연습을 위해 이동표적물 노릇이나 해주고, 한국군 초계함(천안함)이 7함대의 반잠수함전 연안작전연습을 위해 대북해상경계나 서주는 식으로 동원되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그 훈련은 7함대가 기획준비하고, 지휘통제하는 미국군을 위한 대잠수함전 연안작전연습이다.
중요한 것은, 7함대가 지휘통제하는 대잠수함전 연안작전연습 현장에서 대형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미국 국방부가 그 사고에 대처하는 것은 응당한 일이다. 위에서 논한 대로, 그들의 대처활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하여 조사하는 일이다.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에 따르면,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에 백령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사고는 미국 잠수함이 천안함을 들이받은 충돌사고였으므로, 미국 국방부가 사고원인을 조사하였다면 천안함만 조사한 것이 아니라 천안함과 충돌한 미국 잠수함도 당연히 조사하였을 것이다. 더욱이 미국 잠수함에 대한 조사는 미국 조사단만이 극비로 진행하였을 것이며, 조사결과를 비밀보고서에 담았을 것이다. 미국 잠수함 충돌사고를 조사한 비밀보고서는, 클린턴 국무장관이 말실수로 언급한 비밀보고서와 다른 것이다. 천안함 사고원인을 인민군 어뢰공격으로 꿰어맞춘 400쪽짜리 비밀보고서를 허위보고서라 한다면, 미국 잠수함 충돌사고 진상을 객관적으로 조사한 비밀보고서는 진실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조사단이 집필한 진실보고서는 당연히 로벗 게이츠 국방장관과 마이클 멀린(Michael Mullen) 합참의장이 직접 받아보았을 텐데, 그 두 사람은 진실보고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하였을까? 미국군 수뇌부가 자기들에게 불리한 작전 중 대형사고를 수시로 은폐해온 뿌리 깊은 관행을 생각하면, 그 두 사람이 진실보고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하지 않고 은폐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외부와 차단된 채로 군사기밀을 유지하는 특수집단에서는 내부동향을 얼마든지 은폐할 수 있다.
미국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미국 잠수함 충돌사고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보고하지 않고, 천안함 사고원인을 인민군 어뢰공격이라고 규정한 미국 조사단의 허위보고서만 제출하였다면, 오바마 대통령은 허위보고서만 받아보고 진실보고서에 대해서는 그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오바마 대통령은 천안함이 인민군 어뢰공격으로 침몰하였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