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명학연구원> 2005/1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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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리더십의 관점에서 본 살림의 리더십
허라금 (이화여대 여성학과)
들어가는 말
이 글은 여성주의 관점에서 ‘리더십’을 어떻게 개념적으로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살림의 리더십 속에서 여성주의 리더십의 한 가지 구체적인 의미를 발굴해 보고자 한다. 글의 순서는 먼저, 최근 우리 사회에서 급증하고 있는 리더십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사회적인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 두 번째, 이런 현상 속에 중요한 대안적인 리더십으로 주목받고 있는 여성 리더십 연구의 현황을 간단히 소개한 다음, 이들 연구의 기본 개념이라 할 ‘여성 리더십’을 어떻게 개념적으로 명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끝으로, 생명의 가치를 중심으로 살아있는 것들을 돌보는 활동을 통해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여성 살림 리더들의 활동이 갖는 의미를 짚어 볼 것이다.
1. 왜 리더십인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리더십’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관심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치 영역에서는 카리스마를 갖고 지휘력을 발휘하는 권력형 리더십을 대신할 리더십을, 기업에서도 구성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것을 통해 최대의 이윤을 창출해내는 리더십 보다는 그 이상의 리더십을 요구받고 있다. 교육의 장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인적 자원부는 대학특성화사업을 통해 ‘리더십 교육’을 제도적으로 지원되고 있을 뿐 아니라, 각 가정에서는 심지어 학령 전 자녀의 리더십 함양을 위한 사교육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전 사회적으로 리더십이 주목받는 주제가 된 까닭은 무엇인가? 어느 시대건 사회 속에서 리더십은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 처럼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이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공유된 적이 드물다. 이런 최근 리더십에 대한 활발한 관심에 대해서는 일정한 설명이 필요할 정도이다.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들이 가능하겠지만, 한 가지, 그것은 한국의 정치적 변화와 관련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과거의 권위주의적 군사 정권이 민주 정권으로 대치되면서 전통적인 리더십을 대신할 새로운 리더십을 찾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기존의 언어나 논리로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알 수 없는 세대라는 뜻으로 이름 붙여진 ‘X 세대’를 거쳐,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세상을 만들고 있는 ‘N 세대’ 에 이르기까지, 공유된 절대 시간과 공간에 속해 있지 않는 젊은 세대들이 시민으로 또는 직장인으로 공적인 영역에 진입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종류의 리더십의 모색은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 이들 세대들이 정치적인 장에서 주체적인 힘을 발휘했던 2002년 대통령 선거는 개인이나 집단의 가치를 일사분란하게 오로지 사회 공동의 목표 아래 종속시켰던 과거와는 다른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사회로 진입했음을 깨닫게 한 계기이기도 했다. 이미 1997년 ‘IMF 사태’ 로 명명되는 국가적인 경제위기의 경험은, 국가가 개개인의 삶의 안전을 보장해줄 힘 있는 장치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국민들의 자각 역시 기존과는 다른 시민사회로 이행하게 만든 한 원인이라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생산해내고 있는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지향은 언론 기사로 전해지는 다양한 형용사를 달고 있는 리더십 명칭들 만큼이나 어지럽다. 지난 몇 개월 간 여러 언론 매체에서 다루어진 리더십 관련 기사들만도 그 수가 대단하며, 그 양만큼이나 많은 종류의 리더십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에 공통되는 점은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요청과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직적인 인간 관계 안에서 사고되었던 리더십은 파트너 관계 속에서 발휘되는 “수평적 리더십”으로, 일들을 지시하고 명령하는 역할로서의 리더십은 머리로 아는 것 뿐 아니라 손을 통해 실천하고 이것을 반복하고 지속적으로 습관화하는 “서번트 리더십”, “섬기는 리더십”으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갖춘 리더십, 즉, 구성원을 누구나 성장욕구와 잠재력을 지닌 존재 즉, 조직의 주체로 보고, 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잘 헤쳐 갈 수 있도록 코치하는 역할로서의 “코치형 리더십”, 등등, 모두 민주적이고 실천적인 리더십에 대한 지향을 나타낸다. 권위 보다는 동지애, 조직보다는 소부족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존하는 ‘유목민 리더십’ 역시 마찬가지이다. 중앙 집중적인 권력 체계에 의존했던 권위적주의적 ‘정착민 리더십’으로는 정치적 경제적 교류뿐만 아니라 인터넷 등을 통한 문화적 소통이 일상화된 빠른 변화 속도의 시대적 조건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영화 ‘안토이아스 라인’에서 보여주었던 “통합의 리더십”이 주목받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그렇지만 공통점보다는 다른 점이 훨씬 많은 이들이 삶의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보여 진 리더십은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리더십으로 지구적인 다원주의 사회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지배적 권력에 기반 한 권위주의적 리더십 대신 이해 당사자들과의 조율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만한 전문적 실력을 갖춘 ‘전문적 리더십’이 요청되기도 한다.
2. 여성리더십 연구 맥락
여성 리더십에 대한 연구 역시 이 같은 담론들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여성 리더십이 주목받는 까닭은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이상의 이유에서 찾아진다. 첫째, 변화를 모색 중인 사회적 조직이나 관계 패러다임에 적합한 리더십을,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조직과는 다른 인간관계 조직 속에서 발휘된 여성들의 리더십을 통해 찾을 수 있으리라는 사회적인 기대가 한 가지 이유이며, 둘째, 성차별적인 법, 제도들이 상당부분 제거되면서, 이제 여성들이 남성적인 조직과 문화에 진입해 살아남고 더 나아가 리더가 되기 위해 필요한 요건들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여성들 자신이 갖고 있는 관심과 필요가 또 한 이유이다. 물론 이 같은 관심은 우수한 여성 인력의 사회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국가적 관심사이기도 하다.
여성 리더십이 요구되는 맥락이 단일하지 않은 만큼, ‘여성 리더십’이 무엇인가를 단순 명료하게 정의 내리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에만 비추어 보더라도, 전자가 ‘여성적’인 특성에다 여성 리더십을 기초시키려 한다면, 후자는 여성에게 ‘여성적’일 것을 기대하는 젠더화된 맥락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함께 그것에 저항하거나, 또는 그것을 해체시킬 전략적 사고와 태도를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저항적, 전략적 사고와 행동이 반드시 ‘여성적’이지 않을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서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존 남성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상황도 있기 때문에, 전자와 후자의 리더십은 그 개념적 차원에서 상반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여성 리더십’은 그 안에 복합적이고 때로는 모순적이기까지 한 집합적인 의미를 내포한 개념이다.
개념적 복잡성은 명료화할 필요가 있다. 복합적인 의미들 간의 관계가 명료화되지 않는다면, 여성 리더십 연구는 그 자체가 모순적이기도 한 주먹구구식 사례나 주장의 나열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최근 여러 여성 단체나 여성 교육기관 등등에서 활발하게 추진하고 하고 있는 여성 리더십 교육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여성 리더십’은 구체적인 실천의 맥락을 갖는 개념인 만큼 개념 분석적 접근만으로 그 의미 전부를 밝혀낼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여성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실천적 현장 그 자체가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많은 여성 리더십 연구들이 주로 사례 중심의 연구 결과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연구자가 이미 “누가 여성 리더인지를 알고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즉, 연구자가 ‘여성 리더’로 선정한 이들의 수행적인 특성들이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리더십 연구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이런 접근 방법은 “누가 리더인가”에 대한 답을 공유하고 있는 경우라면 별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술했던 대로, 현재 리더십 연구의 맥락은 ‘리더’ 또는 ‘리더십’의 개념 자체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를 리더로 볼 것인가” 자체가 연구 문제인 것이다. 이 때문에, “어떤 실천적 현장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 누구를, 대안적인 리더십 연구가 주목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방향을 설정해 줄 개념적 연구가 필히 선행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3. ‘여성 리더십’의 개념화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여성’(women)이란 것이 해석될 수 있는 적어도 세 가지 개념 구분에 따라 ‘여성 리더십’의 의미를 분석해 볼 수 있다. 생물학적 구분에 의해 구별되는 ‘여성’(female)과 문화적으로 구성된 구분적 특성을 의미하는 ‘여성적’(feminine), 마지막으로 성차별적인 젠더로부터의 해방을 목표하는 ‘여성주의적’(feminist)이 그것이다.
첫 번째 여성 리더십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발휘하고 있는 리더십이다. 이것은 리더로 분류되는 여성들이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지에 대한 역사적 혹은 현재의 사실들을 통해 대답될 수 있는 문제이다. 연구의 대상은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성공한 여성들이 되며, 어떤 여성이 리더인가의 물음은 제기되지 않는다. 대신, 이미 리더로 공인받는 그룹에 속해 있는 이들 여성들이 어떤 행위 전략과 능력을 발휘해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으며, 리더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는지에 연구의 관심이 놓여 있다. 현재 나와 있는 여성리더십 연구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박통희(2004), 강혜련(2005) 등이 보여주듯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의 진출이 금지되거나 어려웠던 공적인 부문이나 기업 부문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공적인 목표나 기업적인 성취를 이끌어내고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현재 우리 한국 여성 리더십 연구에서 활발하다.
이들 여성들의 업무추진 스타일, 인간 관리 유형의 특징과 더불어, 남성 중심적 조직 문화 속에서 이런 업무 방식이나 능력들이 그들을 어떻게 성공으로 이끌어 주었는지를 분석하고, 이것이 일반화될 수 있는지 여부를 타진하는 것이 연구의 주 내용을 이루게 된다.
둘째, ‘여성적’ 리더십은 앞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으로 인성적 특징을 구분하는 개념 체계 안에서 전자적 특성을 갖는 리더십을 의미한다. 여성과 남성의 성 역할을 기본 축으로 사회 질서를 구축하고 있는 젠더화된 사회에서는 집단적 차원에서 여성이 남성 보다 여성적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추론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개인 여성이 개인 남성 보다 항상 여성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적 리더십은 현실 여성들 모두가 발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여성들만의 리더십도 아니다. 즉, 여성적 리더십은 “수평적 리더십”, “서번트 리더십”, “코치형 리더십”, “섬기는 리더십” 등으로 불리우는 민주적인 리더십과 가까운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위계적인 남성 조직에서 위로부터 내려오는 방향의 남성 리더십과는 달리 주로 생명을 보살피고 키워가는 활동 공간에서 여성들이 발휘해왔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생명을 키우고 보살피는 일에서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하는 주체가 정한 원칙이나 가치가 아니라 보살핌의 대상에 대한 이해일 수밖에 없다. 이런 특성적 활동 속에서 키워온 여성 리더십이 바로 최근 한국 사회에서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조직이나 사회에서 요구되는 민주적 리더십의 모델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다. 주도적인 리더십과 달리 타자 지향적인 리더십이 민주적인 관계 패러다임에서 필요로 하는 리더십이라는 담론이 설득력을 얻어가면서,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대안으로 여성적인 특성의 리더십을 훈련하고 교육하는 프로그램들이 관심을 얻고 있다.
세 번째에 해당하는 여성주의적 리더십이란 정치적 권력 관계의 맥락에서 추구되는 해방적 가치를 기초로 하는 리더십이란 점에서 앞의 두 리더십과 구별된다. 여기에서 ‘여성’을 생물학적 범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범주로서 이해할 때, 여성주의적 리더십은 약자의 입장에서 지배적이고 억압적인 현실의 권력질서에 저항하고 그런 권력 관계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상의 분석을 토대로 ‘여성 리더십’ 개념을 구성할 각각의 리더십의 핵심적 능력을 다음과 같이 추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여성 리더십의 핵심은 여성에게 결코 호의적이지도 친화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성차별적이기까지 한 불리한 상황에서 그 자신의 성공을 개척해내거나 조직으로 하여금 목표를 이루어내게 만든 능력, 즉 성취적인 성공 능력에서 찾아진다. 두 번째 리더십은 민주적 능력에 기초한다. 함께 일하는 타자에 대해 지배적이거나 억압적이지 않으며, 성취 중심적이기 보다는 관계 중심적인 사고로부터 나오는 리더십이 그 핵심인 것이다. 설사 성취한 바가 대단하지 않다하더라도, 민주적인 관계 속에서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는가가 여성적 리더십이 요구하는 우선적 조건인 것이다. 세 번째 여성주의 리더십은 목적 지향성에 의해 구분되는 리더십이다. 즉, 여성주의가 지향하는 정치적 목표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리더십이다. 성취력에 기초한 첫 번째 리더십에서 “무엇”을 성취했는가는 1차적 관심이 아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여성 리더십 연구의 대상은 주어진 조직에서 성취하고자 한 것을 이루어낸 것이냐 여부가 핵심이기 때문에 그 성취가 정치적, 경제적인 것, 등등 그 어떤 것일 수 있으며, 또한 리더십의 특성이 여성적일 수도 남성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여성적 리더십은 민주적인 인간관계를 조직하고 경영하는 능력을 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첫 번째 여성 리더십과 구분된다. 이것 역시 무엇을 위한 성공인가의 물음은 리더십을 구성하는데 핵심이 아니다. 이에 반해, 세 번째 리더십은 무엇을 위한 리더십인가가 보다 본질적이다. 이 때문에 여성주의 리더십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가 리더십을 판단하는 핵심적 기준이 아니라 얼마나 그 지향적 가치로의 변화 가능성을 열어가는지가 핵심이다. 성공성은 그 변화를 열어가는 것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근거 자료로서 고려될 뿐이다. 작금의 우리 사회 리더십 논의가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는 사회적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앞의 두 리더십은 대안적 리더십으로서 충분하지 않다. 주변화되어 있는 이들이 행위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갈 협상력과 경쟁력을 도모하는 첫 번째 리더십과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지향이 다른 그룹이나 개인들을 존중하면서 목표를 이루어가는데서 두 번째 리더십은 중요한 대안적 리더십의 요건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들 그룹이나 개인들을 단지 조율하거나 타협시켜가는 단계를 넘어, 새로운 사회적인 지향점의 공유를 이끌어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3. 누구를 통해 여성주의 리더십을 볼 것인가?
“여성주의 리더십”의 내용을 구성할 여성주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 질문의 대답은 확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변화 관계 속에 열려 있는 것인 만큼, 공식화된 리더십의 정의를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부적절한 것이다. 하지만, 여성 리더십이 무엇인가를 분석적으로 접근해 개념화 하려는 데서 출발하고 있는 이 글의 관심을 고려한다면, 다음과 같은 형식적 서술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여성주의는 현재 삶의 제반 권력 질서가 여성 억압적이라 보고 여성 해방적인 사회로의 변화를 목표한다.” 이때 ‘여성’은 생물학적 구분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구분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여성주의 리더십은 이런 목표를 향한 사회적인 변화를 이루어가는 가는데서 발견할 수 있는 리더십이라야 할 것이다.
여성주의 리더십에서 중요한 것은 그 목표를 실제로 성취했는가 여부가 아니라 그런 사회적 변화 가능성을 얼마나 열어주고 있는가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목표로서의 사회적 변화’란 역사적 시간 속에 열려 있는 과정(적인 것)이지 출발과 끝이 있는 독립적 단위의 성취(적인 것)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주의 리더의 조건을 그가 목표한 것의 성취 여부에서 찾으려는 것은 잘못이다. 사회적 변화를 목표하는 리더십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는가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 그 열린 가능성을 어떤 또 다른 가능성으로 연결해 가는가는 미래의 잠재적 리더들에 달린 문제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여성주의 리더십은 이미 확립되어있는 질서나 제도의 지도적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 보다는 그 질서나 제도 자체의 변화 까지도 염두에 두고 활동하는 이들을 통해 연구될 필요가 있다. 즉, 기존의 권력 관계의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는 이들에 주목해서 연구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여성주의적 리더십의 의미를 포괄하는 ‘여성 리더’로 분류될 이들은 누구인가? 앞에서 전개한 논의를 토대로 우리는 한국의 여성리더를 ‘여성들의 해방을 위한 새로운 사회적 공간을 열어가는 이들’ 속에서 찾을 수 있겠다.
리더십은 선험적 실체적인 것이라기보다 현실의 다양한 실천적 맥락 속에서 발휘되는 것이기에, 여성주의 리더십 연구는 어떤 실천적 현장에 주목해야하는가와 분리되어 전개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비정부단체에서 활동하는 여성 운동가들, 특히 여성주의 의식을 갖고 환경 및 생명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여성들에 주목한다. 여기에는 시민단체 뿐 아니라 특정한 조직형태를 갖지 않지만, 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대안 사회를 지향하면서 그 구체적 진로를 모색하는 여러 형태의 집단들도 포함된다.
이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문제들, 예컨대, 다이어트, 외모지상주의, 대안 생리대, 생명기술공학 등을 포함해서, 새만금 사업과 같이 지역의 생태환경을 위협하는 국가적 프로젝트 문제, 공동육아, 유기농 먹거리 운동, 더 나아가, 생명친화적인 삶의 방식을 소외시키면서 현실적으로 취하기 어렵게 만드는 현 지구화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실천 등등, 다양한 영역에서 여성으로서의 몸의 경험, 또한 한 생명으로서의 삶의 경험과 연결시켜 여러 가지 방식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민우회의 생협활동, 여성환경연대, 등 여성단체 뿐 아니라 녹색연합, 환경연합 등 환경 단체에서 활동하는 많은 여성리더들이 포함되며, 담론활동을 주로 하고 있는 꿈지모(꿈꾸는 지렁이 모임)와 같은 그룹들,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형태의 여성 환경 집단들도 포함될 것이다.
여기에서 강조해 두어야 점이 있다. 그것은 이들 대부분이 이들 문제에 접근하거나 그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자신의 삶의 체험이나 자신이 속해 있는 현장 경험과 그 문제의 의미를 결코 분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가치로서, 또는 거대 담론으로서 생명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오히려 거부감을 보인다. 대신, 구체적인 자신의 몸, 또는 가족이나 친지의 건강, 교육과 같은 구체적인 생활 경험 속에서 생명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계급적, 등의 제도를 체험하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만난 4~50대 여성 활동가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이상의 지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대학시절 억압적인 제도나 부정의에 대한 비판적 사회 의식을 길러온 세대였다고 할 수 있다. 1970~80년대 대개 대학에서 군사독재에 대한 민주화 운동을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사회 비판적 의식을 일상생활의 문제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민주화 운동의 목표가 이루어졌을 때 자신의 삶의 문제도 해결되어 있을까?”를 질문하면서 “아니다”라는 대답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소위 정치적인 목표를 정권타도나 교체에 두는 민주화 운동의 관점이 남성 중심적인 것이라는 통찰과 함께 여성주의 의식을 갖게 되는 과정이 있었다. 소위 정권으로서의 정치적 장을 넘어 일상과 사회의 다른 소외의 문제에까지 운동의 지평을 확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여성의식을 민주화 운동과 접목시키는 활동을 해 왔던 것이다. 현재 이들의 활동 속에서 지구화와 지역의 여성, 환경의 문제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에 대한 인식 등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지면상 생략한다.
4. 살림의 리더들이 만들어 가는 패러다임의 변화
이들에 주목하는 까닭은 이들이 열어가고 있는 새로운 사회적 영역이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시대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이 변화의 방향을 제시한다고 보는 이유를 통해 이들의 발휘하는 리더로서의 의미를 구체화해 볼 수 있다. 간략하게나마, 그것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여성주의적 이유이다. 이들은 유교적인 인습과 전지구적인 시장중심적인 경제 질서, 등이 혼융되어 지배하고 있는 한국 사회라는 시간 공간 속에서 새로운 공적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때 새로운 공적 영역이라 함은 기존의 공적/사적 구분에 기초한 규범, 인간관계, 제도 등등을 해체함으로써 다르게 재편되고 재구성되는 담론 및 활동 영역을 의미한다. 생명의 가치에 주목하고, 현대산업사회에서 공적인 것의 중심이 되다시피한 ‘경제’(economy)를 본래적 의미의 ‘살림’(oikos)으로 살려내고자하는 이들의 활동은 생명을 차별하고 착취했던 공/사 경계를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여는 공적 영역에 주목하는데에는, 사회 비판적 입장으로서의 여성주의의 핵심이 ‘기존 삶의 억압적 질서가 젠더적으로 공/사를 이분화해 온 오랜 가부장적 전통과 닿아있다’는 여성주의자로서의 나의 믿음(commitment)이 개입하고 있다. 이때 ‘젠더적’이라는 것은 이분화된 생물학적 성에 따라 사회적 구분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둘의 관계를 권력 위계화하는 것을 뜻한다.
젠더적인 이분화가 만들어낸 삶의 공/사구분 속에서 생명의 문제는, 주지하다시피, 자연에 속하는 개인 또는 사적인 문제일 뿐 공적인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할 진정한 정치적 의제가 되지 못하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단지, 그것은 소위 공적인 문제들에 종속되는 것으로서 다루어졌을 뿐이다.
이에 반해, 몸적인 생명의 문제를 정치화하는 이들의 활동은 새로운 공적 영역을 열어가는 것으로서 기존의 공/사 구분을 재편하는 것일 뿐 아니라, 생명의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인간관계, 규범, 제도, 실행으로서의 공적 영역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꾀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생명의 기본적 필요를 적절히 채울 것임을 보장하기 위해 서로 경쟁할 것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 사회를 급진적으로 상상하는 가운데서, 이 문제의 해결을 지향한다는 말이다. 생명을 사적인 가치(private good)가 아니라 보편적인 공공적 가치(public value)로 인식한다는 것은 생명의 문제를 단지 정책적 의제로 세운다거나, 복지적 수혜의 문제로 다룬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공/사의 경계를 해체하는 방식으로 그 해결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둘째, 민주적인 리더십과 관련된 이유이다. 지구적으로 다원화된 사회에서 민주성은 구성원들 간의 동일성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에 기초하는 민주성이다. 차이가 착취나 차별의 토대가 아니라 상생의 자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는 듯이 보인다. 문제는 차이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성을 보장하는 리더십의 기반은 무엇인가가 관건이다.
분명한 것은 차이의 민주주의가 성원들의 침묵이나 관망 또는 분리에 의해 유지되는 공존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어느 여성주의자가 말했듯이, 그것은 다 함께 말하고 거기에서 어떤 목소리들은 다른 목소리보다 더 울리고, 공명하며, 울림의 진동이 곧 변화를 이끄는 힘 혹은 권력이 되는 그런 공적인 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런 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는 누구도 결코 무관할 수 없는 최소한의 공유하는 가치가 필요할 것이라 보는데, 나는 이 가치가 바로 몸적인 생명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아래는 2,30대 여성주의적 관심에서 출발해 생명 문제에 대한 담론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그룹원들의 말이다.
“세미나 플러스, 침묵 집단(외부로부터의 주문, 개입 요청에 대해)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모임이 오래 지속되지 못했을 것.... 일단 (함께 모인 회원 상대) 각자 삶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그 고민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 이곳이었고, 엄청 놀았고..... 개인적인 관계들이 형성되면서..... 갈등이 생겼을 때에도 이 사람에 대한 역사성에 대한 이해가 있으니까, 이 사람과... 이론이 내 삶 속에 들어오니까... 그런 이론, 사상이 뭐냐 (원칙이나 논리에 충실하기보다는 오히려), 이 사람이 힘든 원인이 뭘까?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지가 더 중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우리 집단이 활동, 유지하는 원동력)”
생명은 인종, 섹슈얼리티, 젠더, 계급, 세대, 장애 등등의 차이들이 모일 수 있는 담론과 실행의 공간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문화적, 인식론적, 정치적, 국가적, 인종적, 계급적 등등의 사람들의 삶을 가로지르는 경계들을 둘러싼 차이들이 갈등하고 경합하며, 의견의 대립도 있겠지만, 그 갈등과 대립이 끝없이 언어적, 관념적으로 치달을 수만은 없게 만드는 역할을 바로 보편적이고 구체적인 지구가 처해 있는 생명 현실이 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더 이상, 개인적인 것일 수만도, 일(一) 국가적인 것만도 될 수 없는 지구 환경, 생명의 문제는 이미 기존의 공/사 구분 뿐 아니라, 개인/국가/지구의 경계 역시도 해체시키면서,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역성과 지구화가 결합해 만들어내고 있는 변화 지점을 우리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식탁 위에 올라온 음식, 입고 있는 옷, 살고 있는 건축물의 자료, 타고 다니는 차동차, 등등. 어디에서 온 것이며 내가 생산하고 있는 것들은 어디로 수출되는 것인지 등등.
나가는 말
사실, ‘여성 리더십’, 또는 ‘여성주의 리더십’ 은 여성학 연구 주제 목록 속에서도 최근의 것에 속한다. ‘리더’라는 개념이 ‘이끄는 자’와 ‘따르는 자’를 이분화 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지배적인 권력의 의미를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주의 운동의 역사나 지구/지역의 크고 작은 많은 활동들 속에서 여성들의 리더적 역할은 분명하며, 이런 역할에 주목해 대안적인 사회에 필요한 리더십을 확산시켜 나갈 필요 역시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민주적인 사회에서 요청하는 리더십에 대한 일반적인 요구 역시 이미 지배적 권력에 기반 한 리더십 개념을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기존 남성 중심 사회 속에서 차별받고 억압받아온 피해자로서의 여성의 위치만이 아니라,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는 시대적 문제의 심각성을 한 발 앞서 몸으로 인지하고 이의 해결을 위한 대안적 공동체를 모색하고 있는 행위자로서의 여성의 위치를 확인한다는 것은 지구화 시대 대안적 삶의 공동체를 위한 리더십 연구로서 그리고 여성학적 연구로서 그 의미를 갖는 일일 것이다. 기존의 효율과 목표지향적 조직문화가 요구하는 리더십과는 다른 리더십, 과연 “승부와 경쟁력의 시대에... 리더 없는 리더, 리더를 길러내는 리더.... 라는 이야기가 뜨악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을 닮고 싶다는 공명을 주는 리더십”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은 새로운 삶의 문화를 우리 사회에 요구하는 리더들이다. 지구적이면서, 지역적인 행위자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면서 생활 문제를 해결한 대안적인 공간을 만들어 내고자하는 이들의 활동을 통해 변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사) 생명과 평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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