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페미니즘> 2008/10/17 12:10
‘삶을 되살리는 여성주의’ 당신을 기억합니다 |
촛불이, 혼불처럼 너울거렸다. 지난 17일 ‘생태여성론’(에코페미놀로지)의 거목 고 문순홍 박사의 1주기 추모 행사가 서울 권농동 밝은사회국제클럽에서 열렸다. 이날 그의 동료와 지인들은 추모식과 함께 유고선집 <생태학의 담론> <정치생태학과 녹색국가>(아르케)의 출판기념회를 그 없이 열었다.
김지하 시인(생명과평화의 길 이사장)은 이날 “그는 내 생태학 선생”이라며 “사람들이 너무 그를 기억해주지 않았지”라고 안타까워했고, 정상명 대표(풀꽃평화연구소·화가)는 가진 것 모두를 털어 걸인에게 주고 자신은 먼 길을 걸어갈 만큼 순수하던 그의 면모를 되새겼다. 문 박사가 가르친 젊은 에코페미니스트 공동체 ‘꿈꾸는 지렁이들의 모임’ 최이윤정씨는 서정주 시인의 시를 낭독했다.
문 박사는 한국형 생태여성론과 생태정치학을 개척하고 지난해 1월28일 4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성균관대와 독일 루드비히-막시밀리안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뒤 호주 멜번 대학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으면서 존 드라이젝 등 생태사회과학자들과 함께 연구했다. 생태사회연구소, 불교환경교육원, 생명민회, 여성환경연대, 바람과물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참여 지식인이기도 했다. 서구생태론의 우리식 변형을 꿈꾸며 생태여성론을 동학·원불교·증산도의 언어와 접목했고, 300여 명에 이르는 여성 환경활동가를 심층 인터뷰해 ‘한국의 여성환경운동’(아르케)을 펴냈다.
한국형 생태정치학 개척하고… 참여지식인으로 활동하다
문 박사의 생태여성론은 생태여성주의와(에코페미니즘)도 선을 그었다. 그는 “생태여성주의가 여성주의적 틀을 견지한다면, 생태여성론은 생태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여성(성)과 남성(성)의 위계체제에 물음을 제기하고 현재의 시점에서 여성(성)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페미니즘이 실천적 과제로서 생명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지’, ‘생명으로서 자아와 세계 인식에 도달하는 여성주의적 방법이 있는지’를 끝없이 질문했다.
자기 몸의 결정권으로서 낙태가 용인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에게 “현 세대 자기발언권과 자기결정권은 고려되지만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관계축이 고려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은 스스로 말한 대로 “낙태를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과 같은 또 다른 권력집단의 주장을 유리하게 하는 부작용” 때문에 조심스럽긴 했지만 보수주의자들과 다른 이야기였기에 여성주의자들에게 진지한 고민거리를 남겼다.
그의 학문은 추상이 아니라 손에 잡힐 만큼 구체적인 삶 위에서 전개돼야 하는 것이었고,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는 변혁의 도구였다. 모심과살림연구소 윤형근 연구원은 “문 박사는 근대화, 산업화, 서구화 속에서 배제·타자화·주변화된 자의 목소리의 복권을 꿈꿨다“고 설명했다. 제자인 윤박경 연구원(바람과물연구소)은 그가 주장한 ‘녹색정치’에 대해 “지역 사람들의 삶·몸·자아의 각성과 실천이 토대가 돼야 한다고 늘 말했다”고 전한다.
삶을 되살리는 순환적인 흐름을 문 박사는 ‘지금, 여기’에서 설명하고 싶어했다. 유고선집인 <정치생태학과 녹색국가>에서도 그는 생명과 생태지역을 정치의 단위로 삼아야 한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여성환경연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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